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넉달 간 노숙투쟁, 박근혜가 탄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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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광장 토론] 박근혜 퇴진, 그 후 우리는?

춤추고 노래하고...문화예술로 피운 촛불
[박근혜 퇴진, 그후 우리는35] 재벌의 추억 <노동자연쇄살인극④>

17.02.16 14:12 | 김금영 기자쪽지보내기

 
▲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월탄핵 특검연장 박근혜 황교안 즉각퇴진, 신속 탄핵을 위한 15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에 참석했던 시민들이 청와대 포위 행진을 하고 있다. ⓒ 권우성

이제야 광장이 광장다워졌다.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놓은 넓은 빈 터',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 해 만나거나 모일 수 있는 자리'라는 뜻이 무색하게 광화문 광장엔 찬바람만 휑하니 불었다. 점심 때 식사하러 사람들이 우르르 횡단보도를 건널 때가 그나마 사람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이 공간에 지난해 11월 사람들이 텐트를 들고 모였다. 이른바 정부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고 찍힌 이들이다. 국정농단 사태와 더불어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실체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올바른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수많은 문화예술인이 노동자들과 함께 시국선언을 외치며 광장에 캠핑촌을 꾸렸다.

지난 12일엔 '캠핑촌 100일'을 맞이했다. 캠핑촌은 광장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지난해 광화문 광장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1000만이 넘는 국민들이 촛불 바다를 만들었다. 강추위에도 시들지 않는 자유로운 문화의 꽃을 활짝 피워, 촛불 시민이 함께 뜻을 모으도록 도운 것. 바로 예술의 힘이다.

파견미술팀-광화문미술행동이 설치한 랜드마크

▲ 4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앞에서 열린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주최 ‘박근혜 퇴진 이재용 구속 집중집회’에 참석한 시민, 노동자들이 ‘광화문 구치소’를 끌고 삼성 본사로 행진하고 있다. ⓒ 이희훈



광화문 광장의 랜드마크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었다. 이젠 추가됐다. 일단 거대한 촛불이 눈에 띈다.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의 강성봉 회원이 스케치하고, 이원석 회원이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목에 주사를 꽂고, 대기업 로고를 끌어안은 채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의 박근혜 대통령, 한국 최대 재벌인 이재용과 정몽구,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중심에 있는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더러운 권력을 상징하는 배설물까지, 다양한 조형물 앞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

전미영, 신유아, 노순택, 정택용, 이윤엽, 나규환, 전진경 작가를 중심으로 이뤄진 파견미술팀, 그리고 장경호, 김준권, 유연복, 김봉준 작가 등 20여 명으로 구성된 광화문미술행동이 함께 힘을 합쳐 일군 풍경이다.

이제는 '광장의 조각가'라는 말이 더 익숙한 나규환. 그는 지난해 진실을 원하는 국민들에게 '자괴감'이라는 유행어를 던져준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그 권력을 철옹성처럼 둘러싼 인물들을 광장에 인물상으로 불러냈다. 이윤엽, 신유아, 노숙택 작가가 채색을 했고, 정택용 작가는 현장 사진을 찍었다.

노 작가는 그 이름도 긴 '새마음애국퉤근혜자율청소봉사단'을 이끌었다. 더러운 곳을 자진해서 치운다는 의미에서, 국회와 청와대, 삼성과 현대 본사 앞에서 청소를 했다. "더러운 것을 청소하는 게 정말 무서운지, 청소 때마다 경찰이 막아섰다"는 게 그의 말.

신유아 작가는 궁핍현대미술광장의 관리를 맡았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로고를 패러디한 궁핍미술광장은 '공간=권력' 구조에 대한 저항의 식에서 시작됐다. 국립미술관보다 더 인기다. 신 작가는 "캠핑촌 예술가의 작품 중심으로 전시가 꾸리지고 있다. 촛불 집회가 열릴 때마다 엄청난 인파가 몰려든다. 국민들의 현 시국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현장에서 느낀다"고 말했다.

광화문미술행동은 광화문의 온 차벽을 미술관으로 만드는 '차벽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촛불 집회가 열리면 늘 싸늘한 경찰차가 광장을 에워싼다. 시민이 직접 박근혜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남기거나, 각자 가진 염원을 글로 기록한 긴 천을 이 경찰차에 붙이는 게 차벽 미술 프로젝트. 국민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판을 펼쳤다.

빼앗긴 무대를 찾아 온 블랙텐트·마임·풍물...전회 만석. 블랙텐트에서 현재 일어나는 일이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정당하게 무대에 설 기회를 빼앗긴 예술인이 무대를 스스로 되찾겠다는 의지로 뭉쳐 임시 공공극장 블랙텐트를 세웠다.

차들이 움직일 때마다 진동이 느껴지고 강추위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내부 구성은 소극장과 다름없이 탄탄하다. 캠핑촌을 총 관리하는 송경동 시인이 연극인 장소익씨의 도움을 받아 천막을 구했고, 광장의 예술가들이 모두 힘을 모아 텐트를 설치했다. 극장장은 극단 고래의 대표 이해성이 맡았다. 공연은 무료로 진행된다. 공연을 보고 감동받은 만큼 자유롭게 모금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블랙텐트가 임시 공공극장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이유가 있다. 지난달 10일 블랙텐트 개막식날 이해성 극장장은 "박근혜 정부가 운영하는 국·공립극장들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그들이 외면했던 세월호 참사, 위안부 등 동시대 고통받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선언문을 읽었다.

'빨간 시'(극단 고래)부터 시작해 ▲ '그와 그녀의 옷장'(416가족극단 노란리본) ▲ 마임 ▲ '검열언어의 정치학: 두 개의 국민'(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이 1월 블랙텐트 공연장을 채웠다. 2월엔 ▲ '씻금'(연희단거리패) ▲ '광장 꽃, 피다!'(무브먼트 당당) ▲ '노란봉투'(극단 돌파구)의 공연이 이어진다.

이해성 극장장은 "광장의 블랙텐트는 광야에 서서 자유를 부르짖는 예술인의 외침과도 같다. 박근혜 정부가 퇴진할 때까지 공연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뿐 아니라 음악인의 참여도 활발했다. 건국 이래 최초로 음악인 2000명이 시국선언에 참여했고, 가수 손병휘가 캠핑촌에 입주했다. 어엿한 촌민인 손병휘는 꾸준히 버스킹 공연을 펼치고 다양한 문화제에 참석했다. 문화연대 이동연 교수와 한국진씨 등이 기획한 하야하롹 공연은 광화문뿐 아니라 춘천 김진태 사무실 앞, 제주시청 종합민원실 앞, 대구 반월당 네거리 등 전국 9개 도시에서 동시에 열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4주간 50여 팀의 뮤지션이 참여해 이끈 신나는 음악 공연에 국민은"하야하라"라고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마임이스트 유진규를 중심으로 한 마임도 광장을 채웠다. 촌민 양혜경 춤꾼은 토요일마다 깃발전을 진행해왔고, 민족춤협회는 매주 금요일 광장 춤교실을 열고 있다. 풍물도 함께였다. 춤꾼 하애정 등 전국풍물인시국회의도 힘을 모았다. 이렇게 수많은 블랙리스트들이 블랙 텐트뿐 아니라 촛불집회, 블랙리스트 페스티벌 등 무대를 가리지 않고 공연을 펼쳤다. 광장은 다양한 공연으로 연일 축제가 펼쳐졌다.

단순 분노를 넘어 미래를 바라본 광장토론

▲ 서울 광화문 광장에선 매주 화요일 '촛불광장토론'이 열린다. ⓒ 정대희



매주 화요일 오후 5시는 특별한 시간이다. 광화문 캠핑촌, 박근혜 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 광장토론위원회가 주최하고 <오마이뉴스>가 공동 기획한 광장 토론이 지난해 11월 첫 장을 열었다. 첫 번째 '박근혜 퇴진을 위한 광장의 정치와 경로'를 시작으로 ▲ 진짜 퇴진을 위해 광장정치는 무엇을 할 것인가 ▲ 탄핵 이후를 위해 광장은 무엇을 할 것인가 ▲ 평등한 광장의 정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 탄핵 이후 광장 정치의 문화적 의미와 예술운동의 방향 등을 주제로 매주 꾸준히 토론을 펼쳤다.

발제자가 먼저 발표를 하면 추후 자유롭게 시민이 토론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단순히 현 시국에 분노할 뿐 아니라, 부패된 정권이 퇴진했을 때 추후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미래를 모색했다. 확 달아올랐다가 확 식어버리는 냄비근성이 아닌,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의지를 꾸준히 지니고 현재의 상황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광장에 문화를 꽃피운 예술인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한 게 있다. 헌법 위에 민의(民意)가 있고, 문화예술은 그런 민의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는 것. 송경동 시인은 "살아있는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는 문화예술이야말로 '제2의 입법기관'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두려워한 역사 속 독재자들은 문화예술을 자신의 통치 아래 잡아두려 했다. 하지만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 진정한 민의가 실현되는 그날까지 절대로 광장에서 방을 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장은 더 이상 죽어있지 않다. 광장 캠핑촌에서 블랙리스트 버스를 타고 세종시로 내려가 시위를 이어갔고, 이들의 활동에 주목하고 격려하는 시민이 매주 촛불을 들고 모였다. 결국 '모르쇠'로 일관하던 조윤선 전 장관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구속되는 과정까지 모두 지켜봤다.

광장의 생명력은 이제 시작이다. 위에 군림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1%는 광장을 주목하길. 감은 눈을 뜨고, 닫은 귀를 열기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장신문> 4호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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