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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인범이 아닙니다

살인범의 식은땀과 검찰·경찰의 뻔뻔함
[나는 살인범이 아니다②] 재심 결과 나오면 검찰은 정말 진범 수사할까?

16.08.03 21:37 | 글:박상규쪽지보내기|사진:이희훈쪽지보내기

▲ 지난 2000년 8월 10일 새벽 익산시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억울한 옥살이를 한 최성필(가명)씨가 서 있는 하늘 위로 해무리가 보이고 있다. ⓒ 이희훈

살인범의 손은 축축했다. 악수를 마친 나는 손을 바지에 문질러 물기를 닦았다. 미지근하고 끈적한 감촉은 오래 갔다. 

"미안해요. 법원에만 오면 아직도 식은땀이 나네요. 숨 막히고, 떨리고…. 저도 죽겠어요."

살인범의 등을 두드려 줬다. 넓고 단단한 등도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푹 젖은 살인범은 광주고등법원 201호 법정에 입장했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재심 두 번째 공판이 열린 7월 21일 오후였다.

"피고인 최성필(가명)씨 오셨나요? 앞으로 나오세요."

살인범은 판사의 부름을 받고 피고인석에 앉았다. 거기에서도 계속 손으로 얼굴의 식은땀을 닦았다. 6년 전부터 자신을 돕는 박준영 변호사가 옆에 앉아 있는데도 긴장을 풀지 못했다. 나이 31세, 180cm가 넘는 키, 100kg 가까운 몸무게, 현재 한 아이의 아버지. 이 거구의 어른은 아직도 법원에만 오면 벌벌 떤다.

아직도 법원에만 오면 벌벌 떠는 살인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경찰-검찰-법원이 최성필을 이렇게 만들었다.

덥고 습했던 2000년 8월 10일 새벽의 일이다. 익산 약촌오거리에 멈춘 택시 안에서 기사 유OO씨는 흉기에 십여 차례 공격을 받았다. 유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곧 사망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그 현장을 지나던 최성필이 범인으로 몰려 살인누명을 썼다. 그때 그의 나이 15살이었다.

익산경찰서 경찰들은 최성필을 체포했을 때 경찰서가 아닌 여관방으로 데리고 갔다. 불법 체포, 감금이었다. 구타와 허위자백 강요가 시작됐다. 몽둥이를 든 경찰 앞에선 식은땀이 나지 않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가짜 살인범은 그 눈물속에서 탄생했다. 검사는 그 자체로 공포였다. 드디어 법정에 섰을 때 소년 최성필에게 판사는 정의의 심판자이자 구세주로 보였다. 1심 재판 때 용기를 내 말했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때려서 택시기사를 죽였다고 허위자백을 했습니다."

판사는 구세주가 아니었다. 오히려 최성필이 사람을 죽이고도 반성하지 않는다며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당시 소년범에게 선고할 수 있는 법정 최고형이었다. 15살 최성필의 몸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최성필은 알아차렸다. 어른들은 거짓말을 원했다.

▲ 지난 2000년 8월 10일 새벽 익산시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살해된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발생한 위치에서 촬영한 한 택시의 모습. ⓒ 이희훈

"제가 택시기사를 죽였습니다.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선처해 주십시오."

거짓 반성의 대가로 2심 판사는 5년을 감형해줬다. 최성필은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사건 발생 3년 뒤인 2003년 군산경찰서가 진범 김OO을 체포했지만, 최성필은 풀려나지 못했다. 검찰은 진범을 구속하지 않고 풀어줬다.

15살 최성필은 지금 31살 어른이 됐다. 살인범이라는 꼬리표는 여전하다. 아직 법적으로 택시기사 살인범은 최성필이다. 진범 김OO은 단 하루도 처벌받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택시기사를 살해한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산다.

'법적 살인범'의 삶도 이제 곧 끝날 듯하다. 작년 12월 대법원은 이 사건의 재심을 결정하며 "(최성필의) 유죄를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새롭고 명백한 증거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사건 발생 3년 뒤 군산경찰서가 체포한 김OO이 진범이라는 뜻이다. 재심 재판을 맡은 재판부도 이를 잘 안다. 21일 2차 공판 때 노경필 재판장(부장판사)이 최성필에게 직접 물었다.

"이번 사건의 재심 결정은 최씨가 유죄가 아닐 수 있는 증거가 새롭게 나왔고, 이게 법원에서 채택돼 (재심이) 이뤄진 겁니다. 현재로써는 무죄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입니다. 무죄 판결을 빨리 받을 수 있을 듯한데요. 피고인은 재판이 빨리 진행되길 원하십니까?"

박준영 변호사 얼굴이 굳어졌다. 

"아니, 재판장님! 변호인이 이렇게 옆에 있는데 피고인에게 직접 물으시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재판부는 이 사건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한다. 대법원에서 재심을 결정한만큼 최성필이 16년 만에 누명을 벗는 건 거의 확실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지난 지난 6월 16일 1차 공판 때도 "빨리 무죄를 선고받아 누명을 벗는 게 피고인에게 좋지 않느냐"는 취지로 말했다. 박준영 변호사가 제동을 걸었다.

"당연히 누명을 벗어야죠. 피고인 최성필이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끝낼 일이 아닙니다.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에서 경찰은 위법 수사를 했고, 검찰은 진짜 살인범을 체포하고도 풀어줬습니다. 오판으로 15살 최성필에게 징역 10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한 법원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절차 대로 재판을 진행해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박 변호사 앞에는 전북지방검찰청 군산지청 소속 검사 세 명이 앉아 있었다. 검찰은 이 재판을 포기한 걸까? 이들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재판장이 재판을 빨리 마무리하자 하고, 변호인이 날선 비판을 해도 특별한 반응이 없었다. 검사는 왜 세 명이나 공판에 나왔을까? 지난 7월 21일 공판 때 검사 측이 의견을 밝혔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중략) 수사과정에서의 일부 문제에도 원 사건 1심과 2심 재판부가 피고인(최성필)에게 유죄를 선고한 것은 이 사건의 범인으로 인정할 만한 사정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피고인은 과거 1심 재판 때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에게 편지를 보내 '죄 지은 것을 반성한다'고 했습니다."

얼굴이 굳어진 박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장이 만류했지만 박 변호사는 마이크를 잡았다.

"진실과 정의? 지금 검찰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습니까? 대한민국 국민이 이 사건 기록을 본다면 과연 어느 누가 피고인 최성필이 범인이라고 하겠습니까! 도대체 왜 (검사는) 세 분이나 여기에 오셨습니까? 차라리 이 시간에 진범 수사를 하십시오! 개는 왜 불법으로 죽였습니까? (2화 기사 참고)"

재판장이 다시 만류했다. 박 변호사는 이 말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몇 번 말해도 (검찰이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 알아듣게끔 설명을 한 겁니다."

세 검사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차 공판이 마무리 됐을 때 박준영 변호사는 한 검사에게 웃으며 작게 말했다.

"검사님, 상식적으로 합시다. 진범 잡으셔야죠. 수사 안 하십니까?"

검사는 작은 목소리로 "재판 결과를 보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재심 결과가 나오면 검찰은 정말 진범 수사를 할까?

사실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진범 수사는 재판 결과와 큰 관련이 없다. 의지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경찰과 검찰은 "재심 재판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박준영 변호사의 말대로 경찰-검찰-법원은 이 사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찰은 위법 수사와 몽동이로 살인범을 조작했다. 검찰은 경찰 수사를 검증하지 못했다. 법원은 지문, 혈흔 등 그 어떤 물적 증거가 없는데도 최성필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지난 사건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하는 검사

▲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범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마친 최성필(가명)씨가 일을 하기 위해 주차를 마치고 사업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 이희훈

게다가 검찰은 사건 발생 3년 뒤에 잡힌 진짜 살인범을 풀어줬다. 살인범을 구속하지 않은 검사는 그동안 "지난 사건에 대해 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말해왔다. 그는 여전히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로 일하고 있다. 높은 자리로 승진도 했다.

대법원의 재심 결정에도 이들은 사과는커녕 유감 표명도 하지 않았다. 경찰-검찰은 진범이 누군지 알면서도 수사를 하지 않고, 법원은 재판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한다. 이런 국가기관의 모습은 누명을 쓰고 10년을 교도소에서 보낸 가짜 살인범 최성필이 지금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식은땀 흘리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이 사건에서 식은땀 흘린 사람은 한 명 더 있다. 바로 진범 김OO이다. 진범은 지난 2003년 6월 5일 군산경찰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택시기사를 칼로 마구 공격한 뒤 친구 임OO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식은땀 흘리고 옷에 묻은 피를 보고 친구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물 좀 달라고 했습니다. 진즉에 자수를 했더라면 저 대신 교도소에 들어가 있는 사람(최성필)이 고생을 덜 했을 텐데,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마음뿐입니다."

살인범과 가짜 살인범 모두 흘린 식은땀. 조작으로 이들의 운명을 바꿔버린 책임자들은 재심이 열리는 이 더운 여름날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오는 25일 오후 3시, 조작의 책임자 중 일부가 증인으로 법정에 선다.

[나는 살인범이 아니다①] 진짜 범인 대신 '개' 잡은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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