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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촛불에게 길을 묻다

'박근혜 대통령이 잘한 일은?'
중고생 50명이 멘붕에 빠졌다
[촛불에게 길을 묻다]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촛불 중고생' 50명

17.03.03 05:04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사진: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장지혜쪽지보내기

▲ 촛불집회 현장에서 청소년을 만났다. ⓒ 정대희

박근혜 대통령?
"얼척 없어요."(어이없다) "창피해요."

특검 수사 안 받은 건?

"찌질 해요." "짜증나요."

10점 만점에 몇 점?
"빵점이요!" "마이너스 무한대요~."

광장에서 만난 중고생들은 거침이 없었다. 톡톡 튀었다. 전남 광주에서 열 받아서 혼자 올라 왔다는 중학생, 세종시에서 "범죄자 잡으러 왔다"는 고등학생도 있다. 강원도 강릉에서 함께 온 고3 학생 5명은 "살아있는 역사책에 발자국을 남기러 왔다"고 했다. 경기도 용인에 사는 한 중학생은 "나라가 개판"이라고 개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고생들을 정치 의식화했다.  

10대 학생들의 당찬 답변을 취재수첩에 적으며 50대 기자도 움찔했다. 분노의 감정은 광장에서 자부심과 기쁨으로 변했다. 같은 마음의 수많은 촛불을 보고 "웅장하다"고 혀를 찼다. 한 학생은 '엄지 척'을 하면서 "대한민국, 살아있네~"를 외쳤다. 교과서에서만 읽은 민주주의가 광장에서 꿈틀대는 걸 보고 "아, 감동! 감동!"이라고 발을 굴렀다. 촛불광장은 축제였다.

지난 2월 18일과 25일 광화문 집회에서 무작위로 50명의 중고생을 만났다. 중학생 16명, 고등학생 34명이다(여학생 28명, 남학생 22명). 부모님과 함께 온 학생들도 많았지만 혼자, 또는 친구들끼리 광장을 찾은 학생들만 만났다. 주말 촛불 광장에 '개근'한 학생도 있고, '처음' 온 학생도 있었다. 사는 곳을 보니 서울보다는 경기도, 경상도, 전라도 등 타 지역이 많았다.

길어야 5분, 이들과 잠시 만났다 헤어지면서 던진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은 10점 만점에 몇 점?"

학생들은 큰소리로 대답했다. 손가락으로 점수 모양을 만들면서 소리치는 학생도 있었다. 북적거리는 광장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마이크 소리 때문이다. 아래 동영상은 광장으로 뛰어나온 촛불 청소년 50명의 육성 기록이다.  



[왜 나왔나?] 세월호 세대 "얼척없다" "찌질 하다"

▲ 촛불집회 현장에서 청소년을 만났다. ⓒ 정대희

10대 학생들은 '세월호 세대'였다. 객관식 질문이 아니었는데도, '왜 집회에 참석했나'라고 묻자 세월호 참사를 꼽은 학생이 16명이나 됐다. 박영인 학생(고2. 여)은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이 죽어갈 때 대통령이란 사람이 머리나 손질하고 있었다는 게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박서현 학생(중2. 여)도 "세월호 7시간에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면서 "국가의 어른으로서 너무 찌질하다"고 말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그날 나도 수학여행을 가고 있었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배 안에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고 사과도 하지 않는 나라. 난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 (이재현. 고3. 남)      

학생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도 문제이지만, 거짓말을 심판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해나 학생(고1. 여)은 "국민에게 거짓말하고 발뺌하는 것을 보고 '얼척 없어서'(어이없어서) 나왔다"면서 "하야하면 연금이 나온다는 데 헌법재판소는 반드시 탄핵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완 학생(중3. 남)은 "정유라처럼 돈 많고 인맥 있으면 명문대를 들어갈 수 있는 게 나라인가"라고 말했고, 제천에서 버스 타고 올라왔다는 이현성 학생(중3. 남)은 "역사를 왜곡하는 국정교과서를 가르치려 하는 게 나라냐, 개판이어서 화가 났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위안부 문제를 어리석게 해결한 불통의 민폐 대통령"(정우진. 중3. 남)이라면서 위안부 협의, 사드, 4대강 등 박근혜 정부의 정책 실패를 꼬집는 학생들도 있었다.

[촛불집회에 참석했더니?] "살아있는 학교... 소름 돋는다"

학생들은 '촛불 혁명'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만 보던 뜨거운 광장에 자기가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했다. 지난달 18일 인천에서 함께 전철타고 왔다는 김민지 학생(고1. 여)과 김가은 학생(고1. 여)은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 "역사의 한 장면 속에 내가 있는 게 뿌듯하다"고 했다.

임세현 학생(고2. 남)은 "대한민국 사람은 한번은 꼭 참석해야 한다"며 "웅장하고 기쁘다, 대한민국 살아있다"고 외쳤다. 그의 친구 박동찬 학생(고2. 남)도 "불공정한 사람들이 특권을 갖고 잘못 휘둘러서 나라가 이 꼴이 됐다"면서 "여기 와서 보니 우리나라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전남 강진에서 온 백동재 학생(고3. 남)은 "국민들이 이렇게 단결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직접 보니 소름이 돋는다"면서 "이게 바로 살아있는 학교"라고 말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화가 나서 광화문 광장에 나왔다는 학생들은 촛불 집회에 참여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모두 감탄사로 대답했다. 

"진짜 기쁘다" "뭉클했다" "웅장하다" "꿈꾸는 것 같다" "이렇게 평화로운 집회, 우리가 자랑스럽다." "나중에 엄마가 되면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18세 선거권 인하는?] "박근혜는 초등학생보다 정치 못한다"

▲ 촛불집회 현장에서 청소년을 만났다. ⓒ 정대희

정치권 일각과 시민사회에서는 18세로 선거권을 낮추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만난 학생들도 대부분 이를 알고 있었다. 

"촛불집회에 개근했다. 친구들끼리 대학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인서울'이 어디 쉬운가. 정유라는 우습게 대학을 갔다. 이런 나라에 산다는 게 회의가 들었다. 청소년들이 집회에서 발언하는 것을 들었는데 정치적으로 부족하거나 미성숙하지 않았다. 국정교과서를 배우라는 데 학생들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공무원도 되고 결혼도 할 수 있는데 선거권만 주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투표권이 주어지면 대학을 가지 않아도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는 나라, 입시기 아니라 꿈을 쫓아다닐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 (이하영. 고2. 남)

조남희 학생(중1. 남)도 "다른 나라에서는 대부분 18세에 선거권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우리는 후진국"이라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했던 것도 정치였을 텐데, 최순실에게 연설문이나 고쳐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초등학생들보다 정치를 못한 게 아니냐"고 말했다.

18일 저녁 8시30분경, 홍민기 학생(고3. 남)은 4명의 친구들과 함께 청와대 입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그와 친구들은 모두 고등학교 졸업반인데 올해 선거권이 없다.  

"비선실세들이 부정한 권력을 휘둘렀다. 정의롭지 않은 권력에 의해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화가 나서 강원도 홍천에서 매번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지금까지 차비만 30여만 원이 들었지만, 그래도 온다. 정치 무관심이 문제라고 하는데, 고등학생 때부터 관심을 가져야 성인이 돼도 이어질 수 있다. 학생들의 복지와 입시 정책이 나이든 정치인들의 입맛대로다. 우리가 행동해야 나라가 바뀐다."

[어떤 나라 만들어야 하나?] "출발선이 같아야 한다"

우리 근현대사는 수많은 혁명의 변곡점에서 좌초했다. 혁명의 기운을 만든 주역은 시민이었고, 이를 무력화시킨 건 친일 잔재와 독재, 부패 정치였다. 4.19 혁명, 10.26 이후 서울의 봄, 87년 6월 민주화운동이 그랬다. 혹독한 반동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청산되지 않는 부정한 역사는 반복된다. 청소년들도 그걸 알았다.

"3.1운동 이후인 1920년대 일제 문화통치시대에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도 그때 창간했는데 지금까지 본질이 그대로이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에도 친일과 독재의 세력들이 남아있다. 적폐를 청산하고 역사적으로 갈아엎어야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다." (김대욱. 고3. 남)

"국민을 배반한 이승만과 70-80년대 박정희와 전두환 시대의 순환 고리를 없애야 한다. 87년 6월 항쟁 이후에도 우리는 또다시 되돌아왔다. 이런 악순환을 이번에는 끊어야 한다. 박근혜를 탄핵시켜 구속해야 하고 이재용을 시작으로 우리 경제를 좀먹는 재벌들을 청산해야 한다. 언론도 갈아엎어야 할 대상이다." (전보근. 고3. 남)  

이시원 학생(고2. 여)도 "이재용의 구속은 정의가 이긴 사건"이라면서 "모두가 출발선이 같은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은 좌파 우파의 대결이 아니라 비정상과 정상의 대결"이라면서 "원칙과 법이 살아있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예림 학생(중1. 여)은 "중학생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나라", 안병수 학생(중3. 남)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임세현 학생(고2. 남)은 "최유라 같은 친구가 없는 공평한 나라"를 희망했다. 

학생들이 바라는 나라의 키워드를 정리하면 '정의'와 '공평' '적폐 청산'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잘한 것은 없나?] 한참을 생각했다

▲ 촛불집회 현장에서 청소년을 만났다. ⓒ 정대희

"잘한 것? 글쎄요?"

'피의자 박근혜 대통령'이 잘했다고 평가할 만한 일은 없을까? 그동안은 일사천리였던 학생들이 이 질문 앞에서 멈칫했다. 왜 황당한 질문을 하냐는 표정을 보이는 학생도 있었다. 대부분 "잘한 일은 없다" "충격적으로 못했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간혹 이런 답변도 있었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전에 대통령직을 사퇴한다고 말실수를 하지 않았나." (김형석. 중3. 남)
"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 (김민지. 고1. 여)
"외교랍시고 여기저기 좋은 옷 입고 다니면서 고생한 것." (이하령. 고2. 남)
"국민을 대통합한 것은 잘했는데, 지금 박사모 집회를 보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재현. 고3. 남)

[박근혜 대통령 점수는?] "빵점이요!" "마이너스 무한대"

'촛불 중고생'들이 매긴 박근혜 대통령의 성적표는 밑바닥이었다. 10점 만점으로 따져서 평균 점수를 내려던 계획조차 포기해야 했다. 질문하기 전에는 예상치도 못했던 '마이너스 점수'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제일 많이 나온 점수는 '빵점'(30명)이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한 게 없다"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많이 나온 점수는 '마이너스 무한대'(5명)였다. '1점'은 4명, '2점'과 '마이너스 100점'은 3명, '3점'은 2명, 그리고 '마이너스 200점' '마이너스 50점' '마이너스 0.1점'이 각각 1명씩 나왔다.

이규헌 학생(고1. 여)은 "금수저와 은수저, 흙수저라는 기준이 없는 나라, 재벌이 해체되는 나라에 살고 싶다"면서 "지도자로서 이런 개념도 없고 특검의 조사도 받지 않으면서 시간만 끌고 있는 꼭두각시 박근혜를 보면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기에 마이너스 무한대를 준다"고 말했다.  

노희원 학생(고1. 남)은 "박근혜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없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면서 "빵점을 주기도 아깝다"고 말했다. 이동주 학생(고2. 남)은 "나라를 이 꼴로 만든 사람은 평가할 가치도 없다"면서 "마이너스 무한대"를 외쳤다. 김예림 학생(중 1. 여)은 "빵점을 주지만 국민들의 세금을 함부로 쓰는 등 너무했다"며 "마이너스 1억 점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1점을 준 김지민 학생(고2. 여)은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이유를 꼽았고, 2점을 준 김민지 학생(고1. 여)은 "특검의 수사를 받지 않고 탄핵 재판을 방해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찌질 하지만 빵점을 주면 상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3점을 준 이창범 학생(고3. 남)은 "잘한 일은 하나도 없으면서 버티는 것을 보면 비양심적"이라면서 "내가 줄 수 있는 최하의 점수가 3점"이라고 말했다. 

"고구마를 먹으면 가슴이 얹힌다. 박 대통령을 보면 그런 느낌이다. 답답하다. 어차피 내려와야 할 텐데, 발악하는 게 안쓰럽다. 제대로 한 게 없으면서 세월호와 쌍용차 등 사회적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상이 없다. 상황만 악화시켰다. 빵점 대통령이다. 그런데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데에는 언론의 책임도 크다. 지상파와 언론들이 처음부터 진실을 밝혔으면 이렇게까지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더 안타깝다." (오선영. 고1. 여)

2017년, 광화문과 시청 사이

▲ 제16차 촛불집회 현장에서 청소년들이 '18세 선거권'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 정대희

지난달 25일 저녁 7시경, 50명의 촛불 중고생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광화문 광장에서 시청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낮에 잠깐 들렀을 때에 시청 광장은 수구단체들의 태극기 집회로 꽉 차 있었다. 하지만 중고생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어린 아이들을 대여섯 명 보긴 했지만, 태극기를 온 몸에 두르고 양손에 태극기를 쥐고 흔드는 3-4살쯤 돼 보이는 철없는 아이들이 전부였다.

광화문의 언론재단 건물 앞쪽에 경찰이 차벽을 쳤다. 촛불과 태극기의 경계선을 지나자 시청 광장의 대형 스피커에서 군가가 들리기 시작했다.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오후 3-4시경 광장과 도로를 메웠던 사람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간혹 태극기를 어깨에 걸치고 대형 성조기를 흔드는 사람들이 몇 무더기 보였다. 군가가 끝난 뒤 연단에서는 행진을 시작한다고 했지만, 시민들은 태극기를 접어 가방에 넣은 뒤에 시청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같은 시각, 광화문역에서는 청소년과 시민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썰물과 밀물. 장강의 도도한 뒷 물결은 앞 물결을 밀어낸다(長江 後浪 催前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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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청소년들이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의 책임에서 언론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질타할 때에는 부끄러웠습니다. 오선영 학생이 "오마이뉴스처럼 깨어있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서 보도하는 언론기관이 많았다면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에는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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