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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

'2천만원에 정규직 포기하라'는 회사, 이 남자의 대답
[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⑩] 안산의 송곳 같은 인간, 홍승구를 만나다

16.06.26 12:00 | 글:선대식쪽지보내기|편집:최유진쪽지보내기

파견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파견의 범위를 확대하는 파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파견노동자가 처한 현실과 마주하기 위해, 기자 명함을 버리고 파견노동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지난 2, 3월에 걸쳐 한 달 동안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여러 공장에 취업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기록했습니다. 그 기록을 기획기사로 공개합니다. - 기자 말

여기 송곳 같은 인간이 있다. 이름은 홍승구(가명·48). 그의 이야기는 웹툰과 드라마 <송곳>의 주인공 이수인과 많이 닮았다.

대형마트 관리자 이수인이 함께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면, 비정규직 파견노동자인 홍승구씨는 회사와 싸워 스스로는 쫓겨나면서도 동료들의 정규직 채용을 이끌어냈다. 그의 이야기는 2013년 <부라보 마이 라이프>라는 연극으로 만들어졌다. 주인공의 이름은 홍승구였다.

이수인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홍승구씨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2일 경기도 안산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이날 반월·시화단지 노동자들의 모임인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 좋은 이웃' 총회 행사인 노동자 한마당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함께 활동하는 노동자들은 그가 회사와 싸울 때 큰 힘이 됐던 사람들이다.

▲ 지난 2013년 11월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달맞이 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부라보 마이 라이프> 포스터. 700개의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홍승구(가명)씨의 이야기를 담은 이 연극을 보면서 울고 웃었다. ⓒ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파견노동자가 되다

한때 홍승구씨는 잘 나가는 영업맨이었다. 삼성 에스원에 다니면서, 전국 10등의 영업실적을 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와 순탄치 않은 결혼 생활로 그는 나락에 빠졌다. 이후 공장일과 막노동으로 생계를 꾸렸다.

그가 파견노동자가 된 건, 2012년의 일이다. 전국 최대의 공단인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에 있는 한 전자회사에 들어갔다. 주야 맞교대로 열심히 일했다. 쉬는 날이 없었다. 일을 한 지 20일이 지났을 때 파견회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세요.'

그해 10월 한 제약회사에 들어갔다. 제품이 담긴 박스를 옮기는 일을 했다. 공장은 깨끗했고 일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다만, 최저임금을 받았다.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130만 원 남짓이었다. 홍씨는 그저 묵묵히 일했다.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들은 상여금을 더해 더 많은 돈을 받았다.

그해 12월 19일 대통령선거일. 회사 쪽은 직원들에게 2시간 늦게 출근하라고 통보했다. 홍씨에게는 '늦게 나오면 그만큼 돈을 벌지 못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빠듯한 월급으로 겨우 생계를 꾸리는 형편 탓에, 투표 시간 보장보다 그때 일해 버는 돈이 더 중요했다. 

그는 친분이 있는 한 정규직 노동자에게 물었다. "노동법을 잘 아는 분을 소개시켜 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홍씨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박재철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장이다. <송곳>으로 치자면, 이수인과 구고신의 첫 만남인 셈이다. 박재철 센터장은 홍씨의 질문에 답한 뒤 이렇게 말했다.

"제조업 공장 파견은 불법이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다. 끝까지 가봅시다."

돈과 사람의 갈림길에서

▲ 지난 12일 낮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안산 노동자들의 모임인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 좋은 이웃'의 총회에 참석한 회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좋은 이웃

홍씨는 "처음에는 그를 믿지 못했다.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처럼 기본급에 상여금까지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혹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 파견노동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정규직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2013년 설 연휴를 앞두고 한 파견노동자가 홍씨에게 말했다.

"이번에 그만둔다면서?"

회사는 홍씨가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알고 있었다. 그의 퇴사 소문을 흘렸다. 하지만 그는 당당히 출근했다. 설 연휴가 끝난 뒤, 파견회사 쪽은 그에게 사직서를 내밀었다. 실업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챙겨주겠다고 했다. 홍씨는 거부했다. 곧 회사는 그를 다른 지역으로 발령 냈다. 출근이 불가능했다.

홍씨는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의 도움으로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에 불법파견 진정을 냈다. 그러자 이 회사 황아무개 총무부장이 홍씨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해왔다.

"200만 원 줄 테니까, 그만하자."

홍씨가 거절하자, 황 부장이 부르는 돈의 액수는 커졌다. 1000만 원까지 불렀다. 홍씨는 "회사와의 싸움이 장기화되는 모양새였다. 월세와 가스요금이 많이 밀린 상황이었다. 1000만 원에 마음이 흔들렸다"라고 말했다.

고민이 깊어졌다. 그는 결국 늦은 밤 황 부장에게 연락했다.

"2000만 원 가져오면, 사인하겠다."

이튿날 황 부장은 한 카페에서 5만 원짜리 현금 다발 2000만 원을 홍씨 앞에 내보였다. 그는 "사인하고 끝냅시다"라면서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홍씨의 심장은 벌렁벌렁 뛰었다.

홍씨의 말이다.

"그 순간, '끝까지 함께 하자'고 하던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장과 노무사, 항상 '형님 괜찮으세요?'라고 걱정해준 동료 파견노동자의 얼굴이 스쳤다. 사인하고 돈을 챙긴 뒤, 전화번호 바꾸면 그만이다. 이 사람들 안보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못하겠더라."

그는 황 부장에게 "기다려 달라"라고 말한 뒤, 박재철 센터장을 찾았다. 고깃집에서 소주를 들이켰다. 홍씨는 선택의 기로에 섰음을 토로했다. 박 센터장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끝까지 만나겠다.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홍씨는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는 황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양심상 도저히 돈을 못 받겠다. 미안하다. 돌아가 달라."

홍씨는 며칠 뒤 회사 앞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돈 때문에 저렇게 한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2주가량 1인 시위를 이어가자, 회사는 두 손을 들었다. 회사는 30여 명의 파견노동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제안했다. 다만 홍씨의 퇴사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다. 홍씨를 이를 받아들였다.

2013년 4월의 일이다. 그는 기자에게 "그 전에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경험했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를 노동자로 자각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면서 "내 옆에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많아서 끝까지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 지난 12일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안산 노동자들의 모임인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공제회 - 좋은 이웃'의 총회 행사인 노동자 한마당이 열리고 있다. ⓒ 좋은 이웃

그가 사진을 안 찍은 이유

홍씨의 싸움은 다른 파견노동자와 활동가들에게 큰 자극이 됐다. 이후 많은 이들이 불법 파견 실태 조사에 나섰다. 이때부터 반월·시화단지에서 파견노동자가 겪는 열악한 노동 현실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파견을 확대하는 파견법 개정을 밀어붙일 때, 파견노동자들은 국회에서 증언하는 등 맞서 싸웠다. 그 후 야당은 파견법 개정에 제동을 걸었다. 결국 20대 국회가 여소야대가 되면서, 박근혜 정부의 파견법 개정 추진은 큰 타격을 받았다. 

기자는 홍씨에게 사연에 걸맞은 멋진 사진을 촬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노동운동을 해봐야겠다는 꿈을 품었다. 여러 공장에서 일하면서 그곳 파견노동자들에게 열악한 노동 현실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한때 파견회사에는 '홍승구 절대 채용금지'라는 문구가 적힌 적도 있다. 올여름에 지금 다니는 공장의 노동 환경을 고발하는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해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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