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인 리포트

전국 일주, 지역이 희망이다

새바지 인공동굴에서 본 나라 잃은 백성의 '눈물'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자] 부산을 요새로 만들려 했던 일본

18.04.01 12:11 | 정민규 기자쪽지보내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특별위원회가 일제 강제징용 사실을 널리 알리고 피해자들의 넋을 기리고자 집중 취재합니다. 기획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자>에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에 참여하고자 하시는 애독자 여러분은 부산소녀상 옆 노동자상(https://www.facebook.com/iljenodong/)을 클릭해주세요. [편집자말] [편집자말]
▲ 부산 강서구 대항동 새바지 인공동굴. 마을을 향해 난 3개의 입구는 안 쪽에서 하나로 합쳐져 반대쪽 해안으로 이어지는 약 50m 길이로 되어 있다. ⓒ 정민규

부산광역시 강서구 대항동. 가덕도의 남쪽 끝자락 '새바지'라 불리는 작은 어촌마을에는 동굴이 하나 있다. 마을을 향해 난 세 개의 입구는 안에서 하나로 합쳐져 다시 50m가량 더 안쪽으로 이어진다. 그 끝은 반대편 해안으로 연결된다.

이 동굴은 '인공동굴'이다. 자연이 아닌 사람이 만들었다는 뜻이다. 기록은 1940년대 초 강원도에서 온 탄광 노동자들이 동굴을 팠다고 전한다. 기자가 동굴을 찾은 지난 21일 꽤 많은 비가 부산에 내렸다.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마치 태풍이라도 온 듯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해안가를 때렸다.

지척의 파도 소리가 어두운 동굴을 가득 채웠다. 인적이 없어 을씨년스러운 동굴을 휴대전화 불빛으로 비추며 돌아보는데 검은 물체가 휙 지나쳤다. 갑작스러운 방문에 놀랐을 검은 고양이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70년 전 탄광 노동자들은 곡괭이 하나만 들고 어둠 속을 파 내려갔다. 손으로 쪼아서 만든 동굴의 벽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뾰족하다. 천장의 그 뾰족한 꼭짓점에서 바위로 스며들었을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마치 눈물 같았다.

가장 수탈 심했던 부산...아직도 남은 징용의 자국

▲ 부산 강서구 대항동 새바지 인공동굴의 내부 모습. 1940년대 초 일제가 강원도 탄광 노동자를 동원해 팠다고 전해지는 이 동굴의 내부의 벽면은 뾰족뾰족한 돌로 되어 있다. ⓒ 정민규

강원도의 탄광 노동자들이 부산까지 와서 동굴을 파야 했던 배경에는 나라 잃은 백성의 눈물이 있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총력전을 위한 전시체제 구축에 나섰다. 당시 일본 제국 영토의 32%, 인구의 22%를 차지한 조선에서 가장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했다.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운 한반도 남부에 대한 착취는 가혹했다.

홍순권 동아대 사학과 교수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펴낸 <강제동원의 역사와 현장>에서 "당시 조선 총인구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던 농촌은 노동력 동원의 주요한 원천이었고, 특히 전라·경상도 등 남부지방이 주요 대상지였다"라고 밝혔다.

그중에서도 부산은 패망을 앞둔 일제가 마지막까지 항전을 준비했던 곳이다. 1940년대 들어 일제는 국운이 다하자 이른바 '본토 결전'을 준비한다. 그 즈음 미군이 한반도를 점령해 일본을 공격할 전진기지로 삼을 수 있다는 첩보가 들어오자, 일본은 부산 주변 해안에 미군의 상륙을 막기 위한 방어시설을 구축해 나갔다.

새바지 인공동굴이 그 중 하나다. 대항동 해안 절벽에 10여 곳의 인공동굴이 있다. 지형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다른 동굴과 달리 새바지 인공동굴은 자동차로 접근이 가능하고, 마을과도 붙어 있어 가장 찾기가 쉬운 곳이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강제징용자상

▲ 부산 강서구 대항동 외양포 포진지. 포를 설치했던 6개의 터와 2개의 엄폐막사, 3개의 탄약고가 비교적 원형대로 남아 있다. ⓒ 정민규

일본군이 만든 건 인공동굴뿐이 아니다. 새바지 마을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가덕도 외양포는 일본군 포병부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해방 후 군용지로 묶이면서 집을 보수하는 것조차 제한 받은 탓에 아직도 일본군 주둔지의 흔적이 마을에 남아 있다. 일본식 기와와 지붕, 벽면을 지금도 이곳의 집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마을의 뒤편에는 일본이 러일전쟁 이후 구축한 것으로 전해지는 포진지가 있다. 일제의 진해만요새사령부와 부산요새사령부가 있었다는 이곳에는 아직 '사령부 발상지'라는 기념비가 서 있다. 6문의 포를 배치한 포진지 터가 있고, 엄폐막사 2곳과  탄약고 3곳은 그 형태가 또렷하다.

▲ 부산 강서구 대항동 외양포 포진지. 포를 설치했던 6개의 터와 2개의 엄폐막사, 3개의 탄약고가 비교적 원형대로 남아 있다. ⓒ 정민규

가덕도를 벗어난 부산 곳곳에도 강제징용의 흔적은 티가 나지 않게 숨어 있다. 부산의 항구들은 전쟁 물자를 나르기 위한 통로였다. 구체적인 기록은 부족하지만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에 신고 접수한 자료 등을 토대로 살펴 보면 부두 노역이 가장 흔한 강제징용으로 나타났다. 부산역과 부산진역 등 경부선의 기차역을 통해서도 전쟁 물자가 드나들었다.

그 부산항과 경부선 선로의 지척에 부산일본총영사관이 있다. 1년 내내 펄럭이는 일장기를 담장 너머에서 바라다 보고 있는 위안부 평화의소녀상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소녀상의 옆자리에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세우려는 1인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일본 정부는 소녀상 때처럼 총리까지 나서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꾸린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특별위원회는 부산에도 반드시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위원회 관계자는 "부산은 가장 많은 일제의 수탈이 저질러진 장소"라면서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일본이 가장 우려하는 장소에 세우겠다는 게 우리의 의지"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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