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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술, 금강에 산다

"아, 공산성이 무너졌다니까..."
빚내서 비행기 띄웠습니다
[개고생 취재 나선 금강요정 김종술③] 그는 오늘도 '채권추심'에 시달린다

16.12.01 05:21 | 정대희 쪽지보내기|편집:김대홍쪽지보내기

▲ 높이 2.5m, 길이 9m 정도의 10톤 정도의 성곽 사석이 유실됐다. ⓒ 김종술

"공산성이 무너졌어요!"

2013년 9월 15일. 비가 오는 날이었다. 그는 이틀째 금강에서 한뎃잠을 잤다. 이른 아침, 배낭을 둘러메고 카메라를 손에 쥔 채 금강을 걷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통화버튼을 누르니 다짜고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왔다.

"아, 공산성이 무너졌다니까요!"

공산성 붕괴... 비행기를 띄웠다

▲ 하늘에서 바라본 공산성 사고현장 ⓒ 김종술

김 기자는 멍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아찔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친 듯이 내달려 택시를 잡아타고 공주 공산선 주차장으로 갔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과 달리 공산성 앞은 숨죽은 듯 조용했다. 헐레벌떡 오르막길을 뛰어 올라갔다. 공산성 성곽에 다다르자 공무원들이 막아섰다.

"김 기자님, 위험하니까 들어가면 안 됩니다."
"사진만 찍고 바로 나갈게요."

평소 알고 지내는 공무원은 완강했다. 간곡히 사정했으나 두 팔을 벌려 앞을 막아섰다. 김 기자도 버텼다. 머리부터 들이밀어 벽(?)을 허물고 사고 현장으로 냅다 뛰었다. 마침, 한 작업자가 푸른색 대형 천막으로 무너진 성곽을 덮고 있었다.

"여기 위험하니까 나가세요."

이번엔 작업자가 앞을 막았다. 그는 질 수 없었다. 공주의 자존심이 무너졌다. 하지만 공주시청은 하루가 지나서도 '공산성 붕괴'를 알리지 않고 은폐했다. 세상에 알려야 했다. 있는 그대로 역사를 기록하는 게 기자다. 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또 다시 버텼다.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또 다른 작업자가 장비를 땅바닥에 패대기치며, 이렇게 말했다.

"에이 X, 말 더럽게 안 듣네!"

4대강 사업 후 1500년의 역사를 품은 공산성이 무너졌다. 비극이었다. 하지만 공주시청은 사고를 덮으려고만 했다. 그는 4대강 사업의 참상을 생생하게 기록하기로 했다. 곧바로 항공 촬영 전문 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급하게 비행기를 띄워야 하는데 가능합니까?"

외상장부에 잉크도 안 말랐는데, 그는 또 외상을 달았다. '당장은 돈이 없으니 항공료는 후에 지불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항공촬영을 부탁했다. 다행히 항공기 조종사가 못 이기는 척 승낙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비행기를 띄워 취재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공주시청 공무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까지 합세해 짧은 시간에 약 10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 그래도 관광객이 줄어들고 있는데, 기사 나가면 아무도 공주를 찾지 않을 거유."

협박과 사정이 뒤섞인 말이었다. 전화기를 꺼버렸다. 들어줄 수 없었다. 공무원들은 불리하면 '공주를 위해서'란 말을 늘어놓았다. 그는 화가 났다. 숨기고 은폐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거짓은 오히려 또 다른 거짓을 낳고 사태를 커지게 할 뿐이었다. 사실을 제대로 바라보는 게 중요했다. 길거리에 주저앉아 항공사진이 담긴 기사를 써 송고했다. 빚을 내서 비싼 항공료를 지불한 특종이었다.

앞에서 본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비행기를 띄웠다.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지게 한 장면이다. 4대강 사업 후 붕괴된 공주 공산성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낸 기록이다. 때론 한 장의 사진이 백 마디 말보다 낫다.

결국...공산성 성곽 10m '와르르'

파산 기자의 눈물

▲ 오마이뉴스 김종술 시민기자가 23일 오후 충남 공주 금강 공주보 상류 1km 지점에서 강바닥의 토질을 채취해 살펴보고 있다. ⓒ 이희훈

예고된 참사였다. 김 기자는 수차례 공산성 붕괴를 경고했다. 하지만 번번이 외면당했다. 멀게는 사고발생 3년 전부터다. 그는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과 함께 공산성을 둘러보고 붕괴 위험성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

'4대강 공사로 공산성 일부 붕괴될 수도'

하지만 귀담아 듣는 이가 없었다. 허송세월만 보냈다. 그는 굽히지 않았다. 4대강 사업의 폐해로 1500년 역사가 '우장창창'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사고 발생 약 한 달 전부터 문화재 위원과 환경단체, 교수 등과 함께 차례로 공산성을 돌며, 기사를 쏟아냈다. 이 과정에서 공산성의 배불림과 싱크홀 현상을 발견해 숱한 언론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1500년 된 산성..."4대강 사업으로 1년만에 망가져"
공주 공산성 지반 침하, 원인 놓고 주장 엇갈려'
붕괴' 공산성 둘러본 안희정 지사 "섣부른 단정 안돼"
"무너지는 공산성...이대로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못한다"
공산성 배부름·성곽 뒤틀림 추가 발견...붕괴 조짐
공산성 붕괴 조짐...4대강 관련성 공개토론 요구

밀물처럼 몰려든 언론과 유명인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금강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정치인들도 앞 다투어 몰려와 무너진 성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더니 사라졌다. 하지만 본격적인 복구 작업이 시작되자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금강을 등지고 떠나갔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기획하고 4대강 사업이 연출한 한 편의 희극이었다.

코미디 같은 상황은 이게 다가 아니다. 2년 뒤 문화재청은 공산성의 붕괴 원인이 '빗물' 때문이라고 발표한다. 밤사이 내린 가을비 40mm가량에 1500년을 버텨온 성곽이 무너졌다는 거다. 공산성 붕괴 위험성 경고를 무시하고 사고 발생 하루가 지나도록 은폐한 문화재청이 내놓은 결론이다. 

'파산 기자'가 역사적인 발자국을 남겼다. '공산성 붕괴' 특종기사로 많은 게 변했다. 우선, 공산성 복구공사를 '보강 수준'에서 '2년 전수조사'로 바꾸어 놓았다. '쉬쉬' 하고 구멍만 메울 수 있었던 일을 꼼꼼하게 살필 수 있게 한 거다. 원인 파악도 하지 않고 복구 작업을 한다면, 또 다시 붕괴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을 받아들인 거다. 그 덕에 복구 작업을 마친 공산성은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처절한 기사의 힘은 강했다.

김 기자에겐 비극이었다. 비싼 항공료를 갚으려면 은행 대출을 받아야 했다.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매번 뒷감당에 허덕이면서 또 다시 빚을 내 취재비를 충당했다. 항공료만 지난 2009년부터 10여 차례 지불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3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으로 된 논까지 팔아 취재비로 사용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허튼 데 쓰지 말라"며 손에 쥐어 준 돈이었다. 그동안 빌려 쓴 돈을 갚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아니 부족했다. 전셋집마저 월세로 돌렸다. 그것도 모자라 수개월째 월세가 밀렸다.

'엎친 데 덮친다'고 했던가. 그 무렵, 그는 강변을 걷다가 말벌에 쏘여 눈이 퉁퉁 부어 며칠을 앓아눕기도 했다. 어디 이뿐인가. 풀밭을 헤치고 다니다가 뱀을 밟아 발뒤꿈치를 물린 기억도 있다. 독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 허리띠를 풀어 발목에 묶고 혼자서 절뚝이며 병원으로 갔던 서글픈 기억이다. 그래서다. 그는 매일 밤 같은 고민을 한다.

"금강을 포기하고 '노가다'라도 뛰어야 하는 건 아닐까?"

빚 독촉... 두려웠다

▲ 금강 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가 충남 세종시 세종보 하류에 위치한 요트 선착장에서 펄로 뛰어 들자 퇴적토에 발생하는 메탄 가스가 기포가 되어 부글부글 올라온다. ⓒ 이희훈

얼마 전, 스토리펀딩을 시작하고 전화 한통이 왔다. 대출받은 은행이었다. 채권추심팀은 악을 쓰며 빚 독촉을 했다.

"펀딩해서 돈도 많이 벌었던데, 돈부터 갚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의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숨도 가빠왔다. 전화기를 들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도리가 없었다. 자존심은 내려놓고 애걸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아직 들어온 게 아니에요. 돈이 들어오는 대로 갚겠습니다."
"또 기다리란 말이네. 돈 빌려 취재했으면 갚아야죠! 당장 갚아요. 당장."

그는 끝내 친구에게 손을 벌렸다. 또, 신세를 졌다. 이번엔 마음의 빚까지 더해졌다. 그날 밤, 자리에 누웠지만 잠들지 못했다. 또 다른 채권추심팀에게 전화가 올까 두려웠다.

4대강 사업의 민낯을 고발하다가 '파산 기자'가 됐다. 재산을 몽땅 털어먹었다. 남부럽지 않던 생활은 점점 궁핍해져 이제 남은 게 없다. MB 삽질에 온 몸으로 맞선 대가였다.

마음의 빚 때문에 시작한 취재가 경제적 빚이 됐다. 3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 금강. 그 강이 4대강 삽질에 파헤쳐졌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니, 뒷짐 지고 구경할 일이 아니었다. 4대강 사업비 22조 원, 5000만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45만 원씩 각출한 것도 모자라 빚을 떠안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매일 밤 흔들린다. 감당하기 힘들만큼 쌓인 빚에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후회하고 또 후회하며, 밤을 지새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일까? 아침이 밝아오면 그는 또 나갈 채비를 서두른다.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항상 이렇다. 혼자라도 열심히 취재한다면, 막힌 강이 열릴 것이라는 한 줄기 희망 때문이다. 생활고에 힘들지만 한 사람이라도 금강을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 이 글을 쓰고 있는 11월 30일. 그에게 연락했다. 역시, 오늘도 ‘파산 기자’는 금강으로 출근했다. 이명박근혜의 정권으로부터 4대강을 해방시키기 위해 그는 7년째 매일 이렇게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 김종술

오늘도 '파산 기자'는 금강으로 출근한다. 그에게 월급을 챙겨주는 신문사 사장은 없지만 남들이 뭐라 해도 독립운동을 하는 심정으로 금강을 걷는다. 이명박근혜 정권으로부터 4대강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오늘도 4대강 사업의 민낯을 고발하기 위해 두발로 진실을 좇는다. 요즘 세상에 이런 기자 없다. 그래서일까? 그를 보면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헬조선을 밝히는 촛불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 하지 않는다."

*4화는 에코큐레이터 이철재 전 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 눈에 비친 '괴물 기자'의 모습을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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