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안지랑 막창', 대구 사람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맛

10만인 리포트

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SK·LG 근무복 입었지만, 대기업 다니지 않는 사람들
케이블방송통신 노동자들 열악한 환경... 노조 만들어 싸웠지만 '직접고용' 먼 일

16.07.18 10:31 | 글:김진억쪽지보내기|편집:박정훈쪽지보내기

▲ 케이블TV, IPTV, 인터넷, 집전화를 설치하고 유지 보수하는 노동자들을 흔히 '기사'라 부른다. 하지만 동네에서 종종 얼굴을 마주치는 그들은 사용자에겐 유령이다. ⓒ 김진억

케이블TV, IPTV, 인터넷, 집 전화를 설치하고 유지 보수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기사'라 불리며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티브로드 등 대기업 마크가 선명히 새겨진 근무복을 입고 가가호호,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전봇대를 오르거나 옥상을 넘나들며 기술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다. 그래서 동네에서 종종 얼굴을 마주치는 그들은 사용자에겐 유령이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외주업체에 일하는 노동자다.

그것도 모자라 재하도급업체 내지 개인사업주로 일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들 설치, 유지보수 기사들은 원청에 의해 1년 단위, 6개월 단위로 업무실적에 따라 위·수탁 계약을 체결한 외주업체 소속의 간접고용 노동자다. 원청 대기업과 외주업체가 서로 책임을 떠넘겨 아무도 고용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우리는 대기업이 아니라 하도급 내지 재하도급으로부터 서비스를 제공받고 있다.

케이블방송통신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끔찍한 노동환경에서 일을 해야 했다. 주당 60∼70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강요받았다. 토요일은 정상근무, 일요일은 당직으로 최소 2번 이상 근무해야 하는 등 한 달에 1~2일 정도만 휴일이 가능하고 명절, 공휴일도 쉬지 못했다.

실적 압박에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가족과 함께, 저녁이 있는 삶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다. 위험한 작업으로 내몰리고, 다쳐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였다. 시간 외 수당, 4대 보험, 퇴직금 등 근로기준법은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차량유지비, 유류비, 통신비, 작업공구 등 업무비용도 노동자가 부담해야 했다.

원청의 지표에 의해 매달 실적과 등급이 매겨졌고 이에 따라 급여 차감은 일상화되었다. 업무는 사실상 원청에 의해 관리·감독되었고 복장, 명찰, 명함도 원청에 의해 규율되었다. 이처럼 원청이 외주업체와 해당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해 왔음에도 사용자 책임은 철저하게 부정해 왔다. 사용자에겐 그들은 부려먹되 책임지고 싶지 않는 유령이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치열하게 싸웠다

▲ 케이블방송통신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대론 안 된다. 더 이상은 못살겠다"는 절박함에서다. 이들이 바란 것은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휴일에는 가족과 야유회를 가는 평범한 것들이다. ⓒ 김진억

2013년 2월 씨앤앰, 3월 티브로드, 2014년 3월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외주업체 노동자들이 잇달아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이대론 안 된다. 더 이상은 못살겠다"는 절박함이 켰다. "저녁이 있는 삶", "우리도 휴일에 가족 야유회라도 가보자"는 기본적인 삶에 대한 요구가 간절했다. 쉽지 않았다. 방송통신 대기업은 원청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외면했고 외주업체는 탄압에 나서며 재하도급업체의 도급기사는 노동자가 아니라며 교섭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짧게는 한 달, 길게는 6개월간의 쟁의행위를 통하여 우여곡절 끝에 임단협을 체결하였다. 장기파업과 농성, 수많은 고소고발·진정과 근로감독 관철, 면담-점거투쟁, 단식, 고공시위 등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치열하게 싸웠다. 아쉬운 것이 많았지만 성과도 적지 않았다.

고용구조 개선(재하도급업체 폐지, 점진적으로 외주업체 정규직으로 전환), 법 위반 개선(4대보험, 퇴직금, 시간외근무수당 지급 등), 노동조건 개선(휴일근무 축소, 토요일 격주 근무, 일부 복지 개선), 부조리한 업무관행 개선 등 결코 작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도 업체 교체 과정에서 원청이 고용안정을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힘으로써 비록 외주업체에서나마 고용안정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성과는 CJ헬로비전 등 동종업종이나 원청 계열사의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에게까지 혜택이 돌아가게 하였다. 노동조합의 확산을 막으려고 원하청 협력이란 명분으로 외주업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일부 개선했던 것이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케이블방송과 통신노동자들은 여전히 투쟁중이다. 

투쟁을 멈출 수 없는 까닭은?
▲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의 손 피켓 ⓒ 김진억

케이블방송통신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임단협을 맺은 뒤 과연 노동조건 문제가 전부 해결됐을까? 최근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보자.

#상황1. 업체 교체 시 고용승계 거부

티브로드 외주업체 교체 과정에서 조합원 대량해고가 발생했다. 2016년 2월 1일부터 한빛센터(시흥, 광명지역) 담당 업체가 교체되고, 28명이 해고됐다. 3월 1일 전주센터 업체 교체하면서 23명이 해고됐다. 그런데 티브로드는 "협력사(외주업체) 노사 문제라 개입할 수 없다"며 방치했고, 7월 현재 해고노동자들이 5개월째 노숙농성을 하며, '진짜 사장'인 태광 이호진 전 회장의 구속 촉구 투쟁을 진행 중이다.

#상황2. 업무상 불이익 → 임금 삭감 → 생계 압박 → 노조탈퇴 유도

LG유플러스 사례다. 2014년 3~4월 개통기사가 받던 평균 수수료는 282만 3929원(업무비 포함)이었으나, 2015년 임단협 체결 이후 202만 5807원으로 80만 원 가까이 줄어들었다. 진일보한 임단협을 맺었는데도 월급이 줄어든 이유는 조합원들의 일감이 줄었기 때문이다. 센터가 단체협약을 어기고 조합원에게 배정하던 일감을 줄이고 비조합원이나 개인도급 기사에게 업무를 더 배정했다(소위 조합원에 대해 말려죽이기를 자행한 결과임).

#상황3. 하도급업체를 없애는 대신 개인도급을 확대

LG유플러스 외주업체 누리온(박종수 대표)이 운영하는 강북서비스센터는 현장기사 63명 중 조합원 1명만 정규직이다. 임단협 직후 조합원에 대한 회유와 협박, 업무상 불이익으로 생계를 어렵게 하여 대거 탈퇴한 것이다. 이직시키고 개인도급으로 전환시킨 경우가 많았다.

#상황4. 원청과 외주업체 간의 책임 회피

원청은 사용자가 아니라면 교섭을 거부하고 책임을 회피했다. 노사 교섭에서는 외주업체 협의회 교섭대표가 권한 없어 원청 눈치만 보고 있다. 교섭권을 위임받은 경총이 중간에서 개입, 사용자(원청, 외주업체, 경총) 간에 소통이 안 되고 의견이 불일치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책임 있는 대화상대가 없어 혼란스럽고, 원만한 대화 어려운 상황이다. 외주업체는 원청에게 노동조건 개선 비용을 미루고 원청은 외주업체도 비용을 부담하라며, 노사합의를 어렵게 하고 있다.

#상황5. 쟁의권 제한 – 파업 시 합법적으로 대체인력 투입

파업 시 원하청 도급계약 위반을 이유로 대체인력을 원청이 투입해도 된다는 행정해석 및 법원판례로 사실상 쟁의권을 제약했다. 또 외주업체가 파업을 대비해 미리 외주인력을 고용하는 방식으로 대체인력을 투입해서 쟁의권을 제약하는 상황도 있었다.

#상황6. 수 없이 많이 열거할 수 있는 부조리한 상황

2014년 8월 케이블 설치기사가 전봇대 작업 도중 추락사했다. 2016년 6월에는 삼성전자지회 수리기사가 추락사했다. 케이블방송통신, 가전 노동자들은 안전장치 없이 위험한 작업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지만 사용자는 그 기본적인 바람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용불안이다. 실적과 지표를 이유로 외주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해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고용승계를 빌미로 노조 탈퇴를 압박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매년 반복되는 신분 불안은 노조탈퇴와 이직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장 원청으로 직접고용은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단계하도급 구조를 없애고 1차 하도급업체의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한 사안을, 사용자는 꼼수를 부려 재하도급업체를 없애는 대신 개인도급을 대거 확대했다.

부조리한 고용구조의 온존을 넘어 문제를 심화시킨 것이다. 원하청 사용자는 어떻게든 이윤을 유지, 확대하고자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며 저임금 구조를 유지시키기 위해 안달이다. 합법적 대체인력 투입이 가능하니 파업하려면 해보라는 식으로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직접 고용이 답... 그게 힘들다면 세 가지만이라도 지켜라

▲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의 손 피켓 ⓒ 김진억

위에서 열거한 부조리한 행태의 근원은 원청에 있다. 재벌이 문제다. 진짜 사장인 원청 재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10대 재벌 계열사 노동자 120만 명 중 43만 명(36.3%)이 비정규직인데 이중 외주업체 노동자는 36만 명, 30.2%에 달한다.

300인 이상 기업의 간접고용 노동자 중 92%가 1000인 이상 기업에 분포한다. 규모가 클수록 간접고용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재벌이 외주업체 노동자 확대의 주범이다. 그들이 간접고용노동자를 확대하는 이유는 비용절감도 있지만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정규직보다 절반의 임금으로 부려먹을 수 있고, 언제든 계약 만료로 해고할 수 있고, 내가 사용자가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데 어느 사용자가 외주화, 간접고용을 마다하겠는가?

원청 재벌에게 책임을 묻는 최선의 방법은 직접 고용하게 하는 것이다. 고용불안 등 위에서 언급한 문제 상당수도 직접고용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다. 답은 직접고용이다. 이를 법으로 강제하든 현장투쟁으로 쟁취하든 직접고용이 필요하다. 당장 직접고용이 안 된다면, 시간이 걸린다면 우선 세 가지는 반드시 책임지게 해야 한다.

첫째 외주업체 교체 시 고용·근속·단협 승계. 둘째 원청사용주의 하청노동자에 대한 직접교섭 의무화. 셋째 쟁의행위 시 대체인력 투입 금지. 이는 원청이 사용자 책임, 사회적 책임을 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외주업체와 도급 계약 체결할 때 고용·근속·단협 승계를 조건으로 내 걸면 될 일이다. 이에 대한 정책적, 재정적 지원을 하면 된다.

진짜 사장인 원청이 직접 교섭에 나온다면 소통 불능으로 인한 불필요한 갈등 없이 원만한 노사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헌법상 권리인 쟁의권 보장을 위해, 노동3권 중 하나인 쟁의권을 사실상 박탈당한 대체인력의 투입은 중단되어야 한다. 이것이 공정한 룰이다. 원청이 이 3가지를 보장하면 되지만, 어렵다면 사회적으로 이를 규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입법을 통해 강제해야 한다.

케이블방송통신노동자는 기로에 서 있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치열한 투쟁을 통해 일부 노동조건을 개선했지만 원·하청 사용자의 저항과 반격이 만만치 않다. 방송통신산업 환경도 녹록지는 않다. 방송통신 가입자는 한계에 이르렀고 서로 가입자 뺏기와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방송통신 재벌은 이러한 한계상황을 모바일 중심 방송통신 융합상품을 통해 신성장 동력을 형성함으로 이윤을 확대하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통신이 케이블방송을 인수 합병하는 방향으로 규모를 키우려 하고 있다. 이윤유지, 확대를 위해 외주업체에 도급단가를 후려치고, 외주업체는 이를 노동자에게 전가하여 노동조건 후퇴를 기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통신의 방송 장악, 공익성, 지역성, 다양성이 약화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는 곧 노동자의 고용, 노동조건, 생존권의 위기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선 이윤보다 인간을 생각하고, 방송통신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노동자의 고용, 권리, 생존이 보장돼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현장투쟁과 대중적 사회정치운동의 결합이 필요하다. 이것이 케이블방송통신 노동자의 미래를 위한 전략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국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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