10만인 리포트

소년희망센터 건립을 위한 '희망의 한판승'

'재심' 박준영 변호사의 아름답고 슬픈 고백
[희망의 한판승 ⑬] 노화도 사고뭉치였던 변호사의 희망편지

18.08.20 10:25 | 박준영 기자쪽지보내기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이 추진 중인 '소년희망센터' 건립을 응원하는 재심전문 박준영 변호사에게 원고 청탁을 했습니다. 박 변호사는 바쁜 와중에도 흔쾌하게 승낙했습니다. 억울한 위기청소년의 누명을 벗겨준 인권 변호사이자 위기청소년의 벗인 박준영 변호사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은 박준영 변호사가 위기청소년에게 보내는 소년 희망 편지입니다. [편집자말]
▲ 노화도 친구들과 함께 한 어린시절의 박준영 변호사(오른쪽에서 두 번째 선글라스 낀 소년) ⓒ 박준영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많은 사실을 말해줍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여행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옆자리에 함께 한 친구들도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넷 중에 저만 도시 아이 같아 보입니다만, 사실 저는 전라남도 해남군 땅끝마을에서 배를 타고 30분가량 가야 하는 섬, 노화도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고산 윤선도가 유배생활을 했던 '보길도'는 많이 알려져 있는데요. 노화도는 보길도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섬입니다.

부모님은 노화도에서 장사를 했습니다. 저는 바쁜 엄마와 아버지를 도와 가게를 봤습니다. 목포에서 배가 들어오면 손수레를 끌고 선창가에 가서 물건을 받아 왔습니다. 부모님을 돕는 건 당연하다 생각했지만, 공부는 제게 당연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이 닥쳐야 책상 앞에 붙어 앉아서 밀린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실컷 놀다가 엄마한테 잡혀 들어와 책상 앞에 앉으면 책이 눈에 들어올 리 없습니다. 이미 눈에는 졸음이 한가득입니다.

그러면 엄마가 안티푸라민 연고를 제 눈 아래에 쓱 발라버립니다. 화끈거려서 화들짝 눈이 떠지고 마지못해 공부했습니다. 그런 엄마 덕분에, 그리고 썩 나쁘지 않았던 '공부 머리' 덕분에 저의 성적은 최상위권이었습니다.

그런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 박준영 변호사 엄마의 유서 ⓒ 박준영

"어린 동생들 잘 보살펴다오. 너희들 셋이 지금처럼 공부하고 말 잘 들으면 엄마가 없어도 도와주는 사람이 있단다. 엄마가 없다고 술 먹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 그것같이 불쌍하고 불행한 것 없다. 그 점을 언제나 머릿속에 염두 해라. 어린 너희를 놔두고 가는 내 마음을 헤아려다오. 기가 막혀서 통곡을 한다."

엄마의 유서입니다. 중학교 2학년이던 제게 초등학교 4학년인 동생들을 잘 보살펴달라고 하셨습니다. 술 마시면서 방탕한 생활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엄마의 유언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부터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됐습니다. 술 드시고 집에 들어와 엄마를 자주 때렸던 아버지가 미웠고, 빚 독촉 전화가 수시로 걸려오는 집이 싫었습니다. 술과 담배를 일찍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을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가 방황의 근거입니다. 1학년 때 선생님은 "순박하고 다정하나 뚜렷한 목표 의식이 요구됨"이라고 쓰셨습니다. 아무 생각이 없는 학생이란 말이지요. 2학년 때는 "친구 간에 우애가 깊음"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 뜻은 혼자 가출하지 않고 친구들을 데리고 가출하고, 잡으러 가보면 문제아들이 한데 뭉쳐 있었는데도 담임선생님이 '친구 간에 우애가 깊다'고 좋게 표현해 주셨습니다. 3학년이 되면서 더 난리가 났습니다. "근면 성실하나 준법성이 요구됨", '수우미양가'에서 '수' 받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가나다'에서 '다'를 받는 것입니다.

3년 동안 무단결석만 100일 가까이 했습니다. 지각과 조퇴는 물론이고 수업 땡땡이도 많이 쳤습니다. 생활기록부만 보면, 아무리 봐도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전형적인 비행청소년의 모습입니다.

그랬던 아이가 헌법재판소 모범 국선대리인이 됐습니다

▲ 헌법재판소에서 모범 국선대리인 표창 받은 박준영 변호사 ⓒ 헌법재판소

사진은 2016년 12월 표창장을 받을 때 모습입니다. 오토바이 훔쳐 타던 비행청소년이 25년 뒤, 타의 모범이 되는 법률가가 된 것입니다. 제 주변 사람들은 '인생 참 모를 일이다'며 이런 반전이 없다고들 하십니다. 긴 시간이 사람을 바꿨습니다. 아니 시간만 흐른 게 아닙니다. 지난한 세월 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1988년 10월 12일, 상복을 입은 중학교 2학년은 엄마 영정사진을 들고 섬마을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30년이 지났는데도 또렷이 기억나는 장면은 저희 형제를 가엾이 여기며 바라보던 섬마을 어른들의 눈빛입니다.

그 어른들은 제가 방황할 때도 '못된 놈, 나쁜 놈'으로 규정짓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엄마 잃은 어린 저희 형제를 걱정하시면서 보듬어줬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한 사회의 정체성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요? 높은 빌딩이 많고 소득이 높아야만 살기 좋은 사회라고 할 순 없습니다. 힘들게 살고 있는 이웃들, 의지할 곳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그 사회가 어떻게 거두고 돌보는지가 좋은 사회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저의 첫 재심 사건은 '수원 노숙소녀 상해치사 사건'입니다
▲ 수원 노숙소녀 상해치사 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소녀가 '경기도 청소년상담복지센터' 교사에게 보낸 편지 ⓒ 박준영

2007년 5월 14일, 나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여자아이가 고등학교 화단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가운데 노숙인 두 명과 가출청소년 다섯 명 등 총 일곱 명이 범인으로 몰린 사건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 사건을 특별하게 보지 않았습니다. 수원역 주변에서 노숙하던 십대 가출청소년 다섯 명과 그리고 어른 노숙인 두 명 등 모두 일곱 명이 검사 앞에서 자기들이 죽였다고 자백한 사건이었으니까요. 하나같이 자기들이 죽였다는데, 한 명도 아니고 무려 일곱 명이 똑같이 죽였다고 하는데, 그걸 안 믿을 수는 없었습니다.

"근데요. 저희가 아무리 가출해서 훔치고 어쩌다 싸우고 그러지만, 양아치처럼 살았지만, 저희가 정말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겠지만, 쌤은 저희를 믿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노숙 소녀를 죽인 혐의를 받았던 가출청소년 중 한 명이 경기도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선생님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선생님만은 제발 믿어달라는 내용입니다. 살인범으로 몰린 아이의 편지를 받은 센터 선생님들은 매일 저를 찾아왔습니다. 최선을 다해 변호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범인으로 지목된 아이들은 하나같이 불쌍한 아이들

▲ 박준영 변호사 ⓒ 이희훈

솔직히 귀찮았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찾아오기에 선생님들께 숙제를 드렸습니다. 모두 일곱 명이 범인인 사건이어서 사건 기록이 엄청 두꺼웠거든요. 센터의 네 분 선생님께 각자 노트북 갖고 오셔서 아이들의 사건 기록을 분리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정리한 뒤에 다시 보자고 말했습니다.

범인으로 지목된 아이들은 하나같이 불쌍한 아이들입니다. 집이 가난했습니다. 배움이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의지할 가족도 없었습니다. 거리를 떠돌다가 수원역사 내 벤치에서 쪽잠을 자며 살았습니다. 이러다 배고프면 물건을 훔치는 등 나쁜 짓도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손해를 끼친 아이들이었지만, 아이들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살인범으로 몰렸습니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이 아이들의 편에 서서 경찰, 검찰, 법원을 상대하며 아이들을 믿어달라고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언론 보도를 보고 '사람을 죽인 아이들을 엄벌에 처하라'고 돌팔매질을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센터 선생님들은 돌을 맞을 각오를 하고 아이들을 구하려고 나선 것입니다.

물건을 훔치고 싸우며 사는 거리의 아이들이었지만 사람을 죽일 만큼 나쁜 아이들은 아니라고 믿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진심을 다해서 손을 내밀어주면 변할 거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선생님들이 우리 사회에 있었습니다.

'수원 노숙소녀 상해치사 사건' 해결사는 선생님들입니다

▲ 2017년 2월 24일 서울의 한 극장에 영화 '재심' 관람차 방문한 당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영화의 실제 모델이 된 박준영 변호사(오른쪽), 김태윤 감독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남소연

센터 선생님들은 센터 일을 마치자마자 저의 변호사 사무실로 퇴근해서 밤 12시까지 작업하셨습니다. 선생님 중에는 어린자녀를 둔 엄마도 계셨습니다. 주말과 휴일도 예외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노숙하던 수원 역사와 사건 현장을 오가며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아이들의 자백과 현장이 모순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저에게 변론을 부탁하기 위한 눈물겨운 수고였습니다.

선생님들이 기록을 분류하고 진술 분석을 끝내 놓은 것을 보면서 문제가 있는 사건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믿었습니다. 사랑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정리했습니다. 이런 지극정성을 통해 사건이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이 무죄라는 생각이 점차 확신으로 변했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아이들을 보니까 또 그렇게 억울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결국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벗었습니다. '수원 노숙소녀 상해치사 사건'을 제가 해결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숨은 해결사는 눈물겨운 정성으로 아이들을 살린 경기도 청소년상담복지센터 선생님들입니다.

선생님께 편지로 도움을 청한 소녀는 엄마가 됐습니다. 사는 것은 여전히 팍팍합니다. 누명은 벗었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가난은 벗지 못했습니다. 아이만큼은 가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가난과 불행의 대물림을 끊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엄마와 아이가 힘들었던 시절을 옛날 이야기하듯이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 박준영 변호사에게 온 편지들 ⓒ 이희훈

중학교 2학년 때 엄마가 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말기 암 환자의 고통을 봤습니다. 엄마는 눈을 뜬 채 돌아가셨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집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술만 안 드시면 참 좋은 분이었는데 말이지요. 가정폭력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서울로 가출해 가죽 잠바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미싱은 하루 종일 돌았습니다. 미싱만 돈 게 아니라 시다인 소녀들도 뺑뺑이 돌았습니다. 저와 또래인 시다 소녀들을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중학교 졸업하고 공장에 온 소녀들입니다. 소녀들을 보면서 저의 방황이 얼마나 사치인가 싶었습니다. 제가 한심하기조차 했습니다.

아버지는 엄마가 떠나신 뒤 재혼했습니다. 콩쥐팥쥐 속 계모가 아닌 천사 엄마가 저희 집에 들어오셨습니다. 이것저것 따지다 보면 절대 올 수 없는 집이 우리 집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저희들이 불쌍했다고 합니다. 돌봐줘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헌신과 사랑으로 저는 조금씩 변했고, 군 복무를 마친 후 5년 동안 사법시험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청소부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너무 더워서 바닥에 주저앉아 많이 울었다"고 하셨습니다. 가슴 아팠습니다. 저는 검찰과거사 진상조사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진상조사단이 차려진 곳은 서울동부지검입니다.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을 남 대하듯 볼 수 없습니다.

아픔 속에서 성장했으니 아픈 사람들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공사장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굴착기에 부딪쳤습니다. 육지였다면 사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된 응급조치를 할 수 있는 완도읍내까지 이송하는 과정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도 엄마도 가슴 아프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아픔과 슬픔으로만 자랐다면 이 세상과 사람들을 원망하고 불신했을 것입니다.

저희 형제를 거두어주신 어머니, 친척들, 섬마을 어른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따뜻한 손길 덕분에 오늘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눈물도 흘렸고 사랑도 받아봤기에 그 눈물과 사랑이 사건을 통해 만난 사람들에게 조금은 반영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픔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에필로그
권정생 선생님의 말씀처럼 고통에 공감하는 어른이 되기 위해
양희은 '아름다운 것들'의 가엾은 작은 새 같은 아이들을 위해

▲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님 ⓒ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누군가 <몽실 언니>처럼 가엾고 슬픈 아이 이야기 말고 밝고 희망찬 동화를 많이 써주셨으면 좋겠다."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어느 강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권 선생님의 답변입니다.

"슬픔을 모르는 아이는 좋은 어른으로 자라기 힘들다, 다른 이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는 좋은 어른으로 자랄 수 없다, 세상 모든 아이들이 밝고 환하게 살고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세상에는 지금도 눈물 흘리고 고통받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 어두운 모습을 감추고 보여 주고 싶은 모습만 드러내려 하는 것은 어른의 잘못된 생각이다, 아이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주변을 잘 살펴보면 가난하고 불우한 아이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아이들을 잘 거두고 키워야 합니다. 내 아이만 잘 키우고 가난하고 불우한 아이는 외면하는 사회는 사람답게 사는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난하고 불우한 아이들에겐 상처가 많습니다. 하지만 상처 속엔 상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상처를 낫게 하면 상처가 아름다움으로 변합니다. 아파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내 것을 나누는 마음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아름답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저는 믿습니다.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이란 노래를 좋아합니다. 그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짠해집니다. '꽃잎 끝에 달려 있는 작은 이슬방울들'과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가엾은 작은 새'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어디로 가야할까요? 위기청소년들은 이슬방울 같은 아이들이고 가엾은 작은 새들입니다.

'위기청소년의 좋은친구 어게인'(대표 최승주)이 추진 중인 '소년희망센터' 건립을 응원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소년희망공장'을 지어서 거리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일자리를 주었으니 이제는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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