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삼풍백화점 붕괴, '골든타임'은 있었다

10만인 리포트

김종술, 금강에 산다

약 먹고 협박 견디며 지켜낸 강에 어머니를 묻었습니다
어머니·아버지와의 추억이 녹아있는 금강... 그곳을 망친 책임자를 꼭 청문회에 세울 겁니다

16.11.07 16:42 | 글:김종술쪽지보내기|편집:김예지쪽지보내기

▲ 야생동물의 보고이자 생명을 잉태하는 습지는 4대강 사업으로 사라졌습니다. 4대강 삽질에 훼손되기 전 충남 부여군 왕진나루터입니다. ⓒ 김종술

아버지의 강에 어머니를 묻었습니다.

어머니의 고향은 지금은 수몰된 댐 안에 있습니다. 제가 태어난 집 뒤에도 작은 지천과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큰 물줄기가 있었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는 친구들과 다람쥐처럼 숨어들던 곳입니다.

강변에 모래집을 짓고, 서리한 복숭아와 옥수수를 먹으며 한참을 놀다가 입 주변이 까맣게 물들 때면 개구리처럼 폴짝폴짝 물속으로 뛰어들어 수영했습니다. 형들의 짓궂은 장난에 잔뜩 물을 먹고 올챙이처럼 불룩해진 배를 만지며 낄낄대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흙먼지 범벅인 저를 번쩍 들어서 홀딱 벗긴 뒤 뒷마당 개울가에 내려놓으면 또다시 장난을 쳤습니다. 그러다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지면 눈물을 흘리며 돌아와야 했습니다. 밥그릇이 넘치도록 수북한 보리밥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우고 엄마·아빠 밥그릇까지 넘보면서... 가난했지만, 행복했습니다.

매콤한 모깃불이 피어오르면 대나무 낚싯대를 챙기는 아버지의 엉덩이를 붙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저를 놓고 가실까 봐 안절부절 꽁무니만 따라다녔습니다. 수숫대를 꺾어서 달아 놓은 찌가 출렁거리면 손바닥만 한 붕어부터 난동을 부리던 메기까지... 이제 그만 돌아가자는 아버지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칭얼댔습니다.

커다란 나무처럼 언제까지나 절 지켜주실 것 같았던 아버지를 떠나보냈지만, 아버지의 추억을 가슴에 담고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면 강을 찾았고 아버지를 그리며 낚시를 즐겼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아버지의 강에 4대강 중장비를 밀어 넣었습니다.

4대강으로 망가진 어린시절의 금강

▲ 4대강 살리기라는 목적으로 금강의 뼈와 살을 발라내던 그 날부터 저의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 김종술

▲ 지난달부터 공주보에 또다시 세굴이 발생하였습니다. 보강 공사를 한다는 목적으로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 김종술

그래서입니다. 아버지의 강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삽자루와 꼬챙이가 날아올 때도 아버지가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텼습니다. 세상에 들어보지 못한 심한 욕설도 웃음으로 받아넘겼습니다. '밤길 조심해라'는 갖은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뼈와 살을 발라내듯 강은 파헤쳐지고 혈관을 막아버렸습니다. 숨통이 끊어질 듯 가쁨 숨을 몰아쉬던 생명의 강에 죽음이 닥쳐왔습니다. 허연 배를 드러낸 물고기는 처참하게 죽어갔습니다. 하루, 이틀... 십여 일 동안이나 지속하던 떼죽음으로 물고기 씨가 마를 정도였습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강물은 퍼렇게 변해갔습니다. 바닥까지 뒤덮은 녹조는 마지막 숨통까지 끊어 놓을 듯 옥죄여왔습니다. 아버지를 지키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했던 그 날처럼 전 또다시 자포자기했습니다.

텅 빈 주머니, 빗발치는 빚 독촉으로 취재수첩을 손에서 놓고 싶었습니다. 희미하게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렸던 것은 큰빗이끼벌레였습니다. 그 녀석을 금강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뒤부터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강을 찾았고 수문이 열리는 꿈도 꿨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열릴 듯 요동치던 수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강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보란 듯이 수문을 열어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제가 해냈어요'라고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킬 겁니다

▲ 지난여름 공주보 상류에서 퍼 올린 시커먼 준설토에서는 환경부 수 생태 4급수 오염지표종인 실지렁이와 붉은 깔따구만 득시글하게 올라왔습니다. ⓒ 김종술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펄 속에 들어가 실지렁이를 찾고 붉은 깔따구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금강을 떠나, 낙동강, 한강까지 휘젓고 다녔습니다. 온몸이 울긋불긋 피부병이 걸려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머리가 깨질 듯 고통이 밀려올 땐 강물에 두통약을 말아 먹었습니다.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웠습니다.

언제까지나 저를 응원하고 아낌없이 내주던 어머니가 건강을 잃었습니다. 한 달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병원의 처방에도 '돌팔이'라고 역정부터 냈습니다. 저를 지탱해준 어머니가 숨을 거두던 그 날, 공주보는 또다시 보강공사를 한다는 목적으로 피눈물을 흘리듯 흙탕물로 변했습니다.       

금강변 작은 소나무에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을 것이라는 냉대를 받으면서 버텼는데, 하염없이 터지는 눈물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혼자라는 생각에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며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

▲ 비단을 풀어헤친 듯 아름답다는 금강의 사업 전 모습입니다. ⓒ 김종술

그곳에서 어머니, 아버지에게 약속했습니다. 꼭 수문을 열어서 한을 풀어 드리겠다고. 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그 강을 걸었습니다. 차디찬 강물에 몸을 담그고 시커먼 펄 속에 손을 들이밀면서 떨었습니다.

흐르던 강물을 막아서 수질을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했던 이명박 정권을 꼭 청문회에 세우려 합니다. 차가운 강바람이 앞을 가로막지만, 저는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 생명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든 죽음의 강에서 오늘도 한 줄기 희망을 찾으려 합니다. 용기와 힘을 주세요.

▲ 지난해 국민 성금으로 구입한 투명카약을 타고 4대강 사업의 아픈 속살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 류우종


추천 리포트
이 기사와 관련된 최신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