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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에게 길을 묻다

"박근혜는 무치의 지도자, 이승만 닮았다"
[촛불에게 길을 묻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②

17.02.14 10:53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사진:정대희쪽지보내기

사람 속에 길이 있다. 그는 매일 200자 원고지 한 칸 한 칸에 사람의 길을 그려 넣는다. 죽은 자의 몸에 뼈와 살을 붙이고 숨결을 불어넣는 고달픈 작업이다.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려면 수십 권, 아니 수백 권의 책과 자료, 주변 인물 인터뷰가 필요하다. 시대적 배경이 담긴 자료도 있어야 한다. 집필에 이르기까지 길게는 30년이 걸린 적도 있단다.

그가 활자로 되살린 사람의 몸에선 향기가 난다. 자기를 버리고 공동체를 구하려던 영웅이다. 더러는 악취가 진동하는 자도 있다. 민족을 배반하고 사리사욕을 추구한 악인이다. 백범 김구, 신채호, 한용운, 김창숙, 전봉준, 장준하, 김원봉, 안중근, 조봉암, 김대중, 리영희, 송건호, 노무현, 김근태, 박현채, 함석헌, 안창호, 홍범도, 김상덕, 박열, 이승만, 안두희, 손병희 등.

세계 최다 평전 저작

▲ 김 전 관장은 이승만 정권시절 이기봉 처가 최순실 역학을 했다고 말했다. ⓒ 정대희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74)은 지금까지 30명의 인물평전을 썼다. 우리 근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다.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최다작 평전 기록 보유자이다. 그의 아파트 모든 방의 책장을 다 채우고, 방바닥과 거실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장서 3만여 권은 근현대사 인물탐구의 결과물이다. 

- 책 무게 때문에 아파트 무너지는 것 아니에요?
"사실 13층 아파트가 책의 무게를 견딜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웃음). 그래도 계속 책을 모으고, 팔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쓸 겁니다."

지난 2일 경기도 자택에서 만난 그는 아주 낡은 책 한 권을 보여줬다. 얼마 전 지방의 한 고서점에서 15만원을 주고 구입한 책이란다. 제목은 '헌법기초회고록'(저자 유진오). 일조각에서 1980년에 출간된 책으로 정가는 2500원으로 찍혀 있다. 저자가 헌법을 만들 때 이승만 정권이 대통령 중심제로 방향을 바꾼 이유를 알고 싶어서 구입했다고 한다.

20년 전 일본으로 날아가 구입한 통일혁명당 기관지 '청맥' 창간호(1964년 8월)의 표지는 군데군데 얼룩이 있고, 책 모서리 부분은 헤졌다.

"여기에 글을 쓴 김질락 등은 박정희 정권 때 통혁당 사건에 휘말려 다 사형을 당했죠."

평전에 쓸 수 있는 몇 줄 내용을 건질 수 있다. 이처럼 수많은 책을 사지 않았다면 시쳇말로 강남에 집 몇 채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김 전 관장이 책을 가져오는 사이에 부인 장인숙씨(65)에게 물었다.    

"먹고 살기도 힘들 때에는 버겁기도 했지만, 이젠 포기했어요. 그냥 둬야지유."(웃음)

곧 방문자 1000만 명 돌파... 박정희의 '선물' 

물론 그의 책은 전시용이 아니다. 그는 매일 오마이뉴스 블로그(오블)에 '김삼웅의 인물열전' 을 연재한다. 하루 4시간 이상은 집필을 하기에 펜을 잡는 집게손가락에 굳은살이 붙어있다. 2008년 5월 안중근 평전을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오블에 올린 평전만도 25명에 달한다. 포스팅한 글의 수는 무려 2930개. 주말도 거르지 않고 9년째 거의 매일 글을 올리고 있다. 사람의 길을 탐구하고 있다.

요즘 세상에 고리타분한 평전을 누가 볼까? 굳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 현재(6일)까지 방문자는 980만 명에 육박한다. 최근 연재를 시작한 '개발독재자 박정희'를 쓰면서 방문자 1천만 명 기록을 돌파한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고문 피해자였지만, 평전 박정희는 책이 팔리지 않는 모바일 시대에 보기 드문 기록을 선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월 28일 쏘아 올린 평전 첫 글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박근혜(정권)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올해는 박정희 탄생 100년이 되는 해, 그가 수십 년간 축적해 온 자료 창고를 연 까닭은 이 한 줄 문장에 다 녹아있다. 그가 앞으로 그릴 박정희와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평가까지도. 이 글의 마무리 부분에 있는 내용으로 부연하자면 이렇다.  

"박정희가 암살당한 지 40여 년이 되었음에도 한국은 여전히 그의 추종자들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다. 정치학자와 언론에서는 '87년 체제' 운운하지만, 제도는 바뀌었어도 인적 물적 구조는 '유신체제'의 지속이고, 더 소급하면 '5·16체제'의 연장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 박근혜 탄핵과 김기춘 구속은 그 첫 단계에 불과하다."

그동안 제도는 바뀌었지만 "우리 사회의 인적 물적 구조를 지배하는 유신 체제를 쫓아내야만 촛불 혁명을 완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전을 쓰는 이유

▲ 김 전 관장의 책장엔 빈틈이 없다. 아니 차고 넘쳐 집안을 꽉 채웠다. ⓒ 정대희

사실 그가 평전을 쓰는 이유는 단지 인물탐구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오욕된 과거사 청산이 먼저일지 모른다. 그가 걸어온 길이 말해준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친일인명사전편찬부 원장,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지도위원, 독립기념관 관장, 신흥무관학교 100주년기념사업회 공동대표(현).  

그는 박정희-전두환 독재와 맞서 싸우다가 고초를 겪은 언론인이기도 하다. 민주전선 편집장, 민주당보 주간 시절이 그랬다. 독재정권은 고문실에 가둬두고 그의 손에 쥔 펜대를 폭력으로 꺾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 뒤에 그는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주필을 지냈다.

역사의 인물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언론인이자, 근현대사 연구가, 과거청산 운동가인 그를 만나 국정농단 주범의 인물평을 들어봤다. 그는 원고지에 평전을 쓰듯이 과거 역사의 인물을 불러냈다.

[수구언론] 곡필을 한 손등을 돌로 찍어라

언론인인 그는 "정치권이나 재벌이 타락해도 언론과 검찰이 살아있으면 사회는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면서 조선 시대의 명필이었던 오준의 예를 들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청국의 압박으로 서울 삼전도에 청태종 공덕비 비문을 썼던 인물이다.

"치욕적이기에 비문을 쓰는 것을 대부분 거부했습니다. 결국 인조가 오준에게 어명을 내렸어요. 어명을 받은 오준은 어쩔 수 없이 붓을 들었는데, 치욕을 견디지 못해 돌멩이로 붓을 잡았던 오른손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았어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백 개의 형광등 아우라를 외치며 조아렸던 TV조선, 최근 인터뷰를 통해 피의자 박근혜 구하기에 나섰던 정규재씨. 이뿐인가요? 이명박 4대강을 옹호했던 신문기자와 논설위원들, 개성공단 폐쇄와 국정교과서, 사드배치 등을 지지했던 언론들은 정권의 나팔수이자 홍위병이었어요. 박근혜, 최순실 못지않게 흉악한 짓을 했는데도 오준처럼 돌멩이를 들기는커녕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는 "이제 박근혜 탄핵 촛불을 들고 기득권 보수 족벌 어용 언론사에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와 닮은 꼴] 마리 앙투아네트와 이승만

▲ 김삼웅 전 독립기념원장 ⓒ 정대희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밝혀지지 않았던 2년 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에게 물었다.

- 박근혜 대통령과 흡사했던 과거 동서양의 인물이 있다면?
"프랑스 혁명 때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있다. 측근만 중용하고 하층민의 생활에 무관심했다. 사치와 허영이 극에 달했다. 프랑스 혁명 때 시민들이 빵을 달라고 했을 때 '고기나 과일을 먹지 왜 빵만 찾느냐'고 말한 국민 실정 모르는 여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모습을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의 바람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또 물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질 때 '프랑스를 탈출하려고 생각했던 것은 잘못이었다'면서 반성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수치스러운 오물을 뒤집어쓰고도 반성하는 빛이 없습니다. 전근대적인 야망, 유신에 세례를 받은 철저한 사이비 지도자입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그랬습니다. 3.1 혁명 때 국제회의에서 미국의 위임통치를 제안했다가 비판을 받자, '다 지나간 일'이라고 얼버무렸죠. 6.25 때 인민군이 남침을 하자 28일 새벽 2시에 서울역에서 열차를 타고 대구까지 도망갔어요. 자기도 민망했는지, 대전으로 올라와서 '서울 시민은 동요하지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방송을 내보냈어요. 자기는 한강 철교를 폭파시키고 도망쳤으면서, 서울에 남아있던 수만 명의 시민들이 인민군에 부역했다면서 감옥에 집어넣었죠. 4.19 때에는 국민 200여명을 총살시키고 한마디 반성도 안하고 미국으로 도망갔어요.

자기 때문에 온 국가가 혼돈상태인데, 단 한가지의 잘못도 인정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은 무치의 지도자 이승만을 닮았습니다."
 
[최순실과 김기춘 닮은 꼴] 요화 배정자와 환생한 한명회

"최순실과 같은 유형은 찾기 어렵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일제 강점기 때의 요화(요사스러운 꽃)배정자가 생각납니다. 자기 잇속을 차리려고 국가를 배신한 고급 밀정입니다.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였는데, 첩 역할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간첩교육을 받고 군사 스파이로 암약했어요. 만주·중국 본토 등에서 독립투사들의 체포에 앞잡이 노릇을 했죠.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와는 다르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의 품에 안겨서 국가와 민족을 배신한 여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 전 관장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보면 조선시대의 한명회가 환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명회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간신이죠. 6대 왕을 넘나들면서 간신 짓을 했습니다. 조선왕조의 권력을 탐하면서 많은 선비들을 죽음으로 몰아갔고, 정파를 조성해서 국가 정책을 분열시켰습니다. 압구정은 한명회가 한강에 세운 정자이자 별장이었습니다. 그곳에 한명회에 대한 글이 있는데 '젊어서는 국권을 반석위에 올려놓았고 노령에는 산천에서 노닐다'라는 투였습니다. 김시습이 그 옆을 지나다가 편자를 바꿔놓았습니다. '젊어서는 나라를 어지럽히고, 노후에는 강산을 더럽혔다'."   

김 전 관장은 이밖에도 "전과 13범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국토를 파헤치고 40조원 자원외교로 국부를 날린 난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촛불은 어떤 대통령을 원하나?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과거 적폐를 청산하자고 나선 광장의 촛불은 대선 정국으로 이어지고 있다. 거의 매주말 광화문 광장으로 출근하는 그에게 촛불 민심은 어떤 대통령을 원하는지를 물었다.

"프랑스의 드골 같은 정치인이 나왔으면 합니다.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아픈 역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촛불 혁명을 완성하려면 집권한 뒤 가장 먼저 나치 부역자들을 처단해 과거를 청산하고 앙드레 말로 같은 사람을 문화부장관에 발탁해서 새 공화국의 기초와 문화적 기틀을 만든 드골 대통령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가장 엄중하게 처벌한 사람은 나치 부역언론인들이었습니다. 900여개의 신문·잡지 가운데 649곳이 폐간되거나 재산을 빼앗았습니다."

[좋은 언론 키우기] "독립 운동가들도 이슬만 먹은 게 아니다"


김 전 관장은 오마이뉴스에 매월 1만 원 이상씩 후원을 하는 10만인클럽 회원이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왜 오마이뉴스를 후원하나?

"참담하고 어두운 시대에 깨어있는 기자들이 만드는 언론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추운 겨울에 광화문의 촛불집회를 생중계하는 것을 봤지요. 현장에 오지 못한 사람들도 안방에서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심정으로 오마이TV를 보면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고맙죠.

과거 독립 운동가들이 이슬을 먹고 사는 게 아니었듯이 오마이뉴스도 그렇습니다. 모두들 궁핍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건전한 매체가 발전할 수 있도록 십시일반 해서 대가를 치러 줬으면 합니다. 저도 지인들에게 10만인클럽에 가입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어요. 10만인클럽 회원 100만이 될 때까지 좋은 매체를 키우자고 간절히 요청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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