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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광장 토론] 박근혜 퇴진, 그 후 우리는?

"소수 자본가 천국시대, 이제는 끝장내자"
[박근혜 퇴진, 그후 우리는? 42]

17.03.27 17:54 | 송경동 기자쪽지보내기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 후,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까요? 광화문 광장의 '퇴진 캠핑촌'은 촛불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대안 토론 광장을 엽니다.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와 <광화문 퇴진 캠핑촌 광장토론위원회>가 공동기획했습니다. 이번 글쓴이는 송경동 시인입니다. [편집자말]
▲ 박근혜즉각퇴진 5차범국민행동이 열릴 예정인 26일 오전 광화문광장에서 한 학생이 '이게 나라냐'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 권우성

"이게 나라냐."

구호가 아니다. 첫 촛불집회의 이름이었다. 지난해 10월 24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었다. 훗날 광화문캠핑촌의 사무국을 도맡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사회운동 네트워크가 대중 집회를 제안했다. 분노와 저항이 필요한데, 무엇보다 거리가 열려야 한다는 생각에 이틀 뒤(10월 26일) 동화면세점 앞에서 약 500여 명이 모여 거리를 행진했다. 첫 대중 집회였다.

이승만 하야 운동 당시를 패러디한 선전물을 만들었다. 국정농단의 핵심이 '하야' 운동으로 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플랜카드에 이승만 하야 운동 당시를 재현했다. 첫 집회 날,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하야'란 단어가 검색어 1위로 부상했다.

운명 같은 만남이 성사됐다. 청계광장에서 2차 민중총궐기 대회를 준비 중이던 총궐기투쟁본부 대표자들과 마주했다. 마침 2차 민중총궐기를 준비 중이던 총궐기 대표자들 농성이 동화면세점 건너편 청계광장으로 들어왔고, 매일 촛불이 열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평일 촛불집회는 총궐기투쟁본부(아래 총궐기투본)가 담당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지난 10월 29일 총궐기투본 주최로 첫 광화문 촛불집회가 열렸고, 약 3만 명의 시민노동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캠핑촌 초기 주체들은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 논의에 들어갔다. 평일 촛불집회와 주말 집회는 총궐기투본과 당시 긴급히 논의에 들어간 범국민대책위(가칭, 현재의 박근혜퇴진 비상국민행동) 중심으로 진행될 터였다. 그외 우리는 어떤 활동으로 퇴진운동에 힘을 보탤 것인가를 고민했다.

결론은 '광장'으로 나가자!, '광장'을 열자! 였다. 주말 집회 집중을 넘는 결사적인 운동 정도가 있어야 즉각 퇴진이라는 쉽지 않은 과제 달성이 가능하지 할 거라고 봤다. 그렇게 나아가자는 마중물 운동이 필요하고, 현 국면이 그렇게 좀 더 결의 있는 행동을 요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사회적 표현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초기 예상되는 공안탄압에 맞서 광장을 열어가는 완강한 그룹 운동이 촛불 시민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줄 수도 있을 것이었다. 더불어 세월호 추모와 진상규명, 백남기 농민 투쟁 등에서 보았듯이 정해진 행진로를 돌다 마는 주말 집회 방식만으로는 살아 있는 권력인 대통령 퇴진운동까지 이르기 쉽지 않다는 판단도 있었다.

캠핑촌 운동이 다양한 운동의 상상력을 촉진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또 퇴진운동의 모든 힘은 '광장'으로부터 밖에 나올 수 없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범야권이라는 여의도정치의 그간 모습을 볼 때 그들이 정치공학적으로 어떤 결정적이거나, 적극적인 활동을 해줄 거라고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결과적으로 탄핵은 국회가 해준 것도, 특검이, 헌법재판소가 해 준 게 아니었다. '광장'으로 모인 주권자들의 직접민주주의 행동이 모든 법체계 위에서 퇴진운동을 주도해 왔다.

'광장'이 열릴 때마다 생기는 시민사회 상층연대 운동기구도 그 역할과 다르게 한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가능하다면 1980년 광주의 도청과 같은, 1987년 명동과 같은 집중된 농성촌을 꾸리는 것이, 2011년 9월 세계 금융자본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일어난 '월가를 점거하라(오큐파이 운동)' 당시의 쥬코티 공원 농성촌 같은 형식과 내용을 꾸리는 것이, 같은 해 '아랍의 봄' 당시 수많은 독재자들을 끌어내렸던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과 같은 운동을 여는 것이 캠핑촌의 꿈이었다.

조직된 민주시민노동자들을 넘어 불특정의 수많은 이들의 힘을 모을 수 있는 형식은 '광장'뿐일 것이며, 이곳으로 모인 집단지성과 행동이 가장 큰 힘이 될 터이니 모든 힘을 '광장'을 여는 것으로 집중할 필요가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초기의 고민만큼은 되지 않았지만, 나름 퇴진운동의 완강한 일상적 거점이자 상징 공간으로서의 역할은 했던 것 같다. 문화예술운동의 전면적인 결합으로 광장을 디자인하고, 기운을 불어넣는 선전대로서의 역할도 컸다고 본다. 무엇보다 '여의도정치'를 넘는 직접민주주의 시공간으로 '광장'이라는 개념과 이름을 역사적으로 복권시켜낸 데 캠핑촌의 역할이 나름 있지 않았을까 싶다.

'광장신문', '광장토론회', '궁핍현대미술광장', '광장극장 블랙텐트' 등 캠핑촌은 거의 대부분의 사업들을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집중시켜 나갔다. 의제 관련해서도 늘 한 발짝씩이라도 전위적으로 앞서고자 하기도 했다.

▲ 서울 광화문 '박근혜 퇴진 캠핑촌' 앞, 포승줄에 묶인 박근혜 대통령의 모형이 등장했다. ⓒ 노순택

박근혜 퇴진에서 나아가 '구속'이어야 한다는 것, 재벌이 몸통이라는 것, 1박2일 대행진 등을 통해 노동 의제의 전면화와 박근혜 퇴진 이후가 도리어 상상되어야 한다는 것, 양심수 석방과 아울러 모든 박근혜 정부 하 공작정치와 공안탄압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 블랙리스트 건을 축으로 박근혜 핵심 공범인 김기춘과 조윤선, 김종 등을 처벌하고, 이후 그 어떤 정부도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불법적으로 사찰 검열할 수 없도록 하는 일 등 늘 박근혜 퇴진운동의 에너지가 실제적인 한국 사회의 변화로까지 나아가기를 희망하고, 그런 상상력을 촉진하는 기획투쟁들을 이끌어 왔다.

그를 위해 캠핑촌은 거점에서만 활동했던 게 아니다. 재벌 본사로, 국회로, 서울구치소 앞으로, 국정원 앞으로, 세종시 정부청사로, 조선일보 앞으로 등 모든 적폐의 대상들이 되는 곳들로 원정투쟁들을 다니기도 했다. 본무대로 올라가기 쉽지 않은 소수자 주체들과 그 의제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캠핑촌도 힘써 함께 했던 박근혜 퇴진 이후, 우리는 무엇을 상상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우선 과제로는 박근혜 구속, 공범 그룹들인 우병우 등의 구속, 그리고 정몽구를 비롯한 재벌 총수들에 대한 구속 처벌 운동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또 다른 공범에 다름 아닌 황교안 직무대행과 그 내각에 대한 총사퇴와 처벌 요구도 정치공학의 차원을 떠나 광장에서 계속 요구되어야 할 사안일 것이다.

또 다른 박근혜를 길러내는 온상이 될 수 있는 자유한국당, 바른 정당 등 구시대 정치권들에 대한 역사적 퇴출, 해산 운동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과제들이다. 또 놓치지 말아야 할 일들은 '여의도 정치'에 대한 견인, 견제와 개입, 나아가 비판과 저항 등의 활동들이다.

현재 차기 대선으로 집권이 확실시 되는 범야권 역시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실제적 진전을 위해서는 넘어서야 할 대상일 수 있다. 촛불시민민중들은 혁명을 이루어 냈지만, 여의도 정치는 전혀 이 시민민중 혁명의 성과를 온전히 받아 안고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실제적 변화로 가고자 하는 의지가 결여되어 보인다. 여의도 정치는 지금이라도 박근혜로 대표되었던 반민주, 반민생, 반노동자민중, 반평화, 반인권 법안들을 즉각 폐기하고, 새로운 한국사회로의 돌입을 선언해야 한다.

세월호 특별법 재개정, 백남기 농민특검, 사드배치 철회, 국정교과서 폐지, 위안부 합의 철회, 각종 노동악법 폐기 등은 최소한의 조치들로 여겨져야 할 것이다. 박근혜 탄핵소추안 의결 이후 이런 실제적 과제들에 눈 감고 잠자고 있는 여의도 정치에 대한 규탄과 강제가 필요하다.

한편, 이런 과제 수행을 구 정치권에 기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광범위한 고민들이 존재하고 있다. 퇴진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정치 주체들의 출현과 결집을 위한 노력들이 있기도 했다.

시민의회가 제안되기도 했고, 혹여 전개 과정에 거국내각이 세워진다면 시민사회의 참여 형식, 그 외 촛불후보 추대를 고민해보는 흐름, 민주노총 등 민중운동 세력들을 중심으로 노동자민중 후보 전술 고민, 이후에라도 새롭게 등장하는 정부에 어떤 형태로던 시민사회 참여 등의 형식에 대한 고민들이 없었거나,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이런 새로운 정치 주체 형성은 부분은 가능치 않은 상태로 보인다. 혁명의 성과는 현재 다시 구시대 정치권으로 수렴되는 경로 외에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시작으로 인식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당장 새로운 정치주체와 새로운 사회의 윤리와 의제들을 대선 공간을 통해 전면화할 수는 없겠지만, 이후 새롭게 만들어 갈 2단계 혁명의 과정에서는 얼굴과 당 이름만 바뀌는 식의 정권 교체가 아니라, 한 사회의 세계관 자체가 통으로 변해가는 과정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어쩌면 우리 자신들인지도 모른다. 어느 시점이 될지는 모르지만 2단계 시민사회 혁명을 준비하기 위한 각종 조직들과 주체 마련에 들어가야 한다. 특정 인물과 한 사건 혹은 사안들에 대한 즉자적 분노를 넘어 불공정하고 불의한 기존 사회 구조와 각종 세력과 체재 자체에 대한 명료한 인식과 분노와 저항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

이런 꿈이 이제는 가능하다는 자신감으로 이번 11월 혁명의 경험이 자리 잡아 나가야 한다. 좀 더 자신을 열고 더 큰 연대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기존 체재와 정치 지형에서 벗어나 본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고, 행동하는 주체들로 우리 스스로들이 거듭나야 한다.

그 방향은 명확하다. 헬조선, 흙수저 인생들, N포세대, 서민노동자 가족들의 자살공화국, 복지사각지대의 수많은 빈민들, 일할수록 빈곤해지는 1100만 비정규직 시대, 1300조를 넘는 가계부채시대, 그 모든 사회적 불행 위에 서있는 소수 자본가들만의 천국을 이제 그만 끝장내는 일이다.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열기 위한 조치들이다. 그런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전략적 역사적 주체들로 우리 모두가 함께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이 역사적 순간을 상상하고, 결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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