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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광장 토론] 박근혜 퇴진, 그 후 우리는?

'정치 미꾸라지' 야당이 더 무서운 이유
[박근혜 퇴진, 그 후 우리는⑨] 대중 '진정한 벗'으로 생각하나 냉정히 물어볼 때

16.12.08 14:57 | 글:이광일쪽지보내기|편집:장지혜쪽지보내기

박근혜 대통령이 퇴진 후, 우리는 어떤 공동체를 만들까요? 광화문 광장의 '퇴진 캠핑촌'은 촛불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대안 토론 광장을 엽니다. 이 기획은 <오마이뉴스>와 <광화문 퇴진 캠핑촌 광장토론위원회>가 공동기획했습니다. [편집자말]
▲ 촛불집회 시위 현장의 모습 ⓒ 노순택

갈팡질팡 주류 야당, '정치적 미꾸라지'

우회하지 말자. 촛불정국에서 갈지자 행보를 보이며 비판의 대상이 된 야당은 과연 어떤 정치적 존재인가. 촛불대중은 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이들의 행태를 규정하는 것은 전후 한국정치를 지배해오고 있는 '수구-보수독점의 정당-정치구조'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 가지 역사적 사건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데,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이후 전개된 정국의 흐름이 그것이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17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 "대통령이 뭘 잘해서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하고 싶다"는 등의 발언을 하였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를 선거법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이를 근거로 설왕설래 정치적 공방이 이어졌고 당시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등이 경제실정 등 여타의 탄핵 사유를 끼워 넣어 탄핵소추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면서 이른바 '탄핵정국'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대중은 열거된 탄핵의 사유에 동의하지 않았고 직접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탄핵정국'을 '촛불정국'으로 바꾸어버렸는데, 탄핵소추의 강행이 수구의 정치적 반동으로, 여전히 '비상식, 비정상'이 한국정치를 지배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탄핵이후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는 '열린우리당'의 압승으로 표현되었다. 4월 15일 실시된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어 121석에 그친 한나라당, 9석으로 몰락한 새천년민주당 등을 압도하는,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도 10석을 얻었다.

여기서 의회가 '여대야소'로 개편되었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전후 한국의 정치사에서 다수의 진보적, 급진적인 사회정치세력의 지지를 포함하여, 그처럼 전폭적인 대중적 지지를 받은 정치세력, 나아가 정치권력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진보적, 혹은 급진적인 사회정치세력의 탄핵반대가 노무현 정권에 대한 정치적 지지와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러한 압도적 지지는 노무현 정권이 그토록 역설했으나 구체적 성과가 없었던, 이른바 4대개혁입법으로 상징되는 '상식이 통하고 반칙이 없는 정상적인 국가'에 대한 대중적 기대가 여전히 핵심 과제임을 재확인해 주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은 이런 대중적 지지와 무드를 타고 개혁드라이브를 걸어 '더 많은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오히려 '정치에는 상대가 있다'며 '실용적 상생의 정치'를 말하면서 탄핵으로부터 구해준 대중들의 개혁요구를 외면하였다.

이후 촛불대중은 정치의 객체, 제3자가 되어버렸는데, 그것은 노무현 정권이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이를 계기로 이른바 '노빠'가 아닌 개혁, 진보적인 사회정치세력들이 노무현 정권에 대한 그동안의 직간접적인 지지를 철회하게 되어 결국 노무현 정권은 고립되었고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는 자포자기의 분위기가 압도하였다.

노무현 정권이 개혁의 답보가 여소야대의 소수파 정권으로서의 위상에 있었다는 점을 누차 역설해 왔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탄핵정국을 계기로 다수파가 된 이후 '실용적 상생의 정치'를 명분으로 대중들의 개혁요구, 열망을 외면하고 시간을 죽인 과거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왜 그토록 무능하게 대중의 지지를 죽여 버렸는가.

거기에는 이미 지적한 것처럼 전후 구조화된 '수구-보수독점 정치구조'라는 틀이 가져다 준 것, 즉 자신 이외에 대안이 없다는 생각이 유전자가 되어 그들의 핏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고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평론가들이 자신들을 '진보'로, 새누리당을 '보수'로 규정하는 언술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 정치적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과연 정당으로서의 새누리당이 '보수'인가. '더불어민주당'의 후신인 지금의 민주당, 그리고 새천년민주당의 유전자를 지닌 국민의당이 '진보'인가.

그 결과 지금 이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과거 파산된 '4대개혁입법'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이 사회는 자본과 권력의 언론 지배, 사학의 공공성 상실, 식민지 시대와 과거 파시스트지배 시기의 반인륜-반인권의 정당화, 그리고 국가보안법의 확장판인 종북이데올로기의 심화로 일그러져 있다.

어디 그 뿐인가. 그 위에 자유주의정권 10년, 이어진 수구정권 10년을 경과하며 심화된 신자유주의 지구화로 인해 수많은 이들이 '죽거나, 나쁘거나'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사정이 이런데도 여전히 야당의 주류는 자신들이 이와 무관한 것처럼 발언하며 촛불의 뒤에 무임승차하며 정치적 이득을 얻고자 이런저런 저울질을 하고 있다. 촛불대중이 자신들의 그런 역사적 자화상을 잊기 바라면서, 아니 결국 촛불대중의 다수는 결국 자신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다시 말하건대,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성격, 지위와 역할에 대한 의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었던 1980년대 이후, 한국정치에서 대중과 함께 마지막까지 정치적 고난을 함께 해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법적인 미꾸라지'가 아니라 '정치적 미꾸라지'라는 점에서 더 경계해야 할 대상들이다. 왜냐하면 정치는 법 위에 있기 때문이다.

자기통치로 요약되는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결속을 부정하면서 대중을 '개-돼지'로 생각, 호명하는 것은 단지 수구정치세력 뿐만이 아니다. '재산과 교양'을 지닌 이들의 정치적 대변자이자 '온화한 가부장주의자'로 표상되기를 바라는 민주당 등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이른바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의당 안의 적지 않은 이들도 과연 대중을 진정한 정치의 주체로,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벗'이자 '동지'로 생각하고 있는지 냉정히 질문해야 할 때다.

지금 광장의 촛불이 원하는 것은 전후 이어져 온 기존의 '수구-보수 독점의 정치질서'를 단순 전도시킨 '보수-수구독점의 정치질서'인가. 아니면 촛불대중의 힘이 법적 대표성을 내세우는 그들 위에 있음을 분명하게 각인시키면서 새로운 정치질서를 추동하는 길을 여는 것인가.

하야와 탄핵의 간극, 왜 촛불을 켰나요

▲ 촛불시위 현장 모습 ⓒ 노순택

12월 3일, 촛불대중은 탄핵 여부를 둘러싸고 설왕설래 하는 야당을 비판하면서 '박근혜의 하야'는 탄핵 여부와 무관하게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답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하여 '정치적 미꾸라지들'과 그들에게 우호적인 언론, 평론가들이 퍼뜨렸던 '비박계가 탄핵 여부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촛불대중의 이런 선언과 실천에 놀란 기존 정치권은 '박근혜 탄핵'으로 논의를 모아나가며 그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사실 기존의 정치세력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대중의 힘에 의한 대통령 하야'이다. 하야는 언론 등이 유포하듯이 박근혜에 대한 예우를 보장해주는 것과 연관이 없으며 그 문제는 이후 사법적 처리과정을 통해 해결하면 그만이다. '대중의 힘에 의한 하야'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단지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기존 정치질서에 대한 비판, 부정의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촛불대중의 힘, 즉 대중의 자기통치라는 가치가 하야 이후 전개될 정치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원리로 작동될 것임을 의미한다. 여야를 불문하고 기존 정치세력들이 정국안정, 질서유지, 심지어 국익을 내세우며 하야에 거리를 두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이다. 민주당 대표 추미애, 국민의당 전(前)비상대책위원장 박지원이 '쿠데타설'을 유포하는 등 촛불대중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고 간을 본 이유이다. 그것은 단순한 '헛발질'이 아니며 탄핵 이후에는 더욱 빈번해 질 것이다.

지금 그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촛불대중의 결속력이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지점으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그들의 관심은 그 힘을 어떻게 순치시켜 제도 안으로 흡인할 것인가에 쏠려 있다.

이런 맥락에서 촛불대중의 힘에 떠밀려 야당이 주도하는 것처럼 되어버린 탄핵은 비박계 등을 포함하여 수구정치세력이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질서 있는 퇴진'과 대동소이하다. 탄핵과 '질서 있는 퇴진'은 그 향방에 따라 그들 기존 정치세력들의 지분 변동에 영향을 줄 것이지만, 양자 모두는 기존 정치구조 자체를 깨지 말자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다면 문제는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이후, 기존 여야 정치세력들이 공식, 비공식적으로 향후 정치일정을 위한 협상을 시작할 것인데, 이 과정에 촛불대중이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하지만 상황을 낙관적으로만 볼 수만은 없다.

그것은 무엇보다 촛불대중 자체가 기존의 정치질서 밖에 고정된 채로 단일하게 존재하지 않기에 그렇다. 양자는 그 인지,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이런저런 형태로 접합되어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박근혜 탄핵'의 문제처럼 하나의 매듭이 풀리는 국면마다 촛불대중 또한 재구성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국면 국면마다 촛불의 균열을 매개로, 혹은 균열을 조장하기 위해 기존 보수, 수구정치세력들의 간보기, 암묵적 회유, 협박 등의 개입이 되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여야 정치권이 '박근혜의 탄핵'을 최대공약수로 볼 것이고 더 이상 크게 양보할 것이 없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촛불대중 안의 적지 않은 이들은 일단 그에 동조하며 사태를 관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 촛불대중의 요구가 '박근혜 탄핵'으로 치환될 수 없다면, 결국 '왜 촛불을 밝혔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이 질문에 대한 다각도의 논의와 실천,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공통의 것을 찾아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탄핵이후의 정치국면에서 촛불의 숫자가 줄고 늘고의 문제는 부차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여전히 완고하게 작동하는 '수구-보수독점의 정당-정치구조'에 대응하는 새로운 정치적 틀에 대한 고민과 연동되어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 못했을 때, 어떻게 되었나. 역사적인 사례를 보자. 이승만의 하야 이후 허정 과도 내각이 내건 국정목표는 '혁명을 개혁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었고 그 내각은 4.19로 초래된 문제의 핵심을 '대통령의 궐위'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와 같은 상황의 해소가 핵심 목표였고 과도 내각을 거치며 이후 4.19혁명이 내건 요구들은 주변화 되어버렸다. 87년 6월항쟁 이후는 어떠했는가. 신군부파시스트의 '6.29선언'을 '정치적 협약'의 수준으로 만들어준 당시 야당들의 동의 이후 대중은 그저 제한된 정치적 자유화라는 조건 안에서 대통령을 뽑는 유권자일 뿐이었다. 혁명의 주체도 대상도 없었던 과거를 되풀이 할 것인가.

개헌?, '87년 체제'와 '97년 체제'의 공범들

▲ 3일 오후 서울 광화문일대에서 열린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탄핵이후 개헌 문제를 매개로 돌파구를 마련한다고들 한다. '1987년 체제'가 문제인가. 문제이다. 왜 그런가. 지금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강제 속에 한국 사회에서 드러나고 있는 수많은 모순, 질곡들을 해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진단은 표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수가 동의하는 바이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87년 체제'라는 것이 무엇인가. 정치적으로 그것은 당시 자유주의 야당과 신군부파시스트세력들이 '6.29협약'을 매개로 하여 출범시킨 그들만의 리그이다. 하나의 예로 1987년 7-9월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자들도 인간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노동기본권 등을 요구하며 투쟁하였지만, 그 체제는 거기에 대해 어떤 의미 있는 대안을 내놓지 못하였다. 오히려 탄압하였다.

그렇다면 '97년 체제'는 무엇인가. 잘 알듯이 그것은 IMF관리체제를 계기로 들어선 '신자유주의 체제'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중주의자들'이 그랬듯이 민주당 등 기존의 야당정치세력들이 이 체제의 기틀을 잡고 기본 내용을 채우는 역할을 하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금 제도 정치권에서 '87년 체제'를 문제시하며 개헌을 요구하는 이들과 그것에 반대하는 이들 모두는 그 체제를 재생산시키고 있는 '공범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마치 자신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대통령단임제의 변화를 핵심으로 하는 개헌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심지어 국민의 다수가 개헌을 바라고 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주장을 하면서 말이다. 혹은 문제가 있지만, 대선에서 공약으로 해야 한다고 기정사실화하면서 말이다.

기존의 정당, 정치 구조 속에서 그들이 말하는 이원집정부제, 대통령연임제 등으로의 개헌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가. 오히려 그들의 동맹구조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면서 대중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그렇기에 정부구성방식을 둘러싼 개헌이 아니라 지금의 수구-보수 독점의 정당-정치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의 문제가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촛불대중은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기존의 정치세력들이 수 없이 반복하고 거기에 다수의 대중이 응답해 온 것, 즉 정치는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차선을, 혹은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것인가.

'촛불대중'의 정치적 상상력과 실천은 그 지긋지긋한 <변호인>과 <국제시장> 사이의 진자운동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가. 아니 <설국열차>처럼 그 궤도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는 없는가.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서 말이다. '자기통치'라는 가치와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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