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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만 기자의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만들어 주세요

자식 잃은 '미친 엄마'가 만든 기적
[스토리펀딩 연속기획 ②] 연극 <이등병의 엄마>가 대한민국 군 인권을 바꾸겠습니다

16.12.16 05:37 | 글:고상만쪽지보내기|편집:손지은쪽지보내기

'연극 <이등병의 엄마> 표를 사주세요' 스토리펀딩을 시작한 지 어느덧 2주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애초 11월 1일에 시작하려고 했던 이 펀딩이 계획보다 한 달이나 늦은 12월 1일에 시작된 데에는 '말 못할 사연이' 있었습니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를 제작하기 위한 스토리 펀딩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후 함께할 분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만난 분이 배우 맹봉학님이었습니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속 '삼순이 아버지' 역으로  널리 알려진 맹봉학님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사태 당시 촛불을 들고 권력의 횡포에 맞섰던 분입니다.

▲ 배우 맹봉학. 드라마속 삼순이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개념 배우. 성북연극협회장으로도 활동중이다. ⓒ 맹봉학

결국 이 때문에 수백만 원의 벌금형까지 감수해야 했던 행동하는 정의. 평소 군 의문사 문제에 공감하고 있던 맹봉학님 답게 이 연극의 연출 감독을 맡아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앞으로 군 의문사 유족분들이 무대에서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표현하실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분은 음악 감독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안을 하기도 전에 먼저 자원하고 나선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디어협동조합의 임대웅 국민라디오 피디님입니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임대웅 피디님은 제가 진행해온 팟캐스트 '고상만의 수사반장' 담당 피디로서 군 의문사의 아픔에 늘 공감해 주신 분입니다.

이렇게 진용을 갖춘 후 저는 10월 11일, 군 의문사 유족분들을 국회 회의실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연극 <이등병의 엄마> 제작 계획을 보고했습니다. 자식을 잃고 억울하다는 말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한 그 서러움을 마음껏 토로할 자리를 함께 만들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내심 불안했습니다. "아니 우리가 무슨 연극을 해요?"라며 내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뜻밖이었습니다. 어머니들의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너도 나도 연극에 참여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천불이 나는 그 사연을 국민에게 하소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분은 대사가 있는 연극은 자신없지만 대신 노래는 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켜주지 못한 아들을 생각하며 혼자 부르던 노래가 있다며, 그 노래를 해도 되냐고 하셨습니다. 또 어느 어머니는 "나도 하고 싶은데 먼저 눈물부터 나올 것 같다"며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 의무복무중 사망한 군인의 명예회복을 촉구하기 위해 관련 법안을 제출하던 날. 군 유족이 국민에게 법안 통과에 함께해 달라고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고상만

그래서 말씀드렸습니다. 노래든, 눈물이든 어머니들이 하고 싶은대로 다 하시면 된다고 했습니다. 사연을 말하든, 아니면 노래와 눈물로 말하든, 모든 관객이 넉넉히 안아주실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이내 밝아진 어머니들의 얼굴. 그렇게 연극 <이등병의 엄마>가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암초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게이트'였습니다. 이 일이 스토리펀딩에 영향을 줄지 몰랐던 것입니다. 애초 펀딩 개시일인 11월 1일, 그날 모든 국민의 관심은 서울중앙지검을 향해 있었습니다. '문제의 인물' 최순실씨가 전날 검찰에 출석했고, 이날 긴급 구속이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스토리펀딩을 시작하는 것이 현명한 판단일까 고심했습니다. 펀딩을 홍보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였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내린 결론, 일주일만 연기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스토리펀딩을 담당해 주시는 선생님께 연락을 했습니다. "일주일만 연기해 주실 수 있냐"고 하니 답변은 뜻밖이었습니다.

"그렇게 해 드릴 수는 있는데, 다만 이 일이 1주일 가지고 해결될까요?"

불길한 그 분의 우려처럼 일주일 후, 이번에는 상황이 더욱 커졌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문이 불을 지르면서 이번엔 100만 명이 넘는 촛불집회로 이어진 것입니다.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토리펀딩을 시작하는 것이 무리일 것 같았습니다.

결국 다시 연기한 때가 12월 1일. 그때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는 일이 벌어진다 해도 무조건 시작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씨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박근혜의 탄핵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 정말 답답하기 그지 없었던 그날 밤. 모든 분들이 탄핵을 위해 애를 쓰는데 이 스토리펀딩을 홍보하는 것이 양심상 옳은 일인가 싶었기 때문입니다.

여하간 이런 우여곡절 끝에 감동적인 하루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의 도움과 성원으로 스토리펀딩 연극 <이등병의 엄마>는 매일 매일 새로운 후원자 분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함께하는 분들의 후원으로 매일 매일 새로운 희망이 싹터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공감해 주시는 후원자분이 남겨준 댓글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동안 내보낸 기사를 본 후 남겨 주신 공감 댓글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글입니다.

'아들이 군에 있습니다. 군대 이야기 나올 때마다 남 일 같지 않습니다. 다 내 아들 같은데 사고를 당한 부모님들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힘내시고 다 잘 되길 바랍니다.'

또 어떤 분은 이런 글을 남겨 주시기도 했습니다.

'남동생 군대 보냈다가 자살 시도했다는 소식 들었을 때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어쩌다 보게된 이 글을 지나칠 수 없어서 후원하고 갑니다.'

하지만 공감해 주시는 분과 달리 무턱대고 제 스토리펀딩을 비난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글입니다.

'이 새끼야. 창작 소설을 쓰니? 너 사기꾼으로 보내 버린다. 나 원 어이가 없어서.'

솔직히 기분이 좋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이 민주주의 근간이니 또 이해합니다. 하지만 이런 욕설 글보다 더 마음에 걸리는 글은 따로 있습니다. 과거의 일부 사례를 가지고 오늘 이야기한다는 비판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당한 일이 아니라고 비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과거의 비극이 오늘 이만큼 바뀔 수 있었다면 그것은 결코 그냥 얻은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군, 엄마를 '미친 여자'로 만들다

그 대표적인 일화가 대만에서 있었던 사례입니다. 1995년 6월 15일 중국 바다 위에서 조업을 하던 어부들의 그물에 숨진 군인의 시신이 끌려 올라왔다고 합니다. 숨진 군인의 이름은 '후앙궈장', 대만 국적의 의무복무중 해군 사병이었습니다.

그러자 대만 군 당국은 유족에게 아들의 사망 원인을 자살이라고 통보합니다. 군 복무에 염증을 느낀 그가 바다에 투신하여 자살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군대와 전혀 다르지 않은 결과입니다. 하지만 후앙궈장의 엄마는 군 당국의 통보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숨진 아들의 두개골에 긴 쇠못이 박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봐도 타살의 정황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평범한 주부였던 '후앙궈장의 엄마' 첸피에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갑니다. 아들의 의문사를 밝혀달라며 대만 군 당국과 맞서 싸웠습니다. 그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왔는지 알 수 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 순직 처리를 거부당했던 군인이 부모의 노력으로 순직 안장되던 날, 생전 복무하던 부대의 간부가 조문하고 있다. ⓒ 군사연

대만 군 당국이 부른 이 엄마의 이름은 '첸피에'가 아니었습니다. '후앙마마'라는 이름이었습니다. '황씨 성을 가진 아이의 엄마'라는 뜻이었는데 그 이름 뒤에는 '미친 여자'라는 단어가 뒤따랐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후앙마마는 자신의 항의를 외면하는 대만 국방부를 끊임없이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군인들은 이 엄마의 손에 수갑을 채운 후 끌고 나와 위협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후앙마마는 굴하지 않았습니다.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던 대만의 군 의문사 유족을 모아 국방 장관이 가는 곳마다 쫓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군 인권 개선과 어느 군인도 더 이상 죽지 않게 하라며 싸웠습니다. 그렇게 싸운 지 5년, 마침내 대만 군 당국이 이 '미친 여자'에게 굴복한 것입니다. 군 장병의 인권을 감독하는 '관병 권익보장위원회'를 구성한 후 놀랍게도 이 기구의 자문위원으로 그들이 지칭한 '미친 여자'를 위촉한 것입니다.

이후 후앙마마의 노력 끝에 드러난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의무복무제를 채택하고 있던 대만에서 군내 사망자 숫자가 획기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1995년 한해에만 408명의 군인이 목숨을 잃었으나 4년 후인 1999년에는 270여 명으로, 다시 3년 후인 2002년에는 절반 수준인 200명으로 줄어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은 다시 그 절반 수준으로 군 사망자 숫자가 줄어든 것.

▲ 국립 대전 현충원. 십 수년이 지나서야 안장된 이등병의 죽음. 이 억울한 죽음을 언제까지 되풀이할 것인가. ⓒ 군사연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후앙마마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결과라고 저는 봅니다. 미친 여자라는 비난을 받을 정도로 치열하게 싸운 그 덕분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연극 <이등병의 엄마> 스토리펀딩 기사가 과거의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오늘 벌어지는 일입니다. 또한 누군가는 말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일부 군 부적응자 사례인데 이를 일반화하면 안 된다"는 지적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거 아십니까! 만약 지금 좋아진 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변화를 위해 누군가는 '님 모르게 치열하게 싸워 왔다는'사실 말입니다.

세상에 그냥 주어지는 권리는 없습니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는 그러한 노력을 계속 이어가고자 '오늘 또 시작하는 투쟁'입니다. 더 이상 누구도 허망하게 아들을 잃고 억울하게 울부짖는 대한민국이 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함께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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