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권선택 대전시장님, 정녕 이명박의 길을 가실 겁니까

10만인 리포트

촛불에게 길을 묻다

전과 10범 거리의 시인, 그가 여전히 광장에 눕는 이유
[촛불에게 길을 묻다] 송경동 시인①

17.02.22 05:18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사진: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김예지쪽지보내기

▲ 거리에 나서야 만날 수 있는 송경동 시인.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 텐트를 치고 캠핑촌장이 됐다. ⓒ 정대희

서울 5호선 광화문역 9번 출구 앞에서 그를 봤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허름한 검은색 외투 속에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바지는 두툼한 게 솜바지 같다. 어디에서 주운 것인지, 초등학생용으로 보이는 분홍색 배낭도 멨다. 한 손에는 비닐쇼핑백을 들었는데, 영락없는 노숙자다. 내가 광장 계단에 올라섰을 때 그는 세종대왕상을 등에 지고 걸었다. 

"어, 송 시인 아닌감?"
"여기서 만나네요."(웃음)

얼굴은 웃었지만, 어두운 눈빛은 덜어내지 못했다.

"어디 갔다 오는 겨?"
"얘 고등학교 졸업식에 갔다가 짬뽕 먹고 옵니다. 근 한 달 만에 갔다 오네요."  

멀쩡한 집을 놔두고 풍찬노숙하는 게 미안했을 것이다. 아이와의 만남 때문일 거라고 짐작했지만 묻지 못했다. 그가 광장에 쳐 놓은 무허가 텐트 쪽으로 함께 걸으면서 <무허가>라는 제목의 시를 떠올렸다. 

"용산4가 철거민 참사현장/점거해 들어간 빈집 구석에서 시를 쓴다/(중략)//허가받을 수 없는 인생//그런 내 삶처럼/내 시도 영영 무허가였으면 좋겠다/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이 세상 전체가/무허가였으면 좋겠다." (송경동 시인 '무허가' 시 중에서)

지난 9일 오후에 만난 그는 시처럼 살고 있다. 

[광화문 캠핑촌] 블랙리스트들의 해방구

▲ 거리에 나서야 만날 수 있는 송경동 시인.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 텐트를 치고 캠핑촌장이 됐다. ⓒ 정대희

청와대가 보이는 평당 2억짜리 금싸라기 땅에 0.7평 텐트를 쳤다. 이순신 장군 동상의 발아래 쪽 작은 거북선 모형 밑이다. 전에는 겨울바람 앞에 부질없어 보이는 여름용 텐트였는데, 그간 재건축을 했다. 텐트 주변에 각목 기둥을 세워 스티로폼을 붙였고 그 위에 은박지도 얹었다. 미닫이문을 열면 1인용 텐트가 나온다. 침낭에서 그는 지난겨울을 났다. 

'거리의 시인' 송경동(50). 그처럼 박근혜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문화예술인들과 노동자들이 석 달 넘게 연대농성촌을 꾸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4일 경찰과의 몸싸움 끝에 입주한 첫날에는 20여 동의 텐트를 뺏기고 맨몸으로 자야 했는데 어느새 60여 동의 텐트가 쳐졌다.

텐트촌 리모델링도 한창이다. 한겨울을 버티려면 비닐 한 장이라도 더 씌워야 했다. 쌍용차, 유성기업, 갑을오토텍, 기륭전자,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나무판자로 가건물을 세웠다. 이음새 사이로 들어오는 칼바람을 막기엔 턱없어 보이는데 송 시인의 표현으로는 '호텔급 텐트'다.

"여기는 캠핑촌 촌민들이 회의하는 마을회관, 촛불시민들이 후원하는 핫팩, 라면, 김치, 내복, 한약... 물품을 쌓아두는 마을창고도 있어요."

송 시인은 금세 신이 났다. 박근혜 정부가 대학로 극장에서 쫓아낸 블랙리스트 연극인들의 '블랙텐트'에선 매일 연극이 열린다. 7시에 무료 표를 나눠주고 8시부터 입장인데 매번 만석이란다. 7분 만에 150석 표가 모두 나가서 수십 명이 돌아간 적도 있단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본뜬 '궁핍현대미술광장'에서는 예술인들이 돌아가면서 작품을 전시한다. 주말에는 수만 명이 관람하는 국내 최대 미술관이란다.

광장극장에서 공연하겠다는 신청도 물밀 듯 들어오고 있다. 국정농단 주역들의 모형이 갇힌 '광화문 구치소'와 박근혜, 김기춘, 조윤선, 이재용, 정몽구 등 구속 형상 조각상은 외국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포토라인이다. 9m 높이의 촛불기원탑도 세웠다.

"매주 화요일에는 광장토론이 열리고, 매호 5만 부씩 광장신문을 발행해 왔습니다. 청년한의사회가 운영하는 마을진료소도 있어요."

캠핑촌민들은 '블랙리스트 버스'를 타고 세종시 정부종합청사로 내려가 조윤선 당시 문체부 장관과 공범부역자 즉각 동반퇴진을 위한 1박2일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헌법소원도 준비하고 있다.

광화문 캠핑촌은 촛불 시민들이 희망하는 '작은 공동체'이자 블랙리스트들의 해방구다. 바로 옆에 세월호 아이들의 분향소가 있고,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이게 나라냐'라는 성토가 시작된 곳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한 저항과 희망의 거점을 마련했다. 

"아직 저는 바로 이웃해 있는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에 분향하지 않았어요.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자꾸 눈에 밟힙니다. 박근혜를 끌어내린 날에 분향할 겁니다."

[0.7평] 전과 10범 시인의 꿈

▲ 거리에 나서야 만날 수 있는 송경동 시인.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 텐트를 치고 캠핑촌장이 됐다. ⓒ 정대희

리어카를 끄는 사람이 있었다. 차량 불빛으로 송 시인이란 걸 알아챘다. 오후에 잠깐 만났다가 헤어진 뒤 저녁 7시, 인터뷰하기로 약속한 시간에 그는 등받이 없는 간이 플라스틱 의자를 운반하고 있었다. 광장 아카데미 행사장을 준비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체감기온 영하 10도, 궁핍미술광장 천막이 칼바람을 간신히 막고 있다.    

노숙 시인과 함께 광화문 네거리에서 전을 부치는 식당에 갔다. 모듬전이 나왔다. 소주와 막걸리도 한 병씩 나왔다. 체감온도가 금세 30도쯤 치솟았다. 안주가 나오기도 전에 한잔씩 걸치고 식탁 위에 노트북을 켰다. 

- 캠핑촌 생활은 힘들지 않나?
"잠자다가 소변 때문에 깨면, 밤새 영업하는 커피숍에 가야 한다. 한시도 급한데, 그게 쉬운가? 어떤 때는 1시간이고 기다렸다가 일을 본 뒤에 잔다. 새벽에 일어나면 텐트가 젖어 있다. 바깥과의 기온 차이로 물방울이 맺혀 침낭이 흥건히 젖는다. 연극인들 텐트를 정비했는데, 스티로폼 옆에 파인 홈으로 물이 5cm쯤 고여 있더라. '물침대에서 살았네'라고 농담했지만... 10년째 노숙농성을 하는 콜트콜텍과 기륭전자, 6년여가 넘은 쌍용차,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인간이 아니라 신이다.(웃음)"      

- 지난해에 '아름다운 작가상'을 받았다.
"노숙인 생활이라 지저분한 작가상을 줘야 하는데... 맨날 거리에 나와서 사고치고 욕만 먹는 사람에게... 앞으로 제대로 살라는 뜻으로 받았다. 아직 세파에 찌들지 않는 영혼의 청년 작가들이 준 상이고 상금 한 푼도 없는 상이어서 값지다. 상을 받던 날에도 밥만 먹고 도망치듯 나와서 새벽 3시까지 텐트 보강공사를 벌였다.(웃음)" 

-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주동자로 구속되기도 했다. 그때 보수언론들은 '시인이 아니라 전문 시위꾼'이라고 비판했다.
"나에겐 영광이다. 어릴 적 구로공단에 들어갔을 때 시만 쓰는 노동자로 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민주시민으로, 참 노동자로서 사회나 역사에 눈을 감지 말고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보수언론조차도 내가 그 꿈대로 살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부끄럽지 않았다."

- 그런데 전과 몇 범인가?
"경찰 조사받은 것만 25건 정도 된다. 유죄 확정된 것은 10여 건 되니, 전과 10범은 되는 것 같다. 재판받으러 가면서도 무슨 건인지 모르고 갈 때도 있다. 청와대 행진 건과 세월호와 비정규직 철폐 오체투지 건으로 13번 조사받았고, 벌금도 물었다. 최근 청와대 앞 행진을 할 때마다 억울하다. 구속을 각오하고 그 길을 갔던 많은 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국가보안법은 없다. 잡범이다. 집시법, 교통방해죄, 해산 불응, 미신고 야간집회 개최 등. 더 열심히 살아야 할 것 같다.(웃음)" 

시는 언제 쓰나?

▲ 거리에 나서야 만날 수 있는 송경동 시인.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 텐트를 치고 캠핑촌장이 됐다. ⓒ 정대희

- 노숙하면서 시는 언제 쓰나?
"시보다 민주주의 광장이 열리는 게 중요하다. 그 마중물이 되려고 나왔다. 신병정리를 하고 일도 하고. 가방에는 종이와 볼펜이 아니라 니퍼, 드라이버, 커터 칼, 목장갑, 5미터 자가 있다. 캠핑촌에서 필요한 작업도구들이다. 매일 광장에서 노동을 하는 데 철물점이 없어서 힘들 때가 많다. 캠핑촌 철거되는 날 '철물점이 없었던 캠핑촌'이란 시를 쓰고 싶다."

- 텐트에 누우면 떠오르는 시가 있나?
"김수영의 시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꿔버렸다'라고 절망했다. 지금과 비슷한 4.19 혁명 직후에 쓴 시인데, 촛불혁명을 폄훼하는 반동세력들, 항쟁을 사회혁명으로 만들어 갈 생각이 없는 정치인들, 꿈이 크지 않은 사회운동들, 스스로 조직되어 사회 주체로 재형성되지 못하는 광장의 시민들을 보면 나도 텐트촌에서 방만 바꾸는 것은 아닐지 불안하다.

김남주 시인의 '나 자신을 노래한다'도 생각난다. '바스티유 감옥은 어떻게 열렸으며'라는 대목이 있는데, 부패한 세력들이 곱게 물러난 적은 없다."

식탁 위에 있던 소주 한 병과 막걸리 한 통을 비웠다. 취기가 오른 그는 "윗대가리만 갈아치우는 게 아니라 우리의 의식과 세계관이 인간적이고 민주적으로 바꾸는 게 진짜 혁명"이라면서 "광장에 서 있는 내가 변해야 혁명"이라고 말했다. 그가 전깃불도 없는 텐트촌에서 쓴 자작시 '우리 안의 폴리스라인'을 보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안의 폴리스라인

이제 그만 그 거대한 무대를
치워주세요
우리 모두가 주인이 될 수 있게
작은 사람들의 작은 테이블로 이 광장이 꽉 찰 수 있게

이제 그만 연단의 마이크를 꺼 주세요
모두가 자신의 말을 꺼낼 수 있게
백만 개의 천만 개의 작은 마이크들이 켜질 수 있게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는 친절한 안내를 멈춰 주세요
나의 시간을 내가 선택할 수 있게
광장이 스스로 광장의 시간을 상상할 수 있게

전체를 위해 노동자들 목소리는 죽여라고
소수자들 목소리는 불편하다고 말하지 말아주세요
집을 가진 이들은 집을 갖지 못한 이들의 마음을 몰라요

어떤 민주주의의 경로도 먼저 결정해두지 말고
어떤 역사적 사회적 정치적 한계도 먼저 설정해두지 말고
최선의 꿈을 꿔 볼 수 있게

광장을 관리하려 하지 말고
광장보다 작은 꿈으로 광장을 대리하려 하지 말고
오늘 열린 광장이
어제의 법과 의회 앞에 무릎 꿇지 않게

위만 나쁘다고
위만 바뀌면 된다고도 말하지 말아주세요
나도 바꿔야 할 게 많아요
그렇게 내가 비로소 말할 수 있을 때
내가 나로부터 변할 때
그때가 진짜 혁명이니까요

그는 온몸으로 쓴다

▲ 거리에 나서야 만날 수 있는 송경동 시인.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 텐트를 치고 캠핑촌장이 됐다. ⓒ 정대희

- 매 주말 타오르는 촛불을 보면서 떠오르는 시 구절은 없나?
"거대한 희극이라는 말, 열린 민주주의 광장이 거대한 희극으로 끝나지 말았으면 한다. 세상은 그대로인 채 가면극 놀이를 하면서 몇 명의 얼굴만 바꾸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박근혜와 같은 독재, 특권과 불공정, 반민주가 발붙일 수 없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정치권은 대선에만 골몰하는데, 2-3개월 뒤에 우리는 '무엇을 했지? 설령 정권이 교체돼도... 나의 삶은 바뀌었나?' 이런 질문을 하면서 황당해할 수도 있다.

1100만 비정규직은 여전히 내일이 없고, 청년들은 N포 세대, 흙수저 인생, 자살공화국의 유혹을 벗어날 수 없는 세상, 사회의 다수인 노동자들은 여전히 사회적 블랙리스트인 세상, 평생을 일해도 제집 한 칸 가질 수 없는 세상, 강정과 성주에 전쟁기지는 계속 추진되고, 죽음의 핵발전소는 계속 들어서는 세상이면 좋은가. 세월호 특별법, 백남기 농민 특검 하나도 통과되지 못하는 상황에 분노한다. 대선도 중요하지만 촛불이 명령한 대로 지금 국회에서 개혁입법이 통과돼야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시 구절보다 이런 새로운 시적인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광장이었으면 좋겠다."    

- 광화문 텐트촌이 하는 역할은?
"꿈꾸는 마을이다. 해방구다. 열린 광장이란 이런 것 아닐까를 실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서 연대하고 촛불의 의제를 토론하는 공론의 장이다. 텐트 한 개가 세워지면 사회 개혁 의제 한 개가 추가된다. 또 주말에 타오르는 촛불의 불씨를 평일에도 간직하는 농성촌이다.

많이 힘들기도 하다. 저번 주가 13차 촛불집회라고 하는데 캠핑촌에선 매일 촛불집회가 열렸다. 토요일 집회 때에는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촛불시민들과 매번 첫차 버스가 다닐 때까지 광장을 지켰다. 모두가 돌아간 광장을 청소하고 텐트로 들어가 잤다. 그러나 행복했다. 가장 낮은 촛불로, 일상적인 촛불로 이 광장에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게. 촛불 이후에는 전국에 세상을 꿈꾸는 자율촌, 해방촌이 수천 개, 수만 개가 생겼으면 한다."

▲ 송경동 시인 ⓒ 정대희

다음 날 아침에 노트북을 열었더니 송 시인과의 문답은 여기까지였다. 그 이상 인터뷰를 진행할 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후속 인터뷰를 약속하고 헤어지기 전, 그는 외투 안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시가 아니었다. '광화문광장 불법 점유시설 자진 철거요청' 공문. 2월 말까지 캠핑촌을 퇴거하지 않으면 벌금 수천만 원을 물어야 한단다. 그는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이렇게 말했다.

"나도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갈 겁니다."

노숙 98일째. 전과 10범인 '거리의 시인'이 무허가 텐트촌에 남아있는 이유이다. 촛불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블랙리스트 시인의 불온한 상상력. 그는 광장에서 온몸으로 시를 쓴다.

응원 부탁합니다

영하의 날씨에 광화문 텐트촌에서 촛불 시민들이 염원하는 새로운 희망의 공동체를 일구는 송경동 시인과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 노동자들, 시민들이 지치지 않고 해방구를 지켜낼 수 있도록 응원해 주십시오.(텐트촌 후원 전화 번호 : 010-8278-3097).

또 이들과 함께 <광장토론>을 기획하고, 매주말 촛불 집회를 전 세계에 생중계를 해 온 오마이뉴스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십시오. 송경동 시인도 오마이뉴스가 권력과 자본 앞에 당당할 수 있도록 매월 1만 원 이상씩 후원을 하는 10만인클럽 회원 입니다.(10만인클럽 후원 전화 : 010-3270-3828)


  
*다음 번에는 송경동 시인과의 두 번째 이야기가 실립니다.

추천 리포트
이 기사와 관련된 최신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