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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술, 금강에 산다

MB가 벌인 국정농단 덕분에 단짝을 만났다
[개고생 취재 나선 금강요정 김종술⑦] '낙동수근', '금강종술'을 만나다

16.12.29 18:54 | 글:정수근쪽지보내기|편집:김예지쪽지보내기

개고생 취재에 나선 기자가 있습니다. 월급 받는 기자는 아닙니다.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금강을 지켜온 그를 뭍사람들은 '금강요정'이라고 합니다. 끝까지 취재하는 게 기자입니다. 김 기자의 '개고생' 취재를 통해 기자란 무엇인가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 '낙동강지킴이' 정수근 시민기자와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 등 '낙동에 살어리랏다' <오마이뉴스> 탐사보도팀이 25일 오전 4대강사업 후 지천에서 흘러드는 모래로 강바닥이 높아진 현장을 탐사하기 위해 투명보트를 들고 구미보 하류로 이동하고 있다. ⓒ 권우성

김종술 시민기자는 1966년생이다. 반세기를 넘게 살았는데 홀몸이다. 아니 금강과 결혼했다. 지난 6월 13일에 특별한 토크 콘서트가 열렸는데, '금강 종술'인 김종술 시민기자와 '낙동 수근'인 내가 참석했다. 금강과 낙동강을 취재하면서 겪은 생생한 경험을 공개하는 자리다. 일명 '4대강 사업의 민낯 이야기'. 70여 명의 대구 시민들 앞에서 내가 먼저 김 기자에게 물었다.

- 포기하고 싶은 적은 없었나요?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도 그랬습니다. 하하."

- 가족들이나 주변사람들은 만류하지 않나요?
"금강이랑 이혼하라고 합니다. 히히. 아직은 이혼 못한다고 대답합니다."

- 지금껏 가장 힘들 때는 언제였나요?"
"어제보다 오늘입니다. 파산을 하니, 하루를 버티는 게 힘듭니다. 내일이 오는 게 두렵습니다."

4대강 사업이 옭아맨 인연

▲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팀이 24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앞 낙동강에서 투명카약을 타고 녹조 탐사활동을 벌였다. '낙동강 지킴이' 정수근 시민기자와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가 투명카약을 타고 녹조 위를 지나고 있다. ⓒ 이희훈

그와 난 '4대강 단짝'이다. 4대강 사업 이후 그는 금강을 취재했고, 난 낙동강을 취재해 기사를 썼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맺은 인연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전대미문 국정농단 사업이 맺어준 인연이기도 하다. 김 기자와 처음으로 말을 섞은 건 낙동강 물고기 떼죽음 사건 때였다. 

"여보세요? 낙동강에 물고기 떼죽음이 일어났죠?"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 질문 공세부터 폈다. 처음엔 황당했다. 금강 취재 기사를 보아왔기에 그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같은 시민기자인데 그 순간 나는 그의 취재원이었다. 그의 질문에 술술 대답하면서 자연스레 서로 동화되었다. 금강과 낙동강이 죽어가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나는 어느새 서로 맞장구 치며 친구가 되었다.

"어른 팔뚝만한 잉어, 누치, 동자재, 쏘가리, 끄리, 메기, 붕어... 이름을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어요."(정수근)
"아휴~ 금강도 지옥이었어요. 136cm 초대형 메기 사체까지 발견했습니다."(김종술)
"공무원들이 물고기 사체를 거뒀는데, 포대자루가 끝도 없이 나왔어요."(정수근)
"금강에선 물고기 떼죽음을 감추려고 강변에 묻기도 했습니다. 잘 감시해야 해요."(김종술)
"물고기 떼죽음 전에 낙동강은 심각한 녹조가 발생했습니다."(정수근)
"금강도 그랬어요. 강물에 녹색 페인트를 뿌려놓은 것처럼 변했습니다."(김종술)
"낙동강은 '녹조라떼'라고 부릅니다. 하하."(정수근)

낙동강 물고기 떼죽음이 우리 인연의 출발이었다. 2012년 10월 말이었다. 그해 4대강에는 콘크리트 보가 들어섰고 강물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4대강이 호수가 된 첫해였다. 김 기자가 금강요정으로 온 몸으로 금강을 기록할 때, 나도 낙동강 지킴이로 몸 사리지 않고 낙동강을 기록했다. 지독한 경험이었다.

4대강 사업의 민낯을 세상에 알리다가 그와 더 끈끈해졌다. 김 기자는 나와 키도, 생긴 것도, 사는 방식도 너무 달랐다. 다른 공간에서 만났다면 통하는 게 없는 사이였을 텐데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수백킬로미터 떨어진 우리를 인연의 고리로 옭아맸다. 우리는 이제 '단짝'이다.

내 '4대강 단짝'을 소개합니다

▲ [두 바퀴 현장 리포트-OhmyRiver] 특별취재팀이 8일 오후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읍 개비리길에서 길을 잃어 자전거를 짊어지고 이동하고 있다. ⓒ 유성호

2013년 여름, 나는 그를 처음 만났다. 금강이 아니라 낙동강에서다. 당시 <오마이뉴스>와 <환경운동연합>은 특별탐사보도팀을 꾸려 낙동강을 자전거로 질주하면서 취재를 했다. 태풍이 몰려오던 날, 이른바 '떼잔차질 취재'였다. 4대강 사업의 민낯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당시 김 기자는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 나는 <환경운동연합>의 활동가로 참여했다.

난생처음으로 경험한 개고생 취재였지만 캠핑도 즐겼다(?). 이명박씨는 '4대강에 놀러오라'며 강변에 캠핑장을 만들었는데, 어렵게 찾아가 보니 황망했다. 대부분 어두컴컴해질 무렵에 파김치가 된 몸으로 도착했는데 귀신이라도 나올 듯했다. 제대로 씻을 곳도 없어 화장실 한 귀퉁이에 쪼그려 몸을 씻었다.

자전거 페달을 돌리며 온몸으로 취재한 내용은 텐트 속에서 기사로 만들어졌다. 밤을 꼬박 지새우며, 기사를 작성해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취재가 길어질 수록 모두 지쳐갔다. 그때마다 내 '4대강 단짝'은 특유의 넉살로 분위기를 다잡았다.

"힘내세요. 이 정도로 쓰러지면 안 되죠. 하하하. 나는 금강에서 물고기 떼죽음 취재하면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어요. 며칠 안 씻으면 어때요. 난 온몸에 비린내가 배겨서 씻어도 안 없어져요. 나 보면서 기운들 내요. 흐흐흐"

김 기자의 말에 토를 달 수 없었다. 웃으며 하는 말에 뼈가 있었다. 그의 '나 홀로 개고생 취재'에 비하면 당시 취재현장은 양반에 가까웠다. 하지만 김 기자도 깜짝 놀란 일이 벌어졌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경남 의령군에 있는 박진고개를 넘을 때였다. 내리막길을 달리는데, 브레이크가 고장났다. 레버가 말을 듣지 않았다. 박진고개 허리께 다다르자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속도가 빨라졌다. 이러다 죽는 건가? 라고 생각하던 순간, 몸이 공중에 '붕'하고 날아 절벽 코앞에 멈추어 섰다. 아찔했다.

내 생에 잊지 못할 온몸 취재였다. 박진고개 자전거도로에는 안전펜스가 없었다.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도 없었다. 사고가 발생해 치료를 받으려면, 수십킬로미터를 이동해야 했다. 4대강 사업은 자전거도로를 닦는 일에만 집중했다. 그래서일까. 국민세금 수십억 원을 들여 만든 화려한 콘크리트 건물에는 홍보관만 있을 뿐, 의무실은 없었다. 자전거 정비센터가 있었으나 고장이 나면 수리할 수 있는 부품은 없었다. '쌩쌩' 달릴 수만 있는 자전거 고속도로에 지나지 않았다.

그 뒤에도 우리는 '단짝'을 이뤄 매년 4대강을 탐방했다. 2015년에는 시민들이 모아준 후원금으로 투명카약 두 대를 마련해 금강과 낙동강을 누볐다. MB 삽질에 몸살을 앓는 4대강을 생생히 담아냈다. 올해 여름에도 투명카약에서 생중계하고 수도권과 영남권 1300만 명 식수원에서 실지렁이를 발견해 4대강 사업의 거짓을 밝혀냈다. 

금강과 결혼한 기자...파혼했다면 '끔찍'

▲ MB는 ‘잘나가’ VS 김종술은 ‘개고생 ⓒ 고정미

'4대강 단짝'의 특기는 온몸 취재다. 가령 이런 식이다. 녹조에는 '마이크로시스틴(Microcystin)'이란 독성물질이 포함돼 있다. 섣부르게 녹조 물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하지만 김 기자는 녹조밭에 주저하지 않고 뛰어든다. 피부가 오돌토돌해지고 두통에 시달리는 후유증을 앓으면서도 자기 몸을 희생양 삼아 기사를 쓴다. MB 삽질의 참혹한 현장을 온몸으로 고발하기 위해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시궁창으로 변한 강물에 머리를 처박고 시커먼 펄에서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를 찾아낸다. 환경부가 지정한 4급수 지표생물이다. 4급수는 수돗물로 사용할 수 없고 오랫동안 접촉하면 피부병을 일으킬 수 있는 물이다. 수도권 상수원에서, 영남권 식수에서 실지렁이를 발견했을 때도 그랬다. 그는 입고 있는 옷 그대로 강물에 들어가 4대강 사업이 낳은 괴생명체를 끄집어냈다.

나는 환경운동가다. 그는 나보다 더 지독한 환경운동가였다. 취재방식만 봐도 알 수 있다. 온몸을 사리지 않고 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어떤 때에는 부끄럽기까지 했다. 그의 온몸 취재를 곁에서 지켜보며 배운 이유다. 덕분에 나도 생애 첫 특종을 보도했다.

올해 초, 낙동강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강준치 떼죽음이 발생했다. 몇 날 며칠 낙동강을 돌며 원인 파악을 위해 물고기 사체를 조사했다. 그러다가 배가 터져 창자가 새어 나온 물고기를 발견했다. 배를 갈라봤다. 창자가 아니라 기생충이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취재한 내용을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다. 슬픈 특종이었지만 끈질기게 달라붙어 취재하는 그의 노하우 덕을 본 것이다. 

다시 토크콘서트 때의 질의응답으로 돌아가 보자. 자신을 '금강과 결혼한 기자'라고 말하는 그에게 물었다.

- 재산까지 털어먹으면서, 개고생 하면서 금강을 지키는 이유가 뭔가요?
"누군가는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끝까지 취재하는 게 기자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금강과 '파혼'을 했다면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에서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환경파괴의 진실을 국민들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금강의 아픔을 배우자처럼 아파하면서 취재하지 않았다면 오늘도 4대강의 댐을 유지하려고 혈세를 쏟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잘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가 지치지 않고 금강과의 결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기 바란다. 그를 지켜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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