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4대강 찬성한 전문가들, 피해 모를 리 없었다"

10만인 리포트

촛불에게 길을 묻다

박근혜 끝장내는 백발투사 '비나리'
[촛불에게 길을 묻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17.02.02 05:40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영상:정대희쪽지보내기

▲ '거리의 투사'로 불리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 이희훈

백발. 사자머리. 꼿꼿함. 민중 혁명. 길거리 투사. 예술가. 울보. 묏비나리.  

그를 생각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까칠함과 부드러움. 진폭을 가늠하기 어려운 다양한 빛깔을 그는 길거리에서 빚었다. 투사이자 울보 예술가에 이르기까지. '길 위의 신부' 문정현은 작년 여름 그가 젊은이들에게 호통 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우스개를 던졌다.

"어이쿠, 자꾸 그러니까 꼬장꼬장하다는 소리를 듣지요. 하-하."

그도 따라 웃었다. 문 신부가 말한 꼬장꼬장하다는 의미는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 시대에 마지막 남은 외로운 대지의 깃발."     

1979년 겨울 감옥과 2016년 겨울 광장 사이

과거 독재와 싸우면서 외로운 깃발을 들었던 그는 '피의자'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정권 때에 혹독한 고문으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매번 권총 개머리판에 뒤통수를 까여 끌려간 곳은 감옥의 독방이나 고문실. 팔을 벌리면 차디찬 벽이 양 손끝에 닫는 1평 남짓한 독재의 공간이었다. 여기서 쓴 비나리가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산 자여 따르라."

박근혜 탄핵 7차 광화문 촛불집회(2016년 12월 10일) 때 떼창으로 울려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1979년 겨울 감옥과 2016년 겨울 광장 사이는 그리 멀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 2년차인 2009년부터 박근혜 정권 때인 지난해 광주 5.18 공식 기념행사의 금지곡으로 선정돼 부르지 못한 노래였다. 이 곡의 모태인 묏비나리를 쓴 그도 60만 명의 시민들과 노래를 불렀다. 세대를 뛰어넘어 증손자뻘 되는 아이들과 함께였다. 노랫말만 같은 게 아니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석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 채원희

"촛불시위 나온 사람의 특징은 자기를 놨다는 거야.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모두 내놓고 나왔어. 도통한 사람들 같아. 오로지 희망 하나만 붙들었어. 그 많은 인파 속에서 싸우는 사람을 못 봤어. 짜증내는 이도 없어. 촛불 바다 속에서 박근혜 체제는 안 된다는 거대한 자각과 깨우침이었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나서는 사람들이야." 

지난달 24일 서울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만난 백기완 소장(85)의 말이다.

그해 겨울 나홀로 감옥에서 입 밖으로 터져 나온 건 모진 고문으로 죽음 끝에 선 투사의 비분강개한 노래였다. 겨울 촛불 광장에서 수십만 명의 인파들이 한 목소리로 부른 건 무도한 권력을 무너뜨리는 희망과 공감의 노래였다. 같은 가사였지만 그 결과 깊이는 이렇게 달랐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세상을 바꾸자는 의지는 이렇게 또 같았다.

"네 똥물을 핥아라" "저 새끼는 정신적으로 말려 죽여야 해"

그는 유신 잔재를 청산하라고 거리에서 외치다가 서울 서빙고 보안사에서 고문을 받았다. 작년 5월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그 때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죽음이 심장을 짓누르던 때였어. 고문 때문에 무릎이 축구공만큼 부었지. 거기가 이불 껍데기나 무명실이 스쳐도 아플 정도였다고. 천장에 몸을 거꾸로 매달아 놓고 고문하는 수사관들이 주먹으로 툭툭 치고 지나가. 어떤 때는 배를 발로 걷어찼는데, 목으로, 코로 똥물이 흘러나왔어. 그걸 입으로 핥아 먹으라는 거야. 내 똥물을 혀로 핥아서 청소하라는 거야."

그 때 "감옥에서 꼼짝없이 드러누운 채 입으로 웅얼거리며 새길 수밖에 없던 시", 그게 백기완 소장의 '묏비나리'다. "이 썩어 문드러진 세상, 하늘과 땅을 맷돌처럼 돌려라. 나는 죽지만 산자여 따르라. 나는 죽지만 살아있는 목숨이여, 나가서 싸우라"고 한 것이다. 

고문관들이 "저 새끼는 정신적으로 말려 죽여야 한다고 할 때 혼자서 웅얼대면서, 죽어도 죽을 순 없다, 들이받고 죽어야겠다면서 허공에 쓴 시가 비나리"란다. 자기는 싸우다 죽지만 살아남은 자들은 앞장서 나가라는 게 바로 '산 자여 따르라'였다.

당시 감옥으로 끌려갈 때 백 소장의 몸무게는 80kg이었다. 나올 때는 38kg이었다. 그 뒤 37년이 흐른 지금도 몸무게는 크게 늘지 않았다. 고문 후유증이 온몸에 각인돼 있어서다. 그때나 지금이나 거리에 서 있다는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에는 두발로 섰지만, 지금은 백발의 할아버지가 되어 지팡이를 들고 서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래서 붙여진 그이 덧이름(별명)이 '백발의 거리 투사'다.    

촛물은 백성의 눈물

"촛불 시위 때마다 개근을 했어. 뼈다귀만 남아서 윗도리를 9개를 껴입어야 그나마 추위를 견딜 수 있지. 제대로 걸을 수도 없을 정도야.(웃음) 사실 난 한 살매(일생) 동안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던 사람이야."

백 소장은 자기가 그간 들었던 촛불과 지금 시민들이 들고 있는 촛불을 정의하면서 기자가 들고 있는 A4용지에 이렇게 썼다.    

'一炷明窓'(일주명창).
▲ 백기완 소장이 A4용지에 쓴 '一炷明窓'(일주명창). ⓒ 백기완

"심지 하나가 창을 밝힌다는 말이야. 창만 밝히는 게 아니라 부패 지배계층이 강요한 어둠까지 무너뜨리는 촛불이지. 자기 몸을 태워서 어두움을 사르는 거야. 자연적인 어두움만이 아니라 사람이 강요한 깜깜한 어둠, 이를테면 좌절이나 절망, 희망의 파괴를 무너뜨리는 거야. 촛불은 절망까지 깨뜨리는 일주명창의 빛깔이야."

그는 촛불에 대한 두 번째 정의를 말하기에 앞서 춘향전에 나오는 이 구절을 읊었다.

'燭淚落時 民淚落(촉루락시 민루락 : 촛물 떨어질 때에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歌聲高處 怨聲高(가성고처 원성고 :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성 높도다)'.

"촛물은 백성의 눈물이야. 자기 몸을 태우면서 떨어뜨리는 한 방울 한 방울이 강물이 돼서 모든 범죄, 부패, 허접쓰레기를 쓸어버리는 것이 촛불의 눈물이야."

그는 마지막으로 "촛불은 콧김과 입김에도 끊임없이 간들거리는 운명을 타고 났지만 절대로 꺼지지 않고 끝까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온몸을 태운다"면서 "간들거리며 피어오르지만 강요된 운명의 억압을 무너뜨리는 엄청난 자주적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거짓말이 폭력인 까닭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 채원희

"그럼 촛불의 민심은 무엇일까?"

그는 자문자답하면서 말을 이었다.

"불을 질러서 없애려고 한 것은 거짓말이야. 옛말에 따르면 거짓말은 '막심'이야. 막심은 폭력이지. 거짓말은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이야. 땀은 땅에 떨어지면 한줌 거름이지 네 것도, 내 것도 아냐. 땀은 자연의 재생산구조일 뿐이야. 내 것 아닌 것을 내 것이라고 하는 게 폭력이야. 박근혜가 사과한다면서 처음부터 거짓말을 했잖아. 또 아버지를 존경한다는데, 민족 반역자이자 혈서를 써서 일본 천황폐하한테 충성을 한다는 친일파였어. 박정희도 거짓말, 딸도 거짓말을 했어. 시민들은 그 거짓말을 사르려고 촛불을 든 거야."

그는 촛불민심에서 희망을 찾았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돈도 실력'이라면서 세상을 향해 폭탄선언을 했어. 그 한마디에 박근혜 정권이 강조한 행복의 본질이 들어 있어. 돈이 실력이라니?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 어떻게 실력이야. 박근혜가 이끈 자본주의 문명의 거짓됨, 최악의 범죄성을 어린 애가 폭로한 거야. 가짜 희망이지. 그 허무주의적인 구조를 깨뜨리고 진짜 희망을 찾아 나선 게 촛불 민심이야."

박근혜를 끝장내는 '비나리'

1980대 중반에 들어서는 백 소장에게 이번 촛불집회는 그간 겪어온 싸움과는 달랐다. 그가 최근 오마이뉴스에 4편의 출정가를 보내온 것은 감격했다는 뜻이다. 살아있는 동안 촛불 혁명의 완성을 목격할 수 있다는 마지막 기대 때문이기도 했다.

"어린애와 함께 나온 아낙네들, 먹고살기 바쁜 시민들이 나왔어. 그것만으로 감격이지. 청와대 앞으로 30만 명이 진격할 때 내가 앞섰는데, 걸음이 느려서 뒤로 밀렸어. 대열 중간쯤에서 집회가 열렸는데 얼굴들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어. 전에 내가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을 때 도로교통법 위반이라고 해서 3번이나 벌금을 물었거든. 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마저도 불법이라고 딱지를 뗀 으스스한 청와대 앞으로 몰려갔는데도 아이들의 얼굴도 밝았어."

왜일까?

"자기를 놨기 때문이야. 시위를 해서 명예를 얻고자한 것도 아니요, 재산을 불리겠다는 것도 아냐. 세속적인 것을 버리고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모두 내려놓았어. 오로지 촛불 한 개와 희망 하나만 붙잡고 있다고."

기자와 만난 날에도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것 좀 한 번 보게"라고 말하면서 다섯 번째 출정가(설날 광화문 예술인 텐트촌에서 낭독할)를 쓴 A4용지 두 장을 건넸다. ☞출정가 전문 보기(링크)

제목은 <거리의 비나리 '떵 더덩 떵'>.       

▲ 지난 28일(설날) 그동안 쓴 5편의 백기완 출정가를 광화문미술행동에 참여하고 있는 류연복 화가가 붓글씨로 써서 기증하는 장면. ⓒ 채원희

"박근혜를 종신형으로 떵"

그가 잠시 마주앉아 말한 촛불의 정의가 5연의 시 49행에 걸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암, 박근혜를 종신형, 박근혜를 종신형으로 떵"(1연 7행)
"인류의 도덕과 미풍까지 말살한 개망나니라/어떻게 해야 하겠냐구요/간단합니다 박근혜는 인류 성원의 자격이 없다 그러니/이 지구에서 아주 내쫓는 패를 몰아야 하는 겁니다/너 같은 건 이 지구의 사람도 짐승도 아니다 어허라 떵 떵 떵"(2연 뒷부분)

그는 "박근혜는 법률로 처벌하는 게 아니라 역사적인 처벌이 필요하며 앞으로 공직활동을 영원히 하지 못하게 종신형을 처해야 한다"면서 "재판 과정에서 전혀 뉘우침이 없는 박근혜, 최순실의 권력, 물질적 토대를 뽑아내지 않으면 촛불 민심을 죽이는 반동의 역사가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법의 폭력

"여보시오 벗들이여/삼성재벌 이재용이 뻔히 박근혜와 짜고 자그마치 433억 원을/주고받은 것은 분명 검은 돈인데 그를 석방한 건 도대체 뭣입니까"(4연 도입부)

그는 "숫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433억을 공짜로 주었겠냐, 청와대와 독대해서 주고받은 게 뇌물이 아니라면 대체 뭐냐"면서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법의 형식논리에 얽매인 판결은 폭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나라 30대 재벌이 가진 돈이 국내 총생산의 9할이 넘는데, 이건 단순히 부의 집중이 아니라 경제구조의 모순"이라면서 "진짜 정권 교체는 지배계층의 교체이고 독점 체제의 교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다섯 번째 출정가의 아래 대목에서 드러냈다.

"썩어 문드러진 박근혜와 그 뿌리를 발칵 뒤집어엎어야 합니다/그 위엔 돈이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세상/빼앗은 것도 내 거라는 범죄의 세상이 아니라/너도나도 일을 해 다 같이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세상의 씨를 틔울 그날까지 아, 촛불이여"(4연 뒷부분)

"반기문은 도둑고양이"

▲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고 백남기 농민 추모 및 박근혜 정부 규탄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이희훈

촛불 정국은 대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에게 촛불 민심을 끌어안을 수 있는 적임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지금은 박근혜를 몰아내는 촛불 시위에 온몸으로 헌신해야 한다"면서 "그건 안하고 자기만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은 87년 6월 민주화운동 때 대통령 권력을 빼앗기는 데 한몫을 한 분열주의와 같다"고 말했다. 야권 후보들을 향한 주문이다. 

그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도둑고양이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외국의 외교관만 만나잖아. 지금 촛불 민심이 요구하는 것은 박근혜 거짓말 독재에게 짓밟힌 사람들의 피눈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데, 반기문에겐 그게 없어. 두 번째는 나라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조정자였어. 우리말로 거간꾼이지. 유신잔당 박근혜 정치와 경제적인 모순을 뿌리째 타파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잖아. 그런 자가 대통령 선거에 나오면 안 돼.

얼마 전에 성폭력 피해 할머니(종군 위안부)들의 문제를 박근혜가 일본돈 10억 엔을 받으면서 불가역적인 합의를 했어. 원통하고 비극적인 역사를 박근혜가 자의적으로 팔아먹은 거야. 반기문은 그게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를 안 했잖아. 결국 유신잔당이야. 정신구조가 유신과 같으면 유신잔당이지. 우리가 얼마나 피눈물을 흘려 싸웠는데... 이걸 훔치는 도둑고양이야." 

박근혜의 혓바닥 언론들

거리의 백발투사, 백기완 소장은 정치권력과 자본 권력 앞에 당당한 오마이뉴스를 매월 1만 원씩 후원하는 1만6천여 명의 10만인클럽 회원 중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그는 "나라가 이 지경이 된 것은 박근혜의 혓바닥 언론들의 역할이 컸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가 집권할 때 나는 유신 잔당이라고 비판했지만, 언론들은 경제민주화를 한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전파했어. 나는 텔레비전을 안 보는 데 이따금씩 거기서 비추는 걸 보면 아직도 KBS, MBC는 박근혜의 혓바닥이야. 언론은 부패 독점 독재의 범죄를 비판해야 하는 데 아직도 그걸 못하고 있잖아.

조선과 동아 간판을 들고 한 번 거리에 나서보면 알 수 있어. '앞잡이들아 정신 차려, 사진 찍지도 말라'고 그래. 한 마디로 썩었어. 두 마디로 하면 기회주의야. 세 번째는 그들이 우릴 괴롭히는 지배계층이 됐다고. 언론이 언론을 죽이는 거야. 박근혜, 이명박, 전두환의 혓바닥이었는데 그걸 자르고 사람의 배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내겠다고 뉘우쳐야 해."

'서돌' 오마이뉴스를 응원하며

마지막으로 백 소장이 재작년 겨울 오마이뉴스를 응원하면서 찍은 동영상을 소개한다.



"나는 <오마이뉴스>가 이 땅의 '서돌'이었으면 좋겠어. 서돌이라는 게 뭐냐? 짓밟힐수록 불꽃이 이는 게 서돌이야. 민중 저항정신의 본질이지. 짓밟힐수록 불꽃이 일어난다는 말이야. 달빛도 없고 별빛도 없고 햇볕도 없는 깜깜한 어둠을 갈라버리는 게 서돌이야. 깊은 산 속에 들어가면 산허리에 요만한(손톱만 한) 불빛이 반짝반짝해. 그게 '도랑네'이자 서돌인데 혼자 사는 화전민의 불빛이야. 그것이 어둠 속에 갇힌 커다란 골짜기를 환하게 비춰주거든. 그런 서돌의 언론기관이 되자. 우리가 서돌의 작은 불빛이라도 키우자는 거야."

*백기완은 누구인가 
▲1933년 황해도 은율 출생
▲1953년 농민운동 시작
▲1965년 한·일협정 반대 운동
▲1974년 긴급조치 1호 위반으로 15년형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으로 징역형, 1981년 3·1절 특사로 석방
▲1987년 민중후보로 대선 출마 뒤 단일화 주장하며 사퇴
▲1988년 통일문제연구소 개소
▲1992년 민중후보로 다시 대선 출마, 낙선
▲1999년 계간 '노나메기' 창간

■주요 저서
항일 민족론(1986)
장산곶매 이야기(1994)
백기완의 통일이야기(2003)
사랑도 이름도 명예도 남김없이(2009)
시집 이제 때는 왔다(1985), 젊은 날(1990)
극본 대륙(1998)

☞백기완 소장과 함께하는 10만인클럽 회원 되기
관련기사 : [백기완 출정가] 거리의 비나리 '떵 더덩 떵'

추천 리포트
이 기사와 관련된 최신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