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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술, 금강에 산다

MB가 뼈와 살을 발라낸 강에 어머니를 묻었다
[개고생 취재 나선 금강요정 김종술⑩] 4대강이 살아나는 날까지 금강을 걷겠습니다

17.01.20 20:51 | 김종술 기자쪽지보내기

▲ MB가 4대강 불도저로 뼈와 살을 발라낸 금강. 그곳에 어머니를 묻었다. 이젠 금강을 지켜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 김종술

어머니의 손은 아직 따뜻했다. 핏줄을 타고 온기가 얼굴로 전달됐다. 갑자기 눈이 뜨거워졌다. 참았던 눈물이 코끝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깨를 들썩이면서 흐느꼈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이를 악물고 미동이 없는 어머니의 손을 더 힘껏 쥐었다. 2016년 10월 31일. 그렇게 어머니를 금강에 묻었다.

MB와 무지랭이, 그리고 괴물기자

▲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24일 오전 충남 공주시 공주보 상류 1키로미터 지점에서 확인한 큰빗이끼벌레를 찾아 들어 올리고 있다. ⓒ 이희훈

아버지의 강이자 어머니의 강 금강.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 금강의 뼈와 살을 발라 내놓고 '4대강 살리기'라 거짓말을 했다. 4대강 불도저로 강을 파헤치고 혈관을 막아버렸다. 숨통이 끊어질 듯 가쁨 숨을 몰아쉬던 생명의 강이 죽음의 그림자로 뒤덮였다.

허연 배를 드러낸 물고기는 처참하게 죽어갔다. 하루, 이틀... 십여 일 동안이나 지속하던 떼죽음으로 구더기가 들끓고 물고기의 씨는 말라 버렸다. 강바닥까지 점령한 녹조는 마지막 숨통까지 끊어 놓을 듯 생명을 옥죄여 왔다. 강물은 파란 피를 토했다.

"물고기 몇 마리 죽은 게 대순가?"
"녹조가 좀 생긴다고 호들갑이냐!"

죽어가는 금강에 대한 기사를 쓰면 한두 개씩 이런 악플이 달렸다. 생명의 연결고리를 모르는 무지렁이들의 말이다. 금강은 구석기 이전부터 사람이 살아가던 곳이다. 인간의 삽질에 물고기 수십만 마리가 죽고, 보고 듣지도 못했던 큰빗이끼벌레가 창궐했다. 심지어 시궁창에서나 서식하는 최악의 오염지표 종인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까지 득시글하다. 이게 별거 아닌가?

이런 말을 듣고 있자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욕이라도 한 바가지 해주고 싶지만 참고 또 참았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 하는 말이다. 강에 사는 뭇 생명들의 죽음 뒤에는 바로 우리, 인간이 위태롭게 서 있다.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다. 4대강은 수천, 수만 년 강물이 흘러 만들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강물을 막아서 수질을 살리겠다고 했다. 사이비 교주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말에 '학자'들이 살을 보탰다. 언론은 헛된 망상을 사실인 양 떠들었다. 정치권은 달콤한 말로 국민들을 현혹했다. 정권에 빌붙어 '혈세'란 콩고물을 노리고 4대강 부역자들은 그렇게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했다. 강이 썩고 나라도 부패하기 시작했다.

그래서다. 7년간 괴물들과 싸우면서 나 또한 괴물이 됐다.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홀로 강변에서 빗물에 밥을 말아 먹었다. 뱀에 물리고, 공사 인부한테 두드려 맞으면서도 취재 수첩과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물길이 막히니 상식도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것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4대강 괴물'들이 저지른 일들이 사라지고 있는 거다.

추악한 삽질을 세상에 알리다 몸이 깨지고 마음이 찢어졌다. 이빨이 깨질 정도로 두려움에 치를 떨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온몸에 울긋불긋 피부병에 걸리고 어떤 날에는 머리가 깨질 듯 고통이 밀려오기도 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경제적 재앙이 남아 있었다. 텅 빈 주머니, 매일 시달리는 빚 독촉에 모든 걸 놓고 싶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포기하려 했다. 이 일만 아니었다면, 그랬을 거다.

큰빗이끼벌레를 발견했다. 강에선 볼 수 없던 괴물이었다. 포기와 의무를 놓고 저울질했다. 누군가는 금강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무게가 더 실렸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꼬질꼬질한 손으로 기사를 썼다. 세상에 처음 큰빗이끼벌레가 공개됐다.

기자들이 몰려왔다. 전문가도 달려왔다. 이곳저곳 단체에서도 찾아왔다. 금강이 북적거렸다. 모두 수문이 곧 열릴 것처럼 떠들어댔다. 나도 잠시 그런 꿈을 꿨다. 하지만 환상에서 깨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착각이었다. 수다스러운 사람들의 입처럼 수문은 요동치지 않았다. 벌떼같이 찾아든 사람들은 꿀이 떨어지자 한순간에 빠져버렸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하지만 지치지 않기로 결심했다. 4급수 똥물을 마시면서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펄에 들어가 실지렁이를 찾고 붉은 깔따구를 세상에 내놓았다. 금강을 떠나 낙동강, 한강을 휘젓고 다니며 4대강 사업의 민낯을 고발했다.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의 강에 어머니를 묻다

▲ 야생동물의 보고이자 생명을 잉태하는 습지는 4대강 사업으로 사라졌습니다. 4대강 삽질에 훼손되기 전 충남 부여군 왕진나루터입니다. ⓒ 김종술

"엄마 건강이 좋지 않아."

그날도 금강을 걷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꼬질꼬질한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힘없는 목소리로 누나가 말했다. 머릿속이 새까맸다. 휴대폰이 울릴 때부터 심상치 않았다. 받고 싶지 않았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랫말이 가슴을 울렸다. 하지만 그날 곧장 어머니에게 달려갈 수 없었다. 보란 듯이 수문을 열어서 '제가 해냈어요'라고 자랑하고 싶었다.

"한 달을 넘기기 어려울 것 같다."

의사가 말했다. '돌팔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언제까지나 나를 응원하고 아낌없이 내주던 어머니가 건강을 잃었다. 그리고 한 달을 못 사신다고 한다. 세상이 무너져 내렸다. 나를 지탱해준 모든 게 무장해제 됐다. 끔찍했다.

아버지의 강에 어머니를 묻었다. 그날도 금강은 4대강 삽질(보강공사)에 피눈물을 흘리며, 흙탕물을 토해냈다. 추악한 권력의 잔인한 학살은 계승됐다.       

금강 변 작은 소나무에 어머니를 모셨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이라는 냉대를 받으면서 버텨왔는데, 하염없이 터지는 눈물은 막을 수가 없었다. 이젠 혼자라는 생각에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곳에서 어머니, 아버지에게 약속했다. 꼭 수문을 열어서 한을 풀어 드리겠다고. 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그 강을 걷었다. 꽁꽁 얼어붙은 차디찬 강물에 몸을 담그고 시커먼 펄 속에 손을 들이밀면서 거북이 등짝처럼 갈라진 손등에 눈물을 바르며 바들바들 떨면서 아침 햇살을 기다렸다.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서 포기하려던 순간 시작된 스토리펀딩에서 수많은 분들의 격려와 응원 덕분에 용기를 희망을 보았다. 겨울 한파만큼이나 얼어붙은 경제에도 손을 내밀어 준 그들이 있기에 거짓은 결코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는 진리 하나만 믿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려 한다.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릴지 모르는 싸움이다.

오늘도 금강을 걷습니다

▲ 김종술. 괴물을 삼킨 기자. 큰빗이끼벌레를 최초로 발견한 금강의 요정. 그는 오늘도 금강을 거닐며, 4대강 사업에 죽음의 강으로 변한 금강을 기록하고 있다. ⓒ 정대희

그러나 이젠 혼자가 아니다. 나를 기억하고 지지하면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다. 직업 기자가 아닌 시민기자로서는 꿈도 꾸지 못하던 제2회 성유보 특별상에 선정되는 기쁨도 안았다. 시상식에서 상을 주시던 분의 말씀이 떠나질 않는다.

"혼자서 힘들게 걸어가는 김종술 기자에게 성유보 선생님이 친구처럼 언제나 같이할 것이다."

청산되지 않은 대한민국은 여전히 친일파가 득세한다. 흐르던 강물을 막아서 수질을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이명박 정권도 꼭 법정에 세워야 한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렸던 학자, 언론, 정치인 등 4대강 찬동 인사들도 청문회에 세워야만이 건강한 대한민국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10여 년 전 해가 뜨기 전 금강은 어스름한 강변이 자욱한 안개로 덮여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하늘이 기지개를 켜면서 강렬한 햇살과 함께 유리알처럼 밝은 강물이 반짝거리며 황금빛 모래사장이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나보다 앞서 강변을 뛰어다니던 고라니와 자주 눈을 맞추면 은빛으로 반짝이는 여울을 폴짝폴짝 뛰어 건너편 숲속으로 몸을 숨기곤 했다.

아이들이 첨벙거릴 시간이면 조용하던 금강 강변이 시끄러운 장터로 깨어난다. 어설픈 모래성을 쌓고 두꺼비집을 만드느라 모래사장을 뒹굴던 아이. 허리춤까지 잠기는 물속에서 낚싯대를 휘두르던 아빠. 곰나루 소나무 언덕 아래에서 나물을 뜯던 엄마. 4대강 삽질 전 첫눈에 반했던 금강의 모습이다.

야멸찬 빚 독촉, 수북이 쌓인 약봉지가 어깨를 짓누르고 차가운 강바람에 얼굴이 찢어질 것 같이 시리다. 상처투성이 손발의 뽀얀 속살을 채우는 그 날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죽음의 강에서 오늘도 누구나 행복해지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하련다.  

오늘도 난, 금강에 묻힌 어머님의 품속을 혼자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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