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인 리포트

오십쇼

꽃집 아저씨의 특종... JTBC에서 전화가 왔다
[오십쇼] 충남 홍성군 꽃다지 화원, 신영근 시민기자

18.04.04 08:28 | 글:정대희쪽지보내기,이주영쪽지보내기

오십쇼는 매월 1만원 이상씩 오마이뉴스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는 10만인클럽 회원들의 나눔 쇼핑 공간입니다.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 신영근 시민기자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나눔 쇼핑 '오십쇼'의 4번째 가족이 됐다. 그는 10만인클럽 회원이 자신의 꽃집에 주문을 하면, "10%할인해 주겠다"고 했다. ⓒ 정대희

충남 홍성에는 색다른 꽃집이 있다. 꽃을 사고파는 건, 여느 꽃집과 다르지 않으나 주인장이 보통 '꽃집 아저씨'와 차이가 있다. 그는 차를 타고 꽃만 배달하는 게 아니다. 취재 도구를 챙겨 현장에도 간다. 동네 이야기를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다. 그는 펜을 든 '꽃집 아저씨'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나눔 쇼핑 '오십쇼'의 4호점은 기사 쓰는 '꽃집 아저씨'의 가게다. 충남 홍성에 있는 '꽃다지 화원'이다. 17년째 꽃집을 일터로 삼은 이는 신영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다. 그는 자발적 구독료를 내는 10만인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펜을 든 '꽃집 아저씨'

▲ 신영근 시민기자는 현장에서 기사를 쓴다. 특별한 취재장비가 있는 건 아니다. 핸드폰으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다. 그를 현장에서 만나면, 쭈그려 앉아 기사쓰는 모습일 때가 많다. ⓒ 신영근

지난달 19일, 꽃집에 가려고 버스를 탔다. 카메라와 취재 수첩도 챙겼다. 이번에는 내가 '펜을 든 꽃집 아저씨'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서다. 이른 아침부터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었다.

홍성종합터미널에서 신영근 시민기자를 만났다. 충청도 사투리가 구수한 '아저씨'였다. 그의 발이자 짐수레인 승합차에 올라타 '홍성읍 충절로 1053번 길 106-2'에서 내렸다. 눈앞에 간판이 보였다. '꽃다지 화원'이란 다섯 글자가 색이 달랐다. 여기가 '펜을 든 꽃집 아저씨'의 일터였다.

숨 돌릴 겨를도 주지 않고 물었다. 꽃집 일 하기도 바쁠 텐데, 왜 글을 쓰냐고. 신영근 시민기자의 대답은 이랬다.

"이게 다 박근혜-최순실 때문이쥬. 국정농단 때부터 본격적으로 (<오마이뉴스>에) 글을 썼으니께. 그때 여기 동네에서도 사람들이 거리에 나오고 촛불을 들었는데, 뉴스에는 안 나오는규. 언론에서도 지역 소식은 무관심 하고유. 서울 사람만 거리에 나온 게 아니고, 동네 사람들도 촛불을 들었다는 걸 알리고 싶었슈. 지역 언론조차 외면하는 동네 소식을 기록하고 싶었슈. 그게 다예유."

하고 싶다고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다. 신영근 시민기자도 이랬다. 글쓰기, 배운 적이 없었다. 취재 방법도 몰랐다. 육하원칙은 '수학의 정석'에 나오는 공식인 줄 알았다. 그래서다. 나름 공들여 쓴 기사도 흔한 말로 '물 먹기' 일쑤였다.

포기하지 않았다. 온몸으로 넘어지고 깨지면서 글쓰기를 익혔다. 지치지 않고 쓰고, 또 썼다. 이렇게 지난 2016년부터 지금까지 500편의 기사를 썼다. 하루 평균 1건의 기사를 <오마이뉴스>에 보낸 꼴이다.

- 꽃집 운영하면서 시민기자 활동하는 것을 두고 가족들의 불만은 없나?
"사실, 집사람은 시민기자 활동하면 "돈이 되냐, 장사가 되냐"며 불만이쥬. (웃음) 근데, 시민기자 활동이 재미있고, 신나유. 그래서 다음날 취재하러 갈 일이 있으면 밤새 꽃집 일하고 장사 준비 다 해놓고 현장에 가쥬. 내 신조가 뭐든 미쳐서 하자는 거유. 놀 때는 신나게 놀고, 장사할 때는 또, 열심히 장사하고. 물론 집사람 눈에는 차지 않겠지만 어쩔규.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축구화 신고 달려간 취재현장, 특종을 쏘다

▲ 신영근 시민기자는 동네 이야기를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기 위해 펜을 들었다. ⓒ 신영근

좋아서 하는 일은 가슴을 뛰게 했다. 오죽하면 축구심판을 보다가 짬을 내 취재현장에 간 적도 있다. 축구화를 신고 갔던 소녀상 제막식 현장이다. 여기서 신영근 시민기자는 특별한 영상을 촬영했다. 아래 영상이 그거다. 시민이 등장하는 장면은 현장에서 모자이크 처리가 어려워 사진을 덧씌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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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홈페이지 속 '오마이광장'에 신영근 기자의 이름이 떴다. 이 기사로 그는 2017년 9월, <오마이뉴스>가 시민기자에게 주는 특종상을 받게 됐다. 펜을 든 후 받은 첫 번째 상이다. JTBC에서 전화도 받았다. 동영상을 제공해달라는 문의였다. 이날 밤, 그가 찍은 영상이 <뉴스룸>의 비하인드 뉴스에 소개됐단다. 그에겐 특별한 경험이었다.

직접 겪었던 일도 '단독'이란 머리말을 달고 기사로 나왔다. 지난 2017년 8월, 신영근 기자가 홍성 우체국에서 보고 듣고 기록한 일이다. 그가 기억하는 '그날'의 일은 이렇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기념 우표'가 발행된 날이었쥬. 당시 홍성우체국에서 신기한 장면이 연출됐어유. 이름 아침부터 '기념 우표'를 사겠다고 사람들이 몰린 거유. 나도 딴에는 일찍 간다고 가서 오전 8시에 번호표를 뽑았는데 대기번호가 35번인 거유.

황당한 사건은 그다음에 일어났슈. 아니, 우정사업본부가 발표한 내용이랑 다르게 '우표첩' 수량이 턱없이 부족한 거유. 우체국 직원이랑 시민들이 실랑이를 벌였쥬. 여기저기서 옥신각신하고 티격태격하고 소란스러웠슈. 현장에서 보고 들은 걸, 핸드폰으로 찍고 기록했쥬.

취재를 해보니, 홍성우체국이 우표첩을 빼돌린 거였슈. 우체국 직원도 관여된 일이었쥬. 기사를 써서 <오마이뉴스>에 송고하니 항의 전화가 쏟아졌슈. 지인이, 아는 사람이 그런 기사 왜 썼냐고 하는데... 죽겄는규. '이러다가 잘못되는 게 아닌가'란 생각도 들고. 나중에 우정사업본부서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 잡겠다고 하고 사람들의 전화가 시들시들해져서야 마음을 다잡게 됐슈. 장사에 영향이 없었나고유. 글쎄, 그런 건, 못 느꼈슈."

이게 다가 아니다. 꽃 배달을 갔다가 '취잿거리'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쓴 기사는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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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현장에서 그때그때 기사를 써유. 항상 품에 취재 장비를 가지고 다니니께. 카메라와 노트북이 있냐고유. 아니, 그런 거 읍슈. 핸드폰으로 사진 찍고, 글도 쓰쥬. 간단한 동영상도 바로 편집해서 올리기 쉽고유. 그래서 현장에서 저를 만나면, 한적한 곳에서 쭈그려 앉아서 손가락으로 (타자를 치는 시늉을 하며) 요렇게 하는 모습일 때가 많쥬. 하하."

주인 닮은 꽃집 "똑바로 된 상품만 팝니다"
▲ 펜을 든 꽃집 아저씨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자신이 만든 꽃이 의미있는 일에 함께하는 거다. 그래서다. 그는 매년 나이팅게일 선서식에 놓여 있는 자신의 꽃을 보고 있으면, 울컥하다고 한다. ⓒ 신영근

펜은 가슴을 뛰게 했지만 '꽃집'은 먹고살게 해줬다. 그래서다. 신영근 기자에게 꽃집은 '공든 탑'이다. 17년 전, 농협을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 1000만 원을 탈탈 털어 시작한 생계수단이다.

아내가 먼저 "꽃집을 해보라"라고 제안했다. 꽃집 이름을 '꽃다지'로 정한 건, 오래전부터 가슴에 품었던 낱말이기 때문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작고 예쁜 들꽃을 가리키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젊은 날 좋아했던 노래패의 이름과 똑같았다. 

"80년대 '꽃다지'라는 유명 노래패가 있었슈. 대학생 시절 학생운동을 하면서 즐겨 불렀던 노래가 이 노래패 거였쥬. 사실, 젊을 때 훗날 장사를 하면 사용하겠다고 생각한 단어는 '꽃다지'와 '청춘' 두 개유. 근데, 꽃집을 하게 됐으니 자연스럽게 '꽃다지'를 선택했쥬."

하지만 대차게 문을 연 꽃집은 주문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 힘 빠지는 날이 길어졌다. 홍성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지만 이게 장사에 그리 도움은 안 됐다. 4~5년 고생길을 걸어야 했다.

"젊을 때였으니까 의욕만 넘쳤쥬. 초반에는 고생스러웠는데, 사회활동을 하고 각종 모임에도 나가고 하면서 서서히 주문이 들어왔쥬. 무엇보다 꽃은 정직과 신뢰, 믿음이 필요한 식물이라는 생각에 거짓 없이 똑바로 된 상품을 팔아왔슈. 꽃도, 나라도 똑바로 서야쥬. 다행히 지금은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을 정도유."

꽃집이 일터여서 일까? 신영근 기자의 입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순간 이런 게 궁금했다.

- '꽃집 아저씨'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각종 행사장에 제가 만든 꽃이 있으면 뿌듯하쥬. 그중에서도 하나를 꼽으라면, 매년 간호학과 대학생들의 나이팅게일 선서식에 우리 집 꽃이 서 있는 거유. 뭐라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데, 선서식을 보고 있으면 울컥해유. 그렇게 소중한 자리에 제 꽃이 함께할 수 있는 게 영광이쥬."

충남 홍성에는 주인장을 닮은 꽃집이 있다. 소박한 들꽃 같은 '꽃다지 화원'이다.

"<오마이뉴스> 가족들에게 10% 할인"

▲ 신영근 시민기자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나눔 쇼핑 '오십쇼'의 4번째 가족이 됐다. 그는 10만인클럽 회원들이 꽃을 주문하면, "10% 할인해 드립니다"고 했다. ⓒ 신영근

"'오십쇼'까지 참여하게 되니까 <오마이뉴스> 가족이 된 기분이네유."

신영근 시민기자의 말이다. '펜을 든 꽃집 아저씨'의 가게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나눔 쇼핑 '오십쇼'의 4번째 가족이 됐다. 그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들이 꽃을 주문한다면, 10% 할인해주겠다"라고 약속했다. 방법도 간단하다. 전화로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이라고 말하면, 별다른 인증 절차 없이 가격을 10% 할인해주겠다고 했다.

신영근 시민기자에게 '<오마이뉴스>는 어떤 언론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오마이뉴스>를 보면, 공감 가는 뉴스가 많어유. 누구나 기사를 쓰고 기자가 될 수 있는 이런 언론이 잘 됐으면 하쥬. 수도권 중심이 아닌 소도시 시골 이야기까지 소개가 되니 독자로서 시민기자로서 더 뿌듯함을 느껴유. 때론 <오마이뉴스>도 기사와 관련해서 시민기자와 독자의 비판을 받지만, 그게 진보 종편을 향한 영양분이라고 생각해유. 지금보다 더 살아있는 진보언론이 되어주기를 바라쥬."

<오마이뉴스>와의 인연, 좋았던 기억만 있을 건 아닐 거다. 그래서 물었다.

- 섭섭했던 기억은 없었나요?
"징계를 받은 적이 있슈. 아시는 분한테 천수만에서 찍은 가창오리떼 사진을 보내줬쥬. 사용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뒤에 기사를 썼쥬. 근데 알고 보니 이게 7년 전 사진이었쥬. 어떻게 알았냐고유. 또 다른 지인이 기사를 보고 전화를 해왔슈. 요즘 천수만에 가창오리떼 안 온다고. 이게 뭔 소린가 하며. 놀랐쥬. 그래서 확인을 해보니 오래전 찍은 사진이 맞는규.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는데, 내 딴에 '가창오리떼'를 확인한다고 현장을 간 게 일을 키운규. 동영상을 촬영해 사진과 함께 올렸는데, 여기에도 오류가 있었던 거쥬. 내가 찍은 영상에 나온 새떼가 '큰기러기'였던 거유. 엎친 데 덮친 격이었쥬. 사실 확인을 한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내 잘못으로 오보가 난 셈이쥬. 한때 섭섭한 감정이 들기도 했지만 이젠, 그런 마음도 없슈. 오히려 약이 됐던 일이니께유. 이 일로 더 꼼꼼히 취재하고 똑바로 기사를 쓰게 됐쥬."

누군가에게 섭섭한 기억이 있으면, 마음이 돌아선다. 하지만 신영근 기자는 등 돌리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오마이뉴스>에 자발적 구독료를 내는 10만인클럽 회원이다. 기사를 쓰고 받는 원고료를 모아 <오마이뉴스>에 힘을 보태고 있다.

"요즘 10만인클럽 회원 숫자가 떨어지는 걸 보면 마음이 아퍼유. 매일 버릇처럼 숫자를 확인한다니께유. 어렵고 힘들고 지칠 때 같이 해야쥬. 이게 내가 <오마이뉴스>를 사랑하는 방법 이유. 왜 한 가족끼리도 싸우고 섭섭한 일 많잖유. <오마이뉴스>의 가족들이 늘어나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날이 길어졌으면 좋겠슈. 그게 내 작은 바람이유."

홍성종합터미널에서 신영근 기자와 헤어졌다. '펜을 든 꽃집 아저씨'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그를 보내고, 홍성역으로 향했다. 비바람에 우산이 뒤집히고 옷은 축축해졌다. 하지만 가슴은 뜨거워졌다.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타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꽃도 사람도 따뜻한 기운으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

▲ 신영근 시민기자는 서천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을 취재하러 가는 길, 자신이 직접 만든 꽃다발을 들고 갔다. 그는 "꽃도 나라도 똑바로 서야"한다고 말했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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