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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광장 토론] 박근혜 퇴진, 그 후 우리는?

박근혜 성녀, 최순실 악녀? 광장을 떠도는 여성혐오 유령
[박근혜 퇴진, 그후 우리는37] 태극기 집회 관찰보고서

17.02.17 17:26 | 나영 기자쪽지보내기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 후,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까요? 광화문 광장의 '퇴진 캠핑촌'은 촛불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대안 토론 광장을 엽니다.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와 <광화문 퇴진 캠핑촌 광장토론위원회>가 공동기획했습니다. [편집자말]
▲ 4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1가 사거리 일대에서 '제11차 박근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대회'에 참가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태극기, 성조기 등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다. ⓒ 이희훈

2016년 12월 31일, 마치 롤러코스터 같았던 한해의 마지막 촛불집회에 나갔다. 그날은 오랜만에 혼자 일찍 나와, 본격적인 집회 본무대가 시작되기 전 광화문 광장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날 따라 유난히 눈에 띄는 문구들이 보였는데, 바로 '선진국'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피켓들이었다.

누군가가 들고 있었던 노란색과 연두색 만장에는 아예 "엎어진 김에 일심 선진국 가자"라고 쓰여 있었다. 반대편에는 "박통 매국노들 최고형으로!"라는 문구가 쓰인 커다란 현수막 하나가 사람들의 시선을 붙들고 있었다.

몇 시간 후 시청역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가 보았다. 동화면세점과 조선호텔 앞 즈음을 기점으로 폴리스라인이 형성되고 군복과 태극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 아직 집회를 시작하지도 않은 16차선 도로의 분위기는 다소 산만했고, 군가풍의 노래와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 휑하고 산만한 거리를 소리로 장악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간간이 "애국자 여러분, 이쪽으로 오지마시고 시청 광장 쪽까지 흩어져 계시다가 이따가 모이시기 바랍니다"라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날, 충격적인 피켓을 보았다. "국민의 명령이다! 군대여 일어나라"라고 쓴 '국방색' 피켓과 "국민의 명령이다! 계엄령 선포하라"고 쓴 빨간색 피켓.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이 피켓들을 손에 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더 잘 보이라고 머리 위로 들고 다녔다. 탄핵 기각 서명을 받는 가판대 위에도 이 피켓이 가득 쌓여있었다.

피켓 아래에는 '한성주 장군 시사브리핑'이라는 글씨와 함께 괄호 안에 '윤PD'라는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다. 또 다른 빨간 피켓 두 종에는 "비상시국이다! 계엄령뿐!", "국민의 명령이다! 계엄령 선포하라"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리고, 무대 옆 구조물 위에는 "JTBC 재벌언론 물러나라"라는 문구의 피켓이 붙어 있었다. "선진국 가자!"라는 촛불집회의 어느 피켓과 "재벌언론 물러나라"라는 태극기 집회의 어느 피켓이 보여주는 아이러니. 어쩌면 이들의 '태극기 집회'에는 우리가 반추해야 할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날 이후, 나는 이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들은 누구이며, 무엇을 주장하는가

이들의 주장은 이들이 집회에서 부르는 아래의 '태극기' 개사곡에 모두 담겨 있다.

'태극기 든 국민이 일어납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지켜냅니다. 태극기 든 국민이 경고합니다. 억지탄핵 검찰 공모 내란입니다. 태극기 든 국민이 명령합니다. 손석희의 조작 보도 수사하시오. 태극기 든 국민이 앞장섭니다.  촛불선동 종북좌파 몰아냅니다. 태극기 든 국민이 승리합니다. 탄핵기각 국회 해산 쟁취합니다.'

즉, 이 모든 것은 북한의 김정은과 남한 좌익 종북 세력들이 나라를 뒤집기 위한 음모이며JTBC의 손석희는 태블릿 관련 조작 보도로 선동에 앞장섰다. 국민들은 이들의 거짓 선동에 놀아나고 있다. 이것을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은 채 국회가 탄핵을 가결시킨 것은 무효이다. 여전히 '북한'과 '종북'은 만능열쇠이다.

60대 이상 참가자 대부분은 인터뷰나 현장 발언에서 북한과 빨갱이에 대한 강한 불안을 드러냈다. 조갑제, 변희재,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 문창극 전 총리후보자, 한성주 장군, 허평환 전기무사령관, 자유총연맹 김경재 총재, 서경석 목사를 비롯한 목사와 성호 스님 등이 불안을 끊임없이 부채질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날인 1월 21일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나부꼈다. "그동안 미국이 경제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한국을 많이 도와준 만큼 성조기를 가지고 나오면 한국을 더 호의적으로 보아서 이번 탄핵 정국에도 도움을 주지 않을까"해서다.

'이 모든 것이 북한과 좌익 빨갱이들의 음모'라는 주장은 "계엄령 선포하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들 중에도 일부는 계엄령 선포 구호가 자칫 이들 집회의 순수성(?)을 흐리게 될까 우려하는 이들도 있으나,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힘을 합쳐야 하는 판에 물을 흐리려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계엄령 선포' 주장은 국민을 위협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국가를 위해', 국민이 아닌, '빨갱이들'을 죽일 뿐이다. 그래서 이들은 이렇게 외친다.

"집회를 넘어서서 전투 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모두 군인 정신으로 빨갱이들을 때려잡아야 합니다."

이러한 주장과 행동의 주축에 불교, 천주교 등 다양한 종교계가 참여하고는 있으나, 압도적으로 주축이 되는 이들은 역시 2004년 사립 학교법, 국가보안법 등 '4대 입법 개혁안' 반대집회를 주도하고 이후 보수 네트워크의 핵심에 자리한 보수 개신교계이다.

북한의 땅굴 남침 음모설을 주장하고 다니는 한성주 장군과 서경석 목사, 에스더기도운동 이용희 목사, '계엄령 선포 촉구 국민연합' 등 다수의 주요 인사와 조직들이 개신교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교회를 다니며 강연과 설교를 이어가면서 블로그, 카페, 유튜브, 카카오톡·카카오 스토리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젊은층 참가자중 다수는 교회를 통해 집회에 나왔다. 1월 6일 <전자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날 오후 국방부 앞에서 열린 '계엄령 선포 촉구 국민연합'은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예배와 집회를 열어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나라와 결혼한' 박근혜 대통령과 '문제적 여자' 최순실

▲ 최순실 등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중인 박영수 특검 수사팀이 3일 청와대 압수수색 시도에 나선 가운데, 청와대 부근 청운효자주민센터 부근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대한당’ ‘행주치마 의병대’ 등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무효와 특검규탄 등을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박근혜 대통령이) 소통에 문제가 있어서 잘못한 것도 있는데, 솔직히 그분이, 본질적으로 아주 태생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애를 쓰려고 했던 분이잖어. 사람이 잘못하지 않고, 죄 없는 사람 누가 있어. 그 대통령이, 물론 최순실이라는 아주 그냥 그 양아치 같은 계집애 땜에 나라가 들먹들먹하게 만든 이런 원인 제공은 했지만 대통령 입장에서 봤을 때는 본인 입으로 국가와 국민이랑 결혼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무슨 막말로 자기 돈, 자기 사리사욕 채우기 위해서 100원짜리 하나 움직이는 거 없잖어." (<뉴스타운 TV>, 70대로 보이는 한 남성 참가자의 인터뷰 발언)

"그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대한민국에 시집 와서 식구를 위해 열심히 일한 며느리'로 비유하고, 숫자가 많은 야당이 시어머니가 되어 새누리당 시누이와 합세해서 며느리를 쫓아내려고 하고 있고, 외로운 며느리는 차가운 뒷방에서 울고 있다고 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처럼 야당에 덩달아 춤추는 새누리당이 더 밉다고 했다."(2017.1.23. <뉴스윈코리아> 기사 중, 태극기 집회 나온 문창극 발언 보도)

태극기 집회의 대표적인 정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에게 당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제 박근혜 변호인단은 "최순실과 고영태의 불륜이 탄핵 사건의 발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를 '국가와 결혼해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며느리'로, 야당을 '시어머니'로, 새누리당을 '시누이'로 비유하는 레토릭의 다른 한편에 '불륜의 최순실', '양아치 같은 계집애 최순실'이 있다.

나는 이들의 발언을 보며 이재명 성남시장의 "박근혜는 이미 국민이 맡긴 무한 책임자에 대한 그 권력을 근본을 알 수 없는 저잣거리 아녀자에게 던져주고 말았습니다"라는 발언을 떠올렸다. '공인된 권력'인 대통령을 위기에 빠뜨린 최순실은 '국민을 농락한 악녀'가 되었다. 좋든 싫든 박근혜를 공인된 권력으로서 인정해온 국민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최순실은 더욱 '아무것도 아닌 아녀자'가 되어야 했다.

동시에, 박근혜를 지키겠다고 나선 애국 가부장들의 레토릭에서, 박근혜는 갑자기 권력을 지닌 대통령이 아닌 '여자'가 되어 '지켜줘야 할', '국가와 결혼한', 순수하고 순결한 '며느리'로 상징화된다. 박근혜의 무능을 강조할수록 박근혜는 순수해진다.

지난 40여 년 동안 권력의 카르텔을 구축해 온 두 핵심 인물이 '여자'가 되는 순간, 남는 건 여성혐오의 두 얼굴, '성녀'와 '악녀'뿐이다.

우리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태극기 든 국민이 일어납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지켜냅니다.'

이들의 집회에서 애국가를 들으며 나는 다양한 버전의 애국가가 울려 퍼지던 광화문 광장의 촛불집회를 떠올렸다. 지금은 확연히 줄었지만 촛불집회에서도 태극기는 흔히 볼 수 있었다. 양쪽의 현장에서 똑같이 애국과 매국, '선진국'에 대한 열망, 합법과 질서, 법치, 그리고 '국민의 명령'이 등장한다. 최순실은 '공인되지 않은', '여성' 주제에 '권력'을 휘두르려 한 '악녀'로서 양쪽 모두에게 가장 만만한 비난과 비하의 대상이었다. 태극기 집회에서도 '민주주의'를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다른 대안으로 구축할 수 있을까.

'태극기 집회'에서 포착한 가장 큰 정서는 '불안'이었다. 가부장으로서의 국가가 흔들리면 나의 존재 기반이 흔들리는 불안감. 그들은 '어떻게 지킨 나라인데', '누구의 피땀으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 되었는데' 이제 와서 대한민국을 빨갱이들에게 넘겨줄 수 있느냐고 말한다. 그들이 노인들이고, 그러니 당연히 사회에서 밀려난 무식하고 가난한 이들이라, 말도 안 되는 주장에 쉽게 선동당해 그저 일당이나 받고자 집회에 나왔을 것이라는 추측은 오히려 우리의 오만한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가 나라를 지키고 키웠다"는 자존심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그 나라가 흔들리고 무너질까봐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불안을 혐오로 표출한다. 그들이 국가에 대한 가부장제적 일체감에 머무르는 이상, 불안은 늘 그 뒤를 따라다닐 것이다. 촛불집회의 우리는 과연 이 불안과 혐오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우리가 넘어서야 할 것은 '국가'와 '국민'이다. '민주주의'는 '국가'와 '국민'의 틀 안에 머무를 때 색깔을 잃고 만다. 우리는 동질의 정체성을 지닌 집단이 아니며, 평등은 '보편주의'와 같은 말이 아니다. 누구도 보편일 수 없으며, 따라서 누구도 보편을 대표할 수 없다.

대선의 시계가 빨라진 지금, 다시 그저 누군가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한 명의 '국민'이 될 것인가, 아니면 대선 이후에도 꾸준히 우리 각자의 존재로서 역동하는 민주주의의 광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가 우리의 선택으로 남겨져 있다.

광장에는 우리가 '국민'으로 뭉뚱그려 왔던 다양한 존재들이 있다. '국민'의 범주에서 배제되어왔던 이들도 있고, 수많은 이주민들도 있다. '공인된 권력'에 의존하며 누군가를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우리'에 머무르는 이상, 태극기 집회의 불안과 혐오는 모두에게 내재된 정서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 불안과 혐오로부터 단절하는 다른 세상을 꿈꾼다면, 이제 우리는 '애국'과 '국민'을 넘어 지금 이곳을 함께 살아가는 구체적인 존재로서의 서로의 이야기를 찾아 연결해 나가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장신문> 4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 의제행동센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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