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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일주, 지역이 희망이다

4대강 현장 소장의 고백 "밤마다 가위 눌렸다"
[2017 전국일주-충남편] 기자 빈털터리 만들고 MB는 130평 강남사무실 출근

17.12.26 15:53 | 글:김종술쪽지보내기|편집:최유진쪽지보내기

▲ 지난해 겨울, 충남 공주시 금강의 얼음을 깨트리자 얼음 속에 녹조가 촘촘히 박혀있다. ⓒ 김종술

금강에 겨울바람이 분다. 오늘도 완전무장을 하고 강가를 걷는다. 꽁꽁 언 강물에 물고기가 얼어 죽어있다. 혹한에도 얼지 않던 금강. 흐름을 멈추고 나선 반짝 추위에도 살얼음판이다. 위안을 삼자면, 수문이 열린 지역이 살아나고 있다는 거다. 

4대강 사업 이전의 금강은 달랐다. 강변 솔밭에 누우면, 솔향기를 품은 바람이 불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하늘엔 뭉게구름이 피고 귓가엔 작은 새의 지저귐이 울려 퍼졌다. 물고기가 점프하며, 첨벙거리는 소리에 놀라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반성과 궤변

▲ 녹조가 가득한 백제보 상류에 수자원공사는 조류제거선을 띄웠다. ⓒ 김종술

꿈만 같다. 아니, 꿈이었으면 좋겠다. 금강을 파헤친 서슬 퍼런 4대강 삽질. 국민 세금 22조원을 들여 만든 죽음의 강. 이 모든 게 현실이란 것이 가끔 믿기지 않는다. 가슴이 아프다.
4대강 공사판을 누비던 사람들도 그랬나보다. 사실, 최근 "4대강 사업 현장서 일했다"고 양심고백을 해온 사람을 여럿 만났다. 그때마다 펜을 들어 기사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신변보호가 어려워 그러지 못했다. 누군가의 희생을 등에 업고 욕심을 채울 수 없었다. 진짜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따로 있어서다.  

"뻘짓이었죠."

지난해 7월 만난 중년의 사내의 말이다. 그는 4대강 사업 당시 "금강권역 현장 소장"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믿을 수 없었다. 꿍꿍이가 있어 찾아온 거라 짐작했다. 의심의 눈초리를 알아차린 걸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금강권역 현장 소장 당시)만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가 없네요. 잘못된 길인지 알면서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눈을 감고 4대강 사업에 참여했죠. 하지만 잠자리에 들면, 가위에 눌리곤 했어요.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날이었죠. 끝내 가족들과 상의 끝에 일을 그만뒀어요."

금강에겐 진짜 생지옥이었다. 소리를 지를 수 있다면, 아마도 악다구니를 썼을 거다. 지난 9년간 4대강 사업에 망가진 금강을 기록한 결과다. 굴착기가 생살을 파헤치고 오장육부를 들어냈으니 모르긴 몰라도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을 거다. 이건, 폭력이 아니라 폭격이었다.

전쟁 통이나 다를 바 없었다. '윙윙윙' 기계음이 끊이지 않았다. '펑펑펑'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소음이 울려 퍼졌다. 그때마마다 처참한 현장을 생생히 기록하려 카메라를 들고 갔다가 용역깡패에 쥐어 터지기도 했다.

켕기는 게 있으면, 감추고 싶다. 4대강 공사현장에 거대한 장벽이 세워졌다. 현장인부가 아니면,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국민의 눈을 가리고 꽁꽁 숨어선 한 일은 무엇일까? 당시 "현장소장"이었다던 중년의 사내는 이렇게 증언했다.

"수중 준설을 한다고 해놓고 육상준설을 했어요. 가로세로 1m 파면 수중은 3~4천 원이고, 육상은 8천 원이었죠. 4대강 공사 당시 사진을 봐보세요. 물에 살짝 들어간 포크레인은 죄다 육지를 파고 있는 거예요. 수중준설은 준설선이 해야 하는 일이에요. 한마디로 다 쇼(Show)였죠."

눈속임의 대가는 컸다. 금강의 살갗이 녹색으로 변했다. 강은 온 몸으로 죽어가고 있는 걸, 표현했다. 냄새도 역했다. 녹조강에 들어가면 썩은 내가 났다.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숨 쉬는 게 고통이었다. 자연의 경고였다. 

"녹조가 생기는 건 수질이 나아졌다는 뜻."

4대강 사업에 고장이 난 건, 강이 아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연의 울부짖음을 이렇게 해석했다. 그만 그런 건 아니다. 지난 2007년 6월, 한반도 대운하 설명회 자리에 참석했던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는 수질 악화 우려에 이렇게 답했다.

"만약 4대강에 녹조가 낀다면 배를 띄우면 된다."

배의 스크루를 이용해 녹조를 흐트러뜨려 물속에 산소를 공급하면 된다는 주장이었다. 과연 그럴까? 박 교수의 말대로 금강에 '녹조제거선'을 띄워 아침저녁으로 배를 운전했던 무기 계약직 직원의 고백은 달랐다. 그는 "지난 2011년부터 5년간 한국수자원공사에서 근무했다"고 했다.  

"헛일이었죠. 뒤돌아서면 다시 녹조가 끼는데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어요. 성과를 낼 수 없으니 일할 맛도 안 났어요."

강남 출근하는 MB, 금강 출근하는 기자

▲ 서울 강남 사무실 나서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좌), 일년에 360일 금강으로 출근하는 김종술 시민기자(우) ⓒ 연합뉴스(좌), 김종술(우)

언론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4대강 용비어천가'를 부르던 보수언론은 녹조가 피고, 물고기가 죽는데도 침묵했다. 하수구나 시궁창에 사는 실지렁이나 붉은 깔따구가 나타나고, 강바닥이 시커먼 펄로 바뀌었는데도 꿀 먹은 벙어리였다.

묵비권을 행하던 보수언론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4대강 수문이 열리자 닫았던 입을 열었다. 녹조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며, 강물을 흘려보내면 안 된다고 했다. 지난 11월 13일 <조선일보>에 실린 사설의 제목이다.

'4대강 물 다 흘렸다가 내년 농사 망치면 누가 책임지나'

4대강 물이 부족해 농사를 망쳤다는 농사꾼은 없었다. 오히려 4대강 물로 농사를 짓는데, 자식들에게 농산물을 줘도 되는지 걱정하는 농부는 있었다.

금강에겐 꿀이었다. 수문이 열리니 벌이 꼬이듯 생명이 돌아왔다. 민물가마우지가 아니라 백로 왜가리가 날아왔고 모래톱이 사라지면서 자취를 감췄던 '백할미새'가 발견됐다. 금강에서 사라졌던 다슬기도 보이고, 수달의 발자국도 심심찮게 목격했다. 그동안 갇혀 있던 더러운 게 강물이 흐르니 죄다 씻겨 나가고 있다.

남은 건, 4대강 적폐청산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4대강 사업을 언급했다. '4대강 살리기'를 넘어 경제 활성화를 이뤘다며 '셀프 칭찬'했다.

그래서일까? 이명박은 지난달 15일 인천공항에서 오마이뉴스 기자가 "4대강 사업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레이저(?)를 발사하며 눈빛으로 대답했다.

4대강 사업 9년, 기자는 금강으로 출근했다. "잘 나가던" 신문사 대표에서 빈털터리가 됐다. 4대강 사업의 민낯을 취재한다는 이유로 광고가 줄면서 남의 손에 넘어갔다. 월세를 못내 쫓겨날 뻔하고 세간과 자동차는 압류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서울 강남의 사무실로 출근한다. 보도에 따르면 430㎡(130평) 규모의 이 사무실은 월세가 1300만 원이란다. 비용은 전액 국고지원이다. 그는 4대강 사업을 한다며 국민세금 22조 원을 썼다. 지금도 '전직 대통령 예우 관한 법률'에 따라 유일하게 예우를 누리고 있다.

'4대강 정상화'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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