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가족들 반대 뿌리치고 그녀가 노가다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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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광장 토론] 박근혜 퇴진, 그 후 우리는?

황유미와 한광호, 재벌이 소비하다 죽어간 노동자
[박근혜 퇴진, 그후 우리는 32] 재벌의 추억 <노동자연쇄살인극>①

17.02.15 13:44 | 글:손아람쪽지보내기|편집:최유진쪽지보내기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 후,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까요? 광화문 광장의 '퇴진 캠핑촌'은 촛불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대안 토론 광장을 엽니다.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와 <광화문 퇴진 캠핑촌 광장토론위원회>가 공동기획했습니다. [편집자말]
▲ 지난 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즉각퇴진 조기탄핵 공작정치주범 및 재벌총수 구속-12차 범국민행동의 날'에 참석한 학생과 시민이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 모여 박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재벌도 공범이다며 구속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모든 시민은 소비자입니다. 그런데 소비를 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시민은 또한 노동자이기도 합니다. 재벌이 점령한 경제 체제에서 우리가 때로는 소비자이고, 때로는 노동자라는 사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소비자일 때 왕으로 불리던 시민들은 노동자일 때도 왕이 될 수 있을까요?

중공업 노동자는 스마트폰 구매자일 때 권리를 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스마트폰 부품을 만드는 삼성전자의 노동자는 백혈병에 걸리고, 하이디스와 삼성전자서비스의 노동자는 목숨을 끊었습니다. 전자산업 노동자는 자동차 구매자일 때 권리를 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만드는 현대·기아자동차와 금호타이어의 노동자는 목숨을 끊었습니다. 자동차 산업 노동자는 택배 회사의 고객일 때 권리를 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통운의 노동자는 목숨을 끊었습니다. 통운회사의 노동자는 선박 탑승객일 때 권리를 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박을 만드는 포스코와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그리고 한진중공업의 노동자는 목숨을 끊었습니다.

소비자일 때, 우리 모두가 왕의 권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 결과로 우리의 삶이 왕처럼 안온해졌을까요? 대형 마트의 배달원일 때, 가전회사의 에어컨 설치기사일 때, 편의점의 아르바이트 생일 때, 백화점의 직원일 때, 통신사의 콜센터 상담원일 때, 혹은 그게 무엇이든 우리 각자가 일터에 몸담은 일상에서, 안온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까?

소비자가 왕이 될 수 있었던, 안타까운 이유

안온한 삶을 위협하는 요소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위치만을 바꾸었습니다. 소비에서 노동으로! 우리가 소비자일 때 주어졌던 전례 없는 편안과 편리는, 10대 재벌이 국내총생산의 85%를 차지하는 경제구조 안에서 삶의 나머지 시간을 노동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쉽사리 망각하게 만듭니다. '소비자일 때 대접받고 노동자일 때 값 치르는' 사회에 우리가 살게 됐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재벌의 소비자일 때 더 안온한 시간을 보내고, 재벌의 소비자가 되기 위해 노동하는 과정에서 더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경제활동에 따르는 위험의 총량은 변하지 않았는데, 법의 그물 속에서 복잡하게 얽힌 책임 소재를 묻는 일은 어려워졌습니다. 그 결과 재벌은 더 많은 수익을 얻고, 더 적은 책임을 질 수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소비자가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노동자가 되었을 때 우리가 그 대가를 지불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로서의 시민과 소비자로서의 시민을 분리하여 대응하는 재벌의 전략은 그동안 효과를 보았습니다. 노동의 저항은 소비의 순간을 향유하는 동료 시민들과 연대하지 못한 채 분절되고 고립된 반면, 자본과 권력의 결합은 더욱 막강해졌습니다. 서로의 손을 잡지 못한 채 흩어진 시민들은 먼 곳에서 전해진 비극적인 노동의 소식을 희미하게 들었습니다. 그건 우리 각자가 일터에서 경험할 비극 역시 그저 희미한 소식으로만 시민사회에 전해질 것이란 뜻일지도 모릅니다.

▲ 13일 오전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앞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 농성장에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를 모델로 한 '반도체 소녀상'이 놓여 있다. ⓒ 권우성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 노동자였던 황유미씨는 급성 백혈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죽어가던 황유미씨와 아버지인 황상기씨에게 삼성전자가 내민 보상금은 겨우 500만 원이었습니다. 삼성전자가 정유라씨와 어머니인 최순실씨에게 약속한 뇌물은 무려 500억 원이 넘습니다. 그러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독대한 박근혜 대통령은 삼성 경영승계를 도우라고 지시했고, 국민연금은 최대주주로 있던 삼성물산의 합병에 동의하면서 6천억 원의 손실을 껴안았습니다. 그 6천억 원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온전히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습니다. 노동자 소비자, 재벌과 권력으로 나눠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황상기(삼성전자 노동자 고 황유미씨 아버지)
•노동자
유미의 백혈병 치료비로 8천만 원 정도를 썼습니다. 회사 측에 산재신청을 해달라고 했더니 "삼성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물었어요. 그래서 말썽 일으키지 않을 테니 치료비라도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먼저 사표를 쓰라고 했습니다. 몇 주 후에 인사과 직원이 100만 원 수표 5장을 내밀면서 "삼성에 지금 돈이 이거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소비자
유미가 살아있을 때는 저도 삼성 제품을 썼습니다. 유미가 죽은 뒤 사용하던 삼성 텔레비전과 삼성 핸드폰을 다 깨부숴버렸습니다.

•재벌과 권력
삼성이 최순실과 정유라에게 500억 원 뇌물을 줬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너무 화가 났습니다. 자기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이 유해물질에 노출돼서 백혈병 걸렸는데도 치료를 안 해주고서는,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냥 500억 원을 주다니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모두 구속되어야 합니다.


유성기업의 노동자 한광호씨는 노조 파괴 작전과 집단 괴롭힘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하청 회사의 안정적 생산을 위해 유성기업 등과 노조 파괴 작전을 공모한 원청인 현대자동차는, 책임에 대해서는 '관련 없는 문제'라며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그야말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최순실씨 광고회사에는 70억원 규모의 뇌물성 광고를 발주했습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독대한 박근혜 대통령은 파견근로 허용과 정리해고 요건 완화를 요구받았고, 그것을 실현하는'노동법 개혁'을 천명했습니다. 더 쉬워진 해고와 더 불안해진 일자리는 시민들의 노동으로 온전히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습니다. 노동자, 소비자, 재벌과 권력으로 나눠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국석호(유성기업 노동자 고 한광호씨 유족)
•노동자
노조파괴 공작으로 인해 동생이 죽음을 선택했지만 유성기업은 그냥 개인의 죽음이라고만 했어요. 재판 과정에서 노조 파괴를 주도했다는 증거가 드러났는데도 원청회사인 현대차는 인정하거나 사과하지도 않았고요.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여기서 멈춰야 하는 게 아닙니까.

•소비자
죽은 동생이 타던 기아차를 제가 쓰고 있습니다. 마음은 현대기아차는 정말 타고 싶지 않지만, 완성차 업체가 몇 개 없는 현실에서는 소비자로서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앞으로도 현대 기아차를 타게 되겠지요. 소비자로 대응해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예요. 언젠가 이 차를 기분 좋게 타게 될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재벌과 권력
촛불 집회에서 정권 퇴진과 함께 재벌 개혁 구호가 나타나기 시작했잖아요. 여기서 끝까지 가야 해요. 재벌이 권력을 방패삼아 노동을 탄압하는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끔요. 시민들이 스스로 노동자이면서 노동운동에는 거리감을 느낀다는 걸 알아요. 저도 전에는 그랬습니다. 열심히 일만 하면 돈을 벌고 잘 살게 될 줄 알았어요. 학교에서 자본주의에 대해서만 배웠지, 자본에 대항해도 된다고 배운 적은 없었으니까요. 한 명 한 명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지만 힘을 합하면 바꿀 수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자식들, 다음 세대의 노동자들은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 대답을 미룰 수 없는 질문 앞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각자의 손에 들린 촛불에 담긴 소망의 크기를 어림해볼 때입니다. 그저 대통령의 이름이 바뀌는 것으로 우리가 염원하는 변화를 이룰 수 있습니까? 시민사회를 위협하는 힘의 실체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평안을 위협하는 권력을 해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장신문> 4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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