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구정물이 콸콸, 썩어들어가는 내성천

10만인 리포트

[촛불 광장 토론] 박근혜 퇴진, 그 후 우리는?

이건희 없는 한국 상상할 수 있어야 개혁 시작
[박근혜 퇴진, 그후 우리는 23] 재벌에 대한 두려움과 환상을 넘어서야

16.12.30 16:02 | 김정주 기자쪽지보내기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 후,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까요? 광화문 광장의 '퇴진 캠핑촌'은 촛불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대안 토론 광장을 엽니다.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와 <광화문 퇴진 캠핑촌 광장토론위원회>가 공동기획했습니다. [편집자말]
▲ '최순실 게이트' 관련 재벌총수 청문회가 열린 6일 오전 민주노총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가면을 들고 재벌총수 구속과 전경련 해체를 촉구하고 있다. ⓒ 남소연

한국경제에서 재벌집단, 그 가운데서도 삼성, 현대기아차, LG, SK 등 4대 재벌이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이 얼마나 압도적인지는 다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지표가 인용되고 있지만, 삼성과 현대기아차 두 재벌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략 1/3에 이르고 이들을 포함해 4대 재벌이 차지하는 비중은 경제의 40% 정도에 달할 것이라는 점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재벌집단의 기업성과를 보여주는 매출액, 순이익, 수출액, 투자액 등 뿐만 아니라 수많은 중소 협력업체들이 이들 재벌기업과 거래하고 있다는 점, 또한 수요독점자로서 재벌기업이 이들 중소 협력업체들에 미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란 점을 고려하면 한국사회에서 재벌집단, 그 가운데서도 4대 재벌이 차지하는 경제적 지배력과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흔히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고들 하지만, 세계 주요국가들 가운데 한국만큼 소수 기업집단에 경제력이 기형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국가는 찾기 어렵다. 우리들 모두가 오직 경제성장만을 갈망해온 사이 한국경제가 앓고 있는 중병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

경제력 집중의 문제와 더불어 한국사회에서 재벌 체제가 갖는 문제들은 심각한 사회경제적 양극화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 소수 재벌집단이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경제적 지배력을 압도적으로 키워온 사이 전체 고용의 99%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 부문은 황폐해졌다. 전체 소득 가운데 노동분배 몫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고, 비정규직의 확산과 더불어 구조조정 및 정리해고의 일상화로 인해 대다수 노동자들의 삶은 점차 피폐해져 왔다.

재벌들은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업성과를 나누기 위해서라도 재벌들에 대한 규제철폐와 더 많은 저임금 비정규직을 양산하기 위한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지난 십여 년간 한국사회에서 심화되어 온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이들 재벌의 주장이 얼마나 근거 없는 것인지를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오히려 비정규직의 확산 등을 통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온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함은 물론 수직적 하청계열화를 통해 수많은 중소기업들을 수탈함으로써 경제적 성과를 배타적으로 향유해온 독점적 재벌체제를 개혁하지 않고는 지금 한국사회가 심각하게 앓고 있는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재벌체제의 개혁과 동시에 이를 대체할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구성하는 문제는 한국사회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경제개혁 과제들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재벌체제의 독과점적 성격과 소수 재벌집단에 과도하게 집중된 경제적 지배력의 문제만큼이나 우려스러운 일은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행사해온 정치적 권력에 있다. 즉, 한국사회에서 재벌은 독과점적 지배력을 갖는 기업이자 온갖 탈법과 불법을 자행하고도 결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어떤 처벌도 받지 않는 한국사회 내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이다.

사실 재벌들은 항상 정치와 경제는 분리되어야 하고, 따라서 정치권력이 경제적 과정에 개입해 시장을 왜곡시켜선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듯이 이들 스스로는 정치적 매수를 서슴지 않았고 언제나 끊임없이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정치적 권력을 추구해왔다.

2007년 삼성비자금 사건, 2008년 경영권 불법승계를 위한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의혹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발행 사건 등 회장 일가가 관련된 불법적 사건들이 연이어 드러났지만, 사건 관련자들 가운데 합당한 법적 처벌을 받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든 시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근대사회의 관념은 재벌들 앞에선 예외였던 셈이다.

결국 재벌이 말하는 정치와 경제의 분리, 그리고 정치권력이 경제적 과정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매우 중립적으로 들리는 언사들은 사실 그들 스스로는 어떤 정치적 규율과 통제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왜곡된 권력욕을 감추기 위한 수사에 불과했던 것이다.

헬조선은 누가 만들었는가

▲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재벌구속특위를 구성하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짜 주범인 재벌총수 구속과 전경련 해체를 위해 집중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민주노총과 반올림, 유성범대위, 경제민주화네트워크,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전국고물상연합회, 중소상인비상시국회의, 재벌사내유보금환수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단체가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오는 6일 재벌총수 소환 청문회를 앞두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짜 몸통인 재벌총수의 구속과 전경련해체를 위해 오는 7일까지 집중행동 기간으로 선포하고 투쟁하기로 결의했다. 이날 이들은 "수천만의 국민들이 12월 6일 재벌총수 국정조사 청문회를 주목하고 있다"며 "청문회에서 재벌 총수들의 뇌물죄를 비호하는 정치인들은 박근혜와 함께 국민의 공적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변죽만 울린 채 재벌총수들의 뇌물죄를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지 못하는 정치집단 역시 더 이상 발붙일 데가 없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 유성호

2016년 11월의 촛불혁명을 촉발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도 한국사회의 예외적 권력으로서 존재하는 재벌의 진면목은 여실히 드러났다. 이처럼 온갖 탈법과 불법을 저지르지만 법의 지배로부터는 벗어나 있으며 시민적 권력에 의한 어떤 정치적 규율과 통제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재벌들의 권력욕은 그 자체가 한국사회 내 민주주의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따라서 단지 왜곡된 경제구조의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사회 내 민주주의의 심화와 진전을 위해서도 재벌개혁에 대한 요구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우리의 경제적 삶과 정치적 삶이 따로 존재할 수 없듯이 사회의 경제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은 서로 별개의 영역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한 사회 안에서 민주주의가 심화되어 간다는 것은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형식적이고 일반적인 민주적 원칙들이 확립되어 감과 동시에 사회의 경제적 영역과 정치적 영역이 민주주의라는 단일한 사회구성적 원리를 통해 통합되어 가는 과정을 의미할 것이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민주적 과정을 통해 집약된 시민적 요구에 의해 경제적 영역이 규율되고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 많은 사람들이 '헬조선'이라 부르는 한국사회 내의 가혹한 삶의 조건들은 오히려 반대로 보다 나은 삶에 대한 시민적 요구가 경제적 영역에서는 물론이고 결국 사회가 운영되는 제도들이 만들어지는 정치적 영역에서도 배제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과연 '헬조선'이라 불리는 지금의 가혹한 삶의 조건들을 누가 만들고, 누가 동의해주었는가?

지난 한달 내내 광장에 나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촛불을 든 시민들인가, 아니면 재벌인가, 관료인가, 직업적 정치인들인가?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경제민주화란 것이 단지 사회적 부조 차원에서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의 삶의 조건을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들 스스로 결정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사회 내에서 경제민주화는 물론 이를 넘어서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심화는 나와 우리 삶의 조건을 다른 누군가의 결정에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고 요구하고자 하는 깨어 있는 시민의식과 공동체 의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껏 우리는 우리의 삶의 조건, 따라서 우리가 요구해야 할 우리의 이해가 무엇인지를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재벌의 이해를 곧 우리 자신의 이해로 받아들여 오지 않았던가? 재벌개혁은 필요하지만 재벌기업의 주가는 떨어져선 안 되며, 따라서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지금의 재벌체제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오지 않았던가? 재벌이라는 거대한 기업집단이 없다면 우리사회는 유지될 수 없으며, 따라서 나와 우리의 삶도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해오지 않았던가?

심지어 재벌 회장들의 불법과 탈법은 용납할 수 없지만, 이건희 회장과 같은 재벌가문의 상속자 없이는 결코 재벌이라는 거대기업은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해오지 않았던가? 한국사회 내에 존재하는 재벌개혁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모든 공포와 두려움이 지금껏 우리들 스스로 재벌개혁을 요구하고 재벌의 해체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하는 심리적 장애물이었다.

재벌이 해체되더라도 지금 재벌에 속해 있는 기업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재벌이라는 지금과 같은 기업집단의 지배구조가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재벌에 속한 기업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재벌가문에 속한 상속자들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또한 이를 위해 많은 불법과 탈법들이 자행되었지만, 그러한 불법과 탈법은 재벌에 속한 기업들의 유지와 존속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재벌가문의 상속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재벌가문의 상속자들이 직면한 문제와 재벌에 속한 기업의 문제를 분리해 사고할 필요가 있다.

또, 재벌 회장들이 유능한 만큼 수많은 노동자들 또한 얼마든지 유능할 수 있다. 재벌 회장의 리더쉽이 중요한 만큼 수많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그와는 다른 또 다른 리더쉽이 발휘될 수 있다. 재벌의 상속자가 성공하기도 했지만 큰 실패를 낳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 또한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온갖 불법과 탈법을 무릅쓰고서라도 귀족작위를 세습하듯 기업의 경영권을 반드시 세습해야 할 불가피한 이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기업을 위해서건 사회를 위해서건 말이다.

이제 우리는 한국사회에서 기업이자 권력으로 존재해왔던 재벌들로부터 권력을 회수해 기업이 시민적 요구에 따라 규율되도록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는 단순히 재벌체제로 인해 왜곡된 경제구조를 개혁하는 문제가 아닌 한국사회 내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진전시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재벌체제에 대한 온갖 두려움과 환상을 극복하고 재벌의 이해와 다른 시민으로서 나의 이해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정의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사회에서 재벌개혁은 언제나 조직된 힘을 갖지 못한 도덕적, 윤리적 문제로만 남게 될 것이다. 오직 자신의 이해를 분명히 깨닫는 사람만이 자신을 위해 요구하고 싸울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촛불광장토론은 매주 화요일 서울 광화문 광장 '박근혜 퇴진 캠핑촌(이순신 동상 앞)에서 오후 5시에 열립니다. 새해 첫 토론은 '2017, 촛불에 바란다'란 주제로 1월 3일 오후 5시에 열립니다. 글쓴이는 김정주 진보평론 편집위원장입니다.


추천 리포트
이 기사와 관련된 최신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