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4대강 찬성한 전문가들, 피해 모를 리 없었다"

10만인 리포트

김병기의 아만남

스님의 독특한 친구, 알고 보니 대통령
[김병기의 아만남] 영담 스님의 하얀코끼리 ①

16.09.17 20:32 | 글·사진:김병기쪽지보내기|편집:김지현쪽지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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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코끼리'(이사장 영담 스님)가 스리랑카에 세운 보육원. ⓒ 김병기

[들어가며] 노동자들의 해방구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시퍼렇게 날이 서 있을 때 갈 곳 없는 노동자들은 부천 석왕사(주지 영담. 사단법인 하얀코끼리 이사장)에서 '노동 야학'을 했다. 전국 사찰로는 처음이다. 노동야학 출신 노동자들은 부천과 인천에서 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했다. 백중(음력 7월 15일) 노동자 문화잔치도 열었다. 첫 행사 때 1500여 명이 사찰을 찾았는데, 여기서 나온 구호는 파격이었다.

"전두환 대가리 깨부수자."

노동자들의 해방구였던 석왕사. 그 뒤 30여 년이 흘렀다. 이제는 이주노동자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스리랑카, 미얀마, 네팔, 라오스, 캄보디아, 필리핀, 태국…. 동남아 이주노동자들이다. 전두환 정권 아래 탄압받던 우리 노동자들의 자리를 메우고 있다.

"산재를 당해도 치료를 못하고 인건비를 떼이는 이주노동자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연탄보일러 기숙사에서 살다가 가스 중독으로 죽고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이 잘리고도 보상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도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평생회원인 영담 스님의 말이다. 이주노동자들과의 인연은 동남아로 확대됐다. 그는 '하얀코끼리'를 설립해서 이주노동자들의 나라인 동남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스리랑카에 다녀왔다. 그때 마힌다 라자팍세 스리랑카 전 대통령을 만났다. 지난 8월 11일(칠월칠석 및 백중문화제 기간)에는 라자팍세 전 대통령이 석왕사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법회에 참석했다. 이주노동자들이 맺어준 두 사람의 인연은 민간외교로 확대됐다.

이제부터 시작하려는 이 글은 지난 1월 영담 스님이 이끄는 하얀코끼리 일행과 스리랑카 방문 때 동행했던 뒤늦은 기록이자 여행기다. 최근 라자팍세 전 대통령의 방한으로 확인된 두 사람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 오토바이를 탄 스리랑카 사람들. ⓒ 김병기

[야간비행] 리비에르와 영담 스님

이코노미석 텅 빈 뒷자리에서 영화를 보다가 토막잠을 잤다. 아니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시차를 계산하면 9시간 동안 어둠 속을 날았다. 가끔 자갈길을 달리듯 기체가 요동쳤다. 얼마나 더 살겠다고…. 아주 잠깐이지만, 촌스럽게도 나는 폭풍 속에서 돌아오지 못한 생땍쥐베리 '야간비행'을 떠올렸다. 아직도 비행기는 낯설다.

멀리서 보니 별빛이었다. 생명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다가가니 불빛이었다. 불규칙한 떨림이 심해지면서 인도양과 마주한 스리랑카 불빛이 보였다. 야간비행 파비앵의 젊은 아내처럼 누군가 저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 반가웠다. 콜롬보 해안선을 따라 하얗고 노란 불빛이 물감처럼 번지더니 낯선 골목이 드러났다. 그 새벽, 두세 개의 불빛이 해안도로를 질주했다.  

인천공항에서 1월 2일 밤 10시 44분에 켜진 비행기 엔진은 스리랑카 시각으로 새벽 4시 10분에 멈췄다. 바퀴를 내리고 콜롬보 비행장으로 움직일 때 다른 비행기가 쏜살같이 지나쳤다. 파비앵이 야간비행에서 돌아오기 전에 리비에르의 명령으로 캄캄한 부에노스아이레스 공항을 떠난 우편 비행기. 내가 탄 KE473편 야간비행도 '실천파' 리비에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생떽쥐베리가 묘사한 리비에르와 한국의 스님. 어색한 조합이지만 나는 하얀코끼리 일행을 이끄는 영담 스님과 동행하면서 어렵사리 '야간 비행'을 성공시킨 리비에르를 생각했다. 민간 해외 지원 사업이라는 척박한 땅에서 10여 년간 리어카를 끌고 다녔고, 스리랑카 스님들의 환대를 받았다. 민간외교였다. 마힌다 라자팍세 스리랑카 전임 대통령은 그 중 한 명이다.
▲ 스리랑카에서 자전거 '툭툭'을 모는 노인. ⓒ 김병기

[거리 풍경] 맨발의 운전자

다른 나라에 오면 다른 것부터 보인다. 하얀코끼리 일행은 숙소에 도착해서 식빵에 잼을 발라먹은 뒤 곧바로 이동했다. 이른 시간이어서 거칠 게 없었다. 시내 한복판에도 보행용 신호등과 횡단보도는 거의 없었다. 인도가 없는 곳도 많았다. 사람들은 도로 갓길로 걸었다. 1970~1980년대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산업화는 인간을 갓길로 내쳤다. 속도는 비인간적이다.

왕복 2차선 좁은 도로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세 바퀴. 삼륜차 '툭툭 택시'다. 택시 천막 속에 탄 얼굴을 보니 스님, 노인, 임산부, 아이들 등 남녀노소 불문. 운전자는 맨발이었다. 자전거 툭툭을 타고 거리를 누비는 할아버지도 만났다. 기름기 없는 얼굴에 움푹 팬 주름은 힘겨운 노동의 흔적이다. 한국의 이주노동자를 닮았다.

우람한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땅바닥에서 제각각 솟아오른 나뭇가지들이 큰 나무를 만들었다. 거대한 뿌리가 땅 위로 솟은 듯했다. 인터넷 모바일로 확인해보니 '브레이브루크' 나무다. 나무 하나가 더불어 숲이다. 한 뿌리에서 나온 수많은 가지가 서로 엉겨 붙어 나무 기둥을 만들었다. 석왕사를 찾는 이주노동자들처럼.

생소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우린 가로수 열매가 은행이거나 기껏해야 감이다. 스리랑카는 이보다 열배 크다. 야자열매다. 콜롬보 사까라자 절을 둘러보다가 야자열매를 따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는 윗부분을 칼로 탁탁 쳐내더니 빨대를 꽂고 내게 건넸다. 밍밍했다. 영담 스님은 인상을 찌푸린 모습을 보고 우스개를 던졌다.

"중 이마떼기 닦은 물맛이지요?"

우린 일요일 아침, 스리랑카의 가난한 거리를 1시간동안 달려 한 고아원에 도착했다.

▲ 벽돌 한장. 영담 스님이 스리랑카 보육원에 놓은 초석. ⓒ 김병기

[감사] 벽돌 한 장

벽돌 한 장. 영담 스님이 보육원 앞마당에 놓은 초석이다. 스님은 그 위에 시멘트를 한 삽 떠서 올린 뒤 흙구덩이 바깥으로 나왔다. 한국에서 온 하얀코끼리 관계자들은 번갈아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벽돌 한 장씩 더 올렸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의식, 기숙사 착공식이다. 하얀코끼리가 짓는 건물이다. 지난 3일 하얀코끼리가 첫 번째로 찾아간 Pradeepa Lasksetha Poundation 부설 보육원에는 3~15세의 고아들이 산다.

이날 기숙사 착공식과 보육원 사무동 준공식이 동시에 열렸다. 8명의 스님들이 돌아가면서 한사람씩 길게 이야기했다. 하얀코끼리의 건물 기부에 감사하다는 말 같았다. 작은 항아리 속의 액체를 끓여서 흘러 넘치게 하고, 30여명이 실을 함께 맞잡는 의식이 이어졌다. 준공식은 고마운 마음에 비례한 건지, 무척 길었다. 영담 스님 인사말은 짧았다.

"일찍 완공해야 했는데, 너무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허리를 다쳐서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요, 준공식 약속을 지켜야 해서 약을 한 무더기 싸들고 왔습니다. 새 기숙사 건물은 빨리 완공하겠습니다. 스리랑카 스타일의 건물에 한국식 그림을 그려 넣겠습니다. 한국과 스리랑카, 하얀코끼리가 하나 되는 것이죠. 문화 교류도 하겠습니다."

그는 스리랑카로 가기 전날까지 급성 척추 분리증으로 병원에 누워있었다. 매일 약을 한 봉지씩 입 안에 털어 넣고, 밤에는 통증 탓에 수면제를 먹으면서 그날 벽돌 한 장을 쌓았다.
▲ 하얀코끼리 영담 스님이 스리랑카 라자팍세 전 대통령에게 기념품을 전달했다. ⓒ 김병기

[인연] 라자팍세 스리랑카 전 대통령과의 만남

하얀코끼리 일행은 5일 오후 라자팍세 전 대통령을 만났다. 지금도 여소야대 정국에서 힘을 발휘하는 정치인이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예고된 만남은 아니었다. 부천 석왕사에서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의 지도법사인 다미따 스님의 전화 한 통으로 성사됐다. 그만큼 스님과의 관계가 돈독하다는 뜻이다.

영담 : "전 대통령께서 불상과 진신사리를 기증하실 때 대통령께서는 한국의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격려하는 마음으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마음을 스리랑카 노동자들에게 전하려고 늘 기도합니다."

라자팍세 : "스님께서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위해 일해 주셔서 큰 힘이 됐습니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좋은 일자리를 찾아 잘 정착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영담 : "스리랑카 노동자 교육센터와 한글학교를 지으려고 이번에 방문했습니다. 미얀마에서도 세우고 있는데요.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몇 년간 일하고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 일자리를 찾기 쉽지 않아서 방황하거나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립니다.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고국에 왔을 때 정착을 도울 교육센터와 한국어 학교를 만들고 싶습니다. 작게나마 민간외교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라자팍세 :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한국을 포함한 타국에서 일을 하고 몇 년 뒤 자국으로 돌아오면 이미 많은 것들이 변해 있습니다. 공백을 채우기가 쉽지 않죠. 스리랑카와 한국 외교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소외 계층을 위한 스님의 노력은 스리랑카 노동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라자팍세 전 대통령이 영담 스님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내 질문에 "휴머니스트"라고 답변했다. 그는 이어 "오늘 제가 아픈 몸으로도 기꺼이 만남에 응하는 것이 답이라고 보시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는 심한 감기 몸살을 앓고 있었다.

영담 스님은 이날 라자팍세 전 대통령을 한국으로 초청했다. 2016년 8월 9일은 대통령 재임 시절에 전달한 진신사리를 석왕사에 모신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을 기념한 법회 때 주빈으로 참석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흔쾌하게 응했다. 7개월 뒤에 라자팍세 전 대통령은 그 약속을 지켰다.
▲ 2016년 8월 9일, 라자팍세 전 대통령이 석왕사에서 열린 부처님 진신사리 법회에 참석했다. ⓒ 석왕사

이날 영담 스님은 부처님 진신사리 친견법회에서 "라자팍세 전 대통령께서 직접 참석하여 더욱더 빛나는 법회인 만큼 불자들이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한 뒤 자비심으로 지구촌이 하나가 되는 데 진력해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라자팍세 전 대통령은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이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영담 스님께서 부모같이 보살펴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라자팍세 전 대통령이 친견(親見, 친히 봄)한 진신사리는 자신이 대통령에 재직하고 있을 당시인 지난 2014년 대통령궁에서 석왕사로 전달한 것이다. 라자팍세 전 대통령은 2008년 콜롬보 대통령궁을 통해 영담 스님에게 스리랑카 불상을 기증하기도 했다. 한국-스리랑카 불교회를 결성하고 스리랑카 불교 사찰 및 학교 지원사업을 해왔던 영담 스님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영담 스님은 1995년에는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을 설립했고, 스리랑카 미얀마 등지의 학교건립 및 교육문화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 다음 기사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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