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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광장 토론] 박근혜 퇴진, 그 후 우리는?

'어른들이 미안해' 피켓, 불쾌했습니다
[박근혜 퇴진, 그 후 우리는?⑭] 청소년도 주권자입니다

16.12.14 11:17 | 쥬리 기자쪽지보내기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 후,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까요? 광화문 광장의 '퇴진 캠핑촌'은 촛불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대안 토론 광장을 엽니다.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와 <광화문 퇴진 캠핑촌 광장토론위원회>가 공동기획했습니다. [편집자말]
▲ 촛불시위 현장 모습 ⓒ 노순택

서울 광화문 광장을 밝힌 촛불이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막강한 '비선실세'에,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숨기려는 정부에, 돈과 정책이 거래되는 정경유착에... 따라서 '박근혜 퇴진'은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외치는 아우성이다.

주인으로 인정받고 대우받는다는 건 사실 그대로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에 따라 내린 판단이 존중받고 반영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통령이)박근혜인 줄 알고 뽑았더니 최순실이었다."

국민들은 당연히 보장받고 있다고 생각한 투표권이 참정권으로 의미가 있었는가를 회의하고 있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이유도 우리가 위임한 권한은 우리가 회수할 수 있다고 외치는 것이다.

광장에 결집된 분노는 "앞에서는 우리가 주권자라고 했지만 우리는 주권자로 대우받지 못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앞에서'조차' 주권자로 지칭되지 못하는 집단이 있다. 만 19세 미만으로 '성숙한 시민'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청소년들이다.

이들은 누구나 1인 1표씩 평등하게 행사할 권리, 정당에 가입해서 정치적 결집을 할 권리, 선거기간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에 대한 투표를 호소할 권리, 그리고 집단을 대의하여 정치 활동을 하겠다고 출마할 권리 등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침범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국민(주권자)으로서의 권리를 모두 누리지 못한다.

자신은 찬성하거나 반대할 기회도 없었던 사람을 대의자로 인정해야 하는 사람들, 법을 만들거나 바꾸지는 못하지만 법을 준수할 의무는 지는 사람들, 정당에 가입하거나 선거운동을 하면 불법이 되는 사람들, 이들은 청소년이다. 청소년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 사회는 어른들에 의한 독재사회나 다름없다.

정치적 주체로서 광장에 선 청소년들의 '박근혜 퇴진' 목소리는 '우리도 정치에 영향을 끼치는 주권자일 수 있고 그렇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요구이다.

거리에 청소년 나오니 안타까운 일? 그건 아니다

그 요구는 정부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지만, 광장에 함께 선 비청소년들, 청소년을 배제하는 정치를 유지하는데 동의해 온 비청소년 유권자들에 대한 요구이기도 하다. 나는 이 시국에 열린 광장들에서 결집을 목격한 만큼이나 불화도 목격했다.

"얘들아, 민주주의는 선생님들이 지킬게."

모 교육대학교에서 들고 나온 피켓 문구다. 예비교사라는 위치에서 나온 발화였다. 이 발화는 비청소년이 청소년의 정치적 의견과 이해를 대변할 수 있다고 전제하는 현행법의 참정권 연령제한과 맥락을 같이한다. 어른들이 요구하는 민주주의가 과연 청소년에게도 민주주의일 수 있을까? 청소년들을 위한 듯 표현했으나, '당신이 요구하는 것을 나도 함께 요구하겠다'는 연대의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대신 요구할 테니 너희는 빠져있어도 된다'는 배제의 의미를 담은 말이다.

우리는 흔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하면 '청소년들조차' 나오겠냐"고 말한다. 언론도 마찬가지. "청소년까지 나오는 집회"라고 표현한다. 이런 말 속에는 안타까운 상황이 만들어졌으니 어른들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국민 모두의 의견이 일상적으로 정치에 잘 반영되고 인권침해를 당할 일이 없어 굳이 거리에서 시위할 필요가 없는 사회라면, 더없이 좋은 나라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 거리에 청소년이 나오는 일을 '안타까운 상황'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청소년의 의견은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이 거리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그 나라와 학교, 가정의 탄압 및 규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청소년 권익을 되돌아보게 하는 긍정적인 상황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서부터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각종 사회정의를 요구하는 집회시위에는 청소년들이 함께했다. 이 나라의 역사를 위해 청소년들도 함께 싸워왔다는 거다. 어떤 집단의 정치적 주체로서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사회적 기억의 뇌리에서 삭제된다는 문제가 있다. 제발 다음에 열릴 광장에서는 청소년들의 참여가 처음 보는 신기한 일로 여겨지지 않기를 바란다.

학생을 왜 보호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여기나

▲ 서울 광화문 광장 박근혜 퇴진 캠핑촌의 모습 ⓒ 노순택

"학생들도 있는데 폭력시위하면 안 되죠."

촛불집회 현장에서 들은 '평화적 시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되짚어봐야 한다. '폭력시위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논리로 청소년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거다. '학생'은 왜 어른들에게 보호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여기냐이다. 

어른과 마찬가지로 청소년에게도 의견이 있다. 집회에 참가한 청소년 중에는 현행법의 한계를 넘지 않고 집회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고, 연행과 처벌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당사자의 욕구와 무관한 어른들의 보호는 또 다른 억압이고 배제이다.

집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어른들로부터 '기특하다' 말도 그렇다. '기특하다'는 말이 왜 잘못되었냐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무언가를 기특해하려면 그것을 당연한 것이 아니라 신기한 것으로 여겨야 하고, 기특하게 여기는 대상을 그 주체보다 하등한 존재로 간주해야 한다. 반대로 어른을 기특해하는 청소년은 없다.

비청소년이 집회 나온 청소년을 특별한 존재로 대우하거나 챙겨주고 보호하려 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당사자가 평등한 광장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청소년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집회에 함께 나온 동료시민으로서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삶의 경험을 소통하면 될 일이다.

광장에서 어른들은 청소년에게 일방적인 반말은 예삿일이고 심지어 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처음 보는 사이는 존대를 한다. 이게 이 사회의 상식이다. 하지만 청소년을 만나면, 어른들은 때론 상식을 벗어난다. 어른들의 인식 변화와 주의가 필요하다.

피켓문구나 슬로건도 마찬가지다. 유독 청소년을 향해 말하는 형식을 띤 문구만 반말로 작성한다. '어른들이 미안해'란 표현이 좋은 예이다. 또, 얼마 전 고 백남기씨의 사망 직후 꾸려진 서울대병원 농성장에서 함께 농성하던 청소년들이 비청소년 참여자들에 의해 흡연을 폭력적으로 제지당한 사례가 있다. 해당 비청소년 참여자들은 흡연구역에서 흡연하고 있던 청소년들에게 '담배 꺼' 등으로 고성을 질렀는데, 이러한 일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청소년 흡연 규제 자체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고서라도, 고성으로 상대의 행동을 제지하고 위축시키는 것이 광장에 함께 선 사람을, 타인을 대하는 정당한 태도인가를 묻고 싶다. 

끝으로 광장은 무언가를 동일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장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모인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서로가 듣는 공론장이기도 하다. 그 안에는 청소년도 있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가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한미 FTA 반대'에만 머물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2016년 촛불시위도 '박근혜 퇴진'만을 기억해서는 안 된다. 특히 청소년들이 주권자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 꼭 기억되길 바라고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쥬리는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과 학생인권상담소 '넘어'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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