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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 1호, '이명박 4대강'

콘크리트 벽 뚫은 미국 물고기
[4대강 독립군 미국에 가다] 댐 해체 뒤 생겨난 기적의 땅에서

17.04.17 05:39 | 글:김종술쪽지보내기|편집:최유진쪽지보내기

박근혜 탄핵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은 적폐청산 1호라 할 만 하다. 차기 정권은 수문 개방뿐만 아니라 4대강 청문회를 최우선 정책 과제로 선정해야 한다. <오마이뉴스>는 대통령 선거에 즈음해 미국 현지 취재 등을 통해 4대강 사업의 폐해를 환기시키고,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편집자말]
▲ 연어알 ⓒ 올림픽 국립공원

미국 연어는 힘이 셌다. 콘크리트 댐을 뚫었다. 워싱턴 주 올림픽국립공원을 관통하는 엘와강, 그 위에 세운 댐 두 개를 허문 건 매년 강을 거슬러 오르던 연어 떼였다. 댐에 가로막혀 강을 오르지 못하는 연어를 위한 조치였다. 한국 4대강처럼 수천만 명이 정수해서 먹는 물도 아니었다.

비참했다

이 사실을 알자 갑자기 내가 비참해졌다. 7년 동안 금강을 비롯한 4대강에서 나홀로 싸워온 것이 허탈했다.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이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8300km를 날아 미국 시애틀 공항에 도착한 건 지난 9일이었다. 곧바로 엘와강(Elwha River) 하구에 갔다. 차에서 내려 하구언을 밟기 직전에는 뜨악했다. 검은 펄밭에 하얀 배를 뒤집고 죽어간 금강 물고기 떼죽음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검은색 바닥에 쓰레기처럼 떠밀려 온 나무 가지들이 태평양을 배경으로 펼쳐져 있었다.

검은 땅을 직접 밟으면서부터 선입견이 깨지기 시작했다. 발밑으로 전해지는 감촉은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에서 항상 보아왔던 펄이 아니었다. 검은 모래였다. 냄새를 맡아봤다. 금강처럼 시궁창 냄새가 아니었다. 짠 소금 냄새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산골짜기를 타고 여울에서 뒹굴기도 하면서 씻기고 씻긴 흔적이 역력했다. 맷돌로 곱게 간 듯한 강모래였다.

금강도 이랬다

▲ 금강요정 김종술 ⓒ 정대희


▲ 미국 엘와강에서 두 손으로 모래를 떴다. 금강의 시커먼 펄에서 풍기던 시궁창 냄새와는 달리 향긋한 냄새가 난다. ⓒ 올림픽 국립공원

그 위에 누워있던 흰색의 정체는 죽은 물고기의 허연 배가 아니었다. 손으로 한 번 문지르니 매끄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검은 모래와 함께 강 상류에서부터 바위에 부딪치고, 여울에 함께 뒹굴면서 만들어진, 단단한 나무껍질을 고운 사포로 밀어낸 듯한 자연 조각품이었다. 그 수백 년 된 거대한 나무뿌리를 한국에 들여오면 호텔에 전시할 수 있을 듯했다.

그 검은 모래 품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그 나무 위에 앉아 잠시 쉬는 건 인간이 아니었다. 대자연의 전시장을 관람하는 주인공이 누구인지 검은 모래 위에 새겨진 발자국이 말해줬다. 네 발 달린 야생 짐승과 두 발 달린 도요새, 갈매기…. 거대한 검은 모래 삼각주에는 파도소리와 새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순간 호기심이 발동했다. 금강에서 가끔 그랬던 것처럼 엘와강에서 하구로 흘러드는 물을 떠먹었다. 함께 간 4대강 독립군 이철재 기자는 잠시 머금다 뱉었지만, 텁텁하거나 찝찝하지 않았다. 생수 같았다. 4대강 사업 이전에 금강의 황금 모래 벌도 이와 같았다. 엘와강은 금강의 과거였다. 2011년 엘와강에 있는 두 개의 댐을 열면서 새롭게 생겨난 기적의 땅이었다.    



댐에 머리를 부딪치며 죽는 연어들

4대강 독립군은 이틀 동안 엘와강을 취재했다. 자세한 내용은 앞서 쓴 '댐을 폭파한 미국, 4대강도 가능할까''댐 철거한 미국... 손해 본 건 하나도 없다'라는 제목의 현장 기사 두 편을 참고하면 된다. 그 와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말은 이것이다.

"매년 강으로 오르려고 콘크리트 벽에 부딪치며 죽어가는 수많은 연어를 봤다. 연어들은 머리가 깨지면서도 끊임없이 튀어 오르며 발버둥을 쳤다. 그걸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그건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우리 부족의 고통이었다.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려고 싸우듯이 우리도 댐을 부수기 위해 싸웠다."

미국 서북부 워싱턴 주 엘와강 지역의 클람람 부족장 프란시스 찰스(France Charles)가 엘와댐을 폭파한 현장에서 한 말이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동질감마저 느꼈다. 매일 금강을 취재하면서 내가 겪었던 고통과 갈등이 겹쳐졌다.

물고기 떼죽음의 기억

▲ 2012년 10월 금강에서 물고기떼죽음이 발생했다. 공무원들은 이를 숨기려고 구덩이를 파서 사체를 묻었다. ⓒ 정대희

금강 변에 수없이 널린 물고기의 주검들. 지옥 같았다. 공무원들은 물고기를 마대자루에 담아 강변에 숨겼다. 나는 매일 손으로 땅을 파면서 수십 만 마리의 주검들을 들추어냈다. 구더기가 들끓었다. 그들은 미친 듯이 숨겼고 나는 미친 듯이 취재했다. 그들은 국민 세금과 공권력으로 무장한 국가 권력이었고 나는 혼자였다.

물고기 떼죽음 보도를 보고 전국 언론사 기자들이 금강으로 몰려왔다. 때로는 기자들이 나를 추켜세웠지만, 기쁘지 않았다. 온 몸에서 죽은 물고기들의 썩은 냄새가 따라다녔다. 저녁에 들어와 몇 번이나 씻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물고기와 구더기가 꿈속에도 나타났다. 형광등을 끌 수 없었다.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잠을 청했지만 잠들 수 없었다. 결국 정신과 약을 먹었다.

4대강 독립군이 지난 10일 클랄람 부족들과 함께 간 엘와댐 폭파 현장은 그리 넓지 않은 협곡이었다. 33m 높이의 콘크리트 벽은 물길을 가로막았다. 산란장으로 향하는 연어들이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전에 이곳은 지금의 금강처럼 연어들의 무덤이었다. 하지만 댐을 허문 뒤 엘와강은 그동안의 갑갑함을 털어내기라도 하듯 우렁찬 소리를 지르며 흘렀다. 댐으로 수몰됐던 곳에 심은 나무는 내리는 비에 온몸을 적시고 있었다.

금강과 나
▲ 금강요정 김종술 ⓒ 정대희

부러웠다. 해방된 강을 보고 있자니 금강이 머릿속에 스쳤다. 흐르지 않는 침묵의 강. 국민의 70~80%가 강을 망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4대강사업을 반대했다. 완공된 다음해부터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60만 마리 이상의 물고기가 떼죽음 당했다. 낮은 여울에 살아가는 키다리 물고기는 6m의 깊은 수심을 견딜 수 없었다. 산소가 부족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갇히면 썩는다'는 명제를 인정하지 않았다. 강은 스스로 썩으면서 그 명제를 입증했다. 맑은 강물이 녹색으로 물들었다. 그동안 강에서 볼 수 없었던 큰빗이끼벌레와 같은 괴 생명체를 등장했다. 바다로 흘러가지 못한 펄들은 강바닥에 쌓였다. 시궁창에서 흐늘거리던 실지렁이, 붉은 깔따구가 득시글한 강으로 탈바꿈했다.

난 강을 기록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기록을 위해서는 강에 더 가까이 다가서야 했다. 인체에 유해한지를 확인하려고 큰빗이끼벌레를 씹어 먹기도 했다. 걸쭉한 녹조 물에 들어가는 것은 다반사였다. 강을 혼자 걷다가 지치면 강변에서 텐트를 치고 먹을 것이 떨어질 때까지 며칠을 혼자 지내기도 했다.

대표로 있던 지역 신문사를 말아먹고 주머니에 단돈 500원만 남았을 때에도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언론들은 큰 특종을 터트렸을 때에 반짝 금강으로 몰려들었지만 그들이 가고 난 뒤, 난 늘 혼자서 강을 지켜야 했다.

엘와강과 원주민
▲ 엘와강 ⓒ 올림픽 국립공원

문득 클랄람족에게서 내 모습이 투영됐다. 댐 해체라는 승리를 거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수십 년간 싸워온 이들이 전기를 맞이한 건 1963년 멸종위기종법이 미 의회를 통과하면서부터다. 엘와강을 거슬러 올랐던 시누크 연어의 몸값은 상승했다. 19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 엘와 댐의 면허 갱신이 다가왔을 때 이 부족들은 환경단체들과 연대해서 싸웠고, 1995년에 전력회사는 전력 생산 면허 갱신을 포기했다.  

연어는 그들의 전부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연어잡이로 생계를 유지했고, 연어가 올라올 때면 온갖 축제와 제례를 지냈다. 연어를 잡아 이웃 부족과 물물교환을 했다. 심지어 이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클라마스 강 주변의 원주민들은 연어잡이 통나무배에 심장과 폐를 새겨놓고 다녔다. 연어와 인간은 한 몸뚱이라는 뜻이다. 경제활동이자, 문화이자, 정신적 가치였다. 연어와 만나기 위한 수십 년간의 싸움은 이래서 가능했다.

원주민들로부터 싸움의 역사를 듣고 있자니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한 건 아닌지? 지금도 싸우는 사람들이 있지만 4대강에 기대 살던 농민과 어민들은 국가권력의 폭력 앞에 무너져 내렸다. 몇 푼 안 되는 보상금과 선조 때부터 농사를 짓던 땅을 맞바꾸고 고향을 등졌다.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이명박식 독재 앞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이곳 원주민과 비교하니 안타까웠다. 마을을 지킨 건 언론, 환경단체도 아닌 원주민들이었기 때문이다.

올림픽 국립공원에 있는 엘와강은 상류에 오염원이 거의 없고 천혜의 자연을 간직한 곳이다. 두 개의 댐에 막혔어도 수질 문제가 대두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미국은 2011년에 엘와댐을 철거했고, 우리는 이듬해인 2012년에 16개의 댐을 4대강에 건설했다. 미국은 댐을 철거해 잃어버린 경제와 공동체 부활을 준비하고 있고, 우리는 댐을 건설해 환경과 지역경제를 망치고 있다. 댐을 허무는 미국, 4대강 댐을 유지하는 한국, 누가 옳은 것일까?

엘와강의 댐 해체로 새롭게 만들어진 기적의 삼각주에서 4대강의 미래를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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