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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술, 금강에 산다

'괴물' 삼킨 '괴물 기자', 전국이 들썩였다
[개고생 취재 나선 '금강요정' 김종술①] 그의 험난한 취재기

16.11.17 07:05 | 글: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김예지쪽지보내기

개고생 취재에 나선 기자가 있습니다. 월급 받는 기자는 아닙니다.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입니다. 금강을 지켜온 그를 뭍사람들은 '금강요정'이라고 합니다. 끝까지 취재하는 게 기자입니다. 김 기자의 '개고생' 취재를 통해 기자란 무엇인가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지난해 6월 24일 오전 충남 공주시 공주보 상류 1km 지점에서 확인한 큰빗이끼벌레를 찾아 들어 올리고 있다. ⓒ 이희훈

지금부터 금강 '괴물 기자' 이야기를 시작한다. 생김새가 추악한 건 아니다. 얼굴은 새까맣지만 골리앗처럼 크지 않다. 작은 체구에 누가 봐도 동네 아저씨다. 입을 열면 다-다-다-다-다. 침 튀면서 열을 낼 때는 '기사를 입으로 쓰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는 충남 공주의 작은 아파트 월세 세입자다. 멀쩡한 집이 있는데, 금강변에 일인용 텐트를 친다. 그냥 자는 게 아니라 타-타-타-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기사를 쓰다가 쓰러져 잔다.

그는 괴물 같은 기자가 아니라 괴물 같은 '괴생명체'를 삼킨 기자다. 김종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금강에서 발견한 물컹하고 시궁창 냄새가 나는 녀석의 정체를 알려고 카메라와 노트북을 잠시 내려둔 채 손가락 한마디 정도 떼어내어서 꿀꺽 삼켰다. 정체를 몰랐기에 인체에 해가 있는지 직접 시험한 뒤 기사를 썼다. 다음날부터 거의 모든 언론이 큰빗이끼벌레 창궐이라는 기사를 쏟아냈다. 그는 특종을 삼킨 '괴물 기자'가 됐다.

그는 잠깐 언론의 조명을 받았지만, 그 전과 후의 상황은 처절했다. 2014년 6월 14일 아침. 배낭에 노트북과 카메라를 챙겼다. '이번이 마지막 취재'라고 마음을 다졌다. 집안 구석구석을 뒤졌다. 바닥에 떨어져있던 동전 몇 개와 지폐 몇 장. 책상 위에 모아놓고 셌다.

▲ 지난해 8월 24일 오후 낙동강에서 구한 녹조와 큰빗이끼벌레로 MB를 위한 특별한 '국밥'을 만들었다. ⓒ 권우성

'5600원'. 그의 전 재산이었다. 바지 주머니에 가진 돈 모두를 쑤셔 넣고 배낭을 멨다. 주머니가 가벼워지고 배낭은 무거웠다.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빵과 생수를 샀다. 허기진 배를 달래줄 요깃거리다. 4대강 사업을 취재하면서 빵은 밥이 됐다. 돈이 없어서다. 식당서 파는 한 끼는 5600원보다 비쌌다. 백수 기자는 권력과 자본보다 배고픔과 싸우는 게 더 힘이 들었다.

그렇게 금강과 이별의 길을 떠나는 데 전화벨이 울렸다. 집주인이다. 아침부터 밀린 월세를 내라고 타박이었다. 6개월이나 밀렸다. 보증금을 훌쩍 뛰어넘는 액수다. 집주인도 오죽하면 전화를 했을까. 가슴이 답답했다. 세간과 자동차도 압류됐다.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눈앞이 막막했다.

"이게 진짜 마지막이다. 이젠, 살 궁리를 찾겠다."

그는 5600원어치 빵과 생수가 동이 나면, 4대강 취재를 끝내기로 결심했다.

사장에서 빈털터리로

▲ 서울 동대문에서 청바지를 팔던 잘 나가던 사장 김종술은 4대강 사업으로 빈털터리가 됐다. ⓒ 김종술

김 기자는 한때 '사장님' 소리를 들었다. 서울 동대문에서 청바지를 팔았다. 작은 공장도 있었다. 해외로 수출까지 했다. 대박은 아니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었다. 남들처럼 쉬는 날에는 여행을 가고 좋아하는 낚시도 했다. '사장' 김종술은 남부럽지 않았다.

청바지 장사를 접고 공주로 이사한 건 금강 때문이었다. 첫눈에 반했다. 황금빛 모래사장과 은빛으로 반짝이는 여울. 커다란 곰나루 소나무를 배경으로 물고기들이 튀고, 고라니가 뛰어노는 곳.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거닐던 강을 빼닮았다. 그래서일까.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그리운 날이면, 금강을 향했다. 아버지 품에 안긴 듯 따뜻했다.

김 기자는 공주로 내려와 지역신문 기자(백제신문)로 취직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금강변을 산책한 뒤에 취재 현장으로 나가야 직성이 풀렸다. 처음에는 기자로 일하다 경영까지 책임을 졌다. 지역신문 사장인 그는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놓지 않았다.

공주에선 백제신문 하면 '꽤 괜찮은 언론'으로 불렸다.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는 독자들 덕분에 경영도 탄탄했다. 주간신문과 시사잡지를 발행하고 인터넷판도 만들었다. 지역신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직원이 12명이나 되는, 그야말로 종합언론사로 성장했다. 금강과 함께할 수 있는 행복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국가 하는 일에 지역신문이 왜 반대하냐."

어느 날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상대편은 다짜고짜 화부터 냈다. 4대강 사업에 비판적인 기사가 나간 다음 날이다. 4대강 사업 홍보에 학생들을 동원하고 봉사활동점수와 각종 기념품을 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기자가 해야 할 일을 했는데, '국가'를 거들먹거리고 '지역신문'을 얕잡아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주눅 들지 않았다. 이틀 뒤 민방위교육 현장에서 민방위 관련 동영상이 아니라 4대강 홍보영상을 틀었다는 기사를 썼다.

"이런 식이면, 광고를 줄 수 없다."

또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광고주들이다. 4대강 사업 비판기사를 쓰면, 광고를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굽히지 않았다. 광고가 하나둘씩 줄어들어 신문사 경영이 어려워졌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결단을 내렸다. 광고국을 폐쇄했다.

그는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기사를 계속 썼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금강에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녹조가 창궐했다. 그는 미친 듯이 금강에 나가 현장 고발 기사를 썼고, 그동안 신문사의 직원들은 모두 그의 곁을 떠났다. 더 이상 신문사를 운영할 수 없어서 지인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넘겼다. 그때부터 그는 혼자였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누가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닌데도 그는 매일 금강을 취재하면서 출근도장을 찍었다. 여기까지가 '괴물 기자'로 불리기 직전까지의 상황이다. 

이상한 생명체

▲ 2015년 6월 24일 오전 충남 공주시 공주보 상류 1키로미터 지점에서 확인한 큰빗이끼벌레. 큰빗이끼벌레는 다양한 크기로 군집해 번식하고 있다. ⓒ 이희훈

2014년 6월 17일, 금강과 이별하려고 혼자 걸은 지 4일째 되던 날이다. 걷고 또, 걸었다. 아니, 걷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걸었다. 배가 고프면, 배낭서 빵을 꺼내 먹었다. 그래도 배가 고프면, 생수를 들이켰다. 잠은 텐트도 치지 않고 강변에 그냥 널브러져 잤다. 선물 받은 대형 스카프를 이불 삼아 풍찬노숙했다.

이날 강변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때다. 강물 속에 이상한 물체가 보였다. 옷을 입은 채로 물속에 들어가 살펴보니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그냥 강바닥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 괴생명체를 손으로 들어 올렸다. 시궁창 냄새가 진동했다. 힘껏 잡으면 흐물거리며 흘러내렸다. 처음 보는 생명체, 흉측했다.

"이게 대체 뭘까?"

다시 기자 본능이 꿈틀거렸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알 만한 사람들에게 보냈다. 전문가와 학자, 환경단체 관계자들이다.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처음 봤다."
"모르겠다."

괴생명체 몇 무더기를 강변에 올려놓고 마주 앉아서 고민에 빠졌다. 새로운 생명체가 나타난 것이어서 기사를 쓰긴 써야 할 텐데, 뭐라고 써야 할지...

가장 궁금했던 건 이 생명체가 인간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를 아는 일이었다. 물컹물컹한 괴생명체를 팔에 문질렀다.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반으로 갈라봤다. 지독한 냄새가 났다. 이 정도로는 기사를 쓸 수 없었다. '괴물이 나타났다'고 할 수도 없었다. 3~4시간을 고민한 끝에 그는 직접 실험해보기로 결심했다. 몸통의 일부를 떼어내 삼켰다. 그 뒤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고 두통이 밀려왔다. 눈으로 보고 확인한 것만 쓰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그는 그 뒤에야 기사를 쓸 수 있었다. 

금강에 창궐한 흉측한 벌레...어떻게 해야 하나
4대강 사업의 재앙?...흉측한 벌레 들끓는 금강
나는 큰빗이끼벌레를 먹었다

전국이 들썩였다. 4대강 사업이 다시 사람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큰빗이끼벌레는 강에 콘크리트 보를 세우고 물길을 막아 유속이 느려지면서 나타난 생명체였다. 4대강 사업으로 강이 죽어가고 있다는 징조였다. 기사가 나가고 온라인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큰빗이끼벌레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상파 방송, 신문, 환경단체 등에서의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시도 때도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뒤 기자질을 그만두겠다는 다짐은 까마득하게 잊었다. 생활고는 나아지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금강을 기록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컸다. 드라마로 치면, 시즌2가 시작됐다. 시즌1이 '4대강 사업의 역효과'였다면, 시즌2는 참혹한 '죽음의 강'이었다. 4대강 사업의 후폭풍이 본격화됐다. 다시 카메라를 고쳐 메고 취재수첩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금강을 혼자 걷고 있는 데 제보전화 한 통이 날아들었다.

"서울에서 OO일보 기자들이 왔는데, 큰빗이끼벌레를 취재한대요."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유력 일간지 기자들이 큰빗이끼벌레를 취재하러 왔다는 거였다. 4대강 사업을 앞장서서 홍보했던 언론사의 기자들이었다. 4대강 사업 이후 녹조가 창궐하고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해도 강을 찾지 않던 언론사 기자들이 대체 왜? 그 배경이 수상했다. 제보자의 이어진 말에서 해답을 찾았다. 

"두 명의 기자가 먹었는데, 큰빗이끼벌레가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하러 왔대요."

4대강이 썩어가는 것을 증명하지 않고 김 기자의 기사를 반박하기 위한 취재였다. 국민의 알권리가 아니라 정권의 안위를 위한 취재였다.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항의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런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열을 올릴 시간이 없었다. 죽어가는 강을 돌아보고는 게 우선이었다.

며칠 뒤, 큰빗이끼벌레를 삼키면서 취재했다는 언론사에 기사가 떴다. 신문지 한 면을 털어서 쓴 기획기사였다. 그런데 어디에도 기자가 큰빗이끼벌레를 먹어서 생체 실험을 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대신 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인체와 수질에 무해하다고만 적었다. 현장을 취재하고도 책상머리에서 그동안 썼던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기사였다. 

4대강을 지키는 1인 미디어

▲ 김종술. 괴물을 삼킨 기자. 큰빗이끼벌레를 최초로 발견한 금강의 요정. 그는 오늘도 금강을 거닐며, 4대강 사업에 죽음의 강으로 변한 금강을 기록하고 있다. ⓒ 정대희

그래서다. 김종술 기자는 오늘도 혼자 금강을 걷는다.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고, 누가 취재비를 보태주는 것도 아니지만 금강의 진실을 기록하는 단 한 명의 기자는 남아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22조 원이라는 국민의 세금을 들여 완공한 4대강 사업, 그 뒤에도 4대강 보를 유지 관리하기 위해 막대한 국민의 돈이 들어가고 있다. 이를 검증하고 감시하는 게 언론의 역할인데, 그는 오늘도 혼자 금강에 남아 그 일을 묵묵하게 하고 있다.

이런 '괴물 기자', 요즘은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렵다.

제2화는 정신과 약봉지를 입에 털어 넣으며 물고기 떼죽음을 특종 보도한 그의 뒷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는 이때 또 다른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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