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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

'가위바위보'에서 진 사람을 해고합니다
[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⑥]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에서 해고와 구조조정은 일상

16.06.07 07:18 | 글:선대식쪽지보내기|편집:김지현쪽지보내기

파견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파견의 범위를 확대하는 파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파견노동자가 처한 현실과 마주하기 위해, 기자 명함을 버리고 파견노동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지난 2, 3월에 걸쳐 한 달 동안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여러 공장에 취업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기록했습니다. 그 기록을 기획기사로 공개합니다. - 기자 말

▲ 지난 3월 경기도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에 있는 한 공장 알림판에 ‘정규직 정리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의 내용이 담긴 메일이 나붙었다. ⓒ 선대식

▲ 지난 3월 경기도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에 있는 한 공장 알림판에 ‘정규직 정리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의 내용이 담긴 메일이 나붙었다. ⓒ 선대식

공장 한편 알림판에 종이 한 장이 나붙었다. 언뜻 보니 관리자들이 주고받은 메일 내용이었다. 알림판은 이곳 공장의 모든 노동자가 아침마다 모이는 곳이다. 얼마나 중요한 내용이기에 인쇄까지 해서 올려놨을까.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다.

"오래 다닌 정규직이라고 무조건 끌고 가지 말고 일을 잘 못하면 정리를 하고..."

정리해고를 하겠다는 경고였다. 출근길 알림판에 눈길을 줬을 정규직 노동자들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지 않았을까. 이곳에 위장취업해 일하고 있는 나조차도 해고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에 아내와 세 살배기 아이의 모습이 스쳤다. 

"정규직이 아니더라도 일을 잘하면 정규직 전환을 시켜서 육성하도록 합시다."


이어진 메일 내용이다. 공장 쪽의 속내가 빤했다. 이곳 공장에는 정규직보다 파견노동자가 더 많다. 공장 쪽은 '정규직 전환'이라는 미끼로 파견노동자의 생산성을 올리려고 했을 것이다. 누군가는 미끼를 물었을 것이다.

이곳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특성에 따라, 공장 라인은 봄에 가장 바쁘게 돌아간다. 이때 파견노동자를 채용한다. 일감이 줄어드는 다른 계절에는 파견노동자를 자른다. 실제로 지난해 이곳에서 많은 파견노동자들이 해고됐다. 파견노동자들은 정규직 전환이 희망고문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우리나라와 같이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나라에서 해고는 사회적 살인에 비유된다. 대량해고는 그만큼 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파견노동자가 가장 많은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에서 "많은 사람이 해고되고 있다"라는 외침이 터져 나오고 있지만, 귀 기울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곳에서 만난 서른 살의 파견노동자는 몇 년 전 처음 해고됐을 때를 잊지 못한다. 

"밤 9시까지 일하고 퇴근해 집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데, 파견회사 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일했던 라인이 오늘이 마지막이었으니, 내일 출근하지 말라'고 했어요.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죠. 함께 일한 동생에게 연락했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언니, 원래 이런 거예요.'"

일주일에 수십 명을 뽑는 이상한 회사

일상적인 해고는 몇몇 악질 회사만의 일이 아닐까. 이곳 국가산업단지에서 파견노동자가 들어갈 수 있는 가장 크고 좋은 회사에 입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회사는 삼성전자·애플 등 세계적인 스마트폰 제조회사의 협력업체다. 한 해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몇 해 전에는 1조 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했다. 오래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

이 회사에 들어가는 건 의외로 쉽다. 이 회사는 파견노동자를 끊임없이 채용한다. 내가 문을 두드린 파견회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수십 명의 파견노동자를 이 회사로 실어 나른다.

나 역시 면접을 보기 위해 파견회사의 차량을 타고 이 회사 1층 식당으로 향했다. 면접은 식당에서 진행됐다. 여러 파견회사에서 데려온 파견노동자들이 식당 한 편을 차지했다. 대부분 20대로 보였다.

면접은 형식적이었다. 면접관은 면접자들에게 "전자회사에 다녀 본 적이 있느냐"고 물은 뒤, "그렇다"고 한 이들에게는 "같은 일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자기소개서에 지금껏 서비스업 쪽에서 일했다고 했다. 면접관은 내게 "생산직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함께 면접을 본 면접자 중에는 광주와 서울에서 온 이들도 있었다. 광주에서 온 한 청년은 면접에서 "꼭 일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면접을 보고 몇 시간이 흘러, 파견회사로부터 합격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아마 나와 함께 면접을 본 이들 대부분이 같은 문자메시지를 받았을 것이다.

일주일에 수십 명이 입사하는 회사, 뭔가 이상하다. 새로 공장을 세우거나 라인을 늘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은 파견노동자가 필요한 걸까. 이곳에서 일했던 파견노동자들과 연락이 닿았다. 그들로부터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들었다.

▲ 지난 3월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 파견회사에서 대형 전자회사의 파견노동자 임금과 정규직 전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선대식

다른 조에서는 더 잔인한 일도

스물아홉 살의 김아무개씨는 3년 년 전에 겪은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좌절감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김씨는 2013년 9월 이곳에 파견노동자로 들어갔다. 고졸 출신으로서 번듯한 정규직 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던 그에게 이곳 입사는 운이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한 지 3개월도 안 돼 잘렸다. 그해 11월 '회사가 어렵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일했던 라인의 C조에서 파견노동자만 모두 잘렸다. A조에서는 더 잔인한 일이 벌어졌다.

"A조 조장이 파견노동자만 모이라고 했어요. 파견노동자들에게 가위바위보를 시켰어요. 여기에서 진 사람만 해고했어요. 친한 형도 해고됐는데, 큰 충격을 받았죠."

누군가는 파견노동자라는 이유로 잘렸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가위바위보에서 졌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쫓겨났다.

"정규직 되려고 눈치봐가면서, 남들 쉴 때 일했어요. 일하면서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했는데, 결국 해고됐잖아요. 저도 그렇고, 그때 해고된 사람들은 말 한마디 못하고 받아들였어요. 그때 너무 암담하고 힘들었어요."

그는 그 뒤로 절대 파견노동자로는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외할아버지 장례식 끝까지 보고 오면 '해고'"

스물여덟의 유아무개씨는 2014년 이 회사에서 잘렸다. 그는 하루 12시간씩 현미경으로 연성회로기판을 검사하는 일을 맡았다. 한 달에 두 번 쉬었다. 일은 고됐다.

하루는 회사에 출근하려는데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유씨는 조장에게 연락해 이 사실을 알렸다.

"외할아버지 장례식을 도와드려야 하고, 발인까지 보려면 3일 동안 회사에 못나올 것 같아요."
"3일 무단결근이면 자동 퇴사야."

유씨는 당황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회사에 못나가는 데 어떻게 결근이냐"라고 반문했지만, "남자들도 예비군 훈련을 가면 자동퇴사"라는 답이 돌아왔다.

유씨는 외할아버지의 발인을 보지 못하고 출근했다. 이튿날 아침 조회 때 조장은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유씨를 부른 후 혼쭐을 냈다.

"외할아버지가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어떻게 알아. 할아버지 돌아가셨다고 안 나오면 그만이야?"

유씨는 언니로부터 외할아버지의 사망신고서를 팩스로 전달받아 조장에게 제출했다.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이런 수모를 겪으면 6개월을 버텼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결국 해고였다.

어느 날 퇴근하려는데, 파견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허무함이 몰려왔다.

"내가 왜 여기서 일했을까."

파견노동자들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지난 2013년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가 파견노동자 623명을 대상으로 파견노동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46.5%가 "향후 근무기간을 예상할 수 없다"고 답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고용불안 탓이다.

또한 이전 직장에서 퇴사한 사유를 물어보니, 낮은 임금(23.5%)과 구조조정(17.4%) 순이었다. 이들이 바라는 것 역시 임금인상(48.1%)과 고용안정(34.9%)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고용안정이라는 파견노동자들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

최근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는 조선산업에는 파견노동자처럼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사내하청 노동자가 많다. 지난달 경남 거제의 삼성중공업에서 일하던 서른여덟의 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일감이 줄어 회사에서 나왔다. 세 아이의 아빠였던 그는 이튿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상은 아직 파견노동자를 비롯한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가혹한 곳이다.

한편, 이 전자회사 인사과 관계자는 "공장에는 본사 직원 700명과 사내하청 소속 파견직원 1000명이 일하고 있다"면서 "파견과 관련된 일은 사내하청의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위바위보 해고'와 같은 일은 사내하청에서 일어난 일"이라면서 "본사는 사내하청과 관련된 일에 개입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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