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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광장 토론] 박근혜 퇴진, 그 후 우리는?

"DJ DOC 공연 반대하면 '꼴페미' 낙인 찍혀"
[박근혜 퇴진, 그후 우리는 16] 불평등을 말하다

16.12.20 10:59 | 글:정원옥쪽지보내기|편집:박정훈쪽지보내기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 후,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까요? 광화문 광장의 '퇴진 캠핑촌'은 촛불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대안 토론 광장을 엽니다.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와 <광화문 퇴진 캠핑촌 광장토론위원회>가 공동기획했습니다. [편집자말]
▲ 지난 13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평등한 광장의 정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란 주제로 촛불광장토론 세번째 시간이 마련됐다. ⓒ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광장 안에서 '우리'는 모두 대등한 주체인가. 광장이 열릴 때마다 부단히 말해왔으나 여전히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은 누구의 것인가. 배제와 차별, 혐오의 문제에 대해 지금 말할 수 없다면 언제 말해야 하는가. 광장 안에서조차 자유롭게 말할 수 없다면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지난 13일, 네 번째 광장토론회는 이러한 물음들을 끄집어내고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박혜영(노동건강연대)이 사회를 맡았으며, 이지원(강남역 10번 출구 활동가), 쥬리(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학생인권상담소 넘어), 김주온(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차헌호(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지회 지회장)가 광장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불평등의 문제와 이를 넘어서기 위한 대안들을 제시했다.

여성혐오와 민주주의는 함께 갈 수 없다 

이지원은 수백 만의 시민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요인들 중 하나로 '불평등'에 대한 감각을 꼽았다. 대통령의 권력을 등에 업은 비선 실세들이 정·재계 인사들이 야합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득해왔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일깨워진 '불평등'의 감각이 시민들을 광장으로 모이게 한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탄핵을 가결시킨 것으로 촛불의 위대함은 이미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그가 묻고 싶은 것은 "'불평등'에 항거하기 위해 모인 2백만 촛불의 광장은 과연 얼마나 평등했는가?"라는 것이다.

11월 26일, DJ DOC의 <수취인분명>은 페미니스트들의 문제제기와 반대로 광장에서 공연되지 못했다. 공연이 취소된 데 대해 페미니스트들은 '꼴페미'라는 낙인과 함께 '검열' 혹은 '갑질'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 사건에 대해 이지원은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평등과 민주주의, 인권에 대해 더 폭넓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원색적인 비난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녀는 "박근혜와 그의 비선 실세를 비판할 때 그녀들의 여성성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라고 단언했다. 박근혜의 여성성을 공격하는 것은 더 많은 분노들을 고양시키고 더 많은 촛불을 광장으로 끌어올 수 있겠지만, 결국은 실패한 전략이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당위로서의 평등을 말하는 것은 쉽지만, 평등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과정은 험난하다. 이지원은 이번 촛불집회에서 퇴진행동 본부 측 사회자가 "모두 일어나 주십시오"라는 말 대신 "일어나실 수 있는 분들만 일어나주십시오"라고 말한 것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라고 지적했다. "우리의 광장이 그 어떤 소수자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은 울림"을 주었다는 것이다.

불평등과 차별, 배제에 관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듣는 일은 불편함을 수반한다. 심지어 박근혜 퇴진과 같은 정국에서 불평등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대의를 망치는 일로 치부되기도 한다. 이지원은 광장에서 '페미니스트 존'을 운영하면서 가장 많은 들은 말이 "박근혜 퇴진이라는 대의가 중요한데, 지금 굳이 페미니즘 얘기를 해야 되겠니?"라는 꾸짖음이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그녀의 답은 단호하다. "여성혐오와 민주주의는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평등의 헌법적 가치 회복은 "소수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예민하게 인지하고 스스로를 성찰하고 반성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평등, 인권에는 위계가 없다. 그녀는 "박근혜의 퇴진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것이 페미니즘이다"라고 강조했다.

청소년들을 주권자로 대우하라

▲ 촛불시위 현장 모습 ⓒ 노순택

10대 때부터 청소년운동을 해온 쥬리는 "청소년의 입장으로 보자면 이 사회는 어른들에 의한 독재사회와 다름없다"고 본다. 청소년에게는 참정권, 정당에 가입할 권리, 선거운동을 할 권리, 출마할 권리 등 주권자로서의 권리가 모두 박탈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광장에 나온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는 주권자로서 대우받을 권리를 정부와 비청소년 유권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들어야 한다. 하지만, 광장에서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시각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모 교육대학교에서 들고 나온 피켓에는 "애들아, 민주주의는 선생님들이 지킬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쥬리에 따르면 이 말은 "'우리가 대신 요구할 테니 너희는 빠져 있어도 된다'라는 배제의 효과를 갖는 것이다. "청소년'마저' 나온 집회"라는 표현도 마찬가지다. 이런 표현은 청소년이 집회시위의 장에 등장하는 것이 예외적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적 사실과도 다른 것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서부터 민주화운동, 노동운동, 세월호에서부터 국정교과서까지 각종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집회시위에 청소년들은 언제나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쥬리는 "어떤 집단의 정치적 주체로서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사회적 기억의 뇌리에서 삭제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고 묻는다.

그는 청소년의 시위참여가 더 이상 신기한 일로 치부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청소년을 배제하는 또 다른 표현으로는 "학생들도 있는데 폭력시위하면 안 되죠"가 있다. 이 말 역시 청소년을 광장의 동등한 주체로 보지 않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특하다'는 어른들의 칭찬도 청소년들에게는 하등한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어른들, 청소년의 입장에서 보자면 비청소년이 청소년에게 무심코 내뱉는 '선의'의 말들이 청소년들에게는 심각한 차별과 배제, 억압의 언어가 될 수 있다. 어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와 청소년들이 말하는 민주주의가 다르다는 것을 구별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광장 안의 '불화'를 해결하는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쥬리는 2016년 광장은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만이 아니라, 다양한 요구들과 논쟁들이 함께 기억되어야 하며, "특히 청소년들의, 주권자로 자신들을 대우하라는 목소리는 꼭 기억될 수 있기를 소망"했다. 
 
중앙에서 지역으로의 권력 이전은 어떻게 가능할까

언론의 관심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폭로하기와 촛불집회에 쏠리면서 AI, 지진 등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은 덜 중요하게 다뤄지거나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주온은 박근혜 퇴진 정국 속에서 더 심화되고 있는 중앙과 지역의 불평등 문제, 권력과 정보의 독점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제시했다.

김주온은 중앙과 지역의 불평등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본다. 도시 안에서의 권력 문제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평등 문제가 그것이다. 우선 도시 안에서의 권력은 누가 도시의 주인인가라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단적으로 도시의 주인이 자동차인가, 사람인가라고 물을 수 있겠다. 최근 독일의 진보정당은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는 난민 컨테이너 촌을 포용하면서 베를린을 녹색도시로 만들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는데, 김주온은 한국에서도 "정치적으로 합의하고 결단하면" 녹색 정책의 실현은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권력의 문제는 도시 안에서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에도 존재한다. 도시의 밤을 밝히는 전기들은 다 어디에서 오는가. 김주온은 도시의 빛은 지역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기만이 아니다. AI로 인해 셀수도 없이 많은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고 있는데, AI 문제는 박근혜 퇴진 정국 속에서 피해상황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경주를 포함해서 경북 일대에서는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데도 지난 9월, 경주 지진 때 수동으로 멈춰놓았던 핵발전소 4기의 재가동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원장 직권으로 통과되었다. 그녀는 "사고가 난 이후에는 대책이 없다"라며, "시시각각 흐르고 있는 시간이 너무도 혹독하게 느껴진다"라고 토로했다.

도시에서의 안전한 삶, 지역의 에너지 문제는 박근혜로 대표되는 낡은 정치를 바꾸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김주온의 주장이다. 정의와 민주주의 차원에서 소수에게 독점된 정보와 권력은 중앙에서 지역으로 이전되어야만 한다.

"사용하면 안 되는 표현들에 대해 배웠다"

▲ 서울 광화문 광장 박근혜 퇴진 캠핑촌 모습 ⓒ 노순택

차헌호는 구미에서 올라온 비정규직 노동자로 11월 1일부터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시국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이번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그가 답답함을 느끼는 것은 "광장에서 노동자들이 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가"라는 것이다. 죽어라고 일해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일자리도 지켜낼 수 없고, 가족과 함께 인간답게 살 수 없는 문제 때문에 광장에 나왔는데, 왜 노동자들은 광장에서 더 선명한 목소리를 내면 안 되는 것인지 안타깝다. 그는 그 이유를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면 불법, 빨갱이 집단들이라고 보는 시각이 우리 안에도 있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추측한다. 민주노총을 폭력집단으로 매도하는 언론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과격한 언어나 구호를 불편해 하는 시민들의 시선 때문에 광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일에 위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박근혜 퇴진 정국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쫓겨나거나 죽어가고 있다. 얼마 전 창원 한국 지엠공장에서 360명이 계약해지를 당했고, 당진 현대제철 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한 분이 사망했다. 2015년 민중총궐기 대회를 주도했던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이 선고되었다. 이러한 일들은 박근혜 정권이 흔들려도 지배계급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으며, 노동자들의 현실 또한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뜻한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차헌호는 "싸움은 지금부터"이며, 노동자들이 앞서서 싸울 테니 노동자들을 지지해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한다. 왜 저렇게 오랫동안 노동자들이 길바닥에서 먹고 자며 싸우고 있는지, 삼보일배를 해야만 하는지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는 것이다. 노동자들 또한 달라져야 한다. 시민들을 설득하고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언어를 개발해야 한다. 그는 자유발언대 등에 나서면서 "사용하면 안 되는 표현들에 대해 많이 배웠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그에게 2016년의 광장은 하고 싶은 말들을 자제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 했던 광장으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말하는 법을 새롭게 배우는 광장. 그것은 비단 노동자인 차헌호에게 해당되는 일만은 아니다. 촛불은 거대하고 위력적이었지만, 광장의 정치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광장에서 '평등'과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말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페미니스트들은 '혐오'의 문제에 왜 그토록 민감한지, 청소년들은 왜 '보호'를 '배제'로 받아들이는지, 광장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노동자들의 처지는 어떠한지 먼저 듣지 않고서는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배제와 차별, 혐오를 넘어서는 광장의 정치는 이렇듯 우리 안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그것은 청와대의 박근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 권력으로 작동하는 박근혜, 우리 안의 박근혜를 끄집어내고 쫓아내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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