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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일주, 지역이 희망이다

이끼 낀 돌부리가 조선인의 묘? 참담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세우자 ④] 지난 1월, 일본 강제징용 흔적 찾아가보니

18.02.16 16:27 | 손지연 기자쪽지보내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특별위원회가 일제 강제징용 사실을 널리 알리고 피해자들의 넋을 기리고자 집중 취재합니다. 기획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자>에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에 참여하고자 하시는 애독자 여러분은 부산소녀상 옆 노동자상(https://www.facebook.com/iljenodong/)을 클릭해주세요 [편집자말]
▲ 지난 1월 일본 기타큐슈의 작은 시골마을을 찾았다. 조선인의 묘가 있다고 해서다. 현장을 가보니 이끼 낀 돌부리가 조선인의 무덤이었다. ⓒ 손지연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대한해협을 건넜다. 강제징용 피해자 2세와 함께 바다를 건넜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들 15명도 동행했다. 지난 1월 5일, 일본의 강제징용을 기억하는 역사 탐방단(이하 탐방단)이 부산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향했다.

양심적인 일본인 기무라 히데토(74) 선생을 만났다. 그는 이번 강제징용 노동자의 흔적을 찾아 나선 길에 현지 가이드 역할을 맡았다. 교사 출신인 그는 한국 드라마로 한국어를 배웠다고 했다. 일본인이 직접 설명하는 강제징용 역사는 이랬다.

잔혹한 역사, 일본 강제징용의 흔적

▲ 지난 1월에 찾아간 일본 군함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여길 "지옥도"라고 했다. ⓒ 손지연

"여러분, 여기 종이학 보이시죠. 근데, 종이학을 많이 접는다고 평화가 올까요? 전쟁은 현실입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선 뭐든지 해야 합니다. 주먹 쥐고 전쟁을 막아야지 눈물만 닦고 있으면 안 됩니다."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 입구에서 기무라 선생이 한 말이다. 여기엔 종이학을 엮어 만든 작품이 있었다. 순간, 동화책 '춘희는 아기란다'가 떠올랐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게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한·중·일 세 나라의 작가들이 함께 만든 그림책이다. 책에서 춘희는 마흔세 살까지 기저귀를 해야 하는, 자라지 않는 아기이자 원폭 피해자였다.

현실은 동화책보다 끔찍했다. 자료관에는 원폭 피해의 참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원폭의 흔적은 할아버지에서 아버지에게, 그리고 아들로 이어지는 잔혹한 대물림을 반복했다. 주먹 쥔 손에서 땀이 났다.

"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셨고, 아버지는 강제징용에 끌려갔다가 원폭 피해까지 입으셨습니다."

탐방단에는 강제징용 피해자 2세 이태재(59)씨도 있었다. 자료관에는 그의 아버지 이강녕(1927~2006) 어르신과 관련한 이야기가 차고 넘쳤다. 이씨는 아버지 이강녕 선생이 원폭 피해자들의 건강관리 수당 쟁취 소송과 투쟁에 일생을 바쳤다고 했다. 하지만 일본의 제대로 된 사과도 못 받고 눈을 감으셨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아들 이태재씨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원폭 피해자가 처한 암울한 상황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단다.

강제징용의 흔적은 바다 위에도 있었다. 탐방단을 태운 배가 뱃고동 소리를 내며, 항구를 벗어났다. 바다 한가운데서 검은 형체를 발견했다. '군함도'라 불리는 지옥도다. 79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지옥도로 향하는 배에선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기무라 선생의 말이다.

"한국영화 '군함도'가 개봉되기 전에는 이 배에서 한국어로 설명도 못 하게 했다. 사진을 찍거나 돌아다녀도 안 되고, 가만히 일본어 설명을 들으며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영화 '군함도'가 개봉되고, 두 번의 계절이 지난 요즘에서야 감시가 줄어들었다."

군함도에 발을 내딛자 일본인 무리와 분류됐다. 안내직원은 일본인과 정반대 길로 탐방단을 이끌었다. 금지사항도 늘어놓았다. '노래 부르지 마라, 현수막 펼치지 마라...'어깃장을 놓는 안내직원을 뒤로하고 이태재씨가 중금을 꺼냈다. 우리 민요 '아리랑' 가락이, 노래 '나의 살던 고향은'의 가사가 지옥도 하늘에 울려 퍼졌다. 일본인 안내직원은 노발대발했다.

군함도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안내 직원은 세월의 흔적이 남은 허름한 건물에서 영광스러운 일본인의 과거가 보인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겐 생지옥이고 감옥 같은 공간을 이렇게 설명했다. 섬뜩했다. 회색빛 콘크리트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슬픔과 아픔이 느껴졌다. 그들은 얼마나 기나긴 밤을 지새우며, 굶주린 배를 부여잡고 고향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했을까?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옥도를 빠져나오는 길, 미쓰비시 조선소가 보였다. 군함도를 비롯해 수많은 탄광에 조선인을 강제징용한 전범 기업이다. 여기서 그들은 군함을 만들고 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기무라 선생에게 물었다.

- 다시 전쟁이 나면 어떡하죠?
"죽어야죠. 과거 우리 일본인들이 일으킨 전쟁에 사죄하는 방법은 다시 전쟁이 일어났을 때, 싸우지 않고 죽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양심적인 일본인 기무라 히데토(74) 선생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에 써 달라"며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건네줬다. ⓒ 손지연

배가 바다 위를 달린다. 옆에 있던 기무라 선생님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지폐를 꺼냈다.

"강제징용노동자상을 세우는 기금으로 써주세요. 한국 돈으로 주려고 봉투에 넣어 놨는데, 깜빡하고 집에 놓고 왔어요."

기무라 선생이 10년 넘게 매고 다녔다는 헌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밴 옷에서 바다 냄새가 났다. 여행다운 여행 한 번 못 가봤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끼 낀 돌부리가 조선인의 묘?... 한반도기를 꽂았다

▲ 재일동포 강제징용 피해자 2세 배동록 어르신 ⓒ 손지연

탐방단이 탄 차량이 기타큐슈로 향했다. 휴가묘지를 찾아가는 길이다. 일본에는 세 가지 종류의 묘가 있다. 일본 사람의 묘, 애완동물의 묘, 그리고 조선인의 묘.

'보타이시(폐광석)묘'는 조선인의 묘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인이 고양이나 개의 묘를 만들 때 쓰는 돌과 비슷한 게 '보타이시'인데, 이걸로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묘를 만들었다. 탐방단은 이름을 알 수 없는 기타큐슈의 조그만 마을에서 조선인의 묘, '보타이시묘'를 만났다.

"마을 사람들이 찾아오지 말라고 당부했으니 조용히 해야 합니다."

무덤에 가기 전, 배동록(75) 어르신이 말했다. 기타큐슈로 오면서 기무라 선생과는 작별했다. 배동록 어르신은 강제징용 피해자 2세인 재일동포다.

일본과 한국 사이의 적대감. 귀동냥으로 들을 땐 몰랐는데, 직접 와보니 잔혹한 역사가 낳은 감정의 골은 깊었다. 발소리를 낮추며, 무덤을 찾아 나섰다.

무덤이 아니었다. 이끼 낀 돌부리 서너 개가 모여 있었다. 이건, 무덤도 아니고, 둔턱도 없었다. 누군가 돌부리를 걷어차면, 자국만 남고 사라질 흔적이었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을지 상상이 안 됐다. 미리 준비한 한반도기를 돌 옆에 세웠다.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표시였다.

다음은 '무궁화당'에 갔다. 여긴 일본 규슈 지쿠호 지역의 중심지인 이이즈카시립 국립공원묘지 안에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강제징용 된 노동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납골당이 있다.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여기 있던 '아소탄광'에서 일했다. 일본 아소 다로 전 총리 가문이 운영했던 곳이다. 수많은 강제징용 피해자가 희생된 장소이기도 하다. '아소탄광'은 당시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았다. 여기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갱도에서 사고가 나서, 아파서, 배고파서, 맞아서 죽었다. 

죽어서도 인간다운 대접은 없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아소탄광의 일본인 관리자는 20살 청년을 죽이고, 그 흔적을 없애기 위해 시신을 기차가 다니는 선로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동료를 지키려 목숨을 걸고 파업을 하기도 했단다. 

납골당으로 향하는 길, 시멘트를 채굴하고 가공하는 산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배동록 어르신은 여기가 "아소 다로 전 총리 가문 소유의 산"이라고 했다.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은 아소 가문은 여전히 건재했다.

무궁화당은 재일본대한민국대표(민단)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규슈지역 간부들이 도맡아 가꾸고 있었다. 지역정치인을 설득하고 주민들을 납득시켜 납골당을 세우고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에는 강제징용의 역사를 알리는 전시회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여길 "작은 통일이 이루어진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조선인 노동자들의 후손은 그렇게 타국에서 서로 힘이 돼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역사 바로 세우는 일

▲ 지난해 11월 29일 부산소녀상 옆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을 위해 1인 시위에 나섰다. ⓒ 손지연

지난 1월 7일,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흔적을 찾아 떠난 2박 3일간의 일본 역사 탐방이 끝났다. 참담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목숨값으로 재벌이 된 전범 기업은 일본 경제를 떠받치고 있었다. 지옥도는 유네스코에 산업혁명 유산으로 등록돼 일본 정부가 과거사를 미화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래서다. 부산소녀상 옆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운다. 일본의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고,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다. 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는 일이기도 하다. 부산 소녀상 옆 노동자상 건립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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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특별위원회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운동을 합니다. 모금에 참여하고픈 시민들은 부산소녀상 옆 노동자상을 클릭해주세요. 1만 원 이상 모금에 참여하시는 시민은 인명판에 이름을 새겨드립니다. 단체는 10만 원 이상인 경우 인명판에 이름을 새겨드립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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