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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술, 금강에 산다

여기가 생지옥... 취재 후 정신과 치료까지
[개고생 취재 나선 금강요정 김종술②] 손가락 삽질로 진실 밝힌 물고기떼죽음

16.11.24 07:17 | 글: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이준호쪽지보내기

개고생 취재에 나선 기자가 있습니다. 월급 받는 기자는 아닙니다.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금강을 지켜온 그를 뭍사람들은 '금강요정'이라고 합니다. 끝까지 취재하는 게 기자입니다. 김 기자의 '개고생' 취재를 통해 기자란 무엇인가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참담한 현장을 기록하는 것도 기자이 몫이다. 김종술. 금강요정. 그는 13일간 계속된 금강 물고기떼죽음을 처절하게 취재했다. ⓒ 정대희

전쟁터는 아니었지만, 거긴 생지옥이었다. 구역질나는 죽음의 냄새가 진동했다. 그는 미친 듯이 맨손으로 땅을 팠다. 비단결같이 흐른다고 붙은 이름 금강, 그 강변에 숨겨놓은 물고기 사체들이 튀어나왔다. 그는 흙과 사체들의 기억이 범벅된 손으로 취재수첩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땅 속에 묻어 버린 4대강 사업의 거짓말을 파헤쳐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다.    

금강요정.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듣기 좋다고 사연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 안에는 끔찍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개고생 취재에 나섰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아픈 기억이다. 서슬 퍼런 4대강 삽질에 파헤쳐진 금강. 그리고 금강요정의 생지옥 취재기를 지금부터 공개한다.

손가락 삽질로 땅 파는 기자

▲ 죽은 물고기는 법의 절차에 따라 폐기물로 처리해야 하지만 일부 불법으로 매립되고 있다. ⓒ 김종술

2012년 10월 20일. 김종술 기자는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팽개쳐놓고 땅을 팠다. 삽이 아니라 두 손으로 팠다. 글자 그대로 손가락 삽질이다. 무릎을 꿇고 앉아 허겁지겁 땅을 파헤쳤다. 손가락이 얼얼했다. 멈추지 않았다. 어느 순간, 파낸 모래에서 비린내가 났다. 손끝에 와닿는 미끈한 촉감이 불길했다.

땅 속에서 물고기 사체를 발견했다. 한두 마리가 아니다.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열여덟, 열아홉. 한 구덩이서 나온 물고기 사체 수다. 강물 속에 있어야 할 물고기들이 입을 벌린 채 모래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곳만이 아니다. 강변을 따라 누군가 무언가를 파묻은 은폐의 흔적이 역력했다.

김 기자는 차례로 '파묻은 흔적'을 찾아 손가락 삽질로 땅을 팠다. 또 다시 물고기 사체가 나왔다. 구덩이마다 적게는 열 댓 마리에서 많게는 서른 마리가 나왔다. 서둘러 파묻은 흔적이다. 그 사체를 마대자루에 담았다. 금방 서른 개의 마대자루가 가득 찼다. 하지만 파낸 구덩이보다 파야할 구덩이가 더 많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강변이 새까맸다. 배를 드러낸 물고기 사체가 물길을 따라 널브러져 있었다. 오래된 사체에서는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이 정도가 되자 마대자루에 담고 수를 세는 게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그것보다 이 상황을 알리는 게 급했다. 누더기가 된 몸으로 김 기자는 땅바닥에 앉아서 기사를 쓴 뒤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다. 금강의 물고기 떼죽음을 전국에 알리는 첫 기사였다.

[단독] 금강 백제보 부근 물고기 떼죽음...수천 마리 떠올라

생지옥 취재

▲ 부여군 장하리에서 발견된 대형메기. 이를 유진수 금강을지키는사람들 운영위원장이 들어 보이고 있다. ⓒ 김종술

4대강 사업 후 아버지 품처럼 따뜻했던 금강이 차가운 죽음의 강으로 변했다.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렇다고 감상에 젖어 있을 수 없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참담한 현장을 생생히 기록하는 것도 기자의 몫이었다.

"물고기를 묻은 적 없다."

물고기떼죽음이 발생한 첫 날, 부여군 환경과 직원들은 거짓말을 했다. 그들이 삽으로 땅을 파서 물고기를 묻는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했는데도 딱 잡아 뗐다.

"대체 이건 뭡니까?"

그들이 보는 앞에서 손가락 삽질로 땅을 파헤쳤다. 죽은 물고기가 튀어나왔다. 그제야 "직원들이 모르고 그런 것 같다"며, 마대자루를 지급하고 땅에 묻은 사체를 다시 수거하겠다고 했다.

환경부도 물고기 떼죽음을 축소하고 감추기에 바빴다. 환경부는 사건이 발생한 뒤 13일간에 걸쳐 물고기 사체를 수거한 마대자루를 매일 장소를 옮기며 숨겼고, 김 기자는 계속 그들이 숨긴 마대자루를 파헤쳐서 수를 셌다. 어처구니없는 숨박꼭질같았다. 결국 김 기자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건 나랏일 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었다. 공무원들은 얼마나 많은 물고기가 죽었는지 파악하는 것보다 들키지 않는 방법에 골몰하는 것 같았다.

공무원들도 화가 난 것 같았다. 김 기자에게 악담을 퍼부었다.

"강아지 새끼도 아니고..."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물고기 사체를 담은 마대자루 수를 손으로 헤아리고 사진을 찍자 반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 순간 기자로서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했던 김 기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단다. 당장에라도 달려들어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이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혼자였고, 그들은 여럿이었다. 결국 그는 수모를 견디며 취재수첩을 놓지 않았다.

가령 이런 식이다. 공무원들은 항상 오전 9시에 현장에 나왔다. 출근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김 기자의 출근시간은 3~4시간이 빨랐다. 그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서 공무원들이 출근하기 전에 전날 땅 속에 숨겨놓은 거짓을 파헤쳤다. 강변을 샅샅이 누비며, 수십만 마리의 물고기 사체를 카메라에 담고 취재수첩에 기록했다. 그 와중에 물고기 사체가 담긴 자루에서 침출수가 줄줄 흐르는 장면을 목격해서 기사를 썼고, 해당 관청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다.  

연속 특종도 했다. 금강 물고기 떼죽음 7일째였다. 김 기자는 충남 부여군 장하리 폐준설선 인근에서 시커먼 그림자를 발견했다. 섬뜩했다. 사람 같았다. 옷을 입고 강물 속으로 뛰어 들어 확인을 했더니 사람은 아니었다. 136.5cm에 달하는 초대형 메기의 사체였다. 무게만 약 40kg이었다. 국내에서 발견된 민물고기 중 가장 큰 것이었다.

이 기사가 또다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강변에 사는 주민들은 '씨메기'가 죽었다고 한탄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국토부 직원들은 희희덕거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매운탕 하면 한 마을 사람들 다 먹겠다."

그 말을 듣고 김 기자는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물고기 떼죽음과 초대형 메기의 죽음으로 4대강 사업의 참상이 드러나자 전국의 수많은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취재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회사로부터 돈을 받고 일하는 직업기자들의 관심은 아주 잠깐이었다.

공무원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물고기 사체를 실어 나르던 5톤 압축식 쓰레기 차량의 기사는 강변에 침출수를 방류했다. 물고기 한 마리라도 살리기 위해 온갖 괄시와 수모를 견뎌냈는데, 모든 게 허사가 됐다.

13일간의 물고기 떼죽음을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김 기자는 차안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단다. 그 자리에서 공무원들과 멱살이라도 잡고 싸워서 피해를 막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죄책감에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단다.

물고기에게도, 사람에게도 재난이었던 금강 물고기 떼죽음 사건. 환경부는 1년 뒤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물고기 떼죽음 당시 거짓말을 하고 수거량 축소와 감추기에 바빴던 환경부가 내놓은 결론을 한 마디로 줄이면 이렇다.

'원인불명'.

정신과 치료를 받다

▲ 13일간 현장에서 취재를 하면서 받았던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2주나 받았다. 지옥같은 그런 처참한 현장은 처음이었다. 두 번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인데, 이글을 쓰면서 두통이 다시 밀려온다. ⓒ 김종술

그들은 또 금강에서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일을 했지만 김 기자의 생지옥 취재는 고스란히 온몸에 스며들었다. 몇날 며칠을 새벽부터 밤까지 물고기 떼죽음을 취재하자 온몸에서 악취가 풍겼다. 만나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했다. 집에 돌아와 3~4번 씻고 또 씻었다. 하지만 온몸을 휘감은 악취는 쉬이 떨어지지 않았다.

가위에도 눌렸다. 눈을 감으면, 떼죽음 당한 물고기 사체가 금강을 새까맣게 뒤덮어 널브러져 있었다. 배가 터진 물고기, 머리가 없는 물고기, 눈알이 파인 물고기, 상처 난 부위마다 들끓는 구더기와 파리, 물고기 썩은 내... 끔찍했다.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했다. 악몽에, 두통에 시달려 몇날 며칠을 방 한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서 밤을 샜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공포증도 생겼다. 한낮에도 자동차 실내등을 켜지 않으면, 무섭고 두려웠다. 집에 돌아와서도 불안했다. 항상 형광등을 켰다. 생지옥 취재현장이 떠올라 잠들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면서 다리를 떠는 버릇도 생겼다. 끝내 공주에 있는 한 정신과를 찾았다.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동네서는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 대전에 있는 큰 병원을 추천하며 소견서를 써줬다. 이후 김 기자는 한 달간이나 약을 먹으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그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물고기 떼죽음 기사에 달린 악플과 하루 40~50통 걸려오는 항의전화였다.

"물고기 죽은 거 가지고 뭐 그렇게 요란이냐!"
"내가 뭘 잘못했냐? 가만 놔두지 않겠다. 밤길 조심해라!"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그걸 알아챈 것일까? 평소 알고 지내던 후배가 이렇게 기사에 댓글을 달았다.

"내가 아는 김종술 기자는 진실된 사람이다. 허투루 기사 쓰는 사람이 아니다. 김 기자야말로 금강을 지키는 요정이다."

거짓말처럼 악플이 사라졌다. 항의전화도 잦아들었다.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김종술 기자를 '금강요정'이라고 불렀다.

4대강 사업으로 죽음의 강이 된 금강. 그곳에는 생지옥 취재도 마다하지 않는 아주 특별한 요정이 산다. 정신과 약봉지를 입에 털어 넣으면서도 취재를 멈추지 않는 기자다운 기자가 산다. 맨손으로 땅을 파면서 4대강 사업의 진실을 파헤치는 사람이 산다.

*제3화에서는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자기 재산을 몽땅 털어먹은 '파산 기자'가 된 사연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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