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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두 어른> 작품 사면 '캐리커처 선물' 드리겠다"
[인터뷰] '꿀잠' 위해 캐리커처 그리는 박재동 화백

16.07.12 17:32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사진:정대희쪽지보내기|편집:장지혜쪽지보내기

▲ 박재동 화백이 두 어른을 '붓 가는대로' 그렸다. 붓이 그린 두 어른은 어떤 모습일까? '아름다운 칼날'이고 '고목나무'이다. ⓒ 정대희

여기 캐리커처 두 점이 있다.

한국 시사만화의 대부 박재동 화백(64)이 스케치북에 '붓 가는 대로' 그린 작품이다. 한 장에는 '거리의 백발투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길 위의 신부' 문정현 신부가 앉았고, 신학철 화가가 배경이다. 다른 한 장에는 문 신부의 서글서글한 모습을 담았다. 박 화백이 지난 5일,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쉼터 '꿀잠' 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나선 백기완 선생과 문정현 신부의 <두 어른> 전시장에서 그린 작품이다.

"이건 아주 특별한 사건이야! 미술계가 불황인데, 전시 일주일 만에 74점이 팔렸다는 게 믿기지 않아."

지난 11일 만난 박 화백의 감탄사처럼 지난 5일부터 서울 종로구 통인동 '류가헌'에서 열리는 <두 어른>의 붓글씨, 서각전에 내건 110점의 작품은 불티나게 나갔다. 현재 남은 작품은 모두 36점(11일 오후 4시). 박 화백은 "돈이 남아돌아서 산 게 아니라 <두 어른> 작품의 취지에 공감해서 몇 달 치 월급을 쪼개 어렵사리 산 분들이 많다"며 "그분들에게 선물을 드리겠다"고 했다.

박 화백이 주는 선물은 캐리커처다.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학생들을 기억하기 위해 캐리커처를 그리기도 한 그는 이번에는 고마움의 징표로 붓과 펜을 들었다. 그는 "전시회가 끝나는 오는 17일 오후 3시부터 6시 사이에 류가헌 전시관에서 이미 작품을 사신 분이나, 현장에서 사시는 분들을 위해 캐리커처를 그려주겠다"며 <두 어른> 작품 완판을 위한 '공약'을 내걸었다.

▲ 박 화백은 두 어른의 글과 서각을 어떻게 봤을까. 그는 백기완 어르신의 글에 "천재 예술가이자, 혁명가의 발자국이 오롯이 느껴진다"고 말했다.문정현 신부의 서각은 "바윗돌처럼, 기둥처럼 꼿꼿하게 역사와 민중 속으로 뚜벅 걸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 정대희

"천재 예술가이자 혁명가의 발자국"

우선 한지에 쓴 백 소장의 붓글씨를 본 소감을 물었다. 

"소복하게 쌓인 흰 눈 위에 백 선생님의 발자국이 찍힌 것 같아. 천재 예술가이자, 혁명가의 발자국이 오롯이 느껴져. 백 선생의 호흡과 혈맥, 즉 피의 흐름과 치열한 삶을 필치 속에 담았어."

박 화백은 한국 예술종합학교 교수이기에 백 소장 붓글씨를 미학적으로 평가해 달라고 했다.

"묘한 느낌이 들었어. 나는 어디에 물만 떨어져도 그걸로 글씨를 쓰고, 허공에도 써. 내가 볼 때 백 선생님의 글씨는 전통적인 서도법에서 볼 수 없는 글씨야. 어떻게 보면 막 쓴 거지. 기질대로 쓴 글씨야. 삐뚤빼뚤하고 아름답다고 볼 수 없어. 그런데 내 글씨보다 귀중한 물건이야. 천재적인 정신세계가 담겨 있기에 미학을 논할 수 없어. 미학을 초월한 글씨야. 글에 담긴 내용도 한편의 시이자 예술이야. 선승들의 경지가 느껴졌어."

그는 연신 "햐~~"하고 탄성을 던지면서 백 소장의 글귀에 밑줄을 쳐갔다. 그러다가 "바로 이게 내가 최고로 감탄한 글귀"라고 말했다.
▲ 백기완 소장이 <두 어른>전에 내놓은 붓글씨 작품. ⓒ 백기완

위의 붓글씨에 취한 이유를 물었다.

"역사의 진보는 당위적인 것이지만, 억지로 할 수는 없는 거야. 역사는 진보할 수밖에 없다는 희망과 열정, 믿음이 담겨 있어. 술 한 잔을 마시면 또 한 잔을 들이키고 싶은 것처럼, 사랑을 하면 하루 이틀이고 계속 만나고 싶은 것처럼 진보는 매혹적인 예술이라는 것이야. 역사의 진보에 취하면 새벽처럼 당연히 다가오는 것이라고."

"문 신부 어깨 위에 짊어진 십자가의 무게가 느껴졌어"

박 화백은 문 신부의 서각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했다.    

"백기완 선생과는 다르지. 문 신부님 서각은 바윗돌처럼, 기둥처럼 꼿꼿하게 역사와 민중 속으로 뚜벅 걸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야. 글씨 속에 자기 철학도 담았지만, 신앙인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실천하는 내용이지. SNS를 통해서 작품 사진을 처음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직접 실물을 보니까 나무의 두터움에 실린 무게와 질감이 느껴졌어. 길 위에서 흘린 땀의 무게를 실어서 조각칼로 나무를 판 거야."

그는 "백 선생님과는 달리 문 신부의 작품에서는 어깨 위에 짊어진 십자가의 무게가 느껴진다"면서 "이게 내 가슴을 쳤어"라며 한 작품의 글귀를 꼽았다.

▲ 문정현 신부가 <두어른>전에 내놓은 서각. ⓒ 문정현

박 화백은 "구약 성경에 기록된 시대나 지금이나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아픔은 한없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수천 년 동안의 끊임없는 울부짖음이 확~ 오더라"고 말했다.

도끼와 고목나무

- 이번에 꿀잠 건립기금 마련을 위해 작품을 내주신 <두 어른>은 우리 시대의 어떤 존재로 생각하시는지요?
"지금 이 시대에 억압받는 자와 고통 받는 자들을 위해 온몸을 던져 저항한 어른이 있냐고 물었을 때 백기완, 문정현 두 어른이 계신다고 말할 수 있지. 좋은 사람과 함께할 때 우리는 행복해. 존경할 만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하지. 수많은 고난의 한국 역사 속에서 푯대나 지붕이고 기둥인 두 분은 이 시대가 남겨준 선물이야."

- 그런 두 어른의 캐리커처를 그리신다면 어떤 특징을 부각시키겠습니까?
"백 선생님을 칼날에 비유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강력한 도끼와 같지. 어디에도 부서지지 않는 칼날인데 벼리고 벼려서 무서운 칼날이 아니라 지금은 곱고 아름다운 여인의 손길, 동정의 옷깃처럼 고와진 칼날이야. 얼굴은 포효하는 호랑이 같고 청청한 갈기를 흩날리는 모습인데 지금은 묘하게도 할머니나 색시 같은 모습이 살짝 비쳐. 하-하-. 결기는 그대로인데, 길 위에서 꼿꼿하게 버티는 모습을 보면 하얗게 맑아진 할머니의 모습이 살짝 비친다니까. 

문 신부님은 어떤 어려움과 더러움에도 함께 뒹구는 고목나무 같아. 그 어떤 물 속, 불 속도 마다않고 몸을 던져주는 큰 나무 등걸 같은 느낌이야. 그 안에는 시쳇말로 온갖 오물이 있고 고통과 아픔, 분노가 있는 데 그 모든 걸 다 끌어안고 계시는 모습이야."

개돼지 같이 대접받는 비정규직을 위해

박 화백이 <두 어른>의 작품을 사는 분들에게 캐리커처를 그려주겠다고 나선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백기완 소장과 문정현 신부가 "내 작품은 예술품이 아니다"라면서 처음에 전시회를 열지 않겠다면서 손사래를 치면서도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요즘 길고양이랑 유기견도 보호하고 살 곳을 마련해주는데 비정규직은 지금도 갈 곳이 없잖아. 지금 우리가 비 안 새는 지붕 밑에서 잠을 편하게 잘 수 있었던 과정에는 비정규직들의 희생이 있었어. 최근 누군가가 '민중은 개돼지'라고 했는데, 직장에서 내몰리면 죽음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불안한 비정규직들은 개돼지 취급을 받고 있어. 희생자들이지. 이걸 외면해서 되겠어? 그래서 내가 가진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다는 거야. 시대의 피해자들에게 작은 사랑방을 마련해주겠다는 사람(<두 어른> 작품 구매자)들이 고마운 거지. 비정규직들이 꿀잠을 자야 우리도 꿀잠을 잘 수가 있는 거야."
▲ 박재동 화백의 붓은 거침이 없었다. 국수집 한 귀퉁이에 앉아 ‘뚝딱’하고 취재기자의 캐리커쳐를 그려 그 자리에서 선물했다. ⓒ 정대희

박 화백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 회사에 오니 이번 전시회를 준비했던 송경동 시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저희야, 박 화백님이 도와주셔서 너무 고맙죠. 우리도 작품 구매하는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비정규 노동자의 쉼터 '꿀잠' 건물 벽면에 '연대의 벽'을 만들어 이름을 새길 겁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하시면, 박 화백이 캐리커처 선물을 얹혀 드리는 두 어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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