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새소식 [리포트] 6m 준설한 강에서, 꼬마물떼새알을 찾았다

10만인 리포트

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

엄마도 젊은 관리자에게 "개또라이" 소리 들을까
[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⑤] 2번이나 신고해도, '불법파견 공장' 여전하다

16.05.17 05:26 | 글:선대식쪽지보내기|편집:손병관쪽지보내기

파견노동자들은 저임금·장시간 노동과 차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파견의 범위를 확대하는 파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파견노동자가 처한 현실과 마주하기 위해, 기자 명함을 버리고 파견노동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지난 2, 3월에 걸쳐 한 달 동안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여러 공장에 취업해 보고 듣고 겪은 것을 기록했습니다. 그 기록을 기획기사로 공개합니다. [기자말]

"이런 개또라이들이 나를 화나게 해!"

그는 공장이 떠나가라 소리 질렀다. "이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 씩씩거리며 가전제품 조립 라인을 뛰어다녔다. 조립 과정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 그 라인의 노동자들은 주눅이 든 채 눈치를 살폈다. 살벌한 분위기 탓에, 옆 라인에 있던 나 역시 움츠러들었다.

소리를 지른 이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관리자였다. 그에게 혼쭐이 난 노동자 중에는 50대, 60대 아주머니가 많았다. 이들 중 상당수가 파견노동자다. 그들이 파견노동자가 아니었다면, 젊은 관리자는 그렇게 소리칠 수 있었을까. 순간 파견노동자로 일하고 있는 나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험한 말이 오간 이곳은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에 있는 가전제품 회사다. 누구나 알만한 브랜드다. 한국수출입은행이 선정한 '한국형 히든챔피언 육성대상기업'이기도 하다. 이 회사가 성장한 바탕에는 불법이 있다. 바로 저임금의 파견노동자다.

직접고용 아닌, 해고를 선택한 회사

시계를 돌려, 지난해 6월로 가보자. 당시 공장에는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회사가 파견노동자 모두를 해고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곳 직원 360여 명 중 파견노동자는 150명가량이었다. 한 파견노동자는 '회사가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해고할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는 곧바로 파견회사에 연락했다.

"다 그만둬야하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인가요?"
"네, 파견 전부 그만둬야 해요. (회사로부터) 통보가 왔어요."

충격이었다. 입사한 지 3개월 만의 해고다. 억울했던 그는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문상흠 노무사를 찾았다. 얘기를 들은 문 노무사는 혀를 찼다.

문 노무사는 이미 한 달 전,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안산지청에 불법으로 파견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던 이 회사의 처벌을 요구했다. 이 회사는 처벌을 피하고자 파견노동자를 해고한 것이다. 이 같은 조치는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위반이다. 불법 파견의 경우, 회사는 파견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

문 노무사는 재차 이 회사를 고발하는 진정서를 냈다. 거듭된 고발에 부담을 느낀 회사는 이 파견노동자에게 정규직 채용을 제안했다. 그는 정규직이 됐다. 나머지 파견노동자는 모두 잘린 뒤였다.

파견회사에서 파견법은 휴짓조각

해가 바뀌고 올 3월, 내가 이곳에 발을 들였다. 앞서 파견회사에서 시급 6140원, 주 6일 근무, 매일 3시간 잔업(연장근로) 따위의 얘기를 들었다. 파견회사 대표에게 물었다.

- 이곳에서 얼마나 일할 수 있나요?
"파견으로 남고 싶어요? 말씀해주세요. 제가 알아서 처리해드릴게요."

"어떻게…?" 내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는 말했다.

"저희 소속이 아닌 다른 파견회사로 일할 수 있어요."

명백한 불법이다. 제조업에서는 원칙적으로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다. 예외조항을 적용하더라도, 6개월 이상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다. 이곳에서 파견법은 휴짓조각이었다.

노예시장의 노예가 생각났다

▲ 지난 3월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에 있는 한 공장에서 닳아 떨어진 장갑으로 가전제품을 조립했다. ⓒ 선대식

곧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 알림판에는 그날의 인원현황표가 붙었다. 내가 있던 라인에 정규직은 모두 7명. 나머지 24명은 파견노동자다. 파견노동자들은 각기 3군데 회사에 속해있다. 이 라인과 공장은 파견노동자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곧 관리자의 명령에 따라, 이날 새로 들어온 파견노동자 20여 명이 줄지어 섰다. 각 라인의 관리자들은 파견노동자들을 뜯어봤다. 

"그 자리가 비었는데, 남자를 데려가야겠네."
"○○○씨가 남자를 부담스러워하던데…."
"그러면, 이 사람을 데려가야겠네."

선택된 이들은 그곳 관리자를 따라갔다. 노예시장에 나온 노예가 생각났다. 그렇게 하나둘씩 사라자고, 나도 한 라인에 배치됐다. 일한 지 몇 시간 만에 파견노동자의 현실과 마주했다.

일을 시작할 때 얇은 실장갑을 지급받았다. 얇은 실로 결어 만든 장갑인 탓에 금세 더러워졌고, 한쪽이 닳아 떨어졌다. 관리자에게 새 장갑을 달라고 했다. 그는 나를 째려봤다.

"일주일에 하나 주는 거예요. 다음부턴 없어요."

새로 지급받은 장갑 역시 곧 너덜너덜 해졌고, 일을 그만둘 때까지 찢어진 장갑을 끼고 일해야 했다.

두 번이나 고발했지만, '불법파견 공장'은 여전하다

1년 전 두 번이나 불법파견으로 고발당한 이 회사에는 여전히 많은 파견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정부는 무얼 하고 있을까. 문상흠 노무사는 "불법 파견으로 걸려도, 벌금 300만 원, 400만 원밖에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약한 처벌 규정뿐만 아니라, 지금의 불법을 하루아침에 합법으로 바꾸는 파견법 개정안도 불법 파견을 용인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문 노무사는 올 초 고용노동부에 불법파견 신고센터 설치를 요청했다. 이에 대한 고용노동부 쪽의 답이다.

"곧 법이 바뀔 텐데, 나중에 얘기합시다."

지난 4월 20대 국회의원선거 결과, 집권여당의 과반의석은 붕괴됐다. 파견법 개정안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반월·시화국가산업단지의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을까. 며칠 전 이 회사와 연결된 파견회사 대표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왔다.

'지금부터 또는 내일부터 ○○○ 라인에서 근무하실 (파견)근로자 구합니다.'

▲ 지난 12일 한 파견회사는 지난해 두 번이나 불법 파견으로 고발당한 회사에서 일할 파견노동자를 모집하는 문자메시지를 기자에게 보냈다. ⓒ 선대식

[클릭] '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 기획기사 보기
① 22개월 뒤 물러날 대통령께 보내는 '위장취업' 보고서
② "여자친구랑 놀고 싶다면 그 길로 퇴사하세요"
③ 아무도 안 알려준, 분무기의 '무서운' 문구
④ "여긴 정말 미쳐 날뛰는 무법지대"


추천 리포트
이 기사와 관련된 최신 리포트