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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10만인

연봉 4억 2700만원 받는 '목사답지 못한 목사'
4대강사업과 쓰레기시멘트 문제 해결 나선 저, 이상한 목사인가요

16.07.11 15:21 | 최병성 기자쪽지보내기

▲ 요즘 수시로 법정과 검찰청을 들락거립니다. 그 이유를 함께 나누려합니다. ⓒ 최병성

"니가 목사야? 목사면 목사답게 살아!"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이전 입주자 대표가 제게 퍼부은 욕설입니다. 제가 주민들과 함께 마을 초등학교 앞산을 깎고 들어서는 화학물질 취급 시설 공사를 막는다는 이유였습니다. '목사답게 살라'는 말을 들으며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야? 그럼 증명해 봐!"

제사장 뜰에 잡혀 있는 예수를 심문하며,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예수를 향해 십자가에서 뛰어 내려와 보라며 사람들이 던진 조롱의 말이지요. 하나님의 아들이 성전에서 거룩한 삶을 살지 않고, 거리에서 죄인과 어울리며 하나님 아들다운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사답게 산다'는 게 무엇일까요? 십자가 달고 있는 교회당에서 은혜로운 설교로 성도들에게 감동을 주고, 결혼식과 장례식 주례 서는 것만이 목사가 목사답게 사는 것일까요? 

목사답지 못한 길에 들어서다

'목사'를 교회라는 건물에 한정하여 생각하는 신앙인들에게 저는 분명 목사답지 못한 '이상한 목사'입니다. 목사답지 못한 삶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지난 1999년 강원도 영월 서강을 지키느라 2년을 고생했습니다. 영월군수가 맑은 서강변에 쓰레기매립장을 건설하려 했기 때문이지요.

영월 군수가 지역 교회의 인허가를 틀어쥐고 '목사답지 못한' 최병성 목사만 서강에서 빼내주면 지역 교회의 인허가 숙원사업을 다 해준다고 '목사다운 목사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덕에 영월지역 목사님들의 모임에 불려가 인민재판을 받았습니다.

"당신 때문에 우리 교회 신축허가가 안 나온다."
"당신 때문에 우리 교회 앞 도로가 신설되지 않는다."

저 때문에 교회 관련 인허가가 안 난다는 목사님들의 불평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당시 영월 최고 원로 목사님께서 사태를 최종 정리한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를 그만두거나, 서강 일을 그만두거나,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하라."
"목사도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명이요. 서강을 지키는 것도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명이니 둘 다 포기 못합니다."

이렇게 대답하고 저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 목사답지 못한 삶 덕에 서강의 맑음을 지켜낼 수 있었고, 서강의 한반도지형을 발견 공개함으로써 영월의 최고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 최병성

그런데 참 신기하죠? 목사답지 못한 저는 고생 끝에 서강을 지켜냈고, 영월 군수는 쓰레기매립장 갈등으로 인한 여론 악화로 다음 군수 선거에서 낙선되었습니다. 목사답지 못한 삶 때문에 지역의 목사들로부터 비난을 들어야 했고, 목사직을 박탈 당할 위기를 겪을 만큼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야 했지만, 하나님은 목사답지 못한 저를 마지막에 웃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서강을 지키기 위해 땀 흘리던 1999년 12월 20일, 목사답지 못한 목사가 처음 발견하여 세상에 공개한 '서강의 한반도 지형'은 영월의 최고 관광 명소가 되었고, 이후 마을 지명은 '영월군 서면'에서 '영월군 한반도면'으로 개명되었습니다.

새벽예배 대신 새벽항구에 잠복한 이상한 목사

2006년 봄, 집을 짓는 시멘트가 각종 쓰레기로 만들어져 국내 시멘트에 발암물질이 가득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쓰레기 발암시멘트를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토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보며, 교인들의 영적 양식을 염려하는 목사다운 목사님들과 달리 목사답지 못한 목사는 전 국민의 건강을 염려했기 때문이지요.

성경과 주석을 봐야 할 시간에 화공학과 반도체공학 책 등을 뒤졌고, 쓰레기시멘트 유해성을 찾는 탐정이 되었습니다. 쓰레기로 시멘트 만드는 현장을 찍기 위해 교회가 아니라 시멘트공장에 잠입했다 발각되어 공장 직원들에게 수시간 동안 감금되었다가 3대의 경찰차가 오고서야 풀려나기도 했습니다.

▲ 시멘트공장의 쓰레기 불법 야적을 촬영하기 위해 공장에 잠입했다가 발각되어 수 간 동안 붙들려 있다가 경찰차 3대가 오고서야 풀려났습니다. ⓒ 최병성

쓰레기 시멘트 엉터리 기준을 입법화하는 환경부 공청회에서도 목사답게 점잖게 앉아있지 못했습니다. 국민 건강 해치는 악법을 밀어붙이는 환경부 공무원들 앞에 자료를 집어 던지며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버스 타고 집에 돌아오며 목사답지 못한 행동이 부끄럽고 후회스러웠습니다. "목사가 왜 그러냐?"는 수군거림이 들려왔지만, 그 덕에 입법예고됐던 악법을 저지할 수 있었고, 쓰레기발암시멘트 개선을 위한 민관협의회 구성을 이끌어내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악을 막기 위해서는 골방의 기도만이 아니라 목사답지 않은 불같은 행동도 필요했습니다.

목사가 목사답지 못하다 보니 쌍용시멘트 영월공장 정문에 "최병성은 쌍용지역에 접근 말라" "원흉 최병성은 각성하라"는 현수막이 펄럭이기도 했습니다.

▲ 목사답지 못한 목사의 이름이 현수막에 펄럭입니다. ⓒ 최병성

어둠이 걷히는 새벽, 목사다운 목사는 교회당에서 새벽예배를 인도하는 게 마땅하지요. 그러나 목사답지 못한 목사는 삼척항과 동해항에서 추위에 떨며 밤새 잠복하다 일본에서 들여오는 쓰레기 하역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목사가 목사답지 못하게 살다보니,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앞뒤 살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을 살았습니다. 고소와 소송뿐 아니라 죽인다는 협박도 날아오기 때문이지요. 쌍용, 현대, 아세아, 성신, 한일, 한라시멘트라는 대재벌들과 별 볼일 없는 한 개인과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으로 비교할 수도 없는 불공정한 게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환경부가 비호하는 시멘트 재벌로부터 목사답지 못한 저를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명박 장로님을 방해한 목사답지 못한 목사

목사답지 못한 목사는 감히 이명박 장로님의 최대 역점사업인 4대강사업에도 개입했습니다. 한 개인에 불과한 제게 어떤 보복이 돌아올지 두렵기도 했지만, 생명의 강을 파괴하는 거짓 앞에 침묵할 수 없었습니다.

▲ 이명박 장로 덕에 우리가 잃어버린 낙동강의 아름다움입니다. 강 살리기가 아니라 생명의 강 죽이기 사기극 앞에 기도만이 아니라 외침이 필요했습니다. 비록 목사답지 않다고 욕을 먹을지라도 ⓒ 최병성

교회당 대신 무자비한 삽질에 신음하는 4대강 공사 현장을 누볐고, 전국을 돌며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외쳤습니다. 목사답지 못한 목사의 설교는 교회당 강단이 아니라 <오마이뉴스>를 통해 '4대강사업은 국토를 파괴하고 국고 거덜 내는 사기극'이라고 전국에 퍼져나갔습니다.

목사답지 못한 목사는 이명박 장로의 최대 치적으로 여기는 청계천 복원이 물고기를 사다가 풀어놓은 사기극이며, 역사 파괴의 범죄라고 크게 떠들었습니다.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으로 하여금 장충단공원에 처박혀 있는 수표교의 청계천 복원과 건강한 생태 하천 등 청계천의 올바른 개선을 위한 길을 열게 했습니다. 

목사답지 못한 목사의 연봉이 4억2700만 원

목사가 목사답지 못하다보니 제 연봉(?)이 제법 많습니다. 최근엔 4억2700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해 지금도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마을 초등학교 앞산을 깎는 사업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입니다.

▲ 성도들에게 존경과 대우 받는 교회당이 아니라, 보기에도 섬뜩한 철장 안에 들어가 조사받는 일이 제게 반복되고 있습니다. 목사답지 못한 삶을 산 덕분이지요. ⓒ 최병성

목사답지 못하다보니 경찰서와 검찰청을 출근해 하루 종일 조사받는가 하면, 범죄자로 낙인 찍혀 형사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하나님 아들답지 못한 예수는 홀로 억울한 재판을 받고 주먹질과 침뱉음과 채찍질 당해야 했지만, 목사답지 못한 목사는 그래도 저를 변호해 줄 변호사님과 함께 법정에 설 수 있어 행복합니다.

다행히 용인시가 이 사업의 불법을 인정하여 지난 4월 1일 허가취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1년 3개월여 만에 저와 마을 주민들이 숲을 지켜내는 정의로운 승리를 얻었지만, 앞으로 지루한 소송이 남은 것이지요.

목사답지 못한 목사가 <길 위의 십자가> 신앙 서적을 쓰다 

▲ 길에서 만나는 십자가들을 통해 십자가의 참 의미를 풀어낸 책을 출간했습니다. ⓒ 최병성
목사답지 못한 목사가 최근 <길 위의 십자가>라는 신간을 출간했습니다. 제가 목사다운 목사 흉내 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목사답지 못한 목사가 쓴 책이 목사다운 목사를 좋아하는 성도들에게 많은 불편함을 주고 있답니다.

한 분이 제 아내에게 전화해서 '여러 친구들과 책을 읽었는데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책의 앞부분은 참 따듯하고 좋았는데, 뒤로 가면서 '탐욕의 신'과 '다른 복음'이라는 말들에 마음이 불편했다'고 전한 것입니다.

<길 위의 십자가> 책을 펴서 그분들이 불편하다는 페이지를 찾아 읽었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요즘 한국교회에 예수 십자가와는 전혀 상관없는 가짜 복음이 은혜라는 이름으로 유통됩니다. 수만 명의 교인을 자랑하는 유명한 모 목사는 십일조 안 하면 암에 걸린다고 설교를 해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수 십자가와는 아무 상관없이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며 탐욕의 신을 팔아먹은 것이지요. 사도 바울은 우리 주위에 '다른 복음'이 있음을 주의하라고 경고합니다. 예수 십자가 은혜로 하나님 앞에 선 자들이 십자가와는 전혀 다른 복음을 추종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삶이란 거창한 데 있지 않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더 예수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교회에서 이런 변화의 가르침을 만나긴 참 어렵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거듭나는 것인데, 거듭남엔 고통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저 예수 믿으면 만사형통한다는 '거짓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로 넘쳐납니다. 한국교회가 병든 것은 '열심'만을 강조하며 '변화'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열심히 예배 참석하고, 교회 봉사 열심히 하는 것을 신앙의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몇 번을 읽어봐도 아주 평범한 내용인데 이 정도를 불편해 하다니, 그저 은혜만 강조하는 한국교회의 문제를 잘 보여주는 것이지요. 달고 맛난 것만 좋아하는 성도들로 가득한 한국교회에서 '따름과 변화'를 강조하는 제 책이 잘 팔릴 일 없겠죠?

십자가의 깊은 의미를 설명하는 책이라, '목사다움'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달콤한 이야기만을 쓸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 안엔 솜사탕 같은 달콤한 이야기들도 담겨 있지만, '따름'과 '변화'라는 입에 쓰디쓴 보약이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예수는 '나를 예배하라'고 말한 적이 없고, '나를 따르라'고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따름을 잃어버리고, 예배만 가득한 한국교회에 "따름과 변화'를 강조한 제 책이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수의 진짜 '복음'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 제주도 성지오름의 삼나무들이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십자가처럼 보입니다. 예수는 '나를 예배하라'고 하지 않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예배는 많으나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따름'을 잃어버렸습니다. ⓒ 최병성

목사답지 못한 삶을 앞으로도 살아갈 것입니다

목사가 목사답지 못한 삶을 산 지 어언 16년이 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편안한 교회가 아니라, 거친 광야 길로 몰고 가시며 목사답지 않은 목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분이 이끄신 길이기에 제게 승리를 선물해주셨습니다.

목사다운 목사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이 제게 왜 목사가 '환경'이라는 세상 일을 하냐고 질책하듯 묻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한국교회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이 만든 이 세상이 오염되고 파괴되는 것을 외면합니다. 정작 그들이 믿는 신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라 성공과 부를 보장하는 탐욕의 신임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길에서 태어난 예수는 길과 들에서 말씀을 전했고,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골고다 언덕이라는 길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그의 삶은 한마디로 '길 위의 예수'였습니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성전으로 오라하지 않고, 낮은 곳에 내려가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세상을 소통케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길 위의 예수를 교회당 안에 가두었고, 예수처럼 세상을 소통케 하기 보단 세상과 담을 쌓았습니다. 물이 많아졌으나 흐름을 잃어 버려 녹조라떼가 된 4대강처럼, 교회가 병든 이유도 똑같습니다. 교회와 교인은 많으나 예수처럼 세상을 향해 흐르는 소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지요.

아마 저는 앞으로도 목사답게 살지는 못할 것입니다. 목사가 목사답지 못한 이상한 길. 지금까지 누가 제게 월급과 차비를 보태주는 것도 아니기에 배부르고 편안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칭찬과 인정과 성공의 보상이 뒤따르는 화려한 길도 아닙니다. 경찰서와 검찰청에 수시로 출근해야 하고, 협박에 시달림이 계속될 것입니다. 날마다 가벼운 주머니를 걱정하는 현실도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목사가 목사답지 못한 삶은 아내에게 남편답지 못한 못난 남편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 생명을 지키는 목사답지 못한 이 길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이기에, 아픔 많은 이 세상에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기에, 오늘 또 "네가 목사냐?"는 비아냥을 들을지라도, 어느 날 목사직이 박탈되는 일이 벌어진다 할지라도, 때로는 나 홀로 남모를 눈물 흘리는 날이 올지라도 "네!" 대답하며 기쁜 마음으로 달려 갈 것입니다. '목사다운 목사'보다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를 조금이라도 닮고 싶기 때문입니다.

▲ 잎사귀 끝에 매달린 새벽이슬 방울 속에 개나리 나무 가지가 십자가 모양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때로 눈물 흘릴지라도 따라 가야할 예수의 십자가 길을 말하는것이지요.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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