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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인 리포트

이 사람, 10만인

"내 딸을 위해... '막장 드라마'에 맞선다"
[이 사람, 10만인] 김지영 <세상의 모든 소린이에게> 저자

16.06.06 19:48 | 글:김병기쪽지보내기|사진:정대희쪽지보내기

▲ 김지영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쓴 <세상의 모든 소린이에게>(오마이북 출간). ⓒ 정대희

"너,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 다시 거기로 데려갈까? 당장 뚝 그쳐!"

출생의 비밀, 진짜일까? 어리둥절한 난, 이 말을 들으면 눈물을 뚝 그쳤다. 어릴 적 몇 번이나 들었고, 모질게 야단맞을 때면 '진짜 아들일까?' 의심한 적도 있다. 초등학교 때 부모 혈액형이 유전된다는 사실을 알고 확신했다. O형과 A형 사이에 나온 O형 유전자. 내 두 딸은 AB형과 O형 사이에서 나온 A형이다. 내 몸에 각인된 '혈연 공동체'는 물보다 진한 피의 역사이다.  

[프롤로그] 입양가족의 '사랑', 특별하지 않았다

그래서다. 입양은 내게 먼 이야기였다. 주변에서 입양을 했다거나, 자기가 입양아였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단 한 번 예외가 있긴 하다. 딸을 입양한 친구가 있지만, 그의 특별한 선택은 금기어였다. 술자리에서도 나는 아이 이야기를 꺼낸 적 없다. 암묵적인 합의라 생각했고, 비밀을 지켜야 할 것 같았다. 15년 동안이나……. 

그건 편견이고 착각이었다. '사랑의 시작, 입양을 인터뷰하다'라는 부제가 붙은 <세상의 모든 소린이에게>(오마이북 출간) 책은 내 몸에 각인된 고정관념을 깼다.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이나 울컥했다. 입양가족은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특별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낳은 정이든, 기른 정이든 사랑과 고통의 깊이와 크기는 같았다.  

이 책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2007년 6월, 딸 소린이를 공개입양 했다."

저자 김지영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는 입양아 '소린이 아빠'다. 이 책은 그가 인터뷰한 입양 가족 22명의 육성 기록이다. 입양 전문 기관의 관계자들을 인터뷰해서 입양절차와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 해소 방법도 소개했다. 무엇보다 그 자신이 입양 가족이기에 깊고 쉽게 다뤘다. 일반 가정의 부모들도 공감할 수 있다. 특별한 게 아니라 가족의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이기도 한 그를 오마이뉴스 서교동 마당집에서 만났다.

▲ 김지영 저자는 22명의 국내 입양 가족 등을 인터뷰한 뒤에 <세상의 모든 소린이에게>(오마이북 출간)를 펴냈다. ⓒ 정대희

[눈물의 기록] 고아와 입양아 사이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한참 낯가림을 해야 할 9~10개월 된 보육원 아이들이 입양가족을 향해 막 기어오는 장면을 말하는 순간. 자기를 사랑해달라고, 선택해달라고 온몸으로 표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내 눈앞에 떠오르면서……."

인터뷰이도 울었고, 인터뷰어도 울었단다. 또 다른 눈물도 있다.

"입양하기 전 사고로 잃은 17살 아들 이야기를 듣고 많이 울었어요. 17살이었던 제 아들 생각도 났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자식 잃은 슬픔은 같습니다. 입양 부모는 다시 희망과 사랑을 키울 수 있었는데,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으신 분들은……."

이 책은 그가 때때로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한 입양 가족 눈물의 기록이다. 그는 아이 셋을 입양한 강명순씨 사연을 담으면서 이렇게 썼다.

"13년 전 딱 그 만한 나이의 아들을 키우고 있는 내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우린 잠깐 동안 눈물을 닦아 냈다." (<세상의 모든 소린이에게> 책 282쪽)   

[숫자의 의미] 6020명 중의 한명

나는 입양의 첫 이야기, 스물다섯 미혼모 유미씨의 고백이 담긴 책장을 넘기면서부터 먹먹했다. 한 해 동안 입양이 되기를 기다리는 요보호 아동은 6020명(2013년 기준). 생명의 온기가 없는 이 숫자는 유미씨가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사연이 보태지면서 소중한 생명으로 거듭났다. 그 사연을 요약하면 이렇다.  

23개월 된 딸을 미혼모 시설에서 혼자 키우는 그는 스물두 살에 만난 남자 친구와 1년 동안 사귀다가 임신 사실을 알았다. 둘 다 직장인이었고, 결혼할 수 있었지만, 남자 친구는 비겁했다. "미안하다"는 말에 유미씨는 자살할 생각으로 수면제를 먹었다. 산모와 아이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다. 그 뒤에 닥친 가족들의 외면, 사회적 고립, 경제적 막막함…….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연인들도 임신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랑으로 잉태한다. 유미씨는 아이를 홀로 키우며 꿋꿋하게 버티고 있지만, 요보호 아동 중 미혼모와 기아 탓에 보호자가 양육을 포기한 어린 생명들이 1819명이나 된단다. 이 숫자 중 아이 스스로 선택한 건 한 건도 없다. 고아라는 사회적 편견의 희생양이 되어야할 까닭이 없는 숫자이다.   

[뜨거운 만남] 기대와 설렘... 불안까지 닮았다

저자의 딸 소린이도 미혼모의 아이였다. 유미씨가 자기 아이를 가질 때의 마음과 저자가 소린이를 가질 때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9년 전 선웅이를 가졌을 때, 태어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마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부모가 느끼는 기대와 설렘, 그리고 혹시 모를 이런저런 불안까지, 더하고 뺄 것도 없이 그 마음 그대로였다." (책 15쪽)

- 소린이를 입양한 이유는?
"대학교 1학년 때 봉사 동아리에 들어갔다. 예쁜 여학생에 끌렸다. 흐-흐. 어느 날 자매결연 시설에서 5~6살 되는 시각장애인 아이와 하루 종일 놀았다. 헤어지려는 데 녀석의 얼굴이 짠했다. '다음 달에 또 놀아주겠다'고 했는데, 학생운동을 시작해서……. 약속을 잊었다. 아마 무의식적으로 부채의식으로 남았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결혼을 했고 난, 딸을 원했고 소린이를 입양했다."

소린이를 입양한 이유와 그 과정에서 느꼈던 사랑과 아픔에 대한 이야기가 책의 곳곳에 스며있다. 공개 입양과 비밀 입양, 장애인, 연장아 입양 등에서 겪는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과 해결책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래서 저자는 "예비 입양 부모들의 필독서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비 입양가족이 갖는 두려움과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실제 경험으로 보여준다. 비밀 입양을 고수하는 분들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가령 입양아를 자식처럼 키우는 것을 보아왔던 이웃 사람이 아이가 중학생이 된 뒤에 부모에게 '언제까지 키워줄 거요'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입양부모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다."

▲ 김지영 저자가 국내 입양 가족을 인터뷰했던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 정대희

[입양의 진실] 막장 드라마와는 너무 달랐다

- 책의 프롤로그에서 소린이를 키우다가 "목수라는 생업을 잠시 뒤로하고, 톱과 망치 대신 카메라와 노트북을 들고 인터뷰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유는?
"개인적 동기는 소린이 공개입양 과정에서의 궁금증이다. 공개 입양을 할지, 아이의 심리상태는 어떤지, 입양부모가 갖는 두려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등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려고 취재를 시작했다. 사회적으로는 소린이를 입양하기 전에 겪었던 정보 부족, 어떻게 양육할지에 대한 갑갑함, 입양하지 않으면 도무지 알 수 없는 감정도 있다. 이걸 보통 사람에게 쉽게 설명하고 싶었다."

- 그래서 확인한 입양의 진실은 뭔가?
"자식을 키우고 싶은 사람이 직접 낳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만나 키우는 것이다. 고아는 본인이 선택한 삶이 아니다. 다행스럽게 새로운 부모를 만났다. 가족 형성 과정, 즉 만남의 과정만 다를 뿐이다. 그 뒤의 삶은 똑같다. 모든 부모와 모든 자식의 관계는 같다.

입양아들을 '버려진 아이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취재과정에서 만난 미혼모들은 아이를 버리지 않았다. 아이를 포기한 미혼모였다. 아이를 포기하면서 엄청난 고민과 갈등과 가슴 찢어지는 아픔을 겪는다. 모두 소중한 생명체다."

- 입양 가족들은 어떨 때 가장 힘들어하나?
"비밀 입양한 사람에게 메일로 설문지를 돌렸다. '왜 비밀입양을 선택했나?' 사회적 편견이라고 응답했다. 입양을 공개했을 때 친구들에게 심한 말을 듣고 일반 부모들의 편향된 시각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가령 입양 가족의 아이가 친구를 밀쳤을 때 일반 가정의 엄마가 '쟤는 왜 저래?'라고 말할 수 있다. 그 말에 비난이 들어 있다. 편견은 좌절해야할 벽이 아니라 부숴야할 대상이지만 공개입양 부모들도 쉽지 않은 일이다."

- 막장 드라마도 편견을 조장하는 것 같다.
"그렇다. '검은 머리 짐승은 키우는 게 아니다'라는 등. 막장 드라마의 단골 소재가 출생의 비밀이다.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에서도 파행적인 입양가족의 실태만 보도한다. 확률로 따지면 일반 가정에서의 파행이 훨씬 많다. 폭력 가정의 70% 이상은 친생 부모로부터 발생한다. 학술적으로 10년 동안 연구를 한 보고서도 있는데, 일반 가정보다 입양가족의 행복 지수가 높았다. 언론은 입양가족을 자극적으로 다루는데, 이게 사회적 편견으로 자리 잡았다."
▲ 김지영 저자가 생업을 잠시 팽개치고 국내 입양 가족을 만난 건 '가슴으로 낳은 딸' 소린이를 위해서 였다. ⓒ 정대희

[에필로그] 시즌 2, 막장 언론과 맞선다

이날 김지영 저자가 인터뷰 자리에 앉아 맨 처음으로 한 말은…….

"지쳤습니다. 휴~~"

'입양을 인터뷰하다'라는 제목으로 국내 입양 사례를 <오마이뉴스> 10만인리포트로 연재한 뒤 책으로 펴냈는데, 그 작업이 다시 시작됐다. '시즌 2'는 해외 입양 사례다. 그는 인터뷰 직전까지 4시간 동안 해외 입양인을 인터뷰했단다. 입으로는 지쳤다고 말하지만, 그는 지칠 새가 없다. 무거운 배낭과 카메라 가방을 메고, 하루에도 몇 개의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시즌 2의 첫 기사는 6월 중하 순경에 나온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후원으로 제작하는 '10만인리포트'로 6개월 이상 연재한다.     

"입양에 대한 전반적 편견이 해외입양에도 적용됩니다. 언론의 관심은 주로 파행적이거나 성공적인 것, 양극단을 달리죠. 자극적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앞다투어 보도한 입양아 출신의 프랑스 장관은 뼛속까지 프랑스 사람입니다. 우리 언론은 자랑스럽게 보도했죠.

반대로 미국에 입양된 노숙인 자매들은 본인들이 취재에 응하지 않고 '꺼지라'고 험한 말을 하는데도 탐정처럼 붙어서 사연을 캤습니다. 이 양극단은 극소수입니다. 나는 고정되고 잘못된 막장드라마나 언론 프레임을 깨고 싶어요. 일상적인 해외입양의 삶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가 생업을 팽개치고 이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본능 같았다. 오히려 내가 A형 혈액형 딸들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고 결이 뚜렷했다. 소린이가 살아갈 편견 없는 세상을 다지고 싶은 것이다.

"소린이가 성인이 되고 사회 주역이 되었을 때 입양은 자연스럽고 흔한 것이라는 인식을 가졌으면 합니다. 소린이는 특별한 아이가 아닙니다."

그래도 믿기지 않는다면 모녀지간의 대화가 나오는 이 책의 에필로그 한 토막을 소개한다.

"어서 학습지 끝내고 양치하고 목욕해라."
"……."

1분 후.

"엄마가 학습지 끝내고 양치하고 목욕하라고 했다."
"…… 네."

다시 1분 후.

"야, 이 기지배야. 너 엄마 말 안 들을 거야? 벌써 엄마가 몇 번을 얘기했는데 꼼짝을 안 해?"

(중략)

"너 지금 뭐라 그랬어? 나쁜 엄마? 이 기지배가 정말. 너 나쁜 딸이라고 내가 말하면 기분 좋아? 어?"
"하 참, 아니 그럼 뭐 하러 나를 입양했는데?"
"네가 이런 딸인 줄 몰랐지."
"쳇. 나는 이런 엄만 줄 몰랐네."

(중략)

엄마는 코안경 너머로 동화책을 읽고 소린이는 엄마 가슴을 만지며 막 잠드는 중이다.

난, '가슴으로 낳은 딸'을 둔 오래된 친구에게 안부전화를 하고 이 책 한 권을 우편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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