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인 리포트

전국 일주, 지역이 희망이다

깨져서 돌아온 부산소녀상 옆에
강제징용 노동자상 세우는 이유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자②] 아픈 역사 후벼 파는 부끄러운 역사 없어야

18.01.24 17:28 | 손지연 기자쪽지보내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특별위원회가 일제 강제징용 사실을 널리 알리고 피해자들의 넋을 기리고자 집중 취재합니다. 기획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자>에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에 참여하고자 하시는 애독자 여러분은 부산소녀상 옆 노동자상(https://www.facebook.com/iljenodong/)을 클릭해주세요 [편집자말]
▲ 일본군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지난 2016년 12월 31일 밤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열렸다. ⓒ 정민규

스마트폰에 뜬 SNS 라이브 방송에 분노했다. 식민지 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이 2016년 12월 28일 부산에서 벌어졌다. 내용은 이렇다.

'부산 동구청 평화의 소녀상 철거'

깨져서 돌아온 소녀상과 아픈 역사

▲ 부산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립을 지원하기 위한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서포터즈'가 지난 2016년 6월 29일 오후 일본 영사관 인근에서 열린 부산 수요집회에서 발족했다. 발족식에서 참가자들이 서포터즈 활동을 서약하는 의미로 이름을 적은 종이를 흔들고 있다. ⓒ 정민규

놀랐다. 부산 동구청이 시민들의 반대에도 끝내 소녀상을 강제 철거했다. 이건, 아픈 역사를 후벼 파는 부끄러운 역사였다. 부산 동구청은 평화의 소녀상을 '불법 시설물' 취급했다. 부산이 들썩였다. 노동자들이 일어나고 시민단체가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생들도 거리로 나왔다. 전국이 떠들썩해졌다.

이틀 만에 소녀상이 돌아왔다. 부산 동구청은 여론에 못 이겨 소녀상을 제자리에 가져다 놨다. 하지만 돌아온 소녀상은 달랐다. 소녀상을 받치고 있던 아랫돌 모서리가 깨져 있었다. 상처가 나 있었던 거다. 가만히 두고 볼 일이 아니었다.

'일본군 위안부'만 문제가 아니었다. 소녀상은 일제의 강제징용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였다. 책을 읽고 자료를 뒤척일수록 소녀상 뒤에 수많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거기엔 처참한 조선인들의 강제징용 삶도 있었다.

책 <우리엄마 강금순>(도토리숲)에는 일본 야하타제철소에서 태어난 강제동원 2세 배동록 할아버지가 증언한 혹독한 노역의 기억이 생생히 기록돼 있었다. 도서 <검은바다>(문학동네)은 조세이 탄광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수몰사고로 숨진 조선인들이 있었다. 서적 <겨레하나 일제강제징용노동을 말하다>에는 '지옥섬'으로 끌려간 조선인 노동자들의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은 항상 배가 고팠다. 일본인 관리자들에게 욕을 먹고, 무시당하고 매를 맞아야 했다. 히로시마와 나사사키 원폭잔여물 청소도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몫이었다. 일본의 야욕에 희생되는 건, 언제나 강제징용 노동자들이었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게 '보타이시(폐광석) 묘'다. 일본인이 고양이나 개의 묘를 만들 때 쓰는 돌과 비슷한 게 보타이시(폐광석)이다. 하지만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묘는 이보다도 초라하고 허름했다. 죽어서도 존중받지 못했다는 거다.

어느덧, 광복 73년의 시간이 흘렀다. 해방됐던 때에 태어난 아기는 일흔이 넘는 노인이 됐다. 하지만 일본은 강제징용 노동자들에게 아직까지 사과는커녕, 역사를 지우고 미화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일을 도왔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하고 군사정보보호협정도 체결했다.

결과는 어떤가. 지난 2015년 일본은 지옥도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신청, 등재됐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산업혁명의 상징성만 부각시켰는데도 박근혜 정부는 손 놓고 있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일본의 미쓰비시조선소는 군함도 인근에서 이지스함을 건조해 부산 백운포 앞에서 전쟁연습을 하고 있다. 미쓰비씨는 지옥선 군함도를 비롯해 수많은 탄광에 조선인을 강제징용 한 전범기업이다. 심지어 노동자들의 퇴직금으로 일본 정부에 공탁을 걸었다. 지난 2015년 7월,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미국을 찾아 2차 대전 당시 미군 포로들의 강제 노역 동원에 공식 사과했으나 조선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와 관련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소송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특별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부산소녀상 옆에 노동자상 세우는 이유

▲ 지난해 11월 29일 부산소녀상 옆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을 위해 1인 시위에 나섰다. ⓒ 손지연

부산은 생지옥행 열차의 종착점이었다. 부산항에는 전국 각지에서 끌려온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넘쳐났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경상도 사람들 20%가 강제징용 됐다고 한다. 하지만 강제징용은 과거의 일이 아니다.

부산 일본 영사관 앞에는 매일 1인 시위를 하는 어르신이 있다. 강갑윤(82) 할아버지다.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됐다가 미군의 폭격에 사망한 아버지를 대신해 사죄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9살 때 군함도에 끌려가 강제 노역을 한 구연철(88) 할아버지도 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강제노역을 증언하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남북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 2007년 남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2015년에는 노동자단체가 만나 올해 강제징용노동자상을 건립하기로도 약속했다. 

그래서다. 부산 일본 영사관 앞 소녀상, 그 옆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운다. 일제 강제징용의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진정한 사과와 피해배상을 받아내고, 이 땅에 자주와 평화를 되찾는 일이다. 전범자를 처벌하고 올바른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강제징용 노동자들은 나에게 선배다. 노동자였기에 그렇다. 선배들은 일제의 총·칼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죽은 동료의 시신이 동물의 먹잇감이 안 되도록 목숨을 걸고 싸웠다. 더 나은 삶을 위해 투쟁했다.

더는 안 된다. 부산 동구청이 행동으로 옮긴 '평화의 소녀상 철거' 같은 부끄러운 역사는 없어야 한다.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세우는 일은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이 일에 시민들이 힘과 용기를 모아주길 바란다. 아래 '부산소녀상 옆 노동자상'을 클릭하면, 건립 모금 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

'강제징용 노동자상 세우자' 모금운동 참여하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특별위원회가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운동을 합니다. 모금에 참여하고픈 시민들은 부산소녀상 옆 노동자상을 클릭해주세요. 1만 원 이상 모금에 참여하시는 시민은 인명판에 이름을 새겨드립니다. 단체는 10만 원 이상인 경우 인명판에 이름을 새겨드립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손지연 사무국장은 적폐청산 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 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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