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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스승이 친일파? 역사 바로 세운 '불곰 기자'
[모든 시민은 기자다 ④] 나쁜 제도에 '주먹 같은 기사' 날리는 윤근혁 시민기자

18.02.09 16:24 | 글: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김시연쪽지보내기

▲ 교육 전문, 특종기자, 윤근혁(48) 시민기자. ⓒ 방대곤

교육 권력에 '주먹 같은 기사'를 날린다. 학생들을 괴롭히는 나쁜 제도에도 '주먹'을 치켜세운다. 낮에는 교사로 일하다가 밤이면 취재 수첩을 뒤적이는 기자로 변한다. 밖에선 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메고 현장에 가는 맨발기자다. 하지만, 집에선 두 아이의 밥을 챙기며 뒷바라지해왔던 '주부 같은 아빠'다. 윤근혁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이야기다.

불곰 기자. 윤근혁 기자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bulgom'이란 아이디로 쏟아낸 특종기사 덕분(?)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누군가는 거리에 서고, 촛불을 들고, 이마에 띠를 두르지만, 그는 펜을 잡았다. 이게 윤 기자의 교육 운동방식이다.

올바르지 않은 교육 권력에 맞서 취재 수첩과 카메라를 무기로 들었다. 윤근혁 기자의 화려한(?) 과거는 이렇다.

교육 권력에 '주먹 같은 기사'를 날린 교사 기자

▲ “적 미사일은 공중에서 파괴…미국을 철벽 요새로”. 2001년 3월 9일치 <소년조선> 2면 머릿기사에 실린 삽화. ⓒ 조선일보PDF

지난 2002년 4월의 일이다. 당시 초등학교엔 "딸배"라 불리는 존재가 있었다. 아이들은 소년신문 배달을 하는 학생들을 이렇게 불렀다. 담임교사가 신문 배달부가 되면, 그 반 학생 중 누군가는 "딸배"가 됐다.

이게 다 학교가 신문지국 신세가 된 탓이었다. 학교는 '신문활용교육(NIE)' 등을 내세워 학생들에게 '소년OO일보'의 집단구독을 알선하고 구독료를 거둬들였다. 교장, 교감이 판촉사원을 자처(?)하는 일도 허다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은 사실상 소년신문을 강제 구독해야 했다.

윤 기자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현직교사였던 그는 자신이 '소년신문의 배달부'가 되고, '학교는 신문지국'이 된 교육 현장을 기사로 고발했다. <오마이뉴스>에 '학교는 신문지국, 교사는 신문 배달부'란 제목을 달아 기사를 전송했다. 학생들이 "딸배"라 놀림 받는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어서다.

윤 기자가 이를 문제 삼는 기사 수십여 개를 쓰자 여느 신문과 방송도 '소년신문 학교구독'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은 소년신문 집단구독 거부 선언을 발표했다. 이런 나쁜 관행을 바꾸자는 운동이 서서히 꿈틀거렸다.

이대로 '해피엔딩(Happy ending)'으로 끝났으면 좋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소년신문사의 자매지 보수언론이 반격에 나섰다. 전교조가 소년신문 거부 운동에 나서자 이튿날 '전교조 비공식 문서'와 관련한 기사를 쏟아내며, 흠집 내기에 열을 올렸다. 한겨레신문을 보는 학부모에게 학교운영위원 출마를 권유하는 공문을 보냈다는 기사로 '소년신문 학교구독' 문제를 가렸다.

소년신문도 자매지를 따라 흠집 내기에 가세했다. 보수언론에 난 기사를 그대로 베껴 1면에 담아 배포했다. 학생들이 보는 신문에 교사를 비판하는 내용이 실린 거다. 누군가는 이게 뭐가 잘못이냐고 물을 수 있다. 윤 기자는 당시 쓴 '소년신문 거부선언 다음 날의 조중동'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보통 학부모가 아이 보는 앞에서 담임교사를 욕하지 않듯 소년신문도 초등학교 1학년생까지 보는 지면에서 교사 비판을 해오지 않은 게 사실이다"

언론 권력은 힘이 셌다. 정부도 감사원도 '소년신문 학교구독'에 손을 못 댔다. 윤 기자가 다시 '주먹 같은 기사'를 내놨다. 교육 권력과 언론 권력의 어두운 뒷거래를 밝혀낸 거다.

소년신문사를 대신해 교장이 '소년신문' 홍보와 판촉에 나선 이유가 있었다. 기부금 때문이었다. 소년신문사가 집단구독으로 벌어들인 돈을 '서울 어린이후원회'를 통해 학교에 기부금으로 건네고 있었다. 2003년 한해만 25억 원이었다. 학생들이 내는 한 달 구독료 4000원의 20%인 800원 정도였다.

[소년신문 학교구독 관련 기사]
학교 가정통신문인지, 신문사 홍보 전단지인지...
소년신문 집단 구독 '불법 찬조금'을 챙기는 학교들
<소년조선일보> 등이 25억 기부한 이유는?

윤 기자는 학생들을 괴롭히는 나쁜 제도에 주먹을 날리는 기사를 쓴다. 언론 권력과 교육 권력의 이런 추악한 행태를 그는 끈질기게 취재하고 기록했다. 교육을 바로 세우고 정의를 구현하는 일이었다. 결과는 이렇다.

지난 2006년 5월 23일, 교육부는 윤 기자의 손을 들어줬다. 소년신문 학교구독을 금지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며칠 전 당시 청와대가 윤 기자에게 '소년신문 집단구독 금지 방법'을 문의한 뒤에 발표된 정책이다. '불곰(bulgom) 기자'란 이름을 처음 널리 알리는 사건이었다.

생생한 교육현장 전하는 아빠 같은 '불곰 기자'

▲ 경기도 고양시의 한 초등학교 교실 안의 온도. 학생들이 귀가한 직후 온도는 30도를 넘어섰다. ⓒ 오마이뉴스

내가 기억하는 '불곰 기자'는 아빠 같은 기자였다.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하면서 겪는 불편하고 부당한 이야기를 '아빠 같은 글'로 알렸다. 책상에 앉아 쓰는 기사가 아니라 현장을 모르면 쓸 수 없는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지난 2010년 6월, 윤 기자는 당시 불볕더위에 찜통 교실로 변한 학교 상황을 겪게 된다. 에어컨이 가동되지 않아서다. 취재를 해보니, '잠자는 에어컨'은 당시 지식경제부가 에너지 절약 기준을 강화해서였다. 실내온도가 27도 → 28도로 상향 조정됐고, 냉방 일수도 60일에서 42일로 축소됐다.

윤 기자는 이 소식을 처음으로 기사로 썼다.

당시 나는 윤 기자의 기사를 읽고 찜통 교실의 원인이 된 정부의 지침에 대해 분노했다. SNS(소셜네트워크)로 공유하고 전파했다. 탁상행정에 희생되는 아이들의 상황을 알렸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SNS에는 이 소식을 전하는 누리꾼들이 차고 넘쳤다. 포털사이트에선 댓글도 폭발했다.

공감을 끌어낸 기사의 파급 효과는 컸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윤 기자의 기사가 나간 후, 하루 만에 전국 1만여 초중고에 '냉방기기는 학교장 재량으로 가동하라'라는 내용의 공문을 시도교육청에 보냈다.

[학교 찜통 에어컨 관련 기사]
"에어컨 42일 이상 틀지 마" 지침에 교실은 '찜통'
'찜통교실' 비난에 교과부 "에어컨은 교장 재량으로"

이게 다가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마음을 떠오르게 한 기사는 또 있다. 지난 2004년 윤 기자가 쓴 <코흘리개 초등학생에게도 '0교시 수업'>, 지난 2010년에 쓴 <쉬는 시간 5분까지 빼앗은 '잔인한 초등학교'> 기사가 그랬다.

그래서다. 내가 기억하는 윤 기자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나쁜 제도에 맞선 '불곰' 같은 기자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부당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고발하는 '돌직구 기자'고, 현장의 이야기를 꼼꼼히 들여다보고 생생히 전달하는 '돋보기 기자'이기도 했다. 요즘 세상에 이런 기자 많지 않다.

악마는 디테일에...'이달의 친일 스승' 파헤친 '특종기자'

▲ 교육부가 지난 3월초 '이달의 스승' 3월 인물로 뽑은 최규동 한국교총 초대 회장 입간판을 정부세종청사에 내걸었다가 떼어냈다. ⓒ 윤근혁

윤 기자가 <오마이뉴스>가 주는 시상에 수상자로 이름을 올린 횟수는 총 47회다. 이 중 30회는 특종상을 받았다. 기록적인 횟수다. 수상 횟수만 놀라운 게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 변화가 그의 펜 끝에서 시작됐다. '불곰 기자'가 뽑은 특종은 이렇다.

지난 2015년 2월 17일, 윤 기자는 이메일로 한 통의 보도 자료를 받았다. 그만 받은 건 아니었다. 교육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이면 모두 받은 보도 자료였다. 제목은 이랬다.

'시대를 초월하여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이달의 스승 선정'

당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지시하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가 가세해 새롭게 만든 교육 사업이었다. 보도자료 어깨 제목엔 '3월의 스승, 헌신적인 교육자의 표상 백농 최규동 선생'이라고 적혀 있었다. 덧붙여 보도자료 속 '교육부 관계자'는 이런 말도 했다. 

"교권침해와 명예퇴직 증가 등 교원 사기가 저하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훌륭한 스승을 기억하는 일은 현장에서 학생들의 꿈과 끼를 키우기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하고 계신 선생님들의 노력이 미래 시대를 여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알리고, 우리 사회의 스승을 존경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튿날, 언론은 교육부가 '이달의 스승' 사업을 벌인다고 받아썼다. 몇 시, 몇 분, 몇 초만 다를 뿐, 거기서 거기인 내용이 지면을 채우고 전파를 탔다. 월급 받는 기자들은 교육부를 소위 '띄우는' 데 활자를 동원했다.

윤 기자는 달랐다. 이런 생각이 먼저 머릿속을 스쳤다. "12명의 이달의 스승 가운데 친일파가 들어 있지 않을까?" '교육부 사업'이 아니라 '이달의 스승'에 꽂혔다는 거다. 그는 국정교과서를 부활시키려는 박근혜 정부였기에 사실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휴대전화를 들어 민족문제연구소에 전화했다.

윤 기자는 최규동의 친일행적을 찾아달라고 했다. 12명의 뒤를 파보겠다고 한 일이 전화통을 붙잡는 거였다. 그는 "누군가의 뒤를 파볼 능력이 부족해" 당시 민족문제연구소에 있는 이준식 연구위원(현 독립기념관 관장)에게 부탁을 한 거다. 하루 만에 연락이 왔다.

"최규동이 '죽음으로써 임금(천왕)의 은혜에 보답하다'란 글을 쓴 사료를 발견했다."

이 말을 듣고 윤 기자는 놀라지 않았다. 예상한(?) 결과였다. 일제 강점기 학교를 세우고 교장을 역임했다면, '친일' 행적을 의심해보는 게 상식이었다. 이렇게 '이달의 친일 스승 파동'의 뇌관이 터졌다.

민족문제연구소에 가서 알았다. 윤 기자만 최규동의 친일행적을 찾아달라고 부탁한 게 아니었다. 다른 기자도 똑같은 부탁을 했으나 그때는 찾을 수 없었단다. 어찌 된 일일까?

악마는 디테일에 있었다. 최규동의 친일행적은 '한국어'로 검색이 안 됐단다. '일본어'를 입력하니 1942년 6월, <문교의 조선>에 실린 최규동의 글이 나타났단다. <문교의 조선>은 일제 관변잡지였다. 이 연구위원은 "30분 만에 최규동의 친일행적을 찾았다"고 했다. 한자와 일본어가 뒤엉켜 있던 최규동의 논문 '죽음으로써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다'에 적힌 내용 일부는 이렇다.

"오래도록 기다리고 바라던 조선동포에 대한 병역법 실시가 확정되어 반도 2400만 민중도 마침내 쇼와 19년부터 병역에 복무하는 영예를 짊어지게 되었다...(중략)

생각건대 시정 이래로 30여 년 역대 천황은 항상 일시동인(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함)의 감사한 대어심(大御心)을 반도의 민초들에게 베푸시고 갓난아기처럼 애무육성하심으로써 오늘의 영예를 반도 민중에게 짊어지게 하신 성려(임금의 염려)의 광대무변한 진실로 공구감격에 견딜 수 없는 것이다. 반도동포는 남녀노소 한결같이 이 광영에 감읍하여 한 번 죽음으로써 임금의 은혜에 보답해드리는 결의를 새로이 하고 더욱더 자애분기하여 스스로 자질향상을 도모하고 더욱 더 충혼으로써 성지에 부응하여 받들어야 한다."


교육부가 말한 '훌륭한 스승'은 알고 보니 학생들은 천왕을 위해 죽자는 '훌륭한 친일 스승'이었다. 교육부가 교총과 함께 선정한 인물은 '이달의 스승'이 아니라 1·2대 교총 회장이고 '이달의 친일 스승'이기도 했다. 윤 기자가 행동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묻힐 사건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2015년 3월 11일, 윤 기자는 취재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서울의 한 학교로 갔다. 당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서다. 황 장관은 '이달의 스승' 사업을 직접 지시한 장본인이었다. 논란에 대답할 책임이 있었다. 윤 기자는 황 장관을 만나 돌직구 질문을 던졌다.

"이달의 스승 친일 행적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있나?"
"장관이 직접 지시한 사업이라서 '사과' 여부를 자꾸 묻는 것이다."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윤 기자가 잇따라 쓴 '이달의 친일 스승' 관련 기사에 분노한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부터 시민단체까지 성명서를 발표하고 피켓을 들었다. 교육부의 보도 자료를 받아썼던 언론들도 그제야 '이달의 스승'을 검증한 기사를 쏟아냈다. 결국, 교육부는 몇 달 동안 좌충우돌했다. 그러더니 '이달의 스승' 선정 인물들을 모두 포기한다고 항복했다. 황 장관도 국회에서 사과했다. '불곰 기자'가 기억하는 또 하나의 특종 기사다.

[이달의 친일 스승 관련 기사]
'천황 위해 죽자'는 이가 민족의 스승? 교육부, 최규동 초대 교총 회장 선정 논란
'이달의 친일 스승' 그 후, 너무나 뻔뻔한 교육부와 교총
'이달의 스승' 논란에 황우여 장관 "장관이 낄 일 아니다"

'친일 의혹' 1, 2대 교총 회장, 나란히 '이달의 스승'에

교육부, '이달의 스승' 선정 인물 모두 포기

"헝그리 정신과 뉴스게릴라...되새겨봐야"

▲ 국제교원단체총연합(EI) 총회에서 취재하고 있는 윤근혁 기자 ⓒ 윤근혁

"헝그리(Hungry) 정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팩트를 향한 끊임없는 배고픔. 기자라면, 이런 헝그리 정신이 있어야 결국 제보를 많이 받는 부자 기자가 된다. 하하"

지난 1월 10일,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사옥에서 만나 윤 기자는 직업 기자를 향해 이렇게 '주먹 같은 말'을 날렸다. <오마이뉴스>에도 마찬가지다.

"<오마이뉴스>는 기자를 '뉴스게릴라'라고 칭하는데, 이 말을 되새겨 봐야 한다. 게릴라는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남이 버린 전술을 그대로 사용하지도 않는다. 요즘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보면, 기존 언론의 시각과 비슷하다. 새로운 시선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많이 안 보인다. 팩트를 향한 헝그리 정신으로 취재하고 기사를 생산했으면 한다."

주먹만 치켜세우지 않았다. 등을 두드려주기도 했다. 

"나는 <오마이뉴스>가 있었기에 글을 쓸 수 있었다. 직업 기자가 아닌 시민기자들에게 멍석을 깔아주고 마이크가 돼주고, 춤을 출 수 있게 해줬다.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마당'을 제공했다는데, <오마이뉴스> 존재의 가치는 크다."

때론 교사로, 때론 교육 전문기자로 학생들을 괴롭히는 나쁜 제도에 주먹 같은 기사를 날리는 '불곰 기자', 아빠의 마음으로 학교에서 벌어지는 부당하고 불편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아빠 같은 기자', 교육 권력의 민낯을 낱낱이 고발하는 '촛불 기자'.

나는 이런 윤 기자가 우리 사회의 교육을 바로 세우고 정의를 구현하도록 진심으로 응원한다. 10여 년 뒤 교육평론가가 되고 싶다는 꿈도 이루길 바란다.

'기자다운 기자'가 사라진 언론판에 기자정신으로 취재수첩과 카메라를 든 이들이 있다.  '기레기'가 판치는 죽은 언론 시대에 온몸으로 취재하는 이들이다. 월급 받는 기자가 아닌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다.

▲ 지난 2월 17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2016 올해의 뉴스세릴라 시상식 및 20대 청춘기자상 공모전 시상식’에서 수상자와 오연호 대표, 최경준 뉴스게릴라본부장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윤근혁 시민기자 1편 "여기 털리면 큰 일" 수상한 비밀 사무실 파헤친 특종기자에 이어진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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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기자, 교육 전문기자. 윤근혁 시민기자의 별칭입니다. 그는 매월 1만원씩 자발적 구독료를 납부하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입니다. 보수언론이 장악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정직한 언론, 진실한 목소리 내는 오마이뉴스를 지키기 위해 힘이 돼주었습니다.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휴대폰 010-2306-3962로 전화주시면, 다양한 방법으로 오마이뉴스를 후원할 수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직원이 친절하게 안내해드립니다. 직접 인터넷으로 가입하고자 하신다면, 링크(http://omn.kr/5gcd)를 클릭해주세요. 오마이뉴스는 모든 시민기자를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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