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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에게 길을 묻다

"태극기 우익, 땃벌떼와 용팔이 닮았다"
[촛불에게 길을 묻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①

17.02.09 07:38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사진:정대희쪽지보내기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 정대희

'역사는 반복된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칼 마르크스의 말이다. 루이 나폴레옹의 조카 보나빠르뜨 나폴레옹은 사회 혼란기인 1848년 12월 10일 삼촌 후광으로 프랑스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 뒤 쿠데타로 의회를 해산했지만 무능과 부패, 직권 남용으로 몰락하는 희극적 과정을 보면서 던진 말이다. 세계 1차 대전이 끝난 뒤 에릭 홉스봄이라는 학자는 이 말을 이렇게 고쳐 썼다.

'첫 번째가 비극이라면 두 번째는 희극이 아니라 절망이다.'

지난 2일 만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74)은 "박근혜 국정농단과 민주주의의 퇴행은 절망이자 희극"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후광으로 대통령에 선출됐다가 초등학생 사이에서도 우스개로 전락한 피의자 대통령. '권력서열 1위' 최순실에게 "염병하네!"를 외친 청소노동자의 사이다 발언은 어떤 언론사 명칼럼보다 강력한 엔진을 달고 SNS로 확산됐다. 이 모든 게 김 전 관장이 말한 절망적 희극을 웅변한다.

그래서다. 언론인이자 우리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 김삼웅 전 관장은 부끄럽다고 했다.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에 당한 고문 후유증을 앓으면서도 광화문 촛불집회에 매번 참석하는 것은 "나라를 이 꼴로 만든 기성세대의 한명으로서 역사에 대한 부채감 때문"이라고 했다.

근현대사 산책

서울 용산에서 경의중앙선을 타고 도심역에 내리면 걸어서 10여분 거리에 그의 아파트가 있다. 한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13층에는 웬만한 동네 도서관보다 책이 많다. 소장도서만 무려 3만여 권. 각 방의 2중, 3중 책장이 꽉차있다. 신발장마저 책장으로 쓴다. 거실에도, 소파에도 책무더기가 산처럼 쌓였다. 책 박스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그와 3시간 동안 인터뷰했다. 근현대사를 산책하는 듯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역사는 반복됐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은 이승만 전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와 이기붕 전 국방부장관 부인 박마리아 사이의 비극을 닮았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구속케 한 블랙리스트를 거슬러 오르면 일제 강점기 '후데이센진'(반일주의자인 '불령 조선인') 명단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 조선 총독인 아베 노부유끼는 박근혜표 국정교과서를 예언했다. 지금 아스팔트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빗나간 애국심도 근현대사에서 익숙했던 풍경이다.

친일, 독재, 부정부패... 청산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특검 수사에서 양파껍질처럼 드러나는 그들의 기막힌 행각은 희극적이지만, 헬조선을 버텨온 국민에겐 절망을 안겼다. 김 전 관장은 "역사 퇴행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도처에 똬리를 튼 기득권의 물적, 인적 청산이 있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다면 박근혜가 퇴진한 뒤에 들어설 수도 있는 민주정부는 5년짜리 가건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삼웅의 근현대사 서재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권총 자살 이기붕 일가의 몰락

▲ 김 전 관장은 이승만 정권시절 이기봉 처가 최순실 역학을 했다고 말했다. ⓒ 정대희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은 오스트리아 여성인 프란체스카 여사였어요. 이기붕은 무능했는데 부인 박마리아는 영어를 잘해서 프란체스카 말동무였죠. 그의 큰아들 이강석은 자식이 없던 이승만 부부의 양자로 보냈습니다. 그 뒤 이기붕은 국방부장관과 국회의장으로 승승장구하다가 3.15 부정선거로 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죠.

당시 이기붕의 처가 최순실 역이었습니다. '도지사와 경찰서장은 이기붕 처가 임명한다'는 말이 나돌았죠. 서대문에 있던 이기붕의 집을 '서대문 경무대'(청와대의 옛 이름)라고 불렀어요. 이대 부정입학한 정유라처럼 이기붕 아들은 서울대 법대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서울대 학생들도 부정입학을 비판하며 들고 일어났습니다. 서울대가 만들어진 뒤 첫 데모였습니다.

정유라가 삼성 등 재벌로부터 특혜를 받듯이 당시 이강석도 그랬습니다. 이강석을 사칭한 가짜가 대구 시장과 경북 도지사 영접을 받고 경찰서장의 뇌물을 받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결국 이화여대 부총장을 지내기도 했던 박마리아 국정농단은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아직도 미스터리인데, 경찰은 4.19 혁명 이후 이강석이 이기붕과 박마리아, 동생을 권총으로 쏴 죽이고 자살한 것으로 발표했습니다. 1960년 4월이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이승만을 보호하려고 측근들이 희생양을 삼았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 사건이 이승만 정권 몰락의 시작이었다. 57년 뒤에 재연되는 국정농단의 역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결말은 역사책에 어떻게 기록될까? 촛불 시민들은 조만간 그 역사를 목격할 수 있다.

[국정교과서] 조선 총독이 남긴 마지막 말

일제가 패망할 때 조선의 마지막 총독은 아베 노부유끼였다. 지금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인척이다. 당시 그는 조선을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조선이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 더 걸릴 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은 조선에 총칼보다 더 무서운 식민지 사관을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그의 기대는 박근혜표 국정교과서에 담겨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뒤에도 마지막까지 일제가 심은 식민사관을 움켜쥐고 교과서에까지 각인하려 하고 있다. 김 전 관장은 "국정교과서는 아베 노부유끼가 호언장담한 식민지근대화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박정희 친일행적을 덮고 독재를 미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 일제 강점기 '후데이센진'과 닮은꼴

▲ 김 전 관장의 책장엔 빈틈이 없다. 아니 차고 넘쳐 집안을 꽉 채웠다. ⓒ 정대희

최근 불거진 블랙리스트의 뿌리도 일제 강점기 때 심어놓은 것이다. 일명 '후데이센진(不逞鮮人)'. 반일주의자나 항일주의자를 적은 '불령 조선인' 명단을 만들어 수시로 검문했고, 경찰서로 끌고 가 고문했다.

김 전 관장은 "박정희 정권 때에는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소위 블랙리스트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면서 "반유신 인사로 낙인찍힌 사람은 판사 재임용을 거부당하고, 정치교수라고 몰아서 학교에서 파면했는데, 이런 행태는 언론계, 학계, 법조계 등에서 광범위하게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는 "집회 시위와 비판의 자유는 헌법상 기본권인데 일제가 우리 민족을 탄압하던 방식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든 것은 민주공화제의 기본을 허무는 반헌법적, 반인류적, 반민주적 행태"라고 말했다.

[아스팔트 태극기 우익] 땃벌떼 습격과 용팔이 난동

김삼웅 전 관장은 재임 시절 독립기념관에 '태극길'을 만들었다. 815개의 태극기를 게양한 길이다. 우리 국기에 대한 애정을 갖자는 취지에서였다.

"보수수구 세력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태극기를 흔들면서 박근혜 탄핵을 반대한다고 외치는 것을 보면 역사의 비애를 느낍니다. 독립 운동가들이 목숨을 바쳐 소중하게 간직했던 상징이 부패 기득권의 이익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전락했죠. 청와대가 주도해 우익 집회 자금을 삼성 등 재벌에서 충당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죠."

그는 '아스팔트 우익'을 보면서 이승만 정권 때 야당을 몽둥이로 짓밟은 '땃벌떼'와 서북청년단을 떠올렸다. 이승만 정권이 구속한 야당 서민호 의원을 법원이 석방시키자 법관 집을 기습하거나, 국회의사장을 포위하는 등 백색테러를 자행했던 자들이다. 경무대 비서관들이 뒷돈을 주면서 이들을 양성했다. 서북청년단은 제주 4.3사건 때 무고한 양민을 학살했다.  

전두환 정권 때에는 '용팔이'가 난동을 부렸다. 1987년에 통일민주당 20개 지구당에 폭력배들이 난입해 기물을 부수고 당원들을 폭행한 사건이다. 전두환 정권 당시 강력한 야당 출현을 막으려고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이 개입한 정치공작이었다.

보수우익의 맞불집회는 보부상들의 만민공동회 습격 사건과도 닮은꼴이다. 1898년 3월 독립협회 주최로 서울 종로 네 거리에서 열린 만민공동회는 외세 침략 정책을 배제하고 자주독립을 강화하자는 결의의 장이었다. 첫 대회에 1만 명이 모일 정도로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고종은 보부상 중심으로 결성된 황국협회를 내세워 만민공동회를 습격했고, 정부는 사회혼란을 빌미로 독립협회를 강제 해산했다.     

김 전 관장은 "만민공동회 습격 사건은 반동세력이 개혁세력을 뒤집는 시초였다"면서 "지금도 아스팔트 위에서 활개 치는 앙시앵레짐(구체제)을 청산하지 않는다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해도 민주주의를 뿌리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전 관장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독립기념관에서 쫓겨났다.

[반복되는 역사의 근절] 촛불은 '이중 혁명'을 원한다

▲ 김 전 관장은 매일 심장병과 근육통 약을 복용한다. 고문 후유증이다. ⓒ 정대희

김삼웅 전 관장은 요즘도 매일 심장병과 근육통 약을 입에 털어 넣는다. 독한 약을 먹는 통에 만성 위장병도 생겼다. 최근 들어 더 심해졌단다. 박근혜 '피의자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정권 시절에 그에게 가해진 고문 후유증이다. 남산 대공분실 시멘트 바닥에 꿇어앉아 보름동안 맞았다. '민주전선'을 만들어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전두환 정권 때도 민주한국당 당보 주관을 하면서 대통령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가 끌려가 두드려 맞았다. 

그 몸을 이끌고 주말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간다. 아내 장인숙씨(65)와 손자들의 손을 잡고 나간다. 근현대사 연구자로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악몽의 역사를 끝장내는 데 촛불 한 개라도 들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란다. 유력한 야권 후보들이 정권교체를 내걸고 대권 레이스에 뛰어들었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한국사에서 창업·쿠데타·역성혁명·반란·반정 등을 모두 겪었으나 한 번도 '혁명적 정화'를 거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어요. 사실 동학혁명 때 농민군들이 반외세 반봉건 기치를 걸고 시위를 했다가 외세에 진압 당했어요. 3.1 혁명 때에는 조선인구 1800만 명 중에 연인원 220만 명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는데 일제의 총칼로 제압당했죠.

4.19 혁명 때에는 학생들이 피를 흘려가면서 이승만을 타도했는데, 민주당내 분파 싸움으로 박정희 군부에게 쿠데타의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10.26 후 80년 서울의 봄 때에도 야권 분열로 제2 군부가 들어섰고, 87년 6월 항쟁 때에도 야권 분열로 기회를 놓쳤죠. 매번 혁명의 임계점을 넘지 못한 겁니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에도 제대로 된 개혁을 하지 못했다"면서 "청와대의 주인만 바뀌었을 뿐 의회, 검찰, 법원, 언론, 대학 등을 장악한 유신 잔재들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으로 역전된 역사, 그 반동의 토대가 탄핵 국면에서도 건재하다는 것이다. 

혁명의 임계점, 5년짜리 가건물만 지을까?

김 전 관장이 요즘 '이중 혁명'을 주장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근대화 물적 기반이 총체적으로 축적됐는데 1%가 국가 생산력의 30%를 장악하고 있어요. 상위 10%가 국부 60%를 장악하는 건 위험사회입니다. 부패 기득권 세력이 오랫동안 쌓은 적폐입니다. 위가 무겁고 아래가 가벼우면 무너지는 게 세월호뿐만 아니죠.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 명운이 갈린 중대한 국면입니다. 1대 99의 참담한 생산-분배구조를 그대로 둔 채 정권교체만 이뤄진다면 5년짜리 가건물에 불과합니다."

그는 "대선에 앞서 2월 임시국회에서라도 재벌, 언론, 검찰, 선거법 개혁 등의 입법 작업을 통해 낡은 체제를 바꿀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이는 지난 총선 때 여소야대를 만들어준 국민들의 요구이자 촛불 시민들의 명령"이라고 말했다.

비극과 희극, 절망의 역사를 반복해 온 우리의 기구한 근현대사. 지금 촛불 시민들이 광장에서 쓰는 세 번째 역사는 그동안 반복된 반동과 진보의 임계점에 와 있다. 절망과 희망의 기로이다. 이번에는 '혁명적 정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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