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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문정현 "분단은 독재의 빌미, 용납할 수 없었다"
[꿀잠] 백기완 소장-문정현 신부의 댓거리 ③ 남은 자

16.07.06 05:27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서정은쪽지보내기|사진:이희훈쪽지보내기|편집:장지혜쪽지보내기

[노동이란?] "빚음이야, 창조야"

문 신부가 1988년 창인동 성당에 부임한 뒤의 이야기다.

▲ '길위의 신부'라 불리는 문정현 신부 ⓒ 이희훈

"시위가 시작되고 어린 애들이 경찰한테 맞아 터지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화염병 더 없냐? 성당에서 실어와. 그것밖에 안 남았어?' 그런다고. 간밤만 해도 화염병을 만들면 안 된다고 야단치던 사람이 노동자들이 밀리고 잡히고 깨지는 걸 보면 정말 살기 위해 화염병을 찾게 되고, 왜 이렇게 쬐끔 만들었냐고 오히려 소리를 지르고……. 정말 마음이 왔다 갔다 했지." (<길 위의 신부 문정현 다시 길을 떠나다> 129-130쪽 발췌. 낮은산 출판)

당시 노동자들은 시위에 나갈 때마다 성당 마당에 모여 시위 사전 연습을 했는데, 한 사목위원의 질문에 문 신부는 이렇게 호통을 쳤다고 한다.

"신부님, 노동자의 권익을 위해 데모하는 건 좋지만, 총검술을 성당 마당에서 하시면 되겠습니까?"
"그럼 노동자들은 만날 경찰들한테 당하라는 말이냐?" (같은 책 135쪽)

창인동 성당을 노동자 투쟁의 메카로 만들었던 문 신부에게 노동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짧게 말했다.  

"노동은 아름다운 것이고, 인간의 품위를 높이는 일이야. 그런데 그것이 무시되고 노동을 무작정 부려먹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인간성이 파괴되는 것이지."

백 소장에게도 물었다. 그 뜻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거리의 투사'로 불리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 이희훈

"노동은 빚음이야. 빚음은 창조야. 떡을 빚는다, 빈대떡을 빚는다고 하잖아. 물건도 빚어내고, 우리가 쓰는 물건도 빚어내고, 땀의 결과도 빚어내는 거야. 진짜 빚어내는 거는 뭐야? 역사의 진보를 빚어내는 거야. 다시 말하면 올바른 문명을 창조하는 것이 노동이야.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값어치는 노동이야. 노동자들의 힘을 북돋워주는 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하기에 나도 창조적인 역사적 작업에 참여하는 거야."

백 소장이 이번 전시회에 쓴 붓글씨에는 '노동'의 가치에 대한 게 여럿 있다.

'땅에 떨어진 땀은 한 줌 거름이지 네거 내거가 아니다 그것을 다슬이라 하더라'
'일꾼들의 피눈물의 꿈 그 짜배기를 모르면서 누가 무엇을 깨우쳤다 하는가'

▲ 백기완 소장이 <두 어른>전에 내놓은 작품. ⓒ 백기완

[통일이란?] 민족통일보다 더 큰 통일이란...

▲ '거리의 투사'로 불리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 이희훈

백 소장은 통일 이야기를 하면 피눈물이 난단다.

"우리 어머니가 북쪽에 남아 계실 때 국군이 올라갔어. 다른 집은 태극기 달았는데 우리 집만 안 달았거든. '할마이~ 왜 태극기 안 달았어?' 우리 어머니가 그야말로 비나리를 하셨어. '나는 남쪽에서 살고 있는 우리 남편하고, 우리 아들 딸 기다리지, 군인을 기다리지 않는다.' 반군사주의, 반평화적인 것을 한마디로 갈라 쳤잖아.

그리고 또 와서 태극기 달라고 하니까 어머니가 3.1 만세 때 할아버지의 피 묻은 태극기를 달았어. 밤에 인민군이 들어와서 '할마이~ 왜 태극기 달았냐'고 해. '이거 봐. 떼고 싶으면 너희들이 떼.' 그래서 그 놈들이 집어 던지고 갔어.

1951년 겨울, 내 손 위의 형님이 육군 일등병으로 철의 삼각지대에 있을 때, 나한테 편지를 썼어. '기완아, 북쪽에 있는 어머니 가슴을 겨냥해서는 총을 한방도 쏠 수가 없구나. 하늘에 대고만 쏘는구나. 동료들이 비겁하다고 하지만 너는 꼭 살아서 엄마한테 전해. 네 형 백기현이는 어머니 가슴을 향해 총을 못 쏘고 하늘에 대고 쏘다 죽었다고' 그러면서 돌아가셨어.

분단이라는 게 이런 비극이야. 침략상황이라고. 반침략 싸움이 분단의 해결이라니까. 지금은 뭐야? 있는 놈들이 더 없는 놈들을 갈라놓잖아. 남쪽 북쪽만 갈라진 게 아니야. 있는 놈과 없는 놈, 나쁜 놈과 안 나쁜 놈, 죽일 놈과 살릴 놈하고 갈라서 있는 거야.

통일이란 게 뭐야. 죽일 놈들 나쁜 놈들 이놈들 청산하는 것이 통일 아니겠어? 나는 민족통일이란 말은 안 쓰잖아. 민족적인 비극 속에 살았으면서도 민중이 주도하는 해방 통일이라고 하잖아. 죽일 놈들을 청산하는 것이 하나가 되는 길이지. 통일은 분단 억압착취체제로부터 착취 받은 민중의 해방이야. 그것을 완결하는 게 한반도의 통일이고 전 세계로 완결하는 게 인류의 통일이야. 통일을 이렇게 봐야지."

문 신부를 통일운동으로 이끈 한 젊은이가 있었다. 1988년 5월 15일 명동성당 교육관 4층 옥상에서 "양심수를 석방하라" "조국통일을 가로막는 미제를 몰아내고 광주학살 진상 밝혀내라"고 외치며 할복 투신한 서울대생 조성만 열사.

"그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를 따라다니다시피 했어. 내 미사에 참여하고 강론을 듣고, 시골 본당으로 가면 거기까지 쫓아왔어. 편지도 자주 보냈어. 서울대 낙방했다고, 합격했다고, 군대 갔다 와서도 편지를 했어. 고등학교 2학년 때 나한테 세례도 받았지. 복학한 뒤 가톨릭문화운동을 하던 그 아이가 죽기 전에 부르짖던 말이, 유서가 나에겐 충격이었어."

조성만 열사의 유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척박한 땅, 한반도에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이 조국통일을 염원하며 이 글을 드립니다."

문 신부는 "내가 그동안 반독재운동을 벌여왔는데, 이게 통일운동과 결부가 됐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면서 "분단이 독재의 빌미가 됐기에 용납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 뒤 방북도 준비했으나 동생 문규현 신부가 그 일을 대신해서 고초를 겪었다.

▲ '길위의 신부'라 불리는 문정현 신부 ⓒ 이희훈

"북쪽을 다녀오고 싶었어.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준비도 했지. 당시 문규현 신부가 미국 메리놀 신학대학에서 석사학위 마치고 필리핀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내가 그 사람이 졸업할 무렵에 같이 만나서 미국 전역 사회복지 시설을 시찰하기로 마음먹고 출국을 하려는 터에 출국 정지가 되었어. 

공항까지 갔다가 그냥 나왔는데, 명동성당에서 열린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회의에 참석했다가 원로신부님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임수경씨의 방북 이야기가 나온 거야. 나는 평양에서 열리는 세계청년학생 모임에 참여하는 데 사목자 입장으로 같이하자고 주장했고, 다음날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합의했어. 나는 여건이 안 되니 문규현 신부를 파견하기로 한 거지. 

문 신부가 임씨와 함께 걸어서 휴전선으로 들어온 뒤에 감옥에 갇혔을 때 어머니와 면회를 갔지. 몸이 반쪽이더라고. 이게 다 내 작품인데, 피눈물이 흘렀지. 동생을 사지로 몰아넣었지만 자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야. 어머니는 김대건 신부 이야기를 했고, 나는 '고생했다, 이겨내자'라고 한 마디 했지.

백 선생님의 심금 울리는 말씀대로 외세에 의해 분단된 거야. 이걸 해결하려면 외세를 몰아내야지. 남남갈등의 문제도 해결하는 게 통일이라는 선생님의 말씀도 옳다고 봐."

[평화란?] 땅을 빼앗기지 않고 농사를 짓는 것

"농민들이 땅을 빼앗기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야. 장애인들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평화야. 하다못해 저수지에서 사는 두꺼비 맹꽁이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쫓겨나지 말아야 해. 저수지가 메워져서 필사적으로 언덕을 넘고 산을 넘고 물길을 찾아가지 말아야 해. 자기 서식처를 빼앗기지 않고 생을 누릴 수 있는 것, 이것이 평화야.

평화는 추상적인 것 같지만, 그러나 우리가 딛고 있는 땅을 쳐다보면 평화의 길이 어디든지 열려 있어. 평화를 일궈야 한다는 것은 이런 어려운 세상에서 또 다른 세계로 가는 동력이 되는 것이야. 평화가 그리 어려운 말이 아니지.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 전체를 바라 봐야 해."

문 신부가 이번 전시회에 내놓은 새김판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칼을 쳐서 쟁기를 창을 쳐서 낫을'
'평화는 어두움의 긴 터널을 지나야 있다'

▲ 문정현 신부가 <두 어른>전에 내놓은 작품. ⓒ 문정현

[두려움이란?] 배고픔, 외로움

길 위의 투사였고, 지금도 길 위를 걷고 있는 두 어른에게 혹시 두려울 때가 있냐고 물었다. 두려움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배고픈 거야. 가게방도 있고 쌀집도 있고 밥집도 있어. 그런데 돈이 없으면 결국은 절망을 강요받잖아. 왜 먹을 것이 있는데 사람이 굶어죽어야 되냐고. 두 번째는 아무리 몸부림쳐도 앞이 안 보일 때야. 깜깜해. 담벼락이 가로막고 포장이 가로막고 총칼이 가로막아. 그런데 이것은 인간이 만드는 암흑이야. 우리말로 깜떼라 그래. 깜떼 앞에서 물러서면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자살 행위야. 깜떼를 차란 말이야, 젊은이여.

세 번째는, '띠따 소리'야. 있는 놈들이 명령 내리는 것을 띠따라고 해. 박근혜가 소리를 지르는 것도 띠따고, 오바마가 소리치는 것도 띠따야. 이걸 깨뜨리는 소리가 있어. 애뚝(비장)소리지. '괏따 소리'지. 맨주먹으로 띠따를 깨는 거야. 괏따 치지 마! 어려서 그랬잖아. 그 괏따소리를 젊은이들을 가져야 해." (백 소장)

문 신부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사소한 것에 매혹되어 볼 것을 보지 못하는 젊은이들. 그야말로 진리를 찾고 가치를 찾고 하는 사람들이 적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야? 한 군데로 몰려서 빼앗겨 버리면 되돌아온다는 것이 쉽지가 않지. 갈 데로 가게 되는 거지.

그래서 우리가 보는 결과는 참담하고, 갈 데로 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완전히 모든 것이 말살되어버리는, 성서적 의미로는 노아의 방주 같은 상황. (깊은 한숨) 앞으로 어떻게 되나 하는 두려움이 있어.

백 선생님의 말씀도 외로운 외침일 수밖에 없지. 그런데 외로운 외침이 있어야 해. 이것마저도 없으면 시간이 오래 걸려. 대추리의 경우는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이주를 해버렸어. 내가 대추리에 살면서 내 발로는 기어나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주민들이 집단 이주했어. 난 상상도 못했지. 혼자 남게 되어서 맨 마지막에 내 발로 기어 나왔는데, 한동안 참기 힘들었어." (문 신부)

[마치며] "절망은 타락한 자의 것".. "현장에 남아 있겠다"

이날 두 어른은 무려 5시간 오마이뉴스 서교동 마당집에 함께 있었다. 2층 거실에서 '꿀잠' 집행위원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고 수박을 쪼갰다. 라일락 나무 그늘에, 잔디를 깔고 앉아서 댓거리를 이어갔다.

백 소장은 "오늘은 들러리"라면서 뒷전에 앉으려 했지만, 혈기는 어쩔 수 없었다. 무슨 질문이든, 거침이 없었다. 40~50년 전의 일을 날짜까지 기억해냈다. 추상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야기였다. 기승전결로 잘 짜인 삶의 이야기에서 추상적 개념을 퍼올렸다.

문 신부는 새까만 얼굴에 두 눈만 반짝였다. 검은 얼굴은 아직도 길 위에 남아있다는 뜻이다. 검게 반짝이는 눈동자는 앞으로도 길 위에 남고 싶다는 뜻이다.

- 언제까지 길 위에 서 계실 것 같습니까?
"매향리 싸움 때 얻은 별명이 '길 위의 신부'인데, 내게 힘을 주는 말이야. 그런 별명, 고맙지 뭐. 백기완 선생님을 보면 참 안타까운데, 나도 육체적으로 힘이 많이 빠져 있어. 툭툭 잘 쓰러져. 의식도 잃고, 엊그제도 쓰러져서 비상이었어. 마음도 약해. 하지만 뭔 일을 당하더라도 현장에 남아 있고 싶어. 현장에서 내 삶을 마감하고 싶어."

- 길 위에서 삶을 한 단어로 표현하신다면?
"레버넌트(the revenant)야. 심판을 받고 '남은 자'란 뜻이지. 시대가 변했다고 해서 딴 길로 가지 않고 언제나 아픈 곳에 남아 있고 싶어. 그런 맘으로 살고 있는 거지."

문 신부가 매향리, 대추리, 용산에서도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지금 폐허가 되어버린 제주 강정에 남아 외로운 깃발을 들고 있는 것조차도…….  

백기완 소장에게는 '헬조선'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고 요청했다.

"젊은이들이여.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절망에 빠지지 말자. 인류의 문명은 절망과의 싸움이었다. 옛날에 자연의 재해가 우리를 괴롭힐 때, 불이 있어 물이 있어 도구가 있어? 그래도 절망하지 않았거든. 이 자연도 우리 사람이 살 수 있는 조건이면서, 아울러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없게 만드는 것을 극복해왔거든. 절망은 사람의 것이 아니라 타락한 사람의 것이야.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한 개인의 꿈으론 안 돼. 사람의 꿈을 가져야 해. 그걸 바랄이라고 해. 그 꿈을 실천적으로 일구지 않으면 그 꿈을 꾸던 놈이 죽는 꿈이야. 젊은이여, 밤에 꾸는 꿈에 머물지 말고 진짜 사람의 꿈을 꿔라 이거야.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 바랄의 주인공이 되시라 이거야."

▲ <두 어른>전이라는 전시를 통해 작품을 판매해 비정규직 노동자 쉼터 '꿀잠'을 만들기 위해 팔을 걷어 올린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과 문정현 신부. ⓒ 이희훈

두 어른은 지금도 길 위에 남아 있다. 아직도 길 위에서 함께 할 이들이, 함께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는 탓이다. 이번에 백발의 두 어른이 든 '외로운 깃발'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쉼터 마련이다. 아래 배너를 누르면 두 어른이 삶을 통틀어서 하고 싶은 명쾌한 한 문장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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