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인 리포트

모든 시민은 기자다

사장이었던 그, 노가다에 뛰어든 이유
'노가다' 기록한 목수 기자, 김지영 시민기자

18.05.22 22:04 | 글: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장지혜쪽지보내기

▲ '공사장 갑질 폭행' 논란 영상의 한 장면(좌)과 아파트 현장에서 일하는 목수 기자(우) ⓒ (좌 오마이뉴스, 우 김지영)

하필이면 그날이었다. 그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 약속을 잡고 몇 시간 뒤, 문제의 영상이 세상에 공개됐다. 장소는 달랐지만, 그가 기록한 사람들의 일터였다. 안전모를 쓰고 작업복을 입은 차림새도 비슷했다. 그가 쓴 글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이런 복장을 했다.

이른바 '공사장 갑질 폭행' 동영상.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등장하는 난동 영상. 이게 세상에 공개된 날, 그와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건설 현장을 누비며, 육체 노동자의 이야기를 기록한 '노가다' 기자다.  

육체노동은 그의 밥벌이다. 몸으로 먹고산다. 목수 기자이기도 하다. 낮에는 허리춤에 연장을 두르고 나무를 다룬다. 밤에는 손에 펜을 쥐고 글을 쓰고 다듬는다. 이런 이야기를 기록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10만인리포트 '노가다 전(傳)'이 그거다. 그는 김지영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다.

김지영 시민기자는 이명희씨와 달랐다. 이명희씨는 '갑질 폭행'으로 사람들의 치를 떨게 했으나 김지영 시민기자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 땅에 알렸다. 그들은 서류상 '을' 아니, '병'과 '정'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금부터 그가 기록한 육체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기록이다. 목수 기자의 사연이기도 하다. 그는 사람은 사람일 뿐, 직업으로 신분을 구분할 수 없다고 외친다.

늦깎이 육체 노동자가 되다

▲ 2007년 농장을 운영하던 시절의 필자. ⓒ 김지영

김지영 시민기자는 "어쩌다 노가다까지"하게 됐다.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면, 이랬다. 그때 그의 나이 마흔여섯이었다. 늦깎이 육체 노동자가 된 사연은 이렇다.

넥타이를 풀고 빨간 장갑을 꼈다. 김지영 시민기자는 회사원 생활을 청산하고 귀농을 했다. 지난 2006년, 서울 떠나 경상도 산골짜기로 이사를 했다. 볼펜을 굴리던 손으로 닭을 길렀다. 달걀을 팔아 아내와 아들, 세 식구가 먹고살았다. 그는 연재기사 '노가다 전(傳)'을 여는 글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썼다.

"인생의 종착지를 아파트로 결론짓고 싶지 않았고, 소외된 노동이 아닌 주체적 노동의 주인공으로 한 번뿐인 내 삶을 살아내고 싶었다."


양계장 주인장은 조연의 삶이었다. 그의 인생에 닭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닭은 매일 먹고 싸고 알을 낳았다. 뒤치다꺼리는 그의 몫이었다. 집사가 따로 없었다. 농장에 얽매어 닭에 발이 묶여 고단한 날을 보냈다. 그는 4년 만에 폐농을 선언하고, 제주도로 떠났다.

탐라에선 소박한 삶을 탐했다. 이번에도 외딴 마을 오지에 '언덕 위 하얀 집'을 지었다. 그는 펜션을 운영하며, 손님을 받았다. 바라던 대로 적게 벌면서 자유롭게 살았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탐탁지 않은 일이 생겼다. 아들의 진학 문제였다.

별난 아빠를 둔 탓일까. 김지영 시민기자의 아들은 보통의 아이들처럼 공부하길 바랐다. 그가 대안학교를 권했는데도 고등학교에서도 공교육을 받겠다고 했다. 이번엔 그가 다른 길을 선택해야 했다. 별을 보며, 출근하는 일을 하게 됐다. '노가다'였다.

"아이는 개별적 존재이자 별개의 우주이기 때문에 아이의 생각은 그것대로 존중받아 마땅했다. 나는 아들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 존중의 결과는 아비로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으로 귀결됐다. 돈을 벌어야 했다."
    
사장님 소리를 듣다가 데모도가 됐다. 데모도는 건설 현장에서 기술자를 보조해 주는 사람을 일컫는 현장 용어다. 그는 생활 정보신문에 적힌 '목수 구함'을 보고 전화를 걸었다. 건설 현장의 목수 '오야지'가 면접을 봤다. 바닥부터 일을 배웠다.

밑바닥 인생 취급을 당했다. 목수를 한다면,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경험을 통해 그 눈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됐다. 그건 천박한 직업을 가진 보잘것없는 사람의 딱한 인생을 바라보는 눈동자였다. 한마디로 사람을 '후지게' 봤다. 우리 사회 뿌리 깊게 박힌 '노가다'를 바라보는 차별과 편견이었다.  

"난 육체노동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는 노가다 판에서 뒹굴면서 아이들을 먹였고, 학비를 댔고, 차가운 잠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어디에서 굴러먹든 열심히 성실하게 일을 하면 굶지는 않는다는 속설은 노가다 판에서도 통한다. 그리고 사실 오랜 회사생활과 이런저런 직업을 거치고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성찰할 수 있었다. 그나마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가장 정직한 돈벌이 중 하나가 육체노동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에겐 키보드나 망치나 똑같았다. 이걸 알리고 싶었다. 흔히들 '노가다'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일하는 사람으로 여겼으나 실상은 달랐다. 실제 건설 현장에는 목수나 철근공, 전기공 같은 전문 기술자가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은 직업으로 신분을 나눴지만, '밥벌이'란 건 다르지 않았다. 사람은 사람일 뿐이었다.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들고 건설 현장으로 갔다.

목수 기자, '노가다'를 기록하다

▲ 철근공 한경진 씨(좌)와 청년 목수 박정훈 씨(좌) ⓒ 김지영

김지영 시민기자는 철근공 한경진(41)씨를 만났다. 그에겐 세 명의 어머니가 있었다. 한때는 앵벌이와 껌팔이, 룸살롱 웨이터까지 했다고 했다. 남다른 길을 걸어온 이런 이야기를 글로 풀어냈다. 이게 그거다. 

[관련 기사] 껌팔이·앵벌이, 그보다 힘들었던 건 새어머니의 폭력

김지영 시민기자는 글을 맺으며, 이렇게 썼다.

"'노가다'나 하던 한경진씨가 노동자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 항상 옆에 가까이 두고 있었던 가족들이 있어 가능했다. 그리고 처음 경진씨를 세상 속으로 내보냈던 지금의 어머니가 있었다. 지독한 가난 때문에 헤어졌다, 지독하게 힘든 시절 구원의 손을 내밀었던 바로 그 어머니가 말이다.

철근공 한경진씨는 지금 부안군 상서면에서 태어난 김정민으로 다시 살고 있고 철근공 김정민으로 늙어갈 생각이다. 그리고... 지난 5월 27일 김정민 씨는 아내와 동거를 시작하고 13년 만에 늦은 결혼식을 올렸다. 거기 말썽꾸러기 아들과 늦둥이 딸이 행복한 걸음을 함께 해주었음은 물론이다."

- 철근공 한경진 씨의 사연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인생을 들으면서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게 됐다. 그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디 가서 함부로 떠들고 자랑할 게 못됐다. 그리고 육체 노동자로 살지만, 그는 누구보다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성실하게 일해 한 달에 350만~400만 원을 벌었다. 아들이 ADHD(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판정을 받았으나 아내와 딸을 합해 네 가족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노가다'는 청년 목수다. 나이 때가 비슷해서일까. 그의 굴곡진 인생 이야기에 눈길이 갔다. 아래 기사가 육체 노동자로 살아가는 박정훈(38)씨의 이야기다.

[관련 기사] "서른일곱에 육체노동, 인생에서 가장 잘 한 선택"

김지영 시민기자의 말에도 마음이 갔다.

"젊은 사람이 가장 기피하는 3D 업종의 대표주자 격인 건설현장에서 목수로 일하는 박정훈씨. 그는 그렇게 버는 돈 중 일부로 빚을 갚고 어머니 생활비를 계속 보내고 있다. 그리고 매달 백만 원이 넘는 돈을 적금에 쏟아붓고 있다. 동시대 또래들과 비교하면 형용할 수 없는 굴곡진 인생을 보낸 그에게 지금, 노동은 곧 그의 미래였다.

2017년, 그의 나이 아직 서른일곱이다."

- 어떻게 박정훈씨를 만나게 됐나?
"전국건설노동조합에서 소개해준 청년 목수였다. '노가다 전(傳)'을 연재하면서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한 기사였다. 기구한 사연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게 아닌가 싶다. 학창 시절 공부를 아주 잘했다는 것도 한몫 했다. 보편적인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우리 모두 특별한 삶을 살아가기에 특수한 사연이라 할 수는 없을 거다."

편견과 차별에 맞서다

▲ 오전 일곱 시. 하루치 노동을 위해 현장으로 걸어들어가는 건설노동자들. ⓒ 김지영

지난달 30일, 김지영 시민기자를 만났다. 그의 '노가다 인생'을 들으며,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나의 아버지였다. 그처럼 아버지도 시골에서 양계장을 했었다. 2만 마리가 집단 폐사하기 전까지 그랬다. 잊고 있던 나무 냄새도 떠올랐다. 아버지가 하던 목공소에서 맡았던 거였다.

스물두 살, '노가다'를 뛰었던 나의 추억도 풀어놨다. '탕뛰기' 팀에 들어가 서울과 일산에 세워지는 빌라와 아파트의 싱크대를 설치하러 다녔던 기억이다. 이렇게 그와 통하는 게 있었다. 그가 하고 싶었던 말도 여기에 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뉴스 지면에 오르내리는 세속적인 성공의 당사자인 오피니언 리더의 추악한 민낯을 똑똑하게 보고 있다. 그 민낯이 드러나기 전에 그들은 과정과 관계없이 뭇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사람들이다. 단지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나는 육체 노동자들의 삶이 특별히 아름답거나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매일 현장에서 마주치는 그들의 세상이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의 세상은 여전히 거칠고 투박하다. 조직 관계가 허술해서 의리도 약하고 노동이 힘들어 술도 욕도 많은 문화가 마뜩잖다. 그 세상에도 작은 욕망을 위한 배신과 모함과 험담이 오고 간다.

그러나 이런 마뜩잖은 모든 것들은 인간사회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니까, 똑같다는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궁극의 이야기는 말하자면 이거였다."

- 독자들의 반응도 의도대로였나?
"편견을 깨는 데 좀 도움은 됐다고 본다. '노가다'가 천한 사람들이 하는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는 댓글이 달렸다. 못 배운 사람이 가고, 막사는 사람들의 직업이란 편견이 깨졌다고도 했다. 건실하게 자기 삶을 가꾸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기억에 남는 독자도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목수이신데, 노조에 어떻게 가입하는지 물었다. 의외로 일용직 노동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 노가다, 해외와 우리나라는 뭐가 다른가?
"우리나라의 건설현장은 기형적이다. 하청에 하청, 삼청까지 간다. 이러면 공사대금이 낮아지고 업체는 손해가 날 수 있다. 이걸 메꾸는 방법은 노동 강도와 인건비뿐이다. 열 사람이 할 일을 여섯 사람에게 몇 푼 더 주고 단기간에 빡세게 시킨다. 여기서부터 '노가다'를 천대하는 문화가 생겼다고 본다.

호주를 보자. 하루 일당이 엄청 세다. 근무 시간도 오후 2시면 끝난다. 북유럽도 똑같다. 의사와 육체 노동자의 임금 격차가 좁다. 노조와 연관성이 있다. 이들 나라의 노조가입률이 높다. 우리나라도 노조가 만들어지면서 근무여건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사람답게 일할 여건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람은 사람일 뿐이다. 직업으로 신분을 구분할 수 없다. 그래서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거다. 하지만 우리 사회도, 건설 현장도 갈 길이 멀다."

펜을 든 '목수 기자', 세상을 바꾸다

▲ 세상을 바꾸기 위해 펜을 든 '목수 기자' ⓒ 정대희

세상을 바꾸기 위해 펜을 든 목수 기자. 그가 글을 쓰게 된 사연을 물었다.

"(지난) 2005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됐다. 당시는 첫째가 입학을 앞두고 있던 때였다. 서울 강남 살았는데, 촌지 괴담에 밤잠을 설쳤다. 어딘가에 말은 하고 싶은데, 할 때가 없었다. 고민 끝에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썼다. (관련 기사: 초보 학부모 잠 못 들게 하는 촌지 괴담) 처음 쓴 글이 오마이뉴스 메인 면에 실리고, 댓글도 달리더라. 히로뽕 맞은 것처럼 정신이 없었다.

결과적으로 이 기사로 삶이 바뀌었다. 나한테 글을 쓰는 재능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됐다. 글을 쓰면서 나에 대해서 성찰하는 시간도 가졌다. 인생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됐다. 글 쓰는 김지영의 인생이 펼쳐졌다. 내가 입양을 결정한 이야기와 다른 입양 가족의 사연을 기사로 쓰게 됐고 책 <세상의 모든 소린이에게>를 발간하게 됐다."       

그는 '노가다'에 대한 편견과 차별에만 맞선 게 아니다. 입양 가족을 바라보는 똑같은 시선에도 펜을 들었다. 입양 가족도 평범한 가족과 다르지 않다고 기록했다. (관련 기사: 거룩한 입양에 반대하는 딸바보 아빠) 그리고 또 한 번, 이런 편견과 차별을 깨트리는 글을 준비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들고 현장으로 향할 채비를 하고 있다. 

"위탁모와 관련한 기사를 준비 중이다. 조만간 <오마이뉴스>를 통해 소개할 거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써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왜냐면, 너무 진부한 표현일 수 있지만 그건 사랑 때문이다.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사람을 전반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건 사랑이라고 본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도 사랑이다.

세상엔 여러 사랑이 있다. 소수의 사랑, 소외당하는 사랑,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 '입양을 인터뷰'하고 '노가다 전(傳)'을 기록한 것도 그들의 사랑이 평가절하되고 있어서다. 사람을 향한 사랑이 사라진 시대,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갑질 폭행' 영상과, '목수 기자' 사진

여기서, 다시 이명희씨의 '갑질 폭행' 동영상이 떠올랐다. 아래 영상이 그거다. 안전모를 쓰고 작업복을 입은 사람에게 악다구니를 쓰고, 삿대질하고, 옷자락을 잡아끌고, 밀치고, 주먹질하고, 서류를 빼앗아 바닥에 내팽개치고...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끝으로 사진 한 장도 봐 달라. 안전모를 쓰고 작업복을 입은 '목수 기자' 김지영 시민기자의 모습이다. 그는 "노가다로 내 새끼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웠다"라고 했다. 땀 흘려 일하는 모든 노동은 신성하다.

▲ 아파트 건설현장에 선 필자. ⓒ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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