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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광장 토론] 박근혜 퇴진, 그 후 우리는?

탄핵 이후, 광장 정치는 지속돼야 한다
[박근혜 퇴진, 그 후 우리는⑪]

16.12.10 15:14 | 이동연 기자쪽지보내기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 후,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까요? 광화문 광장의 '퇴진 캠핑촌'은 촛불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대안 토론 광장을 엽니다.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와 <광화문 퇴진 캠핑촌 광장토론위원회>가 공동기획했습니다. [편집자말]
▲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탄핵소추안이 상정돼 가결됐다. 당시 <오마이뉴스> 메인 화면 갈무리. ⓒ 김예지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300명 중 234명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78%라는 가결 찬성 비율은 탄핵을 원하는 81%의 민심을 반영한 것으로 국민의 힘, 촛불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었다.

국회탄핵의 가결의 결과는 전적으로 국민의 힘에 따른 것이다. 박근혜는 국회 탄핵 결정 이후 국민담화문에서 사실상 자발적 퇴진을 거부했다. 박근혜를 권좌에서 법적으로 끌어내리기 위해서는 이제 최대 90일간 헌재의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

법적 시간으로서 헌재의 판결을 국민과 민심은 그냥 기다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주말마다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수백만의 촛불은 오로지 박근혜의 탄핵을 위한 대의정치와 사법부의 결정에만 호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회의 탄핵 가결은 촛불의 최소한의 원칙에 부합한다. 헌재의 결정이 앞으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헌정사에 중대한 사건이 될 것이다. 그러나 광장에 나온 촛불 민심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아마도 더 나은 사회로 가기 위한 경과적 에피소드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민심은 이미 박근혜라는 통치자를 역사의 기억에서 지운지 오래다.

'광장의 시간'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

그렇다면 성난 민심은 과연 광장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그것은 아마도 유신체제의 종말, 혹은 새로운 사회체제로의 리셋일 것이다. 유신체제의 종말, 그것은 패권적 정치권력의 단절로서의 은유적 표현만을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박정희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가족적' 유신권력의 종말의 의미를 넘어서 유신체제가 키우고 재배하고 육성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숙주들, 즉 한국사회의 부패한 기득권의 숙주를 청산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지난 50년간 유신체제를 재생산하는 데 공모한 정치권력, 재벌, 관료, 사법권력, 학벌, 지연, 인맥의 모든 낡은 체제에 대한 청산이다.

유신체제의 종언과 새로운 사회체제로의 리셋은 그냥 주어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그냥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직접 앞당겨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마냥 의회와 사법의 시간만을 기다릴 수 없고, 국민에 의한 광장의 시간을 지속시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것인 탄핵 이후 광장의 시간이 더욱 필요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신체제의 종언과 새로운 사회체제로의 리셋을 위해 탄핵 이후에 우리는 광장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탄핵 이후 제도 정치권이 할 수 있는 일은 헌재의 판결을 기다리는 것, 그리고 각 정당과 정파들이 차기 대권 구도를 짜는 것이다. 헌재의 판결도 국민의 승리, 정치의 정의를 수호하는 목적이라기보다는 대권을 잡기 위한 명분으로 사용하는 데 그칠지 모르겠다. 정치권은 국회의 압도적 탄핵 가결이 모두 국민들의 엄중한 뜻을 받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박근혜 탄핵이라는 정치적 과정에서만 한정된 말이다.

오히려 정치권의 이후의 움직임들은 촛불의 민심을 집권이라는 최종 텍스트의 레퍼런스 정도로 삼으려는 태도로 돌변할 것이다. 탄핵 이후, 특히 대선 국면에서는 아마도 정치가 민심을 수렴하기보다는, 정치가 민심을 당파적으로 이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할 것이다. 여기서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최형익 역, 비르투출판사, 2012)에서 프랑스 1848혁명 반동의 결과로, 통치 권력의 왜곡된 현실을 언급한 부분을 인용해 보자. 

"이렇게 헌법은 대통령에게 실질적인 권력을 부여해주었다면, 의회에서는 도덕적 권력을 확보해 주었다. 대통령 선출행위는 주권적 인민이 4년마다 한번씩 하는 트럼프 놀이다. 선거에 의해 선출된 의회는 국민과 형이상학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국민과 개인적 관계를 지닌다. 사실 의회는 개별적 대표자들을 통해 국민정신의 다양한 측면을 나타내지만 대통령 안에서는 국민정신 그 자체의 현신을 발견한다.

의회와 달리, 대통령은 일종의 신권을 보유한다. 한마디로 그는 인민의 은총을 받은 대통령인 것이다. 이상과 같은 것이 1848년의 헌법이었다. 이 헌법은 1851년 12월 2일, 머리에 의해 무너진 것이 아니라 모자가 단지 한번 스쳐지나가는 것만으로도 붕괴하기에 충분했다. 그 모자는 다름 아닌 나폴레옹의 삼각 모자였다.

곧 헌법은 어머니의 태내에 있을 때부터 인민에게 겨누어진 총검에 의해 보호받았으며, 총검에 의해서만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존경할만한 공화파들"의 선조들은 그들의 상징인 삼색기를 유럽 전체에 전파했다. 그들은 차례로 또 하나의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저절로 전 유럽대륙을 여행했으며, 한층 새로워진 예정을 가지고 프랑스에 돌아와서는 프랑스 행정구역의 절반 이상에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계엄령이었다."

'유신체제 종말'은 어떻게 가능한가

▲ 9일 오후 남천동 새누리당 부산시당사 앞에 모여있던 100여 명의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안 가결 소식에 기뻐하고 있다. ⓒ 정민규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는 1848년 프랑스 노동자 계급 혁명에 의해 정초된 헌법이 대통령의 일방적 권한에 의해 어떻게 무력화되는지를 잘 포착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혁명을 통해 그토록 원했던 것이 만인의 투표권이었지만, 인민의 투표로 결정된 의회는 인민을 대변하지 못했다. 인민의 은총을 받은 대통령이 행사했던 권한은 오로지 헌법 파괴, 의회 해산이었다.

인민 위에 군림하는 의회, 의회 위에 군림하는 대통령, 이것이 노동자들이 피를 흘리며 원했던 민주주의는 아니었을 것이다. 인민을 기만한 부르주아 공화파의 기만적인 처세와 인민이 호명한 루이보나파르트의 기만과 독재술의 관계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나폴레옹은 독재를 통해 헌법을 단숨에 무력화했다. 이 책에서 마르크스는 나폴레옹의 정치 기술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마르크스의 책에서 우리는 대선을 앞두고 제도 정치, 의회 정치의 어두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촛불로 시작된 시민혁명, 혹은 명예혁명의 결과가 고작 전제군주 나폴레옹 1세의 조카인 루이 보나파르트의 등극과 같은 비극이 되어서는 안 된다. 유신체제를 형식적으로 종식시킬 수 있는 정권교체, 죽 쒀서 개에게 주는 정치적 반동을 제어하는 것의 의미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시민들은 원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유신체제의 종말은 실제로 어떻게 가능한가?

첫째, 가장 중요한 것은 세월호의 사건의 진상규명이다. 이는 재난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자 국가와 권력의 존재를 묻는 것이기도 하다. 세월호 재난과 그 재난을 더 끔찍하게 만든 통치의 재난 안에는 유신체제 유령의 사이비 주술이 압축되어 있다.

둘째,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고 공평하게 살 수 있는 법적·정치적·사회적·문화적 체제의 구성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벌의 해체·친일파 청산·기득권의 박탈이 필요하다. 법적·제도적 강제에 의한 재벌의 지배구조를 해체하고, 하청 노동자·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권 복원이 필요하다. 학벌주의와 인맥·지연 등 적폐를 없애기 위한 사회개조 프로그램이 시작되어야 한다.

셋째, 시민정부의 수립이다. 국가의 권력의 제도적 정당정치에 맡기지 말고, 직접민주주의와 시민 참여정치의 장을 확대할 수 있는 정당-시민 정치의 연합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청년세대를 위한 대안사회의 실질적인 내용들에 대한 대화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헬조선을 극복하는 사회, 여혐의 자명성을 넘어서는 사회, 학력과 배경의 결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회. 다양한 사회적 주체들이 공유하고 공존하는 사회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탄핵 이후에 광장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직 이러한 문제들이 아직 덜 논의되고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술인들이 먼저 광장의 최전선에서 탄핵 이후의 한국사회에 대해 토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광장의 시간은 의회의 시간, 헌재의 시간보다 오래 지속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동연 시민기자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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