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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노동자의 집 '꿀잠'

백기완과 문정현, 종이 호랑이 '두 어른'
비정규노동자 위한 '꿀잠' 건립 기금 마련 전시회 <두 어른>

16.06.29 18:16 | 글:노순택쪽지보내기|편집:김대홍쪽지보내기

아니 될 일이라고 했다. 노망난 짓거리를 세상이 비웃을 거라고 했다. 나이를 먹었으니 발 뻗을 데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뜻은 고마우나 돌아가라는 얘기였다. 거절이었다. 입이라도 맞춘 걸까. '두 어른'의 말씀이 같았다.

"나는 예술가가 아니다."

허나 우리 고집도 셌다. 예술이 별 건가. 완고한 세상에 금을 내려는 몸부림이 예술이라면, 당신들의 삶은 온통 불순하였고, 거리에 내던진 말과 몸짓은 가히 예술적이었다. 그러니 눈 딱 감고 우리의 작가가 되어 달라. 우리에게 두 분은 이미 예술가다.

▲ 허나 두 분은 외침을 멈추지 않았다. 비가 와도, 경찰에 가로 막혀도, 쓰레기차 위로 쫓겨 올라가서도 외치고 또 외치길 멈추지 않았다. ⓒ 정택용/노순택

두 어른. 어찌 모르겠는가. 빨갱이 타도와 애국결사를 외치며 버르장머리 없는 이 땅의 자식놈들에게 2만 원짜리 회초리를 휘갈겨대는 어버이들의 나라에서 두 분의 존재는 이미 가냘프다는 것을. 어쩌면 평생 종이호랑이였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고함이 포효가 아니었는가.

문정현은 일흔여덟 살이다. 1975년 인혁당 수형자들이 사형선고 하루만에 형장의 이슬이 되고 시신마저 탈취당할 때, 영구차를 가로막고 몸을 던진 젊은 사제였다. 1976년 박정희 영구집권에 반대하는 3.1구국선언 사건으로 감옥에 갇혔다.

형무소에 갇힐지언정 교회에 갇히려 하지 않았다. 그늘진 땅 고통 받는 이들을 예수로 섬기고, 거리를 교회로 삼아 평생을 보냈다. 매향리 대추리 용산 강정, 그의 흔적 배지 않은 고통의 땅이 어디인가. 10년 전 즈음, 그는 칼을 들었다. 목판을 깎기 시작했다. 작품들이 쌓였다.

▲ 문정현 신부의 작품 <치욕>은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는 미사도중 삼성물산 용역직원에게 붙들려 한움큼 뽑힌 당신의 흰 수염을 나무에 새긴 것이다. 문 신부는 "애끓는 가슴을 어찌할 수 없어 심장을 파내는 심정으로 나무를 팠다"고 말했다. 없이 공사차량을 집어 넣는 삼성물산 직원에 항의하다 젊은 직원에게 멱살이 잡혔다. 사람들이 겨우 말린 후 나무 그늘에 들어 오니 신부님의 옷깃에 하얀 뭉치가 떨어졌다. 수염 한움쿰이 뽑힌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활동가는 이 수염을 버릴 수 없어 모두 모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치욕은 그날 뽑힌 문정현신부의 수염이다." ⓒ 문정현

백기완은 여든네 살이다. 1964년 한일협정반대운동에 뛰어든 이래 평생 민주화운동 현장을 지켰다. 1973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1979년 계엄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렀다. 노동자들의 대통령 후보로 나선 팔팔했던 1980년대나, 해고노동자의 손을 맞잡고 눈물 흘리는 노년의 2016년이나 '이야기꾼 백기완'의 면모는 변함이 없다.

언젠가 말했다. "예수는 노동자였어. 목수였잖아. 노동으로 단련된 몸으로 부당한 사회질서에 대항한 깡따구 있는 인물이었다구." 문정현과 같은 눈으로 예수를 보았다. 백기완은 붓을 들었다. 당신이 말로 했던 것들을 한지에 옮겼다.

▲ 백기완 선생은 여든넷의 늙은 몸을 이끌고 한 달 동안 집에서 감옥살이를 하며 붓글씨를 써내려갔다. 작품 하나하나에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담았다. ⓒ 백기완

19세 청년노동자가 정비작업 중 스크린도어에 끼어 생을 다했다. 비정규노동자였다. 문자메시지 달랑 하나로 해고통지를 받았던 여성노동자가 10년 복직투쟁을 벌였다. "단식농성, 고공농성, 오체투지, 죽는 것 빼고는 다 해 본 10년"이었다.

헌데도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비정규노동자였다. 그녀는 복직투쟁을 중단했지만, 노예제도보다 나을 것 없는 비정규제도 철폐를 위해 싸우고 있다. 돌쟁이 아가를 둔 30대 노동자가 "힘들고 배고팠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비정규노동자였다.

세월호에서 학생들 곁을 지키다가 숨진 단원고 교사 두 명은 순직공무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비정규직이었다. 아니 비인간이었다. 지금도 이곳의 찬 바닥에서, 저곳의 굴뚝 위에서 비인간이 된 비정규노동자들이 외롭게 싸우고 있다. 간신히 버티고 있다.

두 어른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끝까지 버티겠다던 이들도 이런 식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잠시 몸을 뉠 곳, 깨끗이 몸을 씻을 곳, 따뜻한 밥 한 끼 나눌 곳, 아픈 데 치료받을 곳, 법률지원과 인권상담을 받을 수 있는 집 한 채가 있고 없음이 얼마나 큰 차이인가를.

두 어른이 창피를 무릅쓰고 '작가'로 나선 것은 그 때문이다. 문정현 신부는 괴로울 때마다 심장을 깎는 심정으로 매달려온 서각 70여 점을 내놓았다. 백기완 선생은 "한 달 동안 감옥살이를 하면서 겨우 써내려간" 붓글씨 40여점을 내놓았다.

그 가운데 석 점은 백기완이 쓰고, 문정현이 나무를 깎은 공동작업이다. 노구를 이끌고 대체 왜 이 고생을? 이라고 묻는가. 두 어른에겐 지금 이 땅의 비정규노동자야말로 '피 흘리는 청년예수, 세상을 바꿔야 할 사람들'이다.

▲ 이번 전시의 으뜸은 백기완 선생의 붓글씨를 받아 문정현 신부가 제주에서 나무에 새긴 공동작품이다. <산 자여 따르라>, <하늘도 거울로 삼는 쪽빛 아 그 빛처럼> 등 3점의 공동작품이 제작되었다. ⓒ 백기완 / 문정현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건립추진위원회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이 시대의 2인전'을 준비했다. 제목을 <두 어른>으로 삼고 잠시 망설였다. 두 어른은 사실 '두 동지'니까, 오히려 '두 친구'이므로.

두 분은 노동으로 삶을 일구는 평범한 사람들의 오랜 친구였기에, 그 친구들의 삶이 찢기고 부서지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늙은 두 분에게 조각칼과 붓의 노동은 힘겹지만 기꺼운 일이었고, 청하지 않아도 나서야 할 일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전시를 <두 어른>의 보살핌으로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두 친구'의 우정으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주름진 얼굴의 두 친구가 바라는 건 더 많은 친구들이 벽돌 하나 쌓는 일에 나서주는 일이다. 꿀잠이 문을 여는 날, 벽돌을 함께 쌓은 모든 친구들의 이름이 새겨진 작품 앞에 앉아 정다운 기념사진 한 장 찍기를 소망한다.

<두 어른> 전의 목적은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 건립을 위한 기금마련에 있다. 맞지만, 전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다. 이 전시의 목적은, 이 시간 이 땅에서 노동자들이 어떻게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는지 말하는 데 있다. 그 험지에서 고통 받는 친구들의 손을 오랜 시간 움켜잡고 함께 싸워 온 늙은 동지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있다. 우리는 벼랑 위에 집을 지으려 한다.

■ 전시 장소 : 사진위주 '류가헌' 1, 2관 전관
서울시 종로구 통의동 7-10 (경복궁역 4번 출구 걸어서 5분)
■ 전시 기간 : 2016년 7월 5일 – 7월 17일(여는날 : 7월 5일 오후 6시 30분)
■ 전시작품 : 백기완 붓글씨 40여점, 문정현 서각 70여점
■ 온라인관람 및 행사공지 : 페이스북 페이지 https://www.facebook.com/2oldboy/
■ <두 어른> 전시회: http://www.ohmynews.com/NWS_Web/Event/Special/twoadult.aspx
■ 문의 : 신유아(010-9270-0830 / 꿀잠 집행위원), 유흥희(010-7355-9826 / 꿀잠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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