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4대강 찬성한 전문가들, 피해 모를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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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에게 길을 묻다

계엄령 선포? 최후 반격 맞선 '거리 시인'
[촛불에게 길을 묻다] 송경동 시인②

17.02.28 07:10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사진: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최유진쪽지보내기

▲ 거리에 나서야 만날 수 있는 송경동 시인.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 텐트를 치고 캠핑촌장이 됐다. ⓒ 정대희

"국회에서 박근혜 탄핵안이 가결된 날, 아이한테 전화가 왔어요. 기분이 좋아서 '아빠도 노력했다'고 말했더니 아이가 이렇게 다시 물었어요. '아빠, 그래서 뭐가 바뀌었는데요?' 허, 참." 

송경동(50) 시인은 그날, 고등학교 3학년 아들한테 한 방 먹었단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이 말이 자꾸 생각난다고 했다. 아니 심상치 않다고 했다.

"거대한 조직이 움직이고 있어요. 최후의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탄핵 반대를 외치는 수구 단체들이 촛불 상징인 서울광장에 들어온 것부터 찜찜했다고 했다. 대형 발전기와 대형 온풍기를 돌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식사할 취사시설도 있다. 광화문광장에서 100여일째 농성중인 블랙리스트 캠핑촌은 비교가 안 된단다. 지난 구정 때 이들은 탄핵반대 인쇄물 300만부를 전국 가가호호에 뿌렸다.  

"대체 그 돈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청와대와 헌법재판소, 광화문 집회 공간을 우리보다 먼저 접수했어요. 전에는 싸움을 걸어오기도 했는데, 이젠 충돌을 자제합니다. 조직적으로 관리하는 집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발악

시인 특유의 감수성이 아니더라도 위기감은 많이 퍼져있다. 저마다 촛불 한 개를 들고 역사의 터널 속을 헤쳐 나오고 있지만, 또 다른 반동의 터널로 진입하는 초입일 수 있다. 과거 4.19 혁명, 10.26 후 서울의 봄, 87년 6월 항쟁의 역사가 그랬다. 친일, 독재, 부패, 기득권 세력은 역사의 진창 속으로 곤두박질쳤다가 순식간에 판도를 뒤집었다. 그때마다 옷만 갈아입었다.  

지난 15일 정오에 광화문 캠핑촌에서 다시 만난 송 시인도 그걸 우려했다. 그는 모르쇠와 시간 끌기, 막말과 안하무인 등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측이 특검 수사와 헌법재판소 탄핵재판에 대응하는 모습에 "경악했다"고 했다.

"마지막 발악이죠. 천만 촛불이 주권자 명령을 발동했는데, 헌법재판관 8명이 뒤집을 수 없습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게이트 초기에 '최순실을 누가 몰랐나'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박근혜 게이트 공범이란 말입니다.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으로 옷만 갈아입은 뒤 정치 주체처럼 행세하는데, 범법자 집단을 단죄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권의 반민주, 반노동자, 반평화 정책을 폐기할 때까지 촛불을 끄지 말아야죠."

[거리의 시인①] 100여일 노숙의 흔적

▲ 거리에 나서야 만날 수 있는 송경동 시인.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 텐트를 치고 캠핑촌장이 됐다. ⓒ 정대희

시인은 잠깐 졸았다. 광화문 캠핑촌 마을회관의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앉아서 팔짱을 끼고 고개를 푹 꺾었다. 바로 뒤쪽 의자에서 떠들썩하게 회의를 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깨를 몇 번 두드렸더니 손으로 입을 훔치며 얼굴을 들었다. 푸석했다. 100여일째 노숙한 흔적이다.

"어, 왔네요."

노숙 시인과 함께 짬뽕과 탕수육 한 그릇을 나눠먹으면서 일주일 전에 마치지 못한 인터뷰를 이어갔다.  

- 아침은?
"거리에서 살다보니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밥만 사준다면 끼니때를 생각하지 않고 챙긴다. 꺼진 불처럼 쓰레기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길거리 살림에 보탤만하면 배낭에 넣고 캠핑촌으로 온다. 비가 오면 우비를 입거나 우산 쓰는 게 귀찮아서 그냥 맞는다. 노숙인 체질로 바뀌고 있다.(웃음)"

- 광화문에 친 60여동의 블랙리스트 텐트를 총괄해서 운영하는 것도 힘들 것 같다.    
"며칠 전 일본 대사관 앞에서 오랫동안 농성하는 학생들이 라면과 목토시 같은 것을 몇 박스 가져왔다. 감동이었다. 한약을 보내오신 한의사도 있고, 핫팩과 햇반, 김치, 내복을 보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많다. 무엇보다 1000만 촛불이 없었다면 우린 100일 동안 버티지 못했다."

- '거리의 시인'으로 불린다. 명예인가 불명예인가?
송경동 시인은?


2001년 실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꿀잠'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산문집 '꿈꾸는 자는 잡혀간다'가 있다. 천상병시문학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2014년에는 두 달 반 정도 거리에서 살았다. 2015년에도 부산 생탁 막걸리 비정규직 희망버스를 준비하고, 노동법 개악을 저지하려는 '을들의 국민투표' 사업한다는 이유로 석 달 이상은 길거리에서 지냈다. 그리고 작년 11월 4일부터 석 달 넘게 길거리 생활이다. 이래서 붙은 별명인데, 행복하고 빛나는 삶이 아니다. 현장은 외롭고 쓸쓸하다. 사람도 별로 없고 절망스럽다 버틴다는 게 쉽지 않다."   

집시법, 해산 불응, 미신고 집회 개최, 야간 시위, 건조물 침입 등 전과 10범인 '거리의 시인'. 그는 오늘도 광화문 텐트촌에서 버티고 있다.   

"그 길바닥의 시들이 사랑이다" (송경동 '가두의 시' 중 발췌)

[거리의 시인②] 살아남은 자의 슬픔

100여일째 노숙하는 사람에게 묻기에는 사치스런 질문 같았다. 짬뽕 국물을 입 속으로 밀어 넣는 그에게 '어떤 시를 쓰고 싶냐'고 물었다. 그는 "살아있는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죽은 글자가 아니라 그 시를 읽는 순간부터 다시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시". 어떤 시가 그런 시냐고 물었다.

"2014년 세월호 진상규명 싸움을 할 때 '박근혜 책임져라'는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 동십자각까지 진출했어요. 청와대로 가려는 데 경찰이 쳤습니다. 100여명이 연행됐죠. 비명소리와 쌍욕... 아수라장이었는데 난 도망쳤어요. 담을 뛰어넘어 허름한 창고에 숨었죠. 그날이 5월17일이었는데 다음날인 18일에 내가 마이크를 잡아야할 일정이 있었습니다. 

한 시간 뒤에 절룩거리면서 종로거리로 나왔어요. 안경을 잃어버려서 앞이 뿌옇더라고요. 사람들이 웃으면서 지나가는 불야성의 거리.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고 있었어요. 가슴이 서늘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브레이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시를 혼자 암송하고 있더라고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브레이트 '살아남은 자의 슬픔'
  
부끄럽게도 나는 거리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를 볼 때마다 이 시가 떠오른다. 

[거리의 시인③] 사소한 물음에 답함

그가 노동 현장과 길거리에서 쓴 시는 총 300여 편이다. 그에게 가장 아끼는 자작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의 두 번째 시집 제목이기도 한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이라고 대답했다.

"어느 날/한 자칭 맑스주의자가/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허둥대며 그가 말했다/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영광으로 생각하라고/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십 수 년이 지난 요즈음/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저 바다 물결에 밀리고 있고/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사소한 질문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종북 빨갱이'냐고, 누구의 사주를 받아 탄핵에 찬성하냐'고, '시인이 아니라 전문 시위꾼이 아니냐'고.  

- 시적 상상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벌교의 자연이다. 작은 읍내에 살았는데 집 뒤의 둑으로 바닷물이 들어왔다.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고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갈대숲의 황혼은 잊을 수 없다. 나는 5일 장터에 살았다. 새벽부터 왁자지껄했다. 악다구니와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소년원 생활과 도회지 뒷골목 비정규직 노동현장에서 봤던 열망과 아픔, 절망과 슬픔, 그리고 희망. 이 모든 게 나를 만들었다. 자연과 삶에 대한 갈구, 허기짐이 나를 꿈꾸게 했다."

광화문 캠핑촌에서 사는 촌민들도 그와 같은 꿈을 꾼다. 4대강을 살리자는 생명의 깃발이 날리고, 사드배치에 반대한다는 평화의 목소리가 들린다. 쌍용차, 유성기업, 갑을오토텍, 기륭전자, 콜트콜텍 노동자들도 겨울 광장에 둥지를 틀었다. '한일합의 원천 무효'와 '국정교과서 OUT'이라고 적은 현수막도 있다. 세월호 진상규명과 블랙리스트 작성자 구속 텐트도 있다.

"시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을 추구한다."

캠핑촌은 송 시인이 촛불 광장에서 여럿이 함께 온몸으로 쓰는 시이다.

[블랙리스트] 분노의 포도 

▲ 거리에 나서야 만날 수 있는 송경동 시인.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 텐트를 치고 캠핑촌장이 됐다. ⓒ 정대희

그를 만난 지 10여년은 족히 넘었다. 그는 항상 뜨거웠다. 평택 대추리에서 경찰이 던진 벽돌에 맞아 머리가 터지고, 기륭전자 농성장에서 굴착기 삽에 올라탔다가 떨어졌을 때에도 절룩거리는 그를 만났다. 용산참사 현장 남일당 터에 장기농성하면서 목디스크가 재발한 뒤에도, 희망버스 주동자로 몰려 0.94평 독방에 구속됐다 풀려난 뒤에도 그를 만났다.

그를 만날 때마다 나는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이 구절이 떠오른다.

"굶주린 사람들의 눈 속에 점점 커져가는 분노가 있다.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1930년대 미국 중부. 오랜 가뭄과 모래폭풍으로 은행대출금을 갚지 못해 땅을 빼앗긴 농민들이 '희망의 땅'으로 여겼던 캘리포니아는 '절망의 땅'이었다. 66번 도로를 메운 배고픈 농부들의 끝없는 행렬. 이주민들이 몰리자 캘리포니아 부농들은 턱없이 낮은 임금으로 이들을 착취했다. 경찰은 반항하는 농부들을 '블랙리스트'로 낙인찍어 총기로 위협하거나 탄압했다. '피의자' 박근혜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답답해요. 지금은 헌법재판소 판결을 지켜보는 시간이 아닙니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부역자 황교안 등을 다 끌어내렸어야 합니다. 사드가 폐기되고 세월호 특별법을 재개정해야 했습니다. 공공부문 민영화도 중단되고, 4대강과 제주 강정의 구럼비를 복원하는 정책을 입안해야 했습니다. 적폐는 그대로인데 정치권은 대선 준비만 하고 있어요. 지금이라도 국회는 '박근혜표 정책'을 폐기하고 시민사회가 요구한 30개 개혁 법안을 통과시켜야 합니다."

지금 송 시인과 촛불 시민들의 눈 속에 분노의 포도가 익고 있다.

"아빠, 그래서 뭐가 바뀌었는데요?"

'불법점유 시설 자진 철거 요청' 고지서가 계속 날아들고 수천만 원의 벌금이 쌓였지만, 그가 광화문 무허가 캠핑촌에서 100여 일 동안 버티고 있는 이유이다. 국정농단 게이트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재벌로부터 지원을 받는 수구우익 단체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최후의 반격을 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광장을 내어줄 수 없는 이유이다.   

최근 JTBC는 한 친박단체 회장과 집회 모집책이 전한 '친박집회 참가자 가격표' 의혹을 보도했다. "목욕하고 오면 5만 원, 유모차 끌고 나오면 15만 원". 정치 중립 의무가 있는 정부 지원금 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도 오는 3월1일 10만 총 동원령을 내렸다. 최근 주말 시청 광장의 탄핵반대 집회에서는 "계엄령 선포하라" "000을 죽여라"라는 살벌한 말이 난무한다.  

광화문 텐트촌은 돈과 조직을 거느린 자들의 불의에 맞서는 촛불 시민들의 베이스 캠프다. 송경동 시인과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 노동자들, 시민들이 지치지 않고 광장을 지켜낼 수 있도록 응원해 주시기 바란다(텐트촌 후원 전화 번호 : 010-8278-3097).

송경동 시인 "참언론을 살리자"
송경동 시인은 오마이뉴스가 권력과 자본 앞에 당당할 수 있도록 매월 1만 원 이상씩 후원을 하는 10만인클럽 회원입니다. 그는 "박근혜-최순실-재벌 게이트에서 언론의 역할이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우리 모두가 알았다"면서 "참 언론의 길에 앞장 서있는 오마이뉴스가 기운내고 함께 갈 수 있도록 함께 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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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동 시인① 전과 10범 거리의 시인, 그가 여전히 광장에 눕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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