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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위에 대통령 '최순실 국정농단'

박근혜 정부,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혼란스러운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강행 '무리수'

16.11.08 16:36 | 글:이제훈쪽지보내기|편집:김예지쪽지보내기

▲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로 퇴진 요구를 받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과 면담한 뒤 국회의사당을 떠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저치인 5%로 곤두박질쳤다. 여론조사업체인 갤럽이 4일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박 대통령 지지율은 20대 1%, 30대 1%, 40대 3%, 50대 3%, 60대 이상 13%로 나타났다. 60대 이상 노령층 일부를 제외하면 한국인 가운데 사실상 아무도 박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다. 20~30대 1%, 40~50대 3%는 모두 이 조사의 표본오차 범위(±3.1%)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광주를 포함한 호남 지역은 대통령 지지율이 0%였다.

박 대통령이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 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습니다"라고 '2차 사과'를 한 다음 날인 5일에는 서울 광화문 일대에만 20만여 명의 시민이 쏟아져 나와 '박근혜 퇴진'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야3당 가운데 정의당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아직 공식적으론 '대통령 하야'나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비주류 리더인 김무성 의원조차 7일 긴급회견에서 "대통령의 헌법 위반"과 "대통령이 헌법을 훼손하며 국정을 운영"했다고 짚은 뒤 "헌법 가치를 위반한 대통령은 탄핵의 길로 가는 것이 헌법 정신"이라고 비판했다.

거리의 장삼이사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지식인들조차 "우리가 무당한테 세금을 갖다 바친 거냐?"라거나 "무당이 대통령직을 수행했다는 거냐"라며 바닥 모를 자괴감에 빠져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사실상 '대통령 궐위' 상황이다. 당연히 박근혜 정부 4년간 추진·집행된 모든 주요 정책의 민주적 정당성이 의심받고 있다.

외국서 조롱받는 대통령... "외교 불가능한 상황"

▲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보도하는 AP통신 갈무리. ⓒ AP

나라 안 일은 그래도 우리끼리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찌해볼 수 있다. 문제는 외교 등 나라 밖과의 관계다. 외교부가 10월 31일 자로 '장관 지시 전문'을 모든 재외공관에 보낸 사실 자체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한국 외교에 끼치고 있는 치명적 악영향을 반증한다. 지시 전문의 주요 내용은 이렇다.

"정부는 북핵문제 등 주요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흔들림 없는 정책 기조를 유지해 나간다는 입장임을 알려주면서, 우리의 외교·안보 태세 그리고 경제상황에 대해 국제사회에 불필요한 우려가 확산되지 않도록 정부 주요정책이 정상적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적극 설명하라."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까지 하던 대로 외교안보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는 얘긴데,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나라는 없을 터.

더구나 <뉴욕타임스>와 <파이낸셜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나라 밖 유수의 언론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다루는 기사에 등장하는 주요 단어는 엽기 그 자체다. PUPPET(꼭두각시), SHAMAN(무당), SHAMAN ADVISER(무당 조력자), SHAMANISTIC RITUALS(굿), SORCERER REGENT(마법사의 섭정), ASTROLOGICAL SYSTEM(점성술적 체계)... '세상에 이런 일이'에도 나올 법하지 않은, 한 주권국가의 국정 수행과 어떤 합리적 연관도 찾을 수 없는 기괴한 단어들이다.

<파이낸셜타임스가> 11월4일 치 기사에서 "한국 사회에서 권위와 신뢰를 상실한 그(박근혜 대통령)를, 다른 나라의 최고 지도자 가운데 그 누구도 진지하게 대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정치 전문가의 견해를 도드라지게 전한 사실 자체가, 이번 사태가 한국 외교에 끼치고 있는 치명적 악영향을 방증한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대통령 박근혜'는, 나라 안에서뿐만 아니라 나라 밖에서도 고립무원의 듣보잡 신세로 전락했다.

이 상황에서 대한민국 정상의 외교는 불가능하다. 정상외교가 불가능하면, 어떤 유의미한 새로운 외교 정책의 수립·추진·집행도 가능하지 않다. 현실성이 없을뿐더러, 무엇보다 민주적 정당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강행이라는 '무모함'

그런데 이 와중에 박근혜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재추진에 나섰다. 10월 27일 국방부가 협정 재추진 방침을 밝히더니, 11월 1일 일본 도쿄에서 제1차 과장급 실무협의를 진행했다. 11월 9일엔 서울에서 2차 실무협의를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이명박 정부가 비밀리에 추진하다 여론의 거센 반발에 밀려 2012년 6월 서명 몇 시간 전에 전격적으로 철회했을 정도로 휘발성이 강한 사안이다.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협정 재추진 방침과 관련해 "국방과 안보 노력에는 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가당치 않은 요설이다. 무모할뿐더러 치명적으로 무책임하기까지 하다. 아마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재추진은 예정된 프로그램이었을 것이다. 조태용 국가안보실 제1차장의 10월 비공개 방미 때 재추진 일정을 협의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 몇 주 사이 한국 국내 정치 상황이 상전벽해라는 표현도 모자랄 정도로 급변했다. 사실상의 '대통령 궐위 상황'이 핵심이다. 새로운 외교 정책을 추진할 민주적 정당성을 정부가 상실한 상황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와중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재추진은, 이 협정을 간절히 바라온 미국과 일본 정부가 오히려 '지금 이거 협의해도 괜찮냐?'고 걱정할 정도로 무모한 선택이다.

거듭 강조한다.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정세에 중대 변화를 초래할 어떤 외교 정책도 새롭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이 혼란스런 한국의 국내 정치 상황을 추스르는 과정에서 새롭게 구축될,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된 새로운 정책 수행 주체의 몫이다. 그때까지는 최소한의 상황 관리를 벗어나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어떤 공적 권한도 직책도 없는 '듣보잡 사인'이 개념 없는 대통령과 함께 주권국가 한국의 국정을 휘젓고 있는데도 멀뚱멀뚱 눈만 뜨고 있던 이들이 지금이라도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직업윤리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제훈 한겨레 통일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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