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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이 사람, 10만인

"쿠데타세력 '개헌'으로 신분세탁
190만 촛불, 죽 쒀서 남 줄 수도"
[이 사람, 10만인] 하승수 비례민주주의 연대 공동대표

16.12.01 15:34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사진: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김지현쪽지보내기

▲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변호사 ⓒ 정대희

"죽 쒀서 남 줄 수 있어요."

하승수 비례대표민주주의 연대 공동대표(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는 여러 번 같은 표현을 반복했다. 절박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죽'은 광장의 190만 촛불이 쏘아올린 박근혜 퇴진을 의미한다. '남'은 박 대통령 아래 호가호위했던 부패 기득권 세력이다. 하 대표는 "우리는 이미 승리했지만 순식간에 '내가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 자괴감이 들 수 있다"라면서 "박근혜 퇴진 이후를 준비하지 않으면 또 당한다"라고 경고했다. 

하 대표가 지난 11월 28일 오후에 서울 마포구 '오마이뉴스 마당집'을 찾았다. 10만인클럽 회원이기도 한 그는 "박정희는 총칼로 권력을 잡았는데, 그의 딸 박근혜는 '사기'를 쳐서 선거라는 방법으로 권력을 찬탈했다"라면서 "둘 다 권력을 사유화한 쿠데타 세력"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 뒤 우려의 말을 쏟아 냈다.

과거 악몽 재연되나?

"과거 악몽의 기억이 지금의 정치 상황과 묘하게 교차합니다."

그는 최루탄과 지랄탄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쟁취한 민주주의를 순식간에 반동의 역사로 되치기 당한 1987년 6월 항쟁 때를 떠올렸다.       

"백골단 몽둥이 앞에서 100만 명의 넥타이부대와 대학생, 노동자들이 짱돌과 화염병을 들고 싸웠습니다. 전두환 독재에 맞서서 직선제를 쟁취했죠. 이번에는 촛불 들고 중고생들까지 거리로 나왔습니다. 일제 때 광주 학생운동, 4.19 혁명 때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 것 같아 울컥했습니다. 촛불은 짱돌과 화염병보다 힘이 셌습니다. 검찰이 박근혜 게이트를 수사하고, 국회가 탄핵을 준비하는 것은 촛불의 힘입니다."

여기까지는 과거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광화문 광장을 밝히고, 무도한 대통령을 불사른 190만 촛불 혁명을 정치권 야합의 제물로 갖다 바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선제, 그 과실을 따먹은 건 그 나물에 그 밥인 노태우였습니다. 1988년 총선에서 국민들은 여소야대를 만들었는데, 민정당을 중심으로 한 3당 야합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권력을 잡았습니다. 정계개편으로 정권을 찬탈했습니다. 결국 아이엠에프 경제위기까지 불러왔습니다.

그때와 비슷합니다. 여당의 비박계와 야당 일부, <조선일보> 등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개헌으로 뭉치고 있습니다. 권력을 향유하면서 헬조선을 만든 장본인들이 반성 없이 탄핵을 외치면서 권력을 재창출하려고 '헤쳐 모여'하고 있습니다."

헬조선 만든 자들이 개혁론자로 둔갑

그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부역자들이 박근혜 꼬리 끊기를 하면서 개헌을 이야기하는 시스템 개혁론자로 신분세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새누리당 비박계와 국민의 당, <조선일보>의 움직임을 보면 반성해야 할 자들이 개헌에 비판적인 야당 대선 후보를 공격하면서 보수 재집권 시나리오를 치밀하게 가동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반동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첫 단추로 '선거법 개정'을 꼽았다. 그는 왜 긴박한 시기에 선거법 개정 깃발을 들었을까? 잠시 역사의 시계바늘을 2010년으로 돌려보자.     

지난 2010년 12월 8일 오후 4시 15분경. 최근 대권 포기 선언을 하고 개헌 세력 규합 행보를 보이는 김무성 당시 한나라당 원내 대표는 국회 본회의장을 떠나갈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다 나와!" "다 밀어!"

▲ 2011년도 새해 예산안이 여당의 강행처리 끝에 가결됐습니다.

ⓒ 오대양


국회판 막장 드라마 신호탄이자 돌격명령이었다. 여당 국회의원들은 의장석을 점거했던 야당 의원의 멱살을 잡고 하나둘씩 끌어내렸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 70% 이상이 4대강 사업에 반대했지만, 여당은 날치기로 예산을 통과시켰다. 당시 여대야소 정국이었다. 

올해 초에도 여당은 무소불위 힘을 휘둘렀다. 여론조사 결과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많았지만, 여당이 국회의원 과반수를 차지했다.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의원들의 최장 시간 필리버스터에 국민들은 열광했지만 다수당인 여당은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켰다.

민의의 왜곡... 득표율 37.5%로 국회 다수 의석 차지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300석 중 152석을 차지했죠. 그런데 득표율은 42.8%였습니다. 국민 절반 이상은 선택하지 않았지만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그 힘으로 테러방지법을 통과시켰죠. 4대강 예산 날치기 때도 한나라당이 과반수이상 의석이었지만, 2008년 총선에서 득표율은 37.5%였습니다. 그런데 153석을 차지했어요. 만약 득표율과 의석수가 어느 정도 일치했다면, 여당은 4대강 사업도, 테러방지법도 밀어붙이지 못했겠죠."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간신히 당선했는데, 전반기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라면서 "선거 제도가 민의를 반영했다면 국회가 박근혜 정권의 독선, 아니 최순실의 전횡, 부패를 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총선 정의당은 7.2%의 정당 지지를 받았습니다. 득표율로 따지만 의석 24석을 얻어야 합니다. 6석에 그쳤습니다. 선거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소수 목소리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의사가 국정에 반영될 수 없습니다. 행복한 나라들의 공통점은 전국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입니다. 개헌 이전에 민의를 배반하는 선거제도부터 뜯어고쳐야 합니다."

그의 말처럼 지역구에서 1등을 해야 당선되는 승자독식 구조의 소선거구제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바꿀 경우, 정부의 독주를 막을 수 있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독선과 전횡의 거수기 역할을 했던 지난 총선의 여대야소 정국은 다음과 같이 정반대로 뒤집힌다.   
▲ 2012년 총선 결과를 '연동형 비례대표제' 방식으로 재구성했다. ⓒ 하승수

의석수 늘이고 특권을 줄이자

-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선거제도를 바꾸는 게 가능할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작년 2월에 제시한 선거제도 개혁안은 바로 정당득표율에 따라 국회의석이 배분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국가 공식 기구조차 현행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치권의 의지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 현재 의석을 그대로 둔 채 시행할 경우 지역구 의석이 줄 수밖에 없는데, 자기 밥그릇을 줄여가면서 정치권이 나설까? 
"선관위는 지역구 200석, 비례 대표 100석으로 제안했다. 그럼 지역구가 줄어든다. 정치권이 거들떠보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다. 지역구를 유지하면서 총 의석수를 늘이는 방법이 있다."

- 정치 불신이 심하다. 국민 정서상 반발이 예상된다.
"8천만 인구의 독일 연방 하원 의원수는 633석이다. 덴마크의 인구는 550만 명인데 179석이다. OECD국가 평균 국회의원 1인당 인구수는 9만9469명인데, 한국은 16만7400명이다. 삶의 질이 높은 나라는 인구대비 의석수가 많다. 의석수는 늘이고 특권을 줄이면 된다. 그러면 국회예산을 늘리지 않고서도 국회의석을 늘릴 수 있다. 전체 의석을 360석 정도로 늘이고 비례대표 의석수를 100석 정도로 늘리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 의원 특권은 어떻게 줄일 수 있나?
"우리 국회의원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나라의 국회의원에 비해 보좌진이 많다. 스웨덴은 개인보좌진이 없다. 지금 국회의원 보좌진 중 상당수는 지역구 관리나 개인비서 역할을 하는 데 보좌진 숫자를 적정규모로 줄이면 된다.

세비도 많은 편이다. 스웨덴에서는 국회의원이 3D업종이라고 할 수 있다. 월급도 많지 않고 특권도 없는데 장시간 일한다. 대한민국 국회에는 특수 활동비처럼 영수증 없이 쓸 수 있는 예산도 80억 원에 달한다. 외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다."

▲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변호사 ⓒ 정대희

그는 이어 뉴질랜드의 선거제도 개혁 사례를 설명했다.

"뉴질랜드는 1993년에 시민사회가 미국영국식 소선거구제에서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바꿨습니다. 당시 구호는 '99석의 독재를 원하나, 120석의 민주주의를 원하나'라는 캠페인이었습니다. 우리처럼 거대 양당이 돌아가면서 집권하는 것은 독재에 가깝기에 의석수를 늘리더라도 민주주의 제도를 정착시키자고 호소했습니다. 결국 지역구 70석, 비례대표 50석으로 바꿨습니다.

그 뒤에 양당독점이 깨졌습니다. 그 결과 최저임금이 올랐습니다. 공기업 민영화도 중단됐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족에 수당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민생제도가 활성화 됐습니다. 정치가 제대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는 "뉴질랜드처럼 우리도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선거제도 개혁운동, 유권자들의 민의를 제대로 정치에 반영하는 초정파적 선거제도 개혁운동이 절실하다"라면서 "개헌도 필요하지만, 선 선거제도 개혁, 후 개헌이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권력구조만 바꾸는 개헌? 부패 기득권 이합집산

그는 최근 이메일 편지인 <하승수의 꿈꾸는 삶 93호>에 이렇게 적었다. 

"권력 구조만을 의원내각제로 바꿀 경우 지역주의 정당들은 '우리 지역도 장관자리 몇 개라도 차지하려면, 우리 지역 사람들을 국회로 보내야 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충청당, 강원당도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정당들끼리 이합집산을 거듭하며 자리를 나눠가지는 구조가 형성될 것입니다.

반면에 선거제도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먼저 개혁되면, 정책을 중심으로 하는 다당제 구조가 형성됩니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되므로 진보 정당 상당한 의석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특정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정당득표율이 중요하므로 정책이 강조되는 선거가 가능합니다. 이런 구조가 되면 의원내각제(또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하게 될 경우에도 정책연합을 바탕으로 한 연립정부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대대적으로 언론에 공개되기 시작한 즈음에 박 대통령은 전세를 뒤집기 위해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 카드'를 꺼내 반전을 노렸다. 보수 재결집, 재집권 시나리오였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하는 일부 정치인들도 개헌을 외치고 있다. 박근혜-최순실에 부역했던 정치인들조차, '개헌은 차기 대선 이후로 미루자'는 대선후보에게 우르르 달려들어 "권력만 탐하는 자"라고 손가락질 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죽 쒀서 남 좋은 일 시켜준' 1987년 6월 항쟁의 악몽이 재연될 조짐이다.   

촛불 민심 반영할 선거 시스템을 바꾸자

▲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변호사 ⓒ 정대희

"내년이 민주항쟁 30주년 되는 해입니다. 한국 사회는 나아졌는가? 자문해봅니다. 부패 수준은 그대로이고, 불평등은 심각합니다. 환경은 파괴되고 있습니다. 성평등 수준도 아직 바닥입니다. 나름대로 사회를 바꾸려고 뛰었는데 성적표는 초라합니다. 시스템을 바꾸기 보다는 시스템의 포로가 됐기 때문입니다. 기득권 세력들이 만든 시스템 속에서만 운동을 했습니다.

그래서입니다. 이번 기회에 죽 쒀서 남 주지 말고 선거제도라도 바꾼다면 행복하겠습니다. 박정희, 박근혜의 쿠데타에 이어 이번에도 부패 기득권 세력의 뒤집기가 성공한다면 광화문을 가득 채운 촛불은 얼마나 실망하겠습니까. 안타깝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잘나갈 수 있는 변호사였다. 이걸 그만두고 참여연대 상근변호사로 활동했다. 참여연대가 잘나갈 때 풀뿌리운동가로 직업을 바꿨다. 그 뒤 정년이 보장된 교수직을 버리고 녹색당을 창당해 지난 총선 때 종로에 출마했다. 그가 얻은 건 590표. 0.7%의 득표율이지만 목표는 다른 데 있었다. 전국 3%의 득표율을 올리면 비례의원 1명을 배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종로가 아니라 서울과 경기도의 다른 지역구에서 녹색당 정당 투표 선거운동을 했다.  

박근혜 퇴진 촛불과 개헌론이 소용돌이치는 시대, 그는 다시 '초당파적' 시민운동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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