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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광장 토론] 박근혜 퇴진, 그 후 우리는?

'광화문 노숙' 예술인들이 안쓰럽지 않은 이유
[박근혜 퇴진, 그후 우리는 21] 매일 광장을 지키는 것이 예술

16.12.26 16:35 | 글:임인자쪽지보내기|편집:손지은쪽지보내기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 후,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까요? 광화문 광장의 '퇴진 캠핑촌'은 촛불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대안 토론 광장을 엽니다.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와 <광화문 퇴진 캠핑촌 광장토론위원회>가 공동기획했습니다. [편집자말]
▲ 서울 광화문 광장 '박근혜 퇴진 캠핑촌'의 모습 ⓒ 노순택

처음 광장에 나간 것은 연극 <권리장전-검열각하 2016>이 끝나기 바로 전날이었다. 그날(10월 29일) 저녁 마지막 공연은 '대한국사람'이었다. 동료들과 관람을 마치고 함께 광화문 광장에 나갔다. 밤 10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으로 향하고 있었고, 광화문 광장 도로와 세종문화회관 사이에서 사람들이 경찰에 둘러싸여 있었다. 늘 거기까지가 최대치였다.

촛불집회 무대에 오른 사회자가 말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자가." 경찰이 설치한 스피커에서도 "불법적 행위니 이제 곧 해산하십시오"란 말이 들려왔다. 세월호 집회 때도, 민중총궐기 때도 늘 그랬다. "집으로 돌아가자."

나는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작은 목소리지만 꼭 국가가 잘못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외쳤다. "박근혜는 물러나라!" 그때였다. 누군가 "박근혜"를 외치니 "물러나라!"는 구호가 터져 나왔다. 또 한 번 누군가 "박근혜"를 외치니 "퇴진하라!"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광장에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경찰이 집회 참가자들 사이를 밀고 들어왔다. 사람들은 그대로 주저앉아 저항했다. 사회자가 없는 발언대가 자연스레 열렸다. 그때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구에서 올라온 학생입니다. 저는 이제까지 살아가면서 아버지 어머니의 말씀을 잘 듣고 열심히 공부하고 또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TV를 통해 알려진 대통령과 비선실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과연 이 나라가 공정한 사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새누리당을 찍었지만, 밥상 앞에 앉아 함께 TV를 보며 처음으로 공정하지 않은 사회에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너무 억울해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까지 올라왔습니다."

첫 번째 학생의 발언이 끝나자 또 다른 학생이 일어나 발언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밤10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이제야 광장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광장에 나왔을 때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는데, 이렇게 여러분들이 모여 계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저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정말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사회에는 우리에게 절망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 사회에서 미래가 없습니다. 저는 희망을 만들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여러분 저는 끝까지 밤을 지새우겠습니다. 여러분 남아 있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껏 촛불집회 현장에서 들려오던 목소리와 너무 달랐다. 그렇게 꼬박 아침까지 자유발언대가 이어졌다.

▲ 서울 광화문 광장 '박근혜 퇴진 캠핑촌'의 모습 ⓒ 정대희

'박근혜 퇴진과 하야'를 외치는 그 현장은 오프라인 아고라였다. 사회자가 아니라 시민들이 오랜 침묵을 뚫고 나온 분노와 저항의 현장이었다.

지난 11월 4일 광화문 광장에서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란 시국선언이 있었다. 나도 이 자리에 동참했다. 그날 예술인들은 "광화문 광장을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광장에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예술인들의 저항에, 실천에 놀랐다.

며칠 뒤 캠핑촌민 노순택 작가의 페이스북을 봤다. 새벽녘 너무 추워 컵라면을 먹는다며, 사진과 함께 글이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보고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희생만 강요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 연극계에서 대학로X포럼을 통해 현 시국상황을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그 때 연극인들도 텐트촌에 입주하기로 결의했다. 극단 '공외'의 방혜영 연출이 초대 방장으로 참여하며 연극인 텐트촌 2동이 마련됐다. 연극인들은 릴레이로 텐트를 지켰다.

캠핑촌 생활을 하고나서야 알았다. 텐트촌의 어머니 역할을 하던 이들이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란 것을. 캠핑촌에서 열리는 행사 때마다 고생하는 이들이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란 것을. 캠핑촌의 궂은 일을 도맡아하는 이가 '시인'이란 것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또, 캠핑촌은 하나의 마을이었다. 마을 회관과 창고를 만들고 토론 천막도 생겼다. 함께 연대한 문화활동가, 파견미술작가, 시각 작가, 넋전춤, 어린이글모임, 연극인, 박근혜퉤진청소단, 광장신문, 304개의 구명조끼, 촛불 형상물 등이 마을을 꾸리고 목소리를 담아냈다. 예술과 사회가 어떠한 관계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수많은 고민들이 캠핑촌 안에 펼쳐졌다. 누구나 주인이고, 누구나가 연대 할 수 있으며, 함께 결정하고, 자유롭게 토론이 가능한 수평적인 질서가 마련됐다.

▲ 서울 광화문 광장 '박근혜 퇴진 캠핑촌'의 모습 ⓒ 정대희

청년들과 학생들로부터 시작하여 소수의 하룻밤으로 시작해, 100만, 200만이 된 광장은 12월 9일 국회 탄핵 가결 이후 다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하고 있다.

거기에 예술의 응답은 무엇일까 그것이 앞으로 텐트촌의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보다 앞서 일상의 광장과 문화예술을 통한 해방의 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목소리를 수용하고 가두리 양식처럼 가두어진 집회장이 아닌 해방구로서 기능하고자 했던 광화문 캠핑촌. 이 텐트촌에서의 실천들이 풍자와 상징의 해방구로서의 역할을 뛰어 넘어 새로운 세상을 위한 설계와 실천으로 기능하기 위해서 광장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광장에서의 예술의 응답, 예술가의 응답은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질문이 필요하다. 풍찬노숙의 미학으로 종료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예술은 늘 기성제도나 정치에 기대하지 않았다. 예술은 독립을 꿈꾼다. 예술은 사회에 던지는 균열과 상상을 통해 새로움을 꿈꾸게 한다. 텐트촌이 나에게 주는 질문은 시대와 사회에 던지는 질문들과 담론들의 발화, 그것을 위한 지속적인 작업과 실천, 그리고 그에 더해 이곳에서 벌어지는 사회 구조의 실험들이다.

그것을 위한 예술행위로서의 풍찬노숙은 응원의 대상이나 안쓰러움의 대상이 아니다. 매일을 지켜가는 행위들이 바로 예술이다. 그것에서 피어나는 꽃들을 우리는 매일 그리고 매주 목격하고 있다. 이 공동체는 단 한순간 형성될 수 없는 공동체이다. 모든 이들의 시간의 겹이 층층이 쌓인 이 곳에서 제안하는 해방의 목소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곳에 직접 참여하여 목소리를 내야하는 이유, 서로 충돌하고 만나야 하는 이유, 그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충돌들 속에 분명 새로운 시대는 열릴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우리는 외친다.

가자! 광장으로!      

덧붙이는 글 | 촛불광장토론은 매주 화요일 서울 광화문 광장 '박근혜 퇴진 캠핑촌(이순신 동상 앞)에서 오후 5시에 열립니다. 27일 주제는 '박근혜 공범 재벌총수 즉각 구속, 재벌해체와 삶의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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