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녹조밭에 빠졌다, 온몸을 박박 긁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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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술, 금강에 산다

"4대강사업 이후 술 안 마셔요, 정신 똑바로 차리려고..."
[개고생 취재 나선 금강요정 김종술⑨] 박상규 전 오마이뉴스 기자가 만난 금강요정

17.01.19 07:10 | 글:박상규쪽지보내기|편집:김예지쪽지보내기

개고생 취재에 나선 기자가 있습니다. 월급 받는 기자는 아닙니다.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금강을 지켜온 그를 뭍사람들은 '금강요정'이라고 합니다. 끝까지 취재하는 게 기자입니다. 김 기자의 '개고생' 취재를 통해 기자란 무엇인가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 4대강 사업의 그늘을 끈질기게 추적하고 있는 '특종쟁이' 특종술 시민기자, 아니 김종술 시민기자 ⓒ 정대희

김종술 기자는 내게 '웬수'였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로 일하던 시절, 그 때문에 여러 번 고생했다. 출퇴근 시간이 안정적인 건 편집기자 생활의 장점 중 하나다. 오늘은 '칼퇴'해서 술이나 한잔 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은 오후 5시 30분, 자주 김 기자의 글이 들어왔다.

편집창에 '김종술'이 보이면, 퇴근 임박 시간에 그의 이름을 보면, 심장이 빠르게 뛴다. 여러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진다.

'오늘 나는 야근이란 말인가.'
'오랜만에 잡은 술 약속, 연기해야만 하는가.'

일단, 칼퇴는 없던 일이 된다. 두 가지 때문이다. 우선, 그의 글에는 대개 '좋은 뉴스'가 있다. 그러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 편집해야만 한다. 제목, 사진 배치 등을 더 신경 써야 한다.

문제는 김 기자가 대개 금강 현장에서 급하게 글을 송고한다는 거다. 취재 현장에서 급하게 글을 송고했는데, 완벽하다? 그런 기자 세상에 없을 거다. 당연히 김 기자의 글은 거칠었다. 땀 냄새, 발 냄새, 물비린내 났고, 진흙탕과 모기떼가 그러졌다.

'좋은 뉴스인데, 글은 좀 거칠다.'

성인군자가 아닌, 퇴근을 코앞에 둔 편집기자의 마음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글을 버릴 수도 없고, 야근도 하기 싫고. 복잡한 마음을 억누르고 최대한 친절한 목소리로 김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기자님, 좋은 글 고맙습니다. 그런데, 이거 내일 편집해도 되죠?"
"빨리해야죠. 그거 빨리 나가야 하는 글입니다."

내 마음도 모르고 태연하게 말하는 김 기자가 때로는 4대강 사업을 추진한 이명박 대통령만큼 얄밉게 보였다. 망가진 강에 사는 큰빗이끼벌레처럼 김종술 기자가 징글징글할 때도 있었다.

몇 해 전, 충남 공주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그의 집이 있는 곳이자, 일터였다. 공주시에는 금강이 흐른다. 김 기자는 그곳에서 태어나 유년의 오랜 시간을 금강에서 보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가 나고 자란 땅이 아니었다. 김 기자에게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느냐"고 물었다.

"금강이 너무 예뻐서 이사 왔어요."

대답이 간단해서 당황했다. 대화가 끊겨 맥주 한 잔을 건넸다. 그가 정색했다.

"나 술 안 마셔요."
"원래 못 드시는 거예요?"
"예전엔 마셨는데, 4대강 사업 이후부터 안 마셔요."
"왜요? 이명박이 뭐라 해요?"
"금강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 때까지 안 마시기로 했어요."

그는 자신의 다짐을 치장하거나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나라면 "정신 똑바로 차려서 4대강 사업 문제 보도하려고요"라고 대답했을 텐데, 그는 그러질 않았다. 이후에도 그는 금강 현장에서 '거칠지만 뉴스가 있는 글'을 보냈고, 나는 '약속은 있지만 퇴근을 못 하는' 처지가 되어 그의 글을 편집했다.

수년간 김 기자는 내게 애증의 존재였다. 열심히, 꾸준히 현장을 지키는 그가 대단해 보이다가도, 나의 퇴근을 지연시킬 때면 더없이 얄미웠다. 이런 마음의 추가 '애정' 쪽으로 기울게 된 건 우연이었다. 언젠가 그의 강연을 듣는 자리에서였다. 그가 차분히 4대강 사업 이전의 금강 모습을 이야기했다.

"저는 아침마다 강변으로 산책을 나갔어요. 물안개가 피어 오르고, 가끔씩 물고기가 튀어 오르는 아침 강의 모습은 정말 평화로웠습니다. 몇 시간씩 그런 강을 보면서 앉아 있었고, 별을 보면서 강변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 아름다운 강이 망가지는 게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는 김종술 기자를 바라봤지만, 내 눈엔 물안개 자욱한 아침강의 조용한 모습이 그려졌다. 기자의 의무감, 말도 안 되는 사업에 대한 분노 이전에, 그가 정말 금강을 사랑하는 게 느껴졌다. 사랑하는 대상이 망가지는 것에 대한 슬픔, 그것이 김종술의 힘이었다.

조금씩 그에게 질투심을 느끼게 됐다. 때로는 열등감도 느꼈다. 늘 현장을 지키며 기사를 쓰는, 게다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주제로 글을 쓰는 김 기자가 부러웠다.

파산 변호사가 빚내서 준 돈, 백수가 웬수에게 건냈다

▲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팀이 24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앞 낙동강에서 투명카약을 타고 녹조 탐사활동을 벌였다.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가 낙동강에서 뜬 녹조물을 뿌려보고 있다. ⓒ 권우성

나는 2014년 12월 <오마이뉴스>에 사표를 냈다. 기자 김종술처럼 하나의 주제를 끝까지 파헤치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기자에겐 어느 매체에 소속돼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여기에서, 무엇을 보도하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김종술 기자의 활동은 내게 많은 영감을 줬다. 직업 기자를 '백수'로 만든 김종술, 정말 웬수다.

2016년 가을, 김종술 기자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충남 공주의 한 장례식장으로 문상을 갔다. 육개장과 수육을 앞에 두고 그와 마주 앉았다. 서로 백수의 기자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생활이 어떠냐고 묻자 그가 답했다.

"엊그제 집주인이 방 빨리 빼라고 해서 한마디 해줬어요."
"왜 방을 빼라고 해요?"
"왜긴? 월세를 못내니까 그렇지."
"월세 많이 밀렸어요?"
"뭐… 물론… 좀… 밀리긴 했죠. (웃죠)"

맛있게 먹고 있던 돼지고기 수육에 가슴에 턱 걸렸다. 내 머리는 계산기를 마구 두드리고 있었다. 사실, 그때 나도 생활이 어려웠다. '파산 변호사' 박준영이 빚을 끌어와 내게 생활비를 보태준 시점이었다. 나는 속으로 박준영 변호사가 준 돈을 만지작거렸다. 잠시 뒤, 결정을 끝냈다.

'나도 어려운데, 그냥 집이나 가자.'

그렇게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는데, 하필 장례식장 정문 옆에 있는 현금인출기가 보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만큼 현금인출기가 얄밉게 보였다. 나는 그 선을 넘지 못했다. 현금인출기에 카드를 넣었다. 기계가 내게 '당신 얼마 찾을 겁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다시 망설였다. 기계가 보여주는 금액은 다양했다. 여러 금액을 보면서 나는 침을 삼켰다. 침 넘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화면을 터치했다. 50만 원이었다. 기계는 현금 세는 소리를 요란하게 냈다. 그 자리에 아쉬움을 삼키는 나 자신이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얄밉게 느껴졌다.

"잠깐 좀 봐요."

김종술 기자를 밖으로 불었다. 그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김 기자는 눈으로 '이게, 뭡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주는 거 아니에요. 파산 변호사 박준영이 주는 겁니다. 그 양반이 나 쓰라고 빚내서 돈을 좀 줬는데, 같이 씁시다. 힘내시고요."

현금인출기 앞에서 후덜덜 몸과 마음을 떤 나는 부끄러운 발걸음으로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공주를 떠나는 어느 길에서 저물어 가는 초저녁의 금강이 보였다. 다시 '웬수 김종술'이 생각났다.

시민은 십시일반으로 파산 변호사를 살렸고, 그는 다시 '파산 기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세상은 파산 기자를 살리고 있다. 이렇게 세상은 유지되고 흘러가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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