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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정상화로 일감 줄어든 기자 "김제동씨, 인터뷰할래요?"
[모든 시민은 기자다②] 영광의 스타를 꿈꾸는 뇌성마비 1급, 이영광 시민기자

17.12.21 14:55 | 글: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이주영쪽지보내기

▲ 뇌성마비 1급. 인터뷰 전문기자. 이영광 시민기자 ⓒ 정대희

철물점에서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타탁타탁' 익숙한 기계음이었다. 사람의 음성도 들렸다. 스피커에서 새어 나오는 거였다. 짐작건대, 누군가 말을 문자로 바꾸고 있었다.

[첫번째 인터뷰] 뇌성마비 1급 이영광, 나는 인터뷰 전문 시민기자다

철물점에서 새어 나오는 자판 소리

▲ 뇌성마비 1급. 인터뷰 전문기자. 이영광 시민기자 ⓒ 정대희

지난달 16일 전북 전주시를 찾았다. 이영광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사는 도시다. 전주역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효자주공 3단지'에서 벨을 눌렀다. 그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철물점이 있는 동네다. 철제 미닫이문을 열자 쇳소리가 났다. 아버지의 가게이자 그의 작업실이기도 한 공간이다. 그는 여기서 누군가의 말을 받아쓰고 있었다.

"어제 새벽 2시까지 (녹취) 풀다가 잤어요."

갈라진 입술로 그가 말했다. 가만히 보니, 턱선과 인중을 따라 웃자란 수염이 시커멓다. 콧등에 걸친 투명한 안경에 컴퓨터 모니터가 반사됐다. 어두컴컴한 실내를 밝히는 유일한 불빛이 거기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사각형의 프레임에 새까만 문자가 빼곡했다. 누군가의 녹취록이었다.

뇌성마비 1급, 인터뷰 전문기자. 그는 독특한 타법으로 키보드를 쳤다. 손가락을 쓰는 방법이 달랐다. '독수리타법'이라고 하기엔 날렵했으나 열 개가 아니라 네 개의 손가락을 썼다. 왼손은 검지와 중지를, 오른손은 중지와 약지를 움직였다.



"파업 기간 무노무임(무노동 무임금)으로 인해"

그는 여기까지 듣고 소리를 껐다. 키보드의 스페이스 바를 눌러 목소리를 끊었다. 15글자, 그가 기억을 되짚으며 문자로 옮긴 글자 수다. 이렇게 수백, 수천 번을 반복해 녹취록을 만들어 쓴 기사가 이거다. 윤원섭 언론노조 KBS 본부 사무처장과의 인터뷰다.

"고대영 방송법 개정하면 사퇴? 임기 보장하려는 꼼수"

그는 7~8시간 녹취를 풀어 기사를 쓴다. 일주일에 3명을 인터뷰하니 8만 6400초간 듣고 쓰기를 번갈아 가며, 책상에 죽치고 있는 거다. 말은 쉬우나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에게 물었다.

-녹취 푸는 거 힘들지 않은가?
"1시간동안 (녹취) 7, 8분 풀었어요. 긴장을 하고 키보드를 치니 굳은 손이 더 뻣뻣해져 힘들어요. 오른손잡이여서 왼손이 더 불편하고요. 요즘은 조금만 녹취를 풀어도 팔이 아파요. 손가락에 쥐가 나 주물러줘야 할 때도 있어요. 인터뷰하면서 타이핑을 하면 좋은데, 그럴 수 없으니까 어쩔 수 없죠. 안 해본 사람은 몰라요. 이거 막노동이에요. 하하하"

거침없는 인터뷰의 추억

▲ 이영광 시민기자는 인터뷰 때마다 거침없는 돌직구를 날린다. ⓒ 정대희

전주 한옥마을의 한 민박집에서 그와 인터뷰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영정이 있는 경기전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진촬영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거칠 게 없는 사람 같았다. 대답도 시원시원하고 포즈도 당당했다. 그의 인터뷰 연재기사 제목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가 그냥 지어진 게 아니었다.

흔히들 '가수는 노래 제목 따라 간다'고 한다. 인터뷰는 그렇지 않았다. 인물을 섭외하는 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애를 먹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 2009년도의 일이 그랬다.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MBC <뉴스테스크>에서 하차했던 때다. 이명박 정부의 'MBC 장악'을 놓고 사회적 논란이 불거졌다. 이 일로 MBC 기자회는 제작거부에 들어갔다. 그는 인터넷을 뒤져 신경민 전 앵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인터뷰 요청서였다. 며칠 뒤, 답장이 왔다.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한다는 내용이었다.

포기하지 않았다. 8개월 동안 틈틈이 안부 인사를 겸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하지만 직접 만나 인터뷰할 기회는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난 2009년 11월 어느 날,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됐다.

'강사 신경민 MBC 뉴스데스크 전 앵커'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이 여는 언론학교 강좌에서 신경민 앵커의 이름을 발견했다. 강연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TV 브라운관에서만 보던 인물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다. 어쩌면, 인터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강연이 끝나고 신경민 앵커를 찾아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이메일 자주 보냈던 이영광입니다."

이게 인연이 돼 신경민 앵커를 인터뷰했다. 그의 입을 빌려 이명박 정부 시절 MBC에 가해진 권력의 민낯을 인터뷰 기사로 풀어냈다(관련기사: 신경민 "엄 사장 사퇴,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서 봐야").

성공한 인터뷰만 있는 건 아니다. 쓰디쓴 실패의 기억도 있다. 지난 2014년에 벌어진 일이다. '거침없는 돌직구'가 불씨가 됐다. 아직도 그는 그날의 일이 생생하단다.

'안철수 박정희 묘소 참배' 논란이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군 때였다. 같은 당의 A 국회의원을 만나 인터뷰했다. 논란에 대한 입장을 물었으나 대답이 없었다. 집요하게 묻고 또 물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A 의원이 탁자를 '팍' 내리치며, 화를 냈다. 그는 "모멸감"이 들었다.

그날 인터뷰는 이 일로 흐지부지 끝났다. 하지만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녹취록을 작성해 A 의원 측에 보냈다. 인터뷰 내용의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튿날 전화가 왔다. 기사를 내보내지 말라고 요청했다. 그는 짧게 "알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녹취 지워주세요."

이영광 기자는 이 말을 듣고 소리를 '꽥' 질렀단다. 인터뷰 기사를 내보내지 말라는 요청은 이해가 갔으나 녹취를 지워달라는 건 달랐다. 인터뷰 당사자라도 '하라, 말라' 지시할 사항이 아니라고 여겼다. 휴대전화를 붙잡고 언쟁이 오갔다. 이번엔 가만있지 않았다.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지난 4년간 야구장도 함께 다니던 A 국회의원과의 인연이 끝이 났다.

"원고료 아껴 아버지에 큰마음 먹고 선물"

▲ 시민기자를 업으로 삼은 이영광 시민기자. 그의 호주머니는 늘 가볍다. ⓒ 정대희

온몸으로 기사를 쓰지만 밥벌이는 안 됐다. 한 달에 서너 편 쓰는 기사원고료로 먹고사는 게 어려웠다. 전주와 서울을 오가는 버스표를 사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그래서 약 4~5년간 인터뷰가 있는 날이면, 점심을 굶기도 했다.

'6000원'

돈을 아끼려 버스도 골라 탔다. 서울 고속버스터미널행 버스는 남부터미널보다 비쌌다. 발받침대가 있고 없고의 차이였다. 발이 좀 불편한 쪽을 선택했다.  

"돈이 없으니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어요. 초반에는 한 달에 서너 개 기사를 써봐야 일 년에 원고료 20만 원 정도 받았어요. 한 달에 7~8개로 인터뷰 숫자를 늘렸어요. 그래도 30만 원 정도였어요. 직업이 있는 시민기자들도 있는데, 저는 이 일만 하니까 생활하기 힘들죠."

품삯도 안 나오는 일이었으나 인터뷰를 멈추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드는 게 재미있었다.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 이따금 "기사 잘 보고 있다"는 소리에 힘이 났다. 시민기자는 돈은 안 됐지만, 가슴을 뛰게 했다.

돌직구 인터뷰 덕(?)을 봤다. 인터넷매체 <고발뉴스>에 연락을 했다. 인터뷰 기사연재를 제안했다. 좋은 조건에 일이 성사됐다.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보탬이 됐다.

이번에는 발로 뛰는 인터뷰였다. 지난 2015년 11월부터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연재를 시작했다. 서울에 오는 횟수가 늘고 인터뷰 대상이 두 배로 늘어났다. 통장에 원고료가 쌓였다.

벌이가 나아지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돈이 아니라, 시간이 없어 밥을 굶기도 한다. 주변에서 얻어먹기만 하다가 점심 한턱 사는 날도 있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호주머니는 무거운 날보다 가벼운 날이 많다.

그래서 지금도 6000원 싼 버스를 탄다. 허투루 돈을 쓰지 않는다. 이렇게 3년을 꼬박 모은 원고료로 최근 아버지에게 "큰마음 먹고" 선물을 했다.

"제가 쓴 기사가 나오면 아버지가 그렇게 좋아해요.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매번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보내기도 하고요. 저는 이런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아버지는 매일 열심히 기사를 퍼 날라 주세요. 감사한 게 많아서 조금이라도 갚고 싶은 마음에 큰마음 먹고 선물을 했어요. 액수가 꽤 커 (통장 잔액에) 타격이 크니 이제부터 인터뷰 기사 더 열심히 써야 해요. 하하하."

현실은 달랐다. 그는 요즘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최근 MBC가 파업을 끝내고 언론인들이 하나둘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인터뷰 대상자가 줄어들었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언론 참사'를 기록하는 일에 차질(?)이 생긴 거다. 그에겐 웃픈 현실이다.

"김제동씨 저랑 인터뷰하실래요?"

▲ 이영광 시민기자는 우리 사회 '스타'를 만나 인터뷰하는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 정대희

'영광의 스타를 소개합니다'

그가 새롭게 도전하고픈 인터뷰 기획 제목이다. 언론인뿐만 아니라 김제동, 김태호 PD 등 우리 사회 '스타'를 만나 인터뷰하는 일이다. 지금까지 몇 차례 섭외를 시도했으나 성사된 적이 없다. 그는 이 자리를 빌려 공개적으로 인터뷰를 요청하고 싶다고 했다.

"김제동씨 저랑 인터뷰 하실래요?"

2017년 11월 16일, 이렇게 그와 인터뷰는 끝이 났다. 늦은 저녁을 먹고 회포를 풀기 위해 술집으로 이동하는 중 그가 입을 땠다.

"저기, 녹취 풀어야 할 게 많아서 그러는데, 다음에 먹으면 안 될까요?"

가까운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그가 엇박자로 걸으며, 버스에 올라탔다. 엔진소리가 커지더니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그가 눈에서 멀어져갔다. 왜일까? 그 순간, 머릿속에 영상이 떠올랐다. 철물점에서 키보드를 치던 그의 모습이다. 자판 옆에 있던 책도 떠올랐다. MBC 이용마 기자가 그에게 선물한 거였다. 제목은 이렇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 이영광 시민기자가 아버지의 가게이자 그의 작업실인 철물점에서 녹취록을 작성하고 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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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영광 시민기자 두 번째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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