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두 어른'이 담장을 넘는 순간, 아빠의 두려움도 사라졌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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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인범이 아닙니다

"살인범의 묘한 미소,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다"
[나는 살인범이 아니다④]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이 열어젖힌 '진실의 문'

16.09.29 16:30 | 글:박상규쪽지보내기|사진:이희훈쪽지보내기|편집:김지현쪽지보내기

▲ 16년 만에 법정 증언을 마친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살인누명을 쓴 최성필(가명)씨를 바라보고 있다. ⓒ 이희훈

식칼을 곤색 가방에 넣을 때 결심은 끝났다.

'오늘 꼭 이 칼로..'

칼이 든 가방을 메고 거리로 나갔다. 자정이 넘어 세상은 어두웠다. 익산시 OO은행 앞에서 왼쪽 도로 끝을 바라봤다. 빈 택시 한 대가 달려왔다. 사내는 손을 들어 택시를 세웠다.

"약촌오거리 좀 갑시다."

택시 뒷좌석에 앉은 사내는 가방 속의 칼을 만졌다. 약촌오거리를 500미터 쯤 앞두고 택시를 세웠다. 칼을 꺼내야 하는데 심장이 떨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칼 대신 동전 몇 개를 꺼내 요금을 치렀다. 그게 가진 돈의 전부였다. 사내는 눈앞에서 사라지는 택시를 보며 생각했다.

'넌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사내는 어두운 거리에 서서 한참을 생각했다. 결심한 대로 택시강도 짓을 해야 하나, 여기서 멈춰야 하나. 고민이 끝나지 않았는데, 저쪽에서 택시 한 대가 경적을 울리며 다가왔다. 사내는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는 약촌오거리를 향해 천천히 달렸고, 비극은 전속력으로 다가왔다. 사내는 가방 속 식칼의 손잡이를 잡았다. 택시는 목적지 약촌오거리에 멈췄다. 택시기사의 삶은 거기까지였다. 비극이 시작됐다.

전직 형사반장은 어떻게 살인 당시를 알고 있을까
▲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오른쪽)이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살인누명을 쓴 최성필(가명)씨를 위해 증언하기 22일 광주 고등법원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 ⓒ 이희훈

2000년 8월 10일 새벽에 발생한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의 상황이다. 사내는 택시기사를 죽이기 직전에 택시 한 대를 그냥 보냈다. 피해자의 운명이 바뀐 순간이었다.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은 지난 9월 22일 광주고등법원에서 바뀐 택시기사의 운명에 대해서 짧게 설명했다. 그는 범죄현장에서 모든 걸 지켜본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토록 상세하게 알까? 판사도 이 점이 의문이어서 그에게 물었다.

"모두 진범 김OO이 제게 말해준 겁니다."

식칼을 넣은 곤색 가방, OO은행 앞에서 택시 승차, 동전으로 치른 택시비, 살아남은 택시기사…. 이 모든 건 살인범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정보다. 살인범의 자백을 받아낸 형사가 잊지 않고 기억하는 그날의 진실이다.

택시기사를 살해한 진범을 체포해 자백을 받아낸 황상만 전 형사반장. 그가 9월 22일 열린 이 사건 재심 공판 증인으로 섰다. 사건 발생 16년만이다. 멀고 험한 길을 돌고 돌아 그가 진실의 문을 열어젖혔다.

황상만은 약 2시간 동안 그날의 진실, 잊을 수 없는 기억, 살인범의 눈빛과 묘한 웃음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그의 증언은 실제 사건과 일치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잊을 게 따로 있죠. 모든 걸 걸고 수사해서 체포했던 살인범이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났는데, 그걸 어떻게 잊습니까? 그 사건 때문에 내 인생도 크게 달라졌잖아요."

경찰이 진범 잡겠다는데 왜 말렸을까

▲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오른쪽)이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살인누명을 쓴 최성필(가명)씨를 위해 법정 앞에서 증언 순서를 기다리다 생각에 잠겨 있다. ⓒ 이희훈

이 사건으로 운명이 달라진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다. 황상만 전 형사반장은 진범 김OO을 체포했다는 이유로 좌천됐다. 수사업무에서 배제돼 지구대로 발령이 났으며, 그곳에서 정년퇴직했다. 황상만은 자신의 운명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이 사건에 손을 댔다. 시작은 실체가 희미한 첩보 하나였다.

다른 사건을 수사하던 2003년 봄이었다. 그의 귀에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진범은 따로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해당 사건은 이미 2000년 8월 범인이 검거돼 해결된 상태였다. 살인범으로 지목된 사람이 3년 전에 체포돼 교도소에 있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내사를 시작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고민이 굉장히 컸습니다. 이미 익산경찰서에서 살인범으로 15살 아이를 체포해 구속했는데, 진범이 따로 있다고 하니 나 혼자 판단할 일이 아니었죠. 당시 군산경찰서장, 수사과장 등과 회의를 여러번 했어요. 주변에선 건드리지 말라고, 절대로 수사하지 말라고 말렸죠."

아니, 경찰이 진범을 잡겠다는데 왜 주변 사람들이 말렸을까. 왜 직무유기를 주문했을까?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했어요. 경찰-검찰이 이미 수사를 끝냈고, 법원이 유죄를 확정한 사건인데 이걸 다시 뒤집겠다? 게다가 너무 많은 사람이 연결돼 있잖아요. 수사를 잘못한 경찰과 검사, 오판한 판사까지. 다들 내가 다칠 거라고 말렸죠."

당시 경찰서장은 "황상만 반장 당신이 알아서 판단하라"고 결정권을 넘겼다. 황상만은 수사를 시작했다. 자신이 다칠 것이란 게 쉽게 예상됐다. 그럼에도 뛰어들었다. 왜?

"살인누명을 쓴 사람이 15살 최성필(가명)이라는 아이더라고요. 어려도 너무 어리잖아요. 또 알아보니까, 얘가 거의 고아처럼 어렵고 힘들게 자랐더라고요. 가난하고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고. 나도 자식을 키우는 사람인데, 역지사지 해봤죠. 최성필이 불쌍해서 시작한 일이었죠. 어떻게든 걔를 풀어주고 싶었죠. 죄 없는 아이였으니까요. 또 무엇보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싶었어요. 저는 진실을 원했어요."

진범 자백이 있었지만... 검찰은 그를 풀어줬다

진범 김OO의 친구 임OO에게 먼저 접근했다. 그는 택시기사 살인사건이 벌어진 바로 그날, 진범 김OO을 숨겨준 인물이다. 그의 말은 놀라웠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살해도구 식칼에 관한 진술이었어요. 임OO이 칼을 봤고, 한동안 자기 침대 밑에 숨겼다고 진술했거든요. 칼에 피와 돼지비계 같은 하얀 기름이 붙어 있었다고 말했거든요. 게다가 칼끝이 조금 휘어졌다고 했어요."

▲ 살인범 김OO의 동생이 군산경찰서에서 한 진술. 김OO은 가족들에게도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 군산경찰서

결정적인 진술이었다. 곧바로 살인범 김OO을 검거했다. 김OO은 황상만에게 이렇게 자백했다.

"오른손으로 잡고 있던 칼로 택시기사를 공격하자 칼끝에 뼈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잡히면 내가 죽는다는 생각에 마구 찔렀습니다." - 2003년 6월 5일 피의자신문조서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진행한 택시기사 유OO의 부검결과와도 일치하는 진술이다.

"김OO이 말하길, 택시기사를 칼로 찔렀을 때 '딱' 소리가 났다고 했거든요. 칼이 갈비뼈에 걸린 거죠. 그래서 칼끝이 휘어진 것이고. 제가 수사경력만 30년이 넘습니다. 살인사건을 숱하게 다뤄봤잖아요. 살인범의 저런 진술은요, 진범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는 내용이에요. 게다가 국과수 부검결과에서도 갈비뼈가 크게 손상됐다고 나오잖아요."

황상만은 끝이 휘어진 식칼을 목격했다는 진술을 여러 명에게 확보했다. 검사에게 김OO을 구속해 달라고 요청했다. 군산지청 정OO 검사는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았다. 계속 영장 청구를 당부해도 정 검사는 살인범을 구속하지 않았다.

"미치겠더라고요. 살인범의 자백이 범행 정황과 일치하는데도 검사가 계속 풀어주는 거야. 보강수사를 해도 시답지 않은 이유를 대면서 또 풀어주고. 검사는 범행도구인 칼을 찾아오라고 주문했거든요. 3년 전에 버린 칼을 어디서 찾아. 그래도 칼이 묻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쓰레기장을 모두 뒤져보겠다고 했죠. 압수수색 영장이 나와야 쓰레기장을 파 볼 텐데, 검사가 그것도 안 해주더라고요. 한마디로, 더는 수사하지 말라는 거죠."

살인범 김OO은 황상만 반장에게 총 네 차례 자백을 했다. 그를 숨겨진 친구 임OO은 다섯 차례 자백했다. 뿐만 아니라, 김OO은 자신의 부모, 이모부 등 가족 앞에서도 "내가 택시기사를 죽인 게 맞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 검사는 계속 두 명을 풀어줬다.

살인범과 친구 임OO은 입을 맞춘 듯 어느 순간부터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했다. 둘이 함께 정신병원에 입원하기도 했다. 황상만은 독기를 품었다.

"형사로서 자존심이 있잖아요. 진범이 확실한데, 그냥 풀어주고 포기하는 게 말이 돼요? 경찰서장에게 제가 부탁을 했어요. '난 이 사건 해결할 테니까, 내게 다른 사건 맡기지 말아달라'고요. 1년 동안 이 사건만 계속 팠어요."

"진범, 경찰서 빠져나가는데 묘한 미소를..."
▲ 16년만에 법정 증언을 마친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오른쪽)이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살인누명을 쓴 최성필(가명)씨와 만나 대화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결과는 참담했다. 수사팀은 해체됐다. 수사비도 나오지 않았다. 황상만은 자기 돈 약 1000여만 원을 써가며 계속 수사했다. 포기하지 않는 형사. 결국 '큰 손'이 치고 들어왔다. 경찰서장이 교체됐고, 황상만은 더는 수사할 수 없는 지구대로 좌천됐다. 몇 번 수사업무 복귀를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황상만은 지구대에서 경찰 옷을 벗었다.

황상만은 유유히 경찰서를 빠져 나가는 살인범 김OO의 뒷모습과 미소를 잊은 적 없다.

"살인범 김OO이 경찰서에서 걸어나가는 걸 가만히 지켜봤죠. 친구 임OO은 고개 숙인 채 걸어가는데, 김OO은 어느 순간 고개를 돌리고 나를 바라보면서 묘한 미소를 짓더라고요. 그 미소….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그걸 어떻게 잊어."

살인범 김OO은 거짓으로 범행을 부인하기 시작할 때 황상만을 조롱하는 도발을 하기도 했다. 그는 대질 신문조서에 대범하게 이렇게 적었다.

▲ 살인범 김OO은 범행을 부인하면서 황상만 형사반장에게 "사실은 밝혀진다"고 직접 썼다. 일종의 조롱이었다. ⓒ 군산경찰서

"황 반장님이 사실은 밝혀진다고 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광주고등법원에서 증인 진술을 마친 뒤 황상만은 어느 때보다 후련해 보였다. 그는 이제 서른한 살 어른이 된 가짜 살인범 최성필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그날 황상만에게 물었다. 감히 계란으로 바위치기 한 걸 후회하지 않느냐고. 그가 말했다.

"그땐 제가 졌죠. 정OO 검사, 살인범에게 제가 졌죠. 그런데 후회는 안 해요. 15살 아이가 불쌍해서 시작한 일이잖아요. 저 나름대로 진실도 밝혔고. 저는 경찰로서 저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진실은 곧 세상에 다 알려질 겁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지만, 때로는 계란으로라도 바위를 계속 때려야 해요. 그러다 보면 바위가 깨질 때가 있어요."

▲ 황상만 전 군산경찰서 형사반장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살인누명을 쓴 최성필(가명)씨를 위해 증언하기 위해 법원 앞에 섰다. ⓒ 이희훈

황상만은 법정에서 모든 진실을 말했다. 곧 광주고등법원은 선고를 할 듯하다. 진실이 고개를 내밀 차례다. 사건 발생 16년 만이다. 살인범 김OO에게, 지금은 대도시 강력부장으로 승진한 정OO 검사에게 같은 말을 돌려줄 때가 다가오고 있다.

"진실은 밝혀진다고 했습니다."

[지난 기사]
③ 살인범 조작한 경찰 "하나도 안 부끄럽다"
② 살인범의 식은땀과 검찰�경찰의 뻔뻔함
① 진짜 범인 대신 '개' 잡은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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