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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다쳤다더니" 의혹투성이 아들의 죽음
연극 <이등병의 엄마> 후원자 분들이 전한 작은 희망

17.01.20 12:31 | 고상만 기자쪽지보내기

제가 이 어머니를 처음 뵌 때는 지난 2013년 5월의 일이었습니다. 군에서 자식을 잃은 유족분들을 국회로 모시고 '나는 군대에 아들을 보낸 죄인입니다'라는 행사를 개최할 당시 이 어머니가 함께하셨습니다. 아드님의 사진을 가지고 오신 어머니는 내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어머니의 사연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듣게 된 사연입니다.

▲ 국회 앞에서 1인 시위중인 어머니. 한겨울에 전주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늘 함께했던 어머니의 한은 언제 해결될까 ⓒ 고상만

어머니에게는 모두 3형제 아드님이 있었답니다. 그중에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한 아들이 막내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도 모르는 사이에 막내가 해군 부사관으로 지원 입대한 데에는 눈물 나는 사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막내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각별한 효자였다고 합니다. 다른 아들 역시 효자지만 막내는 더욱 그러했다고 합니다.

막내가 해군 부사관을 지원한 이유

어머니는 전북대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전북대 앞에서 맛있는 식당을 오래 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북대 학생 중에 내 밥 먹고 판검사 된 사람도 많고, 그렇게 성공한 학생들이 "어머니 밥이 그리웠다"며 찾아오기도 한다며 자랑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운영하던 식당을 가장 많이 도와주던 아들, 바로 막내였다고 합니다.

그런 효심 깊었던 아들이 어느 날 엄마도 모르게 해군 부사관을 지원한 것입니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어머니가 막내를 책망했다고 합니다. 왜 고생스럽게 해군 부사관을 지원했냐는 것입니다. 그때 듣게 된 막내의 속내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엄마의 아픔이 되었다고 합니다.

형편이 어려워 자주 이사해야 하는 엄마를 보며 늘 가슴이 아팠다는 겁니다. 그래서 엄마에게 집을 사 드리고 싶어 해군 부사관을 지원 입대했다는 막내. 그런 아들이 입대 후 33개월이 지나가던 어느 날, 군 복무 중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으니 이 어머니가 받은 충격은 어떠했을까요?

어느덧 그때로부터 만 21년이 지났건만, 다른 일은 나이가 들어 가물거리지만, 막내가 떠난 그날만은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1996년 3월 17일, 바로 그날입니다. 처음 군부대에서 어머니에게 연락이 올 때는 "교통사고로 아들이 크게 다쳤으니 빨리 병원으로 오라"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정신없이 달려간 병원에서 어머니가 마주한 것은, 그러나 입원실에서 치료받는 아들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병원 냉동고 안에 안치된 막내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의혹투성이 아들의 죽음

그날부터 어머니는 억울했다고 합니다. 왜 교통사고가 아닌데 교통사고가 났다며 연락을 했는지, 그리고 기도 폐쇄로 사망했다고 하는데 앞뒤 경위가 맞지 않는 여러 의혹으로 답답하기만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황망하게 막내를 잃고 경황이 없던 그때,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여기저기로 막내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며 진정서를 내고 탄원도 했지만 돌아온 답은 늘 한결같았다고 합니다. '부대는 잘못이 없다'는 회피가 전부였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군 의문사 피해 유족 단체를 찾아가 회원이 되었습니다. 이후 서울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와 집회에 한 번도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2014년 8월에 개최된 국방부 앞 항의집회에서도 어머니는 함께 했습니다. 군 복무 중 선임병의 집단 구타로 억울하게 생을 마친 윤 일병의 죽음을 누구보다 서글퍼 했던 어머니. 그리고 이 죽음에 무책임한 국방부의 행태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어머니에게 모든 군인의 죽음이 내 자식 같은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 2013년 8월, 국방부 정문 앞에서 있었던 군 사망사고 유족 항의 집회. 어머니는 이날 많이 오열했다. ⓒ 고상만

이후 어머니는 국회 김광진 의원실이 주도해온 '군 인권 개선을 위한 입법 운동'에 적극 참여하셨습니다. 전주에서 서울 여의도 국회까지 수없이 오가며 한겨울 새벽 피켓 시위에도 참여했습니다. 목에 피켓을 걸고 국회 앞에서 군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며 소리쳤습니다.

정말 말이 쉬워 한겨울 1인 시위입니다. 일평생 해 보지도 않은 1인 시위를 하면서 이 어머니가 겪은 심적, 육체적 고통을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요? 그런 어머니를 위로하니 "차라리 길거리에 서 있는 것이 집에 있는 것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내 아들이 왜 죽었는지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엄마들 위로한 국밥 한 그릇

이러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제가 꼭 해 드리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그저 그렇게라도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마련한 자리가 있었습니다.

지난 1월 6일, 국회에서 연극 <이등병의 엄마> 제작 보고를 겸한 유족 신년인사 모임을 가졌습니다. 연극에 함께할 전문 배우와 유족분들이 처음으로 함께한 자리였습니다. 그간 진행된 경과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전하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저는 생때같은 자식을 잃고 억울함을 삭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이 분들을 모시고 식당으로 갔습니다. 다른 말보다 그냥 따뜻한 국밥 한 그릇 대접하는 것으로 위로해 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 어머니에게 행복한 웃음을 드린 따뜻한 국밥 한그릇 처럼 하루 빨리 어머니가 알고 싶은 진실이 찾아오기를 소원한다. ⓒ 고상만

어머니와 아버지들은 연신 저에게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이 음식은 제가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해 부모님들의 슬픔에 공감해 주시는 1900여 명의 <연극 이등병의 엄마> 후원자분들이 대접하는 국밥이라고 했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분들에게 부모님들은 고맙다며 다시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 미소가 얼마나 고맙고 아름다웠는지 몰랐습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작아진다고 했습니다. 군에서 자식을 잃은 이 분들은 결코 죄인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또 다른' 애국자입니다. 누구처럼 자식의 군 복무를 기피한 적도 없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일에 자식을 바친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왜 국가와 국방부는 위로가 아닌 절망만 강요하는지 솔직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7년 새해가 밝아왔습니다. 2017년에는 이분들이 소원하는 꿈이 이뤄지기를 저는 소원합니다. 군 복무 중 사망한 군인의 명예회복과 2009년 해체된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재출범. 이를 통해 내 아들이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나라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가 이분들의 이야기를 무대에서 전하겠습니다. '사건이 아닌 사람의 이야기로' 관객과 공감하는 자리를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병의 인권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힘이 되고 싶습니다. 따뜻한 국밥처럼, 따뜻한 세상을 만들 것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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