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한국의 4대강 사업, 미국에선 어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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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술, 금강에 산다

물고기 30만 마리 떼죽음, '골든타임' 지킨 남자
[개고생 취재 나선 금강요정 김종술④] 기레기 판치는 '죽은 언론 시대', 김종술이 있어 다행

16.12.08 05:35 | 글:이철재쪽지보내기|편집:김예지쪽지보내기

개고생 취재에 나선 기자가 있습니다. 월급 받는 기자는 아닙니다.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금강을 지켜온 그를 뭍사람들은 '금강요정'이라고 합니다. 끝까지 취재하는 게 기자입니다. 김 기자의 '개고생' 취재를 통해 기자란 무엇인가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 김종술 시민기자. 그는 매일 금강으로 출근한다. 월급주는 신문사 사장은 없지만 오늘도 금강을 기록하기 위해 호주머니를 털어 강변을 거닌다. ⓒ 김종술

기레기 시대, 그는 '별종' 기자다. 차 트렁크에는 커피, 라면을 끓여 먹을 가스레인지가 있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1~2분이면 잠자리를 마련할 1인용 텐트도 있다. 취재수첩과 사진기는 기본이고 삽과 장화도 가지고 다닌다. 평상복도 허름한 작업복이다. 그는 몇 날 며칠이고 강에 살면서 취재하고, 사진 찍고, 삽 들고 물속으로 들어가 특종을 캐는 전천후 기자이다.

그는 금강 물고기 떼죽음을 끈질기게 고발하면서 '금강의 요정'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사실 그 전에도 집요했다. 2007년 공주 지역 언론사 기자로 석산개발 문제를 다루며 혼자 싸울 때였다. 재정 문제로 개발업자들과 공생하는 지역 언론들이 많은데, 그는 석산개발로 피해를 입는 주민 편에 섰다. 어릴 적 고향에서 날아드는 석산의 돌가루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도 한몫했다. 

그의 고향집 뒤는 채석장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마루에 하얗게 뒤덮인 돌가루를 쓸어냈다. 채석장에서 폭탄이 터지는 날이면 돌가루가 심하게 날려 막걸리로 마루를 닦아내기도 했다.

온 동네, 집집이 그랬다. 날이면 날마다 돌가루와 씨름했다. 훗날 고향집 이웃들이 정밀 건강검진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는 깨달았다. 아버지의 죽음이, 평생 호흡기 질환을 앓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석산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그가 석산 문제 취재에 필사적이었던 이유다.

'석산 전문' 기자가 된 사연

▲ 대전MBC시사플러스 '석산이 뭐길래' 화면 갈무리

"석산개발의 불법성을 알려면 법부터 공부해야 했기에, 하루는 관청에 가서 관련 법이 담긴 책을 대출받으려 했습니다. 공무원은 책을 대출해줄 수는 없고, 열람은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그 자리에 앉아서 7~8시간 동안 취재수첩에 법조문을 기록하고 있으니까, 공무원이 결국 항복했습니다. 자기 퇴근시간이 지났거든요. 하하. 하루 동안 대출을 허락했습니다."

사익을 챙기는 사람들의 나팔수가 '기레기'다. 따라서 자기가 알지 못하는 내용을 받아쓰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그는 달랐다. 법률책을 달달 외웠다. 공주에 머물지 않고 전국적으로 취재 반경을 넓혔다. 태백, 경산, 장성, 청양 등 석산 개발 지역 40~50곳을 방문했다. 공주 석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른 지역 사례를 알아야 했다. 

결국 그가 이겼다. 아니, 공주 지역의 석산 개발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승리했다. 그가 끈질기게 취재하기 시작한 지 2년 만에 공주시는 석산 개발 계획을 중단했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서 석산개발업자들과 돌가루를 뒤집어쓴 피해 주민들과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데, 대부분 주민들이 지역개발논리에 따라 이삿짐을 쌌다. 주민들이 이긴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개발 업자의 협박과 회유도 많았다. "밤길 조심해"부터 "광고를 주겠다"는 전화에 이르기까지. 잠시 눈만 질끈 감으면 떼돈이 들어올 수도 있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승리가 확정된 뒤에 주민들이 감사패를 전달하면서 소액의 격려금을 준다고 했을 때도 그는 손사래 쳤다고 한다.

"그 다음 날, 경찰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혹시 감사패와 함께 돈을 받지 않았냐고. 그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바른 언론인의 길을 가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었습니다."

석산 기자에서 4대강 기자로

▲ '낙동에 살어리랏다' 탐사보도팀이 지난해 8월 24일 오전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서원앞 낙동강에서 투명카약을 타고 녹조 탐사활동을 벌였다. '금강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가 낙동강에서 뜬 녹조물을 뿌려보고 있다. ⓒ 권우성

그는 석산 전문 기자가 됐다. 요즘도 전국의 석산 싸움 현장에 자문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석산 전문 기자가 4대강 전문기자로 탈바꿈하면서 그의 겉모습도 바뀌었다.

2009년 8월, 당시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의 마스터플랜을 끝내고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하고 있었다. 사실 말이 마스터플랜이지 22조 원 규모의 사업 계획을 단 6개월 만에 끝낸, 전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을 수 없는 '졸속 플랜'이었다. 당시 필자는 4대강 범대위 소속으로 국민들이 4대강 사업을 직접 검증하는 '4대강 국민검증단'을 조직하고 지원했다.

40여 명의 4대강 국민검증단은 낙동강, 한강에 이어 금강을 찾았다. 세종보 예정지, 합강리, 공주보 예정지 등을 돌며 금강에서 진행하려는 4대강 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공주시 고마나루 부근의 황금빛 모래와 여울진 맑은 물은 지금도 잊지 못 한다.

이때 지역 언론사 기자들도 함께했다. 여기에 김종술 기자도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당시 찍은 사진에서 그를 발견했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말쑥하게 차려입고 한쪽 손에 수첩을, 반대편에 카메라를 메고 있는 이가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데 약간 시간이 필요했다. 현재의 그와는 사뭇, 아니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금강에 맞게 진화한 김종술 기자

▲ 2016년 8월 23일 오후 충남 부여군 금강 백제보 상류 2km 지점 왕진교 일대에서 오마이뉴스 김종술 시민기자가 녹조가 낀 강물을 퍼올리고 있다. ⓒ 이희훈

사각진 얼굴과 웃는 듯 날카로운 눈매가 아니었다면 사진 속 인물이 '금강의 요정' 김종술 기자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2004년부터 공주로 내려와 당시 지역 언론사를 운영할 때만 해도 그는 꽤 호남형이었다. 하지만 금강에 깃들어 산 지 6~7년 만에 그는 말 그대로 '산적' 같이 변했다. 지금의 김종술 기자는 현장을 돌아다니기에 가장 최적화된 몸으로 진화(?)했다.

현장을 뛰는 사람들은 안다. 아무리 모자를 쓰고 선크림을 잔뜩 발라도 무심한 태양은 검은 얼굴을 더욱 검게 만든다. 제때 뱃속으로 끼니를 밀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배는 극한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지방을 비축했다. 뱀에 물리고, 벌에 쏘이고, 공사 관계자들에게 갖은 욕설과 폭행을 당하면서도 금강의 현장을 누비는 김종술 기자.

나는 그와 3번 집중 인터뷰를 했다. 두 번은 4대강 논문과 보고서 작업을 위해서였고, 한 번은 SBS 물환경대상 현장 실사 때였다. '진실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정의로운 기자', 이것이 그간 내가 김종술 기자에게 받은 느낌이었다.

'진실을 추구하고 정의로운' 삶을 살면 우리 사회에서 '별종' 또는 '이단아' 취급받기 쉽다. 보통의 인내와 강심장 아니면 감당키 고난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김종술 기자의 삶은 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의 삶의 원칙을 지키며 불편부당함에 타협하지 않았다.

그는 지역에서 보기 드문 환경전문 기자다. 중앙 언론사도 환경전문기자를 없애는 추세라는 점에서 그는 존재 자체로 부당한 개발 세력에게 커다란 압박거리다. 그는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전문성을 추구했다. "지역 기자는 취재 분야가 따로 없었는데, 그러면 전문성을 쌓을 수 없었다"는 것이 김종술 기자의 말이다.

이명박 골리앗과 김종술 다윗의 싸움

▲ 김종술 시민기자는 때론 출연자로 변신해 4대강 사업의 민낯을 생생하게 증언하기도 한다. 그동안 수많은 언론이 그를 취재했다. ⓒ 김종술

김종술 기자는 2008년부터 지역 언론사를 직접 인수해 운영했다. 그는 기자들이 분야별 전문성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개발업체에게는 광고를 받지 않았다. 기자들의 월급을 올리는 대신 기자윤리 강령(일정 금액 이상 접대 받을 시 해고 등)을 제정하고, 현장 중심의 취재 시스템을 만들어 지역의 역량 있고 양심 있는 기자들을 양성했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이 시작되면서 신문사 광고주들에게도 직간접적으로 압박이 가해졌다. 그는 "당시 지역 언론사 사이에서 '4대강 사업은 금기'였다. 그런데 두 번째 비판 기사가 나가자 광고 압박이 들어왔다"고 회상했다.

그는 젊어서 번 돈을 모두 신문사에 쏟아 부으면서 '이명박 4대강'과 싸움을 벌였다. 막대한 국가권력과 국민 세금을 쏟아 붓는 골리앗과 기껏해야 기자들의 월급을 줄 수 있는 정도의 돈을 갖고 있는 다윗의 싸움. 성서에서는 다윗이 승리했지만, 현실에서는 골리앗이 이겼다.

김종술 기자는 운영하던 신문사를 넘겼다. 그와 함께했던 신문사 기자와 직원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어려운 싸움에서 면하게 해줬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빚까지 떠안았지만, 그는 혼자였다. 배고픔을 혼자 견디면 되는 자유로운 시민기자였다. 하지만 고난은 계속됐다.    

"하루는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사실 돈이 될 만한 물건은 없지만, 4대강 자료가 들어있는 컴퓨터 하드만 훔쳐갔더라고요. 씁쓸했습니다."

현장 사건의 골든타임을 지킨 기자

▲ 금강 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가 충남 세종시 세종보 하류에 위치한 요트 선착장에서 펄밭으로 변해 버린 바닥의 토사들을 손으로 퍼내 실지렁이를 찾고 있다. 실지렁이는 환경부가 정한 환경오염 최하위 등급인 4등급 지표종이다. ⓒ 이희훈

김종술 기자는 거의 매일 같이 금강에 나간다. 차량 기름 값이 없을 때는 걸어 다니면서 4대강 사업 이후의 금강의 변화를 기록한다. 이 때문에 금강 물고기 떼죽음 사건, 준설선 기름 유출 사건, 큰빗이끼벌레, 공산성 문제 등을 가장 먼저 확인하고 이를 보도해 사회적 이슈로 만들었다.

현장의 진실을 알리는 데도 골든타임이 있다. 이 시기를 놓치면 진실을 밝히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가정을 해보자. 만약 2012년 10월 금강에서 발생한 물고기 떼죽음 사건을 김종술 기자가 아닌 행정기관 관계자가 먼저 발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 사건은 4대강 사업의 폐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물고기 폐사 사건 당시 정부 부처는 '폐사한 물고기 수는 몇 백 마리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권이 늘상 4대강 사업에 대해 말하던 것처럼 '별일 아니다'라는 입장이었다. 그 뒤 국립환경과학원은 폐사된 물고기는 6만 마리이며, 원인은 미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정부 부처의 발표는 현장을 지키고 있는 김종술 기자를 통해 깨졌다.

김종술 기자는 폐사한 물고기를 담은 마대자루 숫자를 계산해 60만여 마리가 폐사했다고 밝혔다. 4대강 사업이 아니면 물고기 폐사 이유가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후 충남연구원은 당시 30만 마리의 물고기가 폐사했고, 4대강 사업에 따른 용존산소 부족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김종술 기자가 현장 사건의 골든타임을 지켰기 때문에 진실에 근접할 수 있었다.

돈은 없지만, '가오'가 있는 환경운동가

김종술 기자가 자랑 아닌 자랑하는 것이 있다. 그는 "4대강 관련 기사를 약 800건 썼지만, 단 한 번도 언론중재위에 제소된 적이 없다"며 "발로 취재해 썼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그는 금강 현장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학계 및 언론사 등에서 금강 현장을 조사할 때는 항상 김종술 기자의 도움을 받고 있다.

30여 년 경력의 한 현직 언론사 기자는 김종술 기자를 '언론 독립군'이라 표현한다. 언론들이 제대로 역할을 못하는 시기, 김종술 기자 등이 언론인의 사명을 지켰다는 것이다. 환경운동 단체에서는 '금종술, 낙수근'이라고 치켜세운다. 금강에는 김종술, 낙동강은 정수근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있어 4대강 사업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말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강의 특정 지점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은 많다. 하지만 김종술 기자처럼 강의 전체와 부분을 속속들이 꿰뚫고, 금강 유역 주민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이어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점은 전문 환경단체들도 김종술 기자에게 배워야 하는 부분이다. 만약 4대강 사업 초기부터 김종술 기자 같은 이들이 있었다면 아마도 이명박씨는 4대강 사업을 결코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종술 기자에게도 어려움이 많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 이 때문에 중앙언론사와 환경단체 등에서 그를 채용하겠다는 제안도 했지만, 그는 금강에 집중하고자 이를 거절했다. 금강과 지역의 환경전문기자로 향후에도 현재처럼 활동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금강의 요정'이자 진실을 추구하는 정의로운 기자, 돈은 없지만 '가오'가 확실한 환경운동가. 나는 환경전문기자이자, 환경운동가로서 그 역할을 더욱 확대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는 기레기가 판치는 '죽은 언론의 시대'에 살아남은 '별종 기자'다.

*제5화는 김종술 기자와 함께 4대강을 현장취재 했던 오마이뉴스 김병기 기자의 눈에 비친 '괴물 기자'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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